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91)
491 – 왕실을 위해서다. (4)
491화 왕실을 위해서다. (4)
철컹, 철컹, 철컹.
갑주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톨레오가 기사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각하, 이제 움직여야 할 거 같습니다.”
그의 뒤로 수도 방위군 사령관인 코널리 남작이 들어왔다.
“각하, 방위군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수도에 있는 모든 병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도 전체를 감시하는 후작가의 가신들은 이상 현상을 바로 잡아내었다.
브랜포드 후작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는 듯했다.
톨레오가 재촉하듯이 말했다.
“각하, 초인을 잡을 준비도 끝났습니다. 왕실 기사단장은…… 폐하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브랜포드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왕실 기사단과 왕성 수비군을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도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브랜포드 후작은 바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 네놈이 그년하고 뭐가 다르다는 말이냐!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평생을 왕실과 왕국을 위해 일했다. 이번 전쟁만 끝나면 은퇴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왕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해 왔던 자신이 왕성에 쳐들어가게 되다니 말이다.
크게 한숨을 내쉰 그가 천천히 말했다.
“……시작해라.”
그 즉시 수도의 모든 병력이 움직였다.
“쳐라!”
대기하고 있던 방위군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집결 중이던 왕성 수비군을 쳤다.
브랜포드 후작을 치기 위해 준비하던 왕성 수비군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설마 자신들이 먼저 기습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막아라!”
왕성 수비군은 밀고 들어오는 병력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수도 방위군과 왕성 수비군은 숫자부터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났다. 그들은 금세 제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방위군이 순식간에 왕성을 점거했다. 그들의 뒤로 후작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진입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브랜포드 후작의 명을 받고 그를 따르는 귀족들의 기사들까지 속속 모여들었다.
이제 막 움직이려고 채비를 마쳤던 왕실 기사단과 플라쿠스는 당황했다.
그들은 바로 브랜포드 후작을 습격해 사로잡으려고 했다. 브랜포드 후작만 인질로 잡는다면 나머지 귀족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역으로 먼저 당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조심스럽게 준비했는데도 발각된 것이다.
왕실 기사단장인 팔란츠 백작이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 이건 반역이다!”
대답은 기사들을 이끌고 있는 톨레오에게 나왔다.
“먼저 저희를 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놈들이 감히…… 내가 누군지 잊은 것이냐?”
파악!
팔란츠 백작이 기세를 내뿜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는 소드마스터다. 홀로 병사 수천은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톨레오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도 최상급 기사입니다. 기사들도 저희가 더 많지요. 백작님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 폐하의 안위가 어찌 될지 걱정되는군요.”
“이, 이놈이…….”
팔란츠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여기서 싸우면 그동안 다른 놈들이 왕을 인질로 잡을 것이다. 결국 자신은 이곳을 지켜야 했다.
옆에 있는 구원교의 사제도 초인이지만, 그는 왕을 치료하기 위해 상당히 힘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 홀로 상대하기엔 이곳에 온 병력이 너무 많았다.
수도에 있는 수준 높은 기사들이 다 몰려왔다. 싸우면 서로 상잔하고 왕은 죽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국왕인 베르헴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이 무도한 놈들…… 감히 짐을, 짐을 시해하려 한다는 말이냐!”
소리를 지르는 그의 얼굴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야 겨우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드디어 왕다운 위엄과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적놈들이 먼저 자신을 치려고 할 줄이야!
“브랜포드 후작을 불러와라! 어서 그 역적놈을 불러오란 말이다!”
다들 대답은 안 하고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왕을 먼저 치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 명령을 내려야 할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발작하는 베르헴을 다들 구경만 하고 있을 때, 브랜포드 후작이 도착했다.
“폐하.”
“이놈! 네놈이 짐을 공격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잠시 베르헴을 바라보던 브랜포드 후작이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몰라서 묻는 게냐! 네놈이 사사건건 짐의 뜻을 무시하지 않았느냐! 언제나 네놈이 왕인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느냐!”
“이 왕국과 왕실을 위해서입니다.”
“닥쳐라! 짐이 왕국이고 짐이 왕실이다! 짐을 무시하고 이 왕국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으냐! 짐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느니라!”
그 말에 브랜포드 후작은 눈을 감았다.
왕이 젊었을 적부터 비틀릴 대로 비틀린 건 알고 있었다. 왕으로서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 결핍 때문이리라.
그건 결국 왕으로서의 덕목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것과도 같았다.
아무 말이 없는 브랜포드 후작을 보며 베르헴이 손가락질을 했다.
“네놈은 반역자다! 이럴 거면 무엇 하러 공작가를 막았느냐! 왕실을 위한다면서! 네놈이 짐에게 칼을 들이대면 공작가와 뭐가 다르냔 말이다!”
“…….”
브랜포드 후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비록 왕실을 노렸다고는 하지만 델파인 공작의 수하들은 훌륭히 남부를 다스렸다. 균열과 구원교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남부는 가장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왕을 칠 거면 공작가를 막을 필요도 없었다.
브랜포드 후작 자신이 왕이 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왕이 될 생각은 없다.’
브랜포드 후작은 그럴 수 없었다. 왕실을 치는 건 평생 지고 살아온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껏 왕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휘두른 자신은 위선자가 된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왕이 구원교와 손을 잡았다. 대륙에 혼란을 가져왔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그들과.
왕국이 공작가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베르헴이 왕위에 앉아 있는 이상 다른 왕국과 4대 교단은 루타니아를 노릴 것이다.
‘이 나라는 끝났구나.’
브랜포드 후작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든 왕실의 몰락을 막아 보려 했지만 막지 못했다.
이마저도 자신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았다.
왕이 될 생각도 없고, 공작가에 나라를 넘길 생각도 없는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폐하.”
“왜? 유언이라도 남기라는 것이냐? 짐은 유령이 되어서라도 너를 쫓아다닐 것이다! 네놈의 가문을 영원토록 저주할 것이다!”
베르헴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독기 어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브랜포드 후작의 입에서 나온 건 모두가 놀랄 만한 말이었다.
“저는 이만 자리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뭐, 뭐라?”
베르헴을 비롯한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양쪽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저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브랜포드 후작은 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 무엇이냐?”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오늘의 일을 불문에 부쳐주시고 저를 따르던 모든 귀족을 용서해 주시지요. 제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들은 다시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이곳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공표해 주시면 저는 오늘 바로 자리에서 물러나 떠나겠습니다.”
브랜포드 후작이 힘으로 왕을 압박한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무 손도 못 쓰고 잡혀 버리면 그를 따르던 귀족들도 살기 위해서 왕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면 평화롭게 끝낼 수 있다. 당장은 누구도 죽지 않고 말이다.
베르헴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내비쳤다. 브랜포드 후작을 따르는 군대는 너무나도 많았다.
만약 브랜포드 후작이 나중에라도 마음을 바꾼다면? 그 군대가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밀면 절대 막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어디로 떠난다는 말이냐?”
베르헴의 질문에 브랜포드 후작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해서 물었던 질문. 그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 글쎄…… 왕실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겠지.
그 기억이 난 브랜포드 후작이 피식 웃었다. 자신도 그녀와 같은 길을 걸었던 것인가.
“글쎄요…… 왕실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겠지요.”
어쩌면 그림자 기사단장 또한 언제나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품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그녀의 마음을 조금 알 거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베르헴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수도에 남아라. 가택 연금으로 너와 너를 따르는 귀족들의 죄를 더 묻지 않겠다.”
브랜포드 후작은 다시 베르헴을 바라보았다.
두려운 것이리라. 자신이 왕의 이목을 피하는 것이 말이다.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일의 끝은 어찌 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재상과 총사령관인 맥쿼리 후작, 대법관 노튼 백작, 에일즈버 백작…….”
베르헴의 입에서 브랜포드 후작을 따르던 힘 있는 귀족들의 이름이 연달아 나왔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알겠느냐?”
“그리하시지요.”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네놈이 마지막에는 그나마 충정을 보여 주는구나.”
베르헴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단번에 고위 귀족들을 쳐 냈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이제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만 남길 것이다. 그게 진짜 친왕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헴이 크게 팔을 펼치며 말했다.
“짐이 약조하겠다! 모두 무장을 해제하고 돌아가라! 브랜포드 후작과의 약속대로 오늘의 일은 불문에 부칠 테니!”
브랜포드 후작을 따라온 모든 지휘관이 그를 바라보았다.
“각하…….”
“그리하거라. 이제 끝났다. 나도 쉬고 싶구나.”
브랜포드 후작은 베르헴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의 마음은 무겁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제 정말 끝이다.’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이 왕국은 끝이 났다. 아니, 정확히는 왕실이 끝이 났다.
왕실을 무너뜨리는 건 공작가가 아닐 것이다.
구원교도 아닐 것이며 다른 왕국과 4대 교단도 아닐 것이다.
‘그래, 그놈만큼 그 일에 어울리는 놈도 없지 않은가.’
지셀 페르디움.
이제 그를 제약하고 있던 족쇄가 없어졌다.
그러니 그자가 이 왕실의 목숨을 끊을 것이다.
브랜포드 후작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자 기사들과 지휘관들도 몸을 돌려 따라 나갔다.
그 모습을 베르헴은 이를 갈며 바라보았다.
다들 여전히 브랜포드 후작을 따르고 있었다. 아마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쥐면 가만두지 않겠다.’
지금은 저들을 칠 수 없었다. 자신의 입으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각 군의 지휘관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고 완벽하게 권력을 차지하고 나서 움직이면 된다.
저놈들은 그때까지만 목숨을 붙이고 있는 거다. 때가 되면 적당한 명분을 붙여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쉰 베르헴이 플라쿠스에게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가? 짐이 다 해결했느니라.”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역시 이 왕국의 주인다우십니다.”
“저놈이 아직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이제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이를 말씀이옵니까. 먼저 죄수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생명력으로 폐하의 몸을 더 강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런 건 어렵지 않지. 내일부터 당장 시작해라. 부족하면 말만 하거라. 이 왕국은 모두 짐의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약조하셨던 협상도 어서 빨리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페하의 옥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일도 걱정하지 말라. 병력을 회군시키고 지휘관을 바꾸겠다. 그 뒤에 왕실의 비보를 넘겨주겠노라.”
“예, 폐하.”
플라쿠스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 일이 생각보다 더 잘 풀리고 있었다.
* * *
“이상한데?”
지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재편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 해도 너무 늦었다. 지금쯤이면 왕국군이 도착했어야 하는데 어떠한 소식도 오지 않았다.
연합군 일부는 이미 약속된 거점에 도착했다. 그들은 작전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왕국군이 오지 않아 북부군은 하릴없이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전령을 보내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다크, 너도 따라가서 바로 나한테 말해 줘.”
지셀의 명령에 전령들이 출발했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리던 중, 왕실에서 보낸 사신이 도착했다.
사신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북부군 사령관께서는 이제 그만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왕명입니다. 북부군은 해체하고 각 영지로 돌아갈 겁니다.”
“……?”
지셀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몇 번이나 갸우뚱거렸다.
“다시 말해 봐. 뭐라고?”
하도 황당한 소리를 들으니 말이 좀 거칠게 나왔다. 사신은 그 버릇없음에 몇 번이나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말했다.
“북부군은 해체할 것입니다. 사령관님도 이제 영지로 돌아가시지요.”
지셀의 표정이 스산해졌다.
“누구 명령이냐.”
“브랜포드 후작님이 결정했습니다. 모든 귀족도 만장일치로 찬성했습니다.”
“왜?”
“공작가와 정전 협상을 한다고 합니다.”
“협상? 협상을 한다고?”
“그렇습니다. 왕국민들이 너무 힘들어하니 이제 그만 전쟁을 멈추자는 깊은 뜻이…….”
주절거리는 사신을 보며 지셀이 팔짱을 꼈다.
브랜포드 후작이 그럴 리가 없었다. 설령 후작이 그렇게 주장한들 모리스가 찬성할 리가 없었다.
지금 정전 협상을 맺었다가는 다른 왕국들과 4대 교단의 적이 될 게 뻔하다.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고?
자신이 절대 찬성하지 않을 것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봐. 수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무, 무슨 말씀입니까?”
지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눈물 좀 빼 줘야 솔직히 말할 거 같았다.
그때, 전령들을 따라갔던 다크가 의식 속에서 말했다.
― 주인, 왕국군이 전부 회군하고 있다. 갑자기 수도에서 명령이 떨어졌대.
다크의 말을 들은 지셀이 사신을 바라보았다.
사신은 여전히 뻣뻣하게 서 있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라니까? 나 성격 급해.”
“왕실의 인장을 찍은 문서입니다! 뭘 더 말하라는 겁니까!”
사신은 짐짓 큰소리를 냈다. 그간 브랜포드 후작이 인장을 찍기는 했지만 어쨌든 왕실의 명령은 왕이 내리는 것이다.
그걸 듣고도 저렇게 행동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 나가는 놈이라고 소문은 듣긴 했지만.
사신의 실수라면, 지셀이 사신의 생각보다 더 막 나가는 놈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었다.
“뭔 일이 나긴 났네.”
지셀이 혼자 중얼거리더니 허리에서 손도끼를 꺼냈다.
그러고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사신의 어깨를 바로 찍었다.
콰직!
“끄아아아아악!”
“말해.”
“아, 아아악! 이, 이게 무슨…….”
콰직!
“으아아아악!”
이번에는 반대쪽 어깨를 찍었다. 사신은 피를 철철 흘리며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 주십쇼, 살려 주십쇼!”
사신은 눈물 콧물 다 빼며 애원했다. 이렇게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정말 몰랐다.
지셀은 쪼그려 앉으며 사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물었다.
“말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 성격 급하다고.”
“그, 그러니까…….”
콰직!
다시 한번 상처 난 어깨에 도끼가 찍혔다. 사신이 자지러지며 외쳤다.
“으아아악!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브랜포드 후작이 실각했습니다!”
“뭐?”
“그, 그러니까 폐하께서 건강을 되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귀족들이…….”
사신은 그간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얘기했다. 정체 모를 마법사가 왕을 치료했고 그 이후 왕이 공작가와 정전 협상을 하자며 브랜포드 후작과 대립했다고.
브랜포드 후작은 왕을 처치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물러났으며, 그를 따르던 다른 귀족들도 다 같이 물러나 가택 연금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한 마디로 지금 수도에는 왕과 왕을 따르는 귀족들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들이 왕국군을 불러들였고 곧 지휘관들도 모두 교체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지셀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구나.”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령관님도 어서 폐하의 명령을…….”
텁.
“끅.”
지셀이 사신의 목을 잡았다. 아무래도 왕이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같았다.
이딴 걸 왕명이라고 보낸 걸 보면 말이다.
지셀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왕이 이제 뒈질 때가 된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