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42)
442 – 역시 해낼 줄 알았어. (1)
442화 역시 해낼 줄 알았어. (1)
야만인 전사들은 옆구리를 치는 레이폴드 기마대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전방의 적은 쉽게 밀리지 않는데 옆을 치는 군대도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열이 금방 흐트러지고 흔들렸다.
집중이 흐트러진 군대는 그 힘 또한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쿠웅!
레이폴드군은 지금까지 밀렸다는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강하게 야만인들을 압박했다.
철컹! 철컹! 철컹!
방패의 틈이 벌어지며 창격이 쏟아져 나온다. 야만인 전사들은 속수무책으로 그걸 맞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악!”
“뭐 해! 밀어 버리라고!”
“옆부터 막아!”
전사들이 모두 혼란에 빠졌지만 그들을 제대로 지휘할 사람이 없었다. 이미 지휘부도 지셀을 막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대전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런 대군을 제대로 지휘할 능력은 없었다.
푸욱! 푸욱! 푸욱!
레이폴드군은 혼란에 빠진 야만인들을 차근차근 죽여 나가며 계속 전진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움직임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보는 사람이 오싹할 정도로 냉철한 군대였다.
쿵!
레이폴드군의 중보병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야만인 전사들의 대열은 더 망가졌다.
공격력은 제법 강하지만 무장이 빈약한 전사들은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기마대의 공격에 버틸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전세를 뒤집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대열은 붕괴되었고 지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수가 많으면 무얼 하는가. 이들의 전투 방식은 그냥 혼자 싸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전투에서는 어느 쪽의 사기가 먼저 무너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언제나 정신론이 강조되는 것이다.
약탈만 하며 살아온 야만인들은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었다.
“씨발! 도망가!”
“일단 빠지고 다시 정비하자고!”
“정비는 뭘 정비해, 이 병신아! 존나 밀리고 있는데!”
가장 뒤쪽에 있던 전사들이 먼저 도주하기 시작했다. 수습할 방도가 보이지 않자 일단 몸부터 내뺀 것이다.
전투는 좋아하지만 명예도 충성심도 없는 이들다웠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군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 도망가자 도망갈 생각이 없던 전사들도 몸을 빼기 시작한 것이었다.
문제는 가운데 끼인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냥 강으로 도망가!”
“건너가자!”
“빨리 빠져!”
결국 강에 뛰어드는 전사들이 속출했다. 일단 헤엄쳐서라도 건너편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전장을 지켜보던 아멜리아가 강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익…….
진형의 후열에 있던 궁수들이 모두 활시위를 당기며 몸을 틀었다.
“쏴라.”
파아아아앗!
화살 비가 강가에 쏟아져 내렸다.
무수히 많은 화살이 도망가는 야만인 전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무방비 상태의 전사들은 화살이 떨어지는 족족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야만인 전사들의 비명을 들으며 아멜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콰아앙! 콰앙!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아군을 피해 야만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레이폴드군 쪽은 야만인들을 완전히 압도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된다.
후위에 남아 있는 전사들은 지셀이 해결할 것이다.
콰앙! 콰앙! 콰앙!
지셀은 여전히 흑왕을 타고 날뛰고 있었다.
야만인 전사들은 지셀에게 정신이 팔려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돌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열이 망가진 채 그저 머릿수로만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쓰러질 것이다.
“이, 이 무슨…….”
워로카는 혼란에 빠졌다. 뭔가 수습을 해야 하는데 사방에서 전부 치고 들어오니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번쩍! 콰르르릉!
언제부터인지 불과 번개가 번뜩이며 전사들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마법사들까지 참전한 것이다.
남은 구원교의 사제들로는 도무지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막아! 막으라고! 도망가지 말고 버티라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버티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 전부였다. 분명 이쪽이 수가 더 많은데 왜 이렇게 밀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함을 지르던 워로카는 오싹한 예감에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멈칫했다.
콰앙! 콰앙! 콰앙!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지셀이 전사들을 날려 버리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다들 정신없이 얻어맞고 있으니 지셀을 포위하고 막을 수가 없었다.
워로카의 옆에 있던 대전사 몬가가 먼저 튀어 나가 도끼를 휘둘렀다.
카아앙!
하지만 지셀의 창과 부딪치자 도끼는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몬가는 곧바로 다시 휘둘러진 창에 그대로 목이 베였다.
“끄르륵…….”
검붉은 연기로 둘러싸인 지셀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지셀로서도 힘을 과하게 쓰는 것이라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감수할 만한 대가였다.
콰앙! 콰아아앙!
지셀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워로카의 호위를 맡고 있던 대전사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이놈!”
워로카가 쇄도해 오는 지셀을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드디어 지셀의 창이 멈췄다.
워로카 또한 북방에서 손꼽히는 전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셀을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쿠스투가 이놈을 못 이기고 죽었다.’
예전에 지셀과 싸웠던 쿠스투는 북방에서 자신과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대전사였다. 그런 쿠스투도 지금보다 약했던 지셀을 감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보라. 검은 연기로 둘러싸여 붉은 눈을 빛내는 악마의 모습을.
이놈은 완전히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절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워로카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지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쫄지 마라. 널 죽일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뭐?”
파앗!
갑자기 지셀의 뒤에서 누가 튀어 올랐다. 워로카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도끼를 들었다.
카아앙!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웬 애송이였다. 워로카가 황당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넌 뭐냐?”
“아렐.”
“뭐? 그게 누군데?”
“네놈을 죽일 사람이다.”
아렐은 불같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황당해하는 워로카에게 지셀이 웃으며 말했다.
“내 제자야. 얘 이기면 살려 줄게. 도망가도록 길을 터 주지.”
순간 워로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감히 자신에게 저딴 말을 하다니!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 워로카는 반발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다른 전사들과 다르게 음흉하고 생각이 많았다.
지셀의 제안은 굴욕적이지만, 자신만 살아남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패배가 확실했다. 수가 많은 것은 무의미했다. 전사들이 모두 혼란에 빠져서 통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약속 잊지 마라.”
사나운 웃음을 지은 워로카가 번개같이 아렐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상대가 지셀이라면 몰라도, 북방 최고의 전사인 자신이 이딴 애송이에게 질 리가 없었다.
콰아아앙!
워로카의 도끼와 아렐의 검이 맞부딪쳤다.
지셀은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주변의 전사들을 처치하면서 공간을 만들었다. 둘의 대결에 방해가 안 되도록 할 생각이었다.
카아아아앙!
‘뭐야, 이놈!’
워로카는 몇 번이고 도끼를 휘두르며 이를 갈았다. 애송이로 보이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에게서 엄청난 분노가 느껴졌다. 반드시 자신을 죽일 거라고 말하는 듯한 기세였다.
카아앙!
서로의 무기가 부딪친 순간, 워로카가 물었다.
“너,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냐?”
“우리 마을 사람과 가족들의 복수를 하겠다.”
“미친 새끼, 그딴 걸 누가 일일이 따지고 사냐?”
워로카가 만면에 비웃음을 띠었다. 어떤 상황인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약탈해 왔던 곳은 수도 없다. 아마 그중 한 곳의 생존자일 것이다.
워로카의 비웃음을 보며 아렐이 입을 앙다물었다.
‘반드시 죽인다.’
그에게 야만인들은 끊임없이 북부를 괴롭힌 원수다. 그리고 지금 아렐의 분노는 그들의 수장인 워로카에게 모두 쏠려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혼자서 모든 야만인을 죽이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전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야만인들은 확실히 몰락할 것이다.
콰앙! 콰앙! 콰앙!
두 사람이 다시 맞붙었다.
지셀이 거둔 뒤로 아렐은 훌륭하게 성장했다. 북방 최고의 전사 중 하나인 워로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 무슨! 이딴 애송이가 어찌 이런 실력을!”
워로카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핏빛 악마 말고도 펜리스에 강한 자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애송이가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파파파팍!
아렐의 검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워로카를 공격했다. 그 움직임은 지셀이 쓰는 검술과 똑 닮아 있었다.
펜리스의 기사들도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타고난 성향과 그간 쌓아 온 습관 때문에 의욕을 길게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셀이 반강제적으로 수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렐은 달랐다.
‘이날을 기다렸다!’
그는 야만인 때문에 가족과 친구, 마을 사람을 잃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렐은 야만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쉬지 않고 열심히 수련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갔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은 아렐에게 더 위험하고 강한 마나 연공법과 자신의 검술을 직접 알려주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한 결과 아렐은 영지의 기사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카앙! 카앙! 카앙!
두 사람의 무기가 불꽃을 튀기며 쉼 없이 움직였다.
“이놈이 감히…….”
자존심이 상한 워로카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는 기술로는 아렐에게 이길 수 없음을 깨닫자 곧 전법을 바꾸었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
부아아앙!
방어를 도외시하고 강력한 힘으로 아렐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파앗!
워로카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강맹한 공격을 쉬지 않았다. 치명상만 피하며 어떻게든 한 번에 승부를 내려 했다.
야수와 같은 그 기세에 아렐은 점점 뒤로 밀려 났다.
“크아아아!”
워로카는 그야말로 성난 곰 같았다. 생각이 많고 조심스러운 그지만 싸울 때만큼은 전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내뿜었다.
카앙! 카앙! 카앙!
도끼와 검이 부딪칠 때마다 아렐의 검이 떨려 왔다.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아렐이 발을 땅에 단단히 디뎠다.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한 워로카가 크게 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죽어라!”
이 한 수에 모든 힘을 다했다. 아예 아렐의 몸을 반으로 쪼개 버릴 생각이었다.
콰아아앙!
워로카의 강대한 힘을 버티지 못한 아렐의 검이 부서졌다. 검을 부순 도끼가 벼락처럼 내리치며 아렐의 가슴을 길게 갈랐다.
파아악!
피가 솟구쳐 올랐다. 워로카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도끼를 들어 올렸다.
살짝 빗나갔지만 이 기세를 몰아 다시 치면 된다.
부우우우웅!
덜컥!
“뭐? 뭐야?”
아렐이 손을 뻗자 내리꽂히던 도끼의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바로 지셀이 알려 준, 마나를 외부로 뿜어내는 기술이었다.
지셀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는 없지만 위기 상황을 피할 방편 정도는 되었다.
잔뜩 힘이 실려 빠르게 떨어지던 워로카의 도끼는 약간의 힘에도 궤도를 크게 빗나가 버렸다.
콰아아앙!
도끼가 땅을 찍으며 깊게 파였다.
아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워로카에게 다가가 부러진 검을 휘둘렀다.
“이놈…….”
워로카는 그 순간 보았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살의에 불타는 아렐의 두 눈을 말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검까지 부러진 아렐이 거구인 워로카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는 쉽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도끼가 땅에 박혀 워로카가 상체를 많이 숙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렐의 부러진 검이 워로카의 목젖을 꿰뚫을 수 있었다.
푸욱!
“커억!”
하지만 워로카는 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다시 도끼를 들어 올리며 싸우려 했다.
아렐은 이를 악물고 빠르게 검을 뽑아 다시 찔렀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그는 검을 찌를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담았다.
‘내가 복수할 것이다!’
야만인들을 막다가 죽은 부모님을 담았다. 함께 싸우다 죽은 마을 사람들을 담았다.
불타오르던 마을을 보며 절망했던 마음을 담았다. 곳곳에 쓰러져 있던 친구들의 시체를 보며 절규했던 마음을 담았다.
그는 그 마음을 꾹꾹 담아 두고 살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슬픔을 감내하고 참는 것뿐이었다.
그 감정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푸욱! 푸욱! 푸욱! 푸욱!
아렐은 피눈물을 흘리며 워로카의 목을 찌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주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원한과 분노는 야만인들의 수장인 워로카가 모두 다 짊어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푸욱! 푸욱! 푸욱!
“그르르륵…….”
워로카의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도끼는 이미 놓친 지 오래였다.
아직도 안 죽은 워로카의 생명력이 놀랍긴 하지만 끝이 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푸욱! 푸욱! 푸욱!
턱.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목 주변을 사정없이 찌르던 아렐의 손을 지셀이 잡았다.
“영주님…….”
악귀 같은 얼굴로 변해 피눈물을 흘리는 아렐을 바라보며 지셀이 말했다.
“끝났다.”
정신을 차린 아렐이 워로카를 바라보았다. 이미 눈동자에 빛을 잃고 죽어 있는 상태였다.
아렐이 붙잡고 있던 다른 손을 떼자 워로카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그 직후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야! 대단한데!”
“역시 영주님 제자라니까!”
“열심히 할 때부터 알아봤지.”
옆에서 싸우던 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어느새 전사들의 대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야만인 전사들은 이미 완전히 밀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어 가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아렐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정신이 없지만 무언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워로카를 잡았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어안이 벙벙했다.
지셀이 아렐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때? 기분이.”
“아…….”
순간 울컥 치민 감정에 아렐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만감이 교차했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건…….
“속을 태우던 불길이 꺼진 거 같습니다.”
참고 참아도 밤마다 자신을 갉아먹던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수련에 집중하고 아무리 명상을 해도 그것은 없어지지 않았다.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괴롭혔다.
그럼에도 아렐은 그것을 속으로만 쌓아 왔다. 영지에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속으로만 꽁꽁 싸매며 참아 왔다.
지셀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수련에만 전념하는 아렐이 안타까웠다. 그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그 마음을 잘 알았다.
이제 아렐은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잘했다.”
따뜻한 지셀의 말에 아렐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지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아렐은 그의 가르침 덕분에 여기까지 성장했고, 결국 야만인들의 수장인 워로카를 죽일 수 있었다.
아렐이 전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렐은 충분히 만족했다. 야만인들에게 짓밟혔던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드디어 이룰 수 있었으니까.
그가 있는 자리에서 북방의 야만인들이 몰살당하고 있었다. 비록 스스로 주도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 또한 이 전쟁에 힘을 보탠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야만인들의 수장을 직접 죽였다.
그 증거인 워로카의 목을 들고 아렐이 크게 외쳤다.
“태양돌 부족의 대족장! 워로카가 죽었다!”
그간 쌓였던 모든 아픔을 일거에 해소하는 외침이었다. 그의 외침은 전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야만인들과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북부는 야만인들의 침략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렐이 복수보다 더 크게 바랐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