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88)
488 – 왕실을 위해서다. (1)
488화 왕실을 위해서다. (1)
도몬트 자작은 집무실을 서성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구원교의 사제를 데리고 오라니…….’
사실 왕은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구원교의 사제가 그냥 치료해 줄 리가 없다. 분명 어떤 제약을 걸거나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거기다 이미 대륙의 공적으로 지정된 구원교다. 왕이 그들의 손을 잡으면 왕 또한 대륙의 공적이 되게 된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 브랜포드 후작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대세를 뒤집을 수 있다.
친왕파라고 모두 같은 계파는 아니다. 그저 브랜포드 후작이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기에 그가 중심이 되었을 뿐이다.
왕이 건강을 되찾는다면 브랜포드 후작에게 눌려 있던 귀족들과 영주들이 고개를 들 것이다. 어쩌면 그를 축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브랜포드 후작이 펜리스 백작을 밀어주는 데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꽤 많다.’
지셀은 강제로 귀족들을 억압하며 일을 진행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이를 가는 귀족들도 꽤 많았다.
‘특히 약재를 뺏긴 귀족들과 동부 지역 귀족들이 그러하지.’
약재를 뺏긴 귀족들은 물론이고, 아멜리아에게 영지를 빼앗긴 귀족들도 그녀를 지지한 지셀에게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왕이 기력만 찾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물론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목숨이 달아날 것이고 왕은 더욱더 고립될 것이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도몬트 자작은 왕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그의 불쌍한 모습을 봐 오며 연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베르헴이 왕으로서의 위엄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것이 도몬트 자작의 충성 방식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도 전체에 브랜포드 후작의 눈과 귀가 깔려 있다.
공작파 귀족들과 선을 대는 것도 불가능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대부분이 도망가거나 붙잡혔기 때문이다.
‘시종장인 내가 왕실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브랜포드 후작에게 바로 잡힐 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도몬트 자작이 자신의 둘째 아들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그의 둘째 아들, 콜헨은 좋게 말하면 무척이나 활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놀기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장래가 유망한 기사이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왕국 곳곳을 쏘다니는 그야말로 전쟁이 잠깐 멈춘 이 시국에 바깥을 돌아다니기 가장 좋은 인물이었다.
도몬트 자작은 아들의 손을 꽉 잡고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무엇입니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의아해하는 콜헨에게 도몬트 자작은 차분하게 왕의 바람을 설명했다.
계획을 들은 콜헨은 사색이 되어 말했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에 걸리면 우리 가문은 아예 끝장이 날 겁니다.”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폐하를 위해 이 일을 꼭 하고 싶구나.”
“설사 제가 구원교의 사제를 설득해서 데리고 온다 한들 폐하의 앞까지 가지 못할 겁니다. 브랜포드 후작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어떻게든 데리고만 와 다오.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아버지! 정말 가문을 걸겠다는 말씀입니까? 성공하더라도 브랜포드 후작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폐하께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공포에 질린 콜헨의 어깨를 도몬트 자작이 강하게 붙잡았다.
“왕실을 위해서다.”
“아버지……,: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 가문이 브랜포드 후작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
“중앙 귀족이라 하지만 우리 가문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기반이 되는 영지조차 없이, 그저 내가 폐하의 총애를 받는 게 전부다.”
도몬트 자작의 눈은 알 수 없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도 방위 병력을 제외하면 모든 군대가 남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총사령관은 아직 수도에 있고 군단장들의 가족도 수도에 남아 있다. 왕실 기사단은 우리 편이다. 내 말뜻을 모르겠느냐?”
꿀꺽.
콜헨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왕만 기력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뒷일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콜헨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위험한 일이지만 가문을 위해서라면 해 볼 만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나 조용하고 잔잔한 성격이라 여겼던 아버지에게도 야심이 있었다는 걸.
“구원교의 사제가…… 정말 폐하를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치료가 아니지. 하나 지금까지 알려진 그들의 힘이라면 폐하의 기력을 되찾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도몬트 자작은 분명 그들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람의 생명력을 이용해 균열을 열고 성전사를 만들던 자들이니 말이다.
콜헨은 가만히 앉아 고민에 빠졌다. 도몬트 자작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고민을 끝낸 콜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해 보겠습니다. 반드시 구원교의 사제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고맙다, 고맙구나. 성공만 한다면 우리 가문은 크게 부흥할 것이다.”
그날부터 콜헨은 다시 술을 마시며 바쁘게 놀러 다녔다. 워낙 노는 걸 좋아했던 인물이라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도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수도에만 처박혀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려 미치겠군. 사냥이라도 가야겠어.”
주변에 이런 소리를 지껄이던 그는 며칠 뒤 호위 기사 몇 명과 사용인들을 데리고 수도 밖으로 나가 버렸다.
딱히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콜헨은 방심하지 않았다.
‘전부 떨어뜨려야 해.’
도몬트 가문의 기사들과 사용인들이지만 분명 브랜포드 후작의 명령을 받은 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유람하며 남부 쪽으로 내려가던 콜헨은 곧 호위 기사들에게 제지당했다.
“공자님, 더 이상 가시면 안 됩니다. 곧 위험 지역입니다. 도적들이라도 나타나면 우리 인원으로는 당해 내기 힘들 겁니다.”
그를 따라온 것은 호위 기사 세 명에 사용인 두 명뿐이었다. 그나마 호위 기사들도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남부 전선 쪽으로 내려갈수록 치안은 개판이다. 이 인원으로 도적들이 나타나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 슬슬 다시 돌아가 봐야지. 오늘은 노숙을 하자고. 내가 첫 번째 불침번을 서도록 하지.”
며칠간 여기저기 싸돌아다닌 콜헨 때문에 피곤해진 호위 기사와 사용인들은 저녁을 먹고 금세 잠이 들었다.
교대 시간이 왔을 즈음, 모두가 잠든 걸 확인한 콜헨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는 오늘 일부러 더 많이 돌아다녔다. 다들 피곤해서 곯아떨어지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실력이 그저 그런 기사들이라 해도 세 명이나 된다. 빠르게 처치해야 했다.
푸욱!
“컥!”
자다가 목을 뚫린 기사가 소리를 내자, 남은 두 명이 바로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던 콜헨이 한 박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촤악! 촤악!
“크륵…… 왜……?”
아예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의문을 풀지 못한 채 그대로 죽고 말았다.
벌벌 떨고 있는 사용인들을 보며 콜헨이 씁쓸한 표정을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날 감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말이다.”
스각!
사용인들은 저항도 못 하고 죽었다.
그렇게 모든 일행을 처치한 콜헨은 비장한 표정으로 로브를 뒤집어썼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치안이 엉망이 된 지역을 통과해 무사히 남부까지 가야 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사방에 도적들이 들끓고 곳곳에 척후병들이 돌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성공해야만 한다. 이미 지도를 보며 홀로 숨어다닐 수 있는 길은 달달 외운 상태였다.
“아버지, 제가 꼭 성공하겠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라울 요제프 자작이다. 그자가 공작가의 두뇌였으니까.
콜헨은 이를 악물고 말 허리를 박찼다.
* * *
“왕국군과 연합군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북부군은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 중입니다.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사방에서 저희를 압박한 뒤에 가장 약한 곳을 파고들 거 같습니다.”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라울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북부군이 활약하니 나머지 놈들까지 기가 살아서 감히 남부로 몰려들고 있었다.
더 시간이 지나면 포위망이 완성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쪽이 곤란해진다.
“북부군의 전력은 만만치가 않아. 새로운 초인들까지 합류했으니…….”
북부군에 정확히 몇 명의 초인이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일단 소문으로만 듣던 ‘세계수의 수호자’가 북부군에 있다고 한다. 패배한 2군단에서 팔이 잘린 채 도망친 사제가 알려준 것이다.
“거기에 ‘전쟁의 성녀’까지 합류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7서클 마법사인 ‘알포이’도 있다. 길리언도 초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판단하다가 계속 당하지 않았는가. 그냥 무조건 그렇다고 가정하고 전력을 준비해야 했다.
“가트로스 님도 이번에는 참전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라울의 말에 가트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계수의 수호자는 내가 맡도록 하지.”
세계수의 수호자는 구원교의 오랜 적이었다. 그자를 상대하려면 그만한 인물이 나서야 했다.
“펜리스 백작은 발자크 백작이 맡을 겁니다. 그리고 알포이는 일로이스 경이 맡을 거고요. 나머지는 고위 사제들을 최대한 많이 투입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정도면 북부군과 해볼 만할 것이다. 문제는 왕국군과 연합군이었다.
“최대한 적은 병력으로 버텨야 할 겁니다. 북부군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오합지졸들이니까요.”
“힘든 싸움이 되겠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북부군이 너무 강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로 모여서 들어오면 어쩔 테냐?”
“차라리 그게 더 상대하기 쉬울 겁니다. 우리도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펜리스군보다 기동력이 떨어집니다.”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봤을 때 펜리스군의 기동력은 절대 따라갈 수가 없다.
차라리 뭉쳐서 오는 게 이쪽에서는 더 상대하기 편할 정도였다.
“펜리스의 기술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펜리스군은 신소재 장비로 무장했다. 새로운 전투 식량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다 정확히 어떤 기술인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전투 식량과 장비는 오직 펜리스 영지 내에서만 생산하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간의 경험에 의존해서 최대한으로 기동력을 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병력을 모으는 대로 이쪽에서 먼저 치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준비가 조금 미흡하더라도 그게 나았다. 왕국군과 연합군이 전부 모여서 남부를 압박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전략을 짠 라울이 참모들과 세부적인 상황을 논의하던 그때, 문밖이 시끄러워지며 기사들이 들어왔다.
라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자작님을 꼭 뵙겠다는 놈이 찾아왔습니다.”
“누구냐.”
“본인이 왕실 시종장의 아들이라고 밝혔습니다.”
“음?”
라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친왕파와는 끝장을 볼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왕실의 사람이 왔다고? 그것도 정식 사신이 아니라 시종장의 아들이?
도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왔다는 말인가?
궁금함이 앞선 라울이 손을 까닥였다. 데리고 오라는 뜻이었다.
기사들이 끌고 온 자는 바로 콜헨이었다. 그는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콜헨은 들어오자마자 허물어지듯이 엎드리며 외쳤다.
“자작님! 저는 시종장의 둘째 아들 콜헨입니다! 아주 오래전 연회 때 잠깐 뵌 적이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봐라.”
라울은 콜헨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머리도 산발이었지만 분명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 본 기억이 있구나. 네놈은 왜 여기까지 와서 날 보겠다고 한 것이냐? 지금 전쟁 중인 걸 모르고 온 것이냐?”
꼴을 보니 아주 험한 고생을 하면서 온 것 같았다. 주변의 눈을 피해서 온 게 분명했다.
무슨 말을 할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콜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더 놀라웠다.
“저는 폐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무어라?”
“브랜포드 후작의 눈을 피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구원교의 사제님을 모셔가 폐하를 치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라울과 가트로스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가트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울이 짐짓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폐하를 치료해 달라고? 자세히 말해 보거라.”
콜헨은 자신이 들었던 말을 모두 전해 주었다. 왕이 구원교 사제와 같은 힘을 갖기를 원하며, 브랜포드 후작도 내치길 바란다는 것을 말이다.
콜헨은 비장한 표정으로 그들이 내어줄 대가를 말했다.
“그렇게만 하면…… 공작가가 원하는 ‘왕실의 비보’를 내어주고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호오…….”
라울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딱 봐도 이건 거짓이 아니었다. 왕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으니까.
고작 구원교의 사제 한둘을 인질로 삼으려고 이런 일을 벌일 리도 없었다.
“분명…… ‘왕실의 비보’라 하셨는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네, 다만 반드시 폐하가 기력을 찾을 수 있게 힘을 주셔야 합니다. 그게 우선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흐음…….”
라울이 입꼬리를 올리며 가트로스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던 가트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콜헨을 보며 말했다.
“그럼, 가능하고말고.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초인으로도 만들어 드릴 수 있다.”
가트로스의 눈은 묘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원하던 것을 쉽고 빠르게 손에 넣을 기회였다.
콜헨이 고개를 들어 가트로스를 바라보았다. 검은 기운을 내뿜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몰려왔다.
콜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나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그저 너의 소원을 들어줄 자로만 알고 있으면 된다.”
가트로스는 콜헨과 얼굴을 가까이하고 희열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악마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