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61)
461 – 너 요새 운동하니? (2)
461화 너 요새 운동하니? (2)
지셀의 물음에 엘레나는 당황스러워하며 답했다.
“우, 운동 같은 거 안 해.”
엘레나는 귀족가의 영애다. 완전히 몰락한 귀족이 아닌 이상, 살면서 평범한 귀족 영애가 힘을 쓸 일은 없다.
페르디움이 아무리 가난한 영지라 해도 왕국의 지원을 받던 변경백이었다. 사용인 정도는 쓸 수 있다.
그러니 엘레나도 딱히 힘을 쓰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수련도 하지 않는다.
오직 영애로서 품격을 기르기 위한 수업만을 받아 왔다. 힘을 써 봤자 고작 그에 관련된 정도였다.
이번이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본 것이다.
“으, 으…….”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지 엘레나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그냥 한계치를 모르고 살았다. 힘을 써 볼 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셀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분명 그때…….’
― 오, 오빠! 도망가자!
― 괜찮아, 놔 봐. 너 은근히 힘세다?
― 빨리 도망가자고!
엘레나를 죽이려고 암살자 세 명이 페르디움을 찾아왔을 때, 그녀는 지셀의 팔을 붙잡고 도망가자고 했다.
그때 지셀은 팔을 쉽게 빼지 못했다.
― 힘은 또 왜 이렇게 세? 너 운동하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보통 여자아이보다 힘이 조금 더 세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당시엔 암살자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나중에도 회귀 직후라 자신의 힘이 불안정해서 그랬겠거니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 경우가 또 있었지…….’
케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돈을 받기로 했을 때, 엘레나는 지셀에게 슬쩍 팔짱을 끼고 친한 척하며 뭔가 얻어내려 했다.
그때도 지셀은 가볍게 팔을 빼려 했지만 실패했다.
― 아니, 너 진짜 운동하니? 뭔 힘이 이렇게 세.
지셀의 머릿속에 이상했던 점이 마구 떠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어갔던 부분들이 말이다.
벨린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엘레나를 그냥 수상할 정도로 건강하지만 평범한 여자아이라 생각하며 키웠다.
‘그래, 확실히 아가씨는 아픈 적이 없었어. 그 흔한 감기조차도 걸린 적이 없었지. 도련님이 매일 콧물하고 기침을 달고 살았던 거에 비하면…….’
당시에는 허약한(?) 지셀을 돌보느라 상대적으로 건강한 엘레나에게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어렸을 때는 이 정도로 힘이 센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또래보다 나은 정도이지, 성인보다 강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네트를 생각하며 혹시나 했던 마음도 금세 접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때도…….’
알포이와 마법사들이 처음 영지에 왔을 때, 바네사를 부려먹다가 지셀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직접 짐을 옮기라고 했지만 알포이와 마법사들은 그걸 제대로 들지조차 못했다. 오죽하면 데리고 온 마부가 도와준다고 했을까.
그때 사용인들과 함께 나타난 엘레나는 그들의 짐을 양손 가득 가볍게 들어 주었다.
벨린다도 그때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을 떨지 않았는가.
― 어머, 안 무거우세요? 요새 운동하시나 봐요!
― 아이참, 그런 거 안 해. 이거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걸.
그냥 알포이와 마법사들이 너무 허약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지금이야 건강하지만 그때 그들은 정말 허약했으니까.
지셀과 벨린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신력이다. 분명 신력을 타고난 게 분명해.’
‘아네트 님의 신력이 아가씨에게 이어졌을 줄이야.’
왜 그때 자세히 알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 왜 그냥 힘 좀 센 여자아이라 생각했을까.
솔직히 신력은 아무나 타고나는 게 아니니 생각도 못 했던 이유가 컸다.
‘신력을 가졌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걸리지.’
‘어릴 때 이후로 제대로 힘쓰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신경도 안 썼으니 알 수가 없었어.’
신력을 가진 자는 일반인들과 근육의 밀도, 구조가 달라 강한 힘을 낼 수 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큰 힘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근육도 같이 성장하며 힘이 강해진다. 그렇기에 꾸준히 신경을 써야 신력을 타고났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페르디움에서는 엘레나에게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없었다.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엘레나의 힘에 다들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엘레나 본인도 힘을 쓸 일이 없으니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이번에 처음 맞닥뜨리고 각성했을 확률이 높았다.
지셀이 눈을 빛냈다.
‘우리 집안에 이런 보석이 있을 줄이야. 이걸 이대로 썩힐 수는 없지.’
솔직히 암살자의 팔이 부러진 건 운이 좋았던 덕분이다. 암살자는 방심한 상태에서 갑자기 공격당해 반응하지 못한 것뿐이다.
아무리 신력을 타고났다 한들 본격적으로 싸운다면 엘레나는 초급 기사 하나조차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마나와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힘이 강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생에는 암살자에게 당해서 몰랐던 거지만…….’
아마 전생의 암살자들도 발악하는 엘레나에게 손목 하나 정도는 부러지지 않았을까?
지셀은 괜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엘레나에게 다가가 친한 척을 했다.
“엘레나, 무서웠지? 고생 많았어.”
“어? 음?”
“아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해서 조금 미안하네. 내가 보답으로 옷도 사 주고 장신구도 사 줄게.”
엘레나가 수상쩍다는 눈길을 보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지셀이 엄청난 부자인 건 이제 왕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셀은 사치를 안 하기로도 유명했다.
벌어들인 돈을 전부 영지 개발과 전투 준비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심지어 뇌물을 받은 것도 그쪽에 쏟아붓는다.
‘부자가 됐는데도 제대로 선물 하나 안 사 줬으면서!’
그것 때문에 서운하다고 레이첼에게 욕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지가 부자가 되면 뭐 하는가. 자신은 여전히 가난한 영애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렇게 친한 척하면서 뭘 사 준다고 한다? 뭔가 노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뭐, 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
“아휴,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우리 동생 그동안 너무 안 챙겨 준 거 같아서.”
“우, 웃기시네. 오빠 그럴 사람 아니잖아? 어? 어? 가까이 오지 마. 지금 당신 굉장히 수상해.”
다가가던 지셀이 엘레나의 경고에 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짜라니까? 이번에는 갖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뭐든 말만 해.”
“지, 진짜?”
“그럼! 진짜지! 아주 그냥 원하는 걸로 다 사 줄게! 내가 큰마음 먹고 쓴다.”
“진짜, 진짜지?”
“그렇다니까.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그러면 그렇지. 그냥 줄 사람이 아니다. 엘레나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무슨 부탁인데?”
“후우…….”
지셀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여기가 승부처다. 이제 설득을 해야 한다.
그는 정말 진심을 담아, 세상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북부군에 들어와라.”
* * *
“휴, 이제 끝났네요.”
“그래, 다들 고생 많았어.”
벨린다와 마주 앉은 지셀도 조금 피곤한 낯빛으로 몸을 의자에 기댔다.
며칠간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공작가도 이번만큼은 성공하려고 작정했는지 꽤나 비싼 미끼까지 풀었다.
문제를 어찌어찌 해결하고 나니 상당한 피로가 몰려왔다.
벨린다가 조금 착잡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엘레나 아가씨를 데리고 가시려고요?”
“그래야지. 저 재능을 그냥 내버려두는 건 죄라고, 죄.”
“너무 가기 싫어하시는데요?”
“으음…….”
지셀의 한쪽 볼에는 빨간 손바닥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싫다는 엘레나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설득하다가 결국 따귀를 한 대 맞은 것이다.
지셀은 설득을 위해 그냥 맞아 줬지만, 순간 목이 돌아가서 죽을 뻔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귀족이면 귀족의 의무를 다해야지. 저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안 싸우는 건 죄야. 어떻게든 끌고 갈 거야.”
“휴우…….”
벨린다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그녀는 몇 번이나 위험하다고 반대했지만 지셀은 요지부동이었다.
“신력 때문에만 이러는 건 아니야. 이번 일을 겪어 보니 엘레나도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어야겠더라고. 레이첼도 마찬가지야. 당장 전투에 참여시키지는 않더라도 데리고 가서 수련은 시킬 거야.”
크게 틀린 말은 아니기에 벨린다도 끝까지 반대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지셀과 자신의 옆이 가장 안전한 곳일 수도 있다.
무기술도 익히게 하고 마나 연공도 익히게 한다니 옆에서 자신이 잘 지켜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벨린다가 또 반대할까 봐 바로 화제를 돌렸다.
“엘레나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리 엄마에 대해서 좀 자세히 들어보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20년 전이면 뭔가 내가 태어난 시기랑 안 맞는 거 같은데.”
“30년은 안 넘었으니까 대충 20년 정도가 지났다고 얘기한 거죠. 그보다는 더 됐어요.”
“……그러면 벨린다 진짜 나이가 몇이라는 거야?”
“제가 항상 뭐라고 가르쳤죠?”
“……여자의 ‘진짜’ 나이는 묻지 않는다.”
“그래요.”
“…….”
능청스러운 대답에 지셀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저었다.
“어휴……. 그래서 우리 엄마의 정체가 뭐야? 어떻게 페르디움까지 오게 된 거고.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저 멜키르란 놈이 우리 엄마를 찾아다니기까지 한 거야?”
“후우…….”
벨린다는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두었던 낡은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지셀이 불렀을 때부터 이런 얘기를 할 줄 알고 가져온 것이었다.
“이건 뭐야?”
“제가 그동안 페르디움에 숨겨 놓았던 거예요. 먼저 아네트 님과 제가 있었던 단체에 관해 아시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벨린다는 대부분의 개인 물건을 페르디움에 숨겨 놓고 지셀을 따라갔다.
펜리스부터 카발디, 데스몬드까지 계속 자리를 옮겨 다닌 지셀이었기에 정리가 될 때까지 중요한 건 이곳에 보관한 것이다.
“여기에…… 엄마의 비밀이…….”
지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자를 열었다.
딸깍.
상자 안에는 세 권의 책자가 들어 있었다. 비교적 깨끗한 책 두 권과 상당히 낡아 보이는 책 하나.
겉보기에도 완전히 다른 책의 모습에 지셀이 떨리는 눈으로 두 권의 책을 먼저 바라보았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게…… 우리 엄마의 비밀이라고?”
“네.”
지셀이 눈을 몇 번이나 껌뻑거리고 책 제목을 다시 확인했다.
[기억을 잃은 전 남편이 알고 보니 제국의 황태자?] [마차에 치였더니 왕국의 공주로 환생했습니다.]아무리 봐도 시중에 판매되는 소설들이었다. 고든이 예전에 썼던 ‘투명 소드마스터’ 같은, 그냥 소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어머니의 비밀이 있다니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 혹시 재혼이셔?”
“네? 무슨 소리세요?”
“사실 왕국의 숨겨진 공주님이셨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지셀이 짜게 식은 눈빛으로 두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면 이건 뭔데?”
“어머, 어머. 그게 왜 거기 있대.”
그제야 책을 본 벨린다가 화들짝 놀라며 잽싸게 뺏었다.
아주 예전에 지셀과 엘레나의 육아에 지칠 때, 가끔 짬을 내서 보던 소설이었다. 잘 보관해 놓겠다고 한 게 저기에 같이 넣고 깜빡했던 모양이었다.
민망한 듯 배시시 웃은 벨린다가 말했다.
“아, 제가 취미로 보던 책이 거기 있었네요. 이건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거 보시면 돼요.”
“……그래.”
정신을 차린 지셀이 남은 책을 집어 들었다. 상당히 낡고 오래된 책이었다.
책에 적힌 건 한 단체에 관한 정보와 벨린다가 익힌 기술들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이라…….”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책자에도 그저 그들의 임무가 루타니아 왕실을 암중에서 수호하는 집단이라는 내용만 남겨져 있었다.
왕실에 위협이 되는 적들을 처치하는 비밀 단체. 이 단체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림자 기사단은 왕국의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귀족들의 살생부를 작성할 만큼 강력한 단체였다.
하지만 그들의 기원이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기록이 끊긴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한 가문이 단장 자리를 독점해서 이어 내려왔다고? 이 왕국에서?”
“네, 대대로 이어진 자리예요. 아네트 님의 가문에서만 비전을 익히고 그림자 기사단장 자리를 맡을 수 있었죠.”
“응? 그건 벨린다에게 전수됐잖아?”
“아네트 님은 자신의 대에서 그걸 끊으려 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전수해 주신 거예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엄마한테 다른 가족은 없었던 거야?”
“네, 제가 알기로는요. 워낙 비밀이 많으셨던 분이라……. 그리고 그런 게 매력적이라고 하셨었거든요.”
지셀은 벨린다가 자신에게 가르친 것들을 누구에게 배웠던 건지 깨달았다. 어머니의 교육이 자신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이 단체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만들어졌는지는 나와 있지 않네.”
이런 강력한 권한을 쥔 단체가 이유 없이 생겼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암중에서 구원교와 싸운 흔적이 있었다. 허투루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지셀이 대충 다 읽은 듯하자 벨린다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아마 건국왕 때부터 있었던 단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루타니아 왕실을 지켰던 게 아닐까요? 물론 기록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러면 그림자 기사단이 지금도 왕실에 존재하는 건가?”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멜키르 때문에 기사단은 없어졌어요. 살아남은 자들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다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가 배신자였나?”
“네, 멜키르가 부단장이었거든요.”
벨린다는 담담하게 과거의 일을 말해 주었다. 부단장이었던 멜키르가 아네트를 기습해 큰 부상을 입혔다고.
그때 단원들도 대부분 죽고, 그림자 기사단은 와해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 어렸던 벨린다는 그저 멜키르와 배신자들이 협공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 같네요. 아네트 님을 치기 위해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았던 거 같아요. 공작가와 구원교 말이에요.”
“싸울 당시에 상대에 관해 다른 말 들은 건 없어?”
“저는 당시에 견습 단원이었어요. 아네트 님이 그 일에 관해서는 말씀을 안 하셔서 자세히 알 수가 없었어요.”
“그렇군……. 그래도 대충은 알 거 같아.”
공작가가 야망을 내비치기 시작한 건 겨우 10여 년 전이지만, 구원교와 접촉을 하고 나라를 뒤집을 준비를 한 건 20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그전까지는 전혀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던 구원교다. 분명 그림자 기사단이 무너질 때부터 그들이 움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워낙 숨기는 게 많은 놈들이니 알 수가 없군. 신흥 종교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들이 사용하는 검은 기운은 지금까지 쓰이던 마나나 신성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이다. 그런 힘이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
구원교가 새로운 힘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레네스의 반응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에 관해 기록은커녕 구전되는 말조차 없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뭔가 대대적인 조작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기회가 나면 에레네스에게 물어봐야 할 거 같군.’
에레네스가 쉽게 말할 거 같지는 않으니 조금씩 캐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직감에 더 가까웠다.
‘분명 알고 있는 게 있을 거야.’
구원교가 멜키르를 도운 것은 그림자 기사단을 무너트리고 왕실을 치려는 의도였다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목적인 루타니아의 국왕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가문과 구원교, 그리고 왕실. 이 셋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로 엮여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