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55)
455 – 적들을 찾았다. (1)
455화 적들을 찾았다. (1)
모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벨린다가 발끈했다.
“뭐예요! 지금 여자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말해 줬는데 그 반응은 뭐냐고요! 왜 다들 안 놀라는 건데!”
“…….”
다른 사람들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는 사이 카오르가 나서서 외쳤다.
“집사장이 암살자라는 걸 누가 몰라! 영지 암살대도 집사장이 이끄는데! 무슨 암살단에 있었고 저 이상한 편지 보낸 놈을 어떻게 아는지 자세하게 얘기를 해 줘야지!”
“하려고 했는데 지금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
“어쨌든 저는 암살단에 있었고 저 쪽지를 보낸 놈은 우리와 싸웠던 놈이에요. 문제는…….”
벨린다가 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저놈은 분명 우리 단장님한테 죽었거든요.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모르겠네요.”
지셀이 그 부분에 의문을 표했다.
“단장? 죽은 놈이라고? 그러면 이거 그냥 사칭 아니야?”
벨린다는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처음과 달리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굳이 사칭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누구도 저놈이 누군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뭐 하러 사칭을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지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하지도 않은 놈은 사칭해 봤자 의미가 없다. 지금도 벨린다 말고는 저 표식이나 멜키르라는 이름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죽은 게 맞아?”
“분명 단장님이 저놈의 숨을 끊고 마나 코어까지 파괴했어요. 저도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흐음, 그러면 이놈을 죽였다는 단장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데?”
지셀은 그게 궁금했다. 멜키르라는 놈도, 벨린다가 말하는 단장이라는 사람도 전혀 정보가 없다. 작정하고 숨어 사는 자들이란 뜻이다.
벨린다는 잠시 멈칫하다가 지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다들 여전히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속 시원하게 제대로 말을 안 하는 꼴이 상당히 수상했다.
지셀은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갑자기 가설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장이라는 사람이 혹시? 에이, 설마…….’
그가 물어보려고 하는 찰나에 벨린다가 먼저 성을 내며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놈이 다시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거죠! 설사 그놈이 죽고 그놈의 후인이 사칭하는 거라 해도 이 방식은 그놈이 쓰던 것하고 똑같다고요! 이런 짓을 괜히 할 리가 없잖아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짜 계책은 아닌 거 같았다.
공작가에서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작전이니 실제로 암살자를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운 좋게 살아남았거나 그 방식을 따라 하는 놈일 거다?”
“그래요! 저는 반드시 이걸 보낸 놈의 얼굴을 확인해야겠어요. 도련님이 안 가겠다면 저 혼자서라도 가겠어요!”
벨린다의 두 눈은 이제 알 수 없는 증오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살기를 내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무래도 멜키르란 놈에게 상당한 원한이 있는 것만 같았다.
‘뭐, 직접 만나 보면 알 수 있겠지.’
“만약 이놈이 살아 있는 거면……. 이놈 실력은 어떤데?”
지셀의 물음에 벨린다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20년 전에 이미 마스터에 이른 암살자였어요.”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20년 전에 마스터에 올랐다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스터에 올랐다 해도 무조건 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야. 마스터에 오른 뒤에도 벽이 계속 앞을 막고 있거든. 붙어 보기도 전에 쫄 필요 없어.”
그래도 사람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오직 에레네스만이 지셀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놈이 진짜면 크게 다치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는 거 아냐? 계속 요양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지. 가짜면 최근에 초인에 오른 놈일 테고.”
벨린다가 옳다구나 하며 끼어들었다.
“그래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진짜 그놈인지 아니면 사칭범인지부터 확인하자고요.”
“알겠어. 그나저나 이 그림은 뭐야?”
“검은 달이요. 그놈들의 표식이에요.”
“의미가 있나?”
“암살 대상이 살아 있을 때는 초승달, 그리고 암살에 성공하면 보름달로 변해요.”
“낭만 있는 놈들이네.”
지셀이 피식 웃으며 일어섰다.
공작가는 자신을 북부군과 떨어뜨리려고 별짓을 다 하고 있었다. 자신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이럴 때는 재미있게 놀아 주며 한 방 먹이는 것도 방법이다.
지셀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 북부군은 클로드가 지휘한다.”
그 말에 에레네스만 살짝 놀랐을 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짜증 나지만 클로드가 이미 능력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클로드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발로 툭툭 찼다. 입이 삐죽 나온 게 정말 하기 싫어하는 듯 보였다.
“벨린다와 길리언이 기사들 중에 몇 명만 골라. 소수 인원만 움직인다.”
그 말에는 반대하는 자들이 조금 있었다. 바네사가 가장 먼저 외쳤다.
“영주님! 저도 함께 갈게요!”
“아니야, 분명 공작가의 군대가 북부군을 칠 거야. 그놈들이 지금 대놓고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 그러니 마법사가 있어야 해.”
“에레네스 님이 있잖아요!”
“바네사도 함께 있어야 해. 그래야 피해 없이 공작가를 막을 수 있다.”
그 말에 바네사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북부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가서 도와주도록 하지! 바로 나! 신을 이긴 남자가 말이야! 요!”
알포이가 외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전쟁터에 있기 싫어서 따라가고 싶었을 뿐이니까.
바로 채비를 마친 지셀이 에레네스에게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북부군을 부탁하지. 적들은 당신하고 테넌트의 존재를 모르니 크게 당황할 거야. 이딴 수작도 앞으로는 못 쓸 테고.”
전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초인 하나하나가 아쉬워질 터다. 암살 따위로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게 뻔한데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초인을 뒤로 돌릴 리가 없다.
그리고 지셀은 적들이 그런 생각조차 못 하게 폭풍처럼 몰아칠 생각이었다.
에레네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얼굴에는 약간 걱정하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괜찮겠나?”
“뭐가?”
“그…… 클로드란 자에게 지휘를 맡기는 거 말이다. 일은 잘하는 거 같지만 사람이 너무 가벼워서 그런지 영 미덥지 않다. 중요한 전투인 것 아닌가.”
지셀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가볍고 무겁고는 사람의 성향일 뿐, 능력과는 다른 얘기지. 걱정하지 말고 싸울 때 저놈이 하자는 대로만 해 줘. 그러면 될 거야.”
“……알겠다. 그런데…… 암살자들은 어떻게 찾을 셈이지?”
“글쎄. 일단 페르디움 성에서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생각해 봐야지.”
에레네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혀를 찼다.
“암살자들을 찾는 걸 조금 도와주지. ‘가족’ 같은 사이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음? 어떻게?”
“나는 정령들을 이용해 세상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몇 가지 제약이 있지만 잠깐이라면 페르디움을 훑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암살자들의 위치를 먼저 포착하면 페르디움군이 쉽게 대비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대단하군. 그럼 부탁하지.”
지셀은 에레네스의 능력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뻔뻔하게 모르는 척했다. 전생에도 그녀의 능력으로 중요 지역을 확인해 가며 전쟁을 치렀었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제약이 있다. 마법적 방해가 있거나 정령의 기운이 약한 곳은 볼 수 없다.
그리고 상당한 집중력과 힘을 소모하기 때문에 그리 오래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직접 돌아다니며 구원교의 흔적을 찾고, 그걸 토대로 예측하며 주변을 확인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잠깐이라도 어딘가를 살펴볼 수 있는 건 싸우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다크의 분신을 놓고 가도록 하지. 나와 의식이 연결되어 있으니 그쪽에 말하면 바로 전달될 거야. 페르디움에도 분신을 보내 둘 테니까.”
“……그래.”
에레네스는 여전히 다크의 존재에 관해 조금 의심하는 거 같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능력과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본인이 말하지 않고 숨기는 이상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자. 이런 수작은 이제 두 번 다시 못 하게 해 주자고.”
지셀은 몇 명의 측근과 기사들을 데리고 바로 페르디움으로 향했다.
출발 전에 다크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레네스의 탐색 정보를 전해 듣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경계 수준을 최고조로 올리라고 전달하기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셀이 출발하자마자 에레네스는 최대한 자연의 기운이 풍부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나를 보호해라.”
그녀의 주변으로 따라온 엘프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경계를 섰다.
갑자기 또 지휘관이 된 클로드도 그녀 주변에 기사들과 병사들을 붙여 주었다.
‘영주님이 없으니까 대족장님이 북부군 최고 실력자일 거 아냐? 살아남으려면 잘 모셔야겠어.’
클로드는 실실거리며 에레네스를 따라다녔다. 그 속내를 알지 못하는 에레네스는 무척이나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드드드득!
땅에서 덩굴들이 올라와 에레네스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북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고오오오오오…….
그녀의 주변으로 이상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대지 위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던 잡초들이 흔들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들이 하늘 위에서 시끄럽게 울며 주변을 돌았다. 그녀의 머리 위로 구름이 몰리며 빛을 가리기 시작했다.
에레네스의 주변 공간이 왜곡되며 일렁였다. 마치 알 수 없는 기운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오는 듯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진짜 대족장님의 힘이라고?”
“성녀님이 기적 일으킬 때랑 비슷한 거 같잖아?”
경악할 만큼 강한 힘에, 주변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모두 놀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거대한 자연의 기운을 느낀 펜리스의 엘프들이 하나둘 홀린 듯이 그녀 주변으로 다가왔다.
특히 루미나의 충격이 가장 컸다. 그녀는 지셀 덕분에 가장 먼저 자연과의 소통에 성공했던 엘프다.
하지만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자연은 정말 아주 작은 편린에 불과했다는 걸.
“아아…….”
세상 모든 것이 속삭이고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잡초들이, 흙먼지만 일으키던 바람이, 그저 딛고만 있던 대지가, 심지어 주변을 돌아다니던 작은 벌레들까지.
모두가 에레네스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그녀와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서로서로 이어져 이곳까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연과의 소통.
세계수의 은총을 받은 에레네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무리 에레네스라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이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쿨럭!”
파아아아악!
에레네스가 피를 토함과 동시에 그녀 주위로 모여들었던 모든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족장님!”
“괜찮으십니까!”
“어서 대족장님을 모셔라!”
경계를 서던 엘프들이 기겁하며 달려오자 에레네스가 손을 저었다.
“괜찮다. 역시 세계수가 없는 곳에서 쓰기에는 쉽지 않구나.”
세계수 근처에서는 반동을 세계수가 나눠 지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에레네스는 숨을 한 번 내쉰 뒤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도록 하겠다. 페르디움의 영주성은 아직 안전하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순간이나마 페르디움 성을 훔쳐보다니. 그건 8서클 마법사도 못 하는 일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말이지만, 전설의 엘프 대족장이라 하니 또 안 믿을 수도 없었다.
클로드만 다른 생각을 했다.
‘으음, 정말 대단한데? 전쟁 때도 쓸 만하겠지만…… 영주가 뭐 하는지 감시하면 안 걸리고 몰래 장사할 수도 있겠어. 친하게 지내고 나중에 꼬셔야겠다.’
클로드의 야망을 모르는 에레네스는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페르디움을 훑어보았다.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암살자들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수 있으니 몇 번에 걸쳐 훑어봐야 했다.
“쿨럭!”
그때마다 에레네스는 피를 토했다. 그녀를 따라온 엘프들은 그걸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대족장님.”
“세계수가 없는 이곳에서 계속하는 건 무리입니다.”
“어찌 그곳을 다 둘러보려 하십니까.”
그들의 만류에도 에레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영주성 인근만 지켜봐도 된다. 어차피 그곳으로 올 게 아니냐. 그 정도는 아직 할 수 있다.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하는 것이다.”
그 말에 엘프들은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엘프 대족장의 약속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로드는 다시 생각했다.
‘참 신의 있는 엘프야. 세상 사람들이 다 저러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참 안타까워. 역시 약속은 대자연이 보증해 줘야 한다니까.’
참으로 뻔뻔한 생각이었다. 그 자신은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웬디는 클로드를 흘겨보았다. 이제는 표정만 봐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 영주성 인근 주변을 계속 훑어보던 에레네스는 드디어 무언가를 발견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