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0)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50화(50/269)
50화 저 돈 없는데요? (1)
“음? 기사단장님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지셀은 짐짓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이미 아침에 받은 선물 목록에 란돌프가 보내온 선물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한 참이었다.
답례가 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온 걸 보니 어지간히 마음이 급하고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란돌프는 능글맞게 구는 지셀을 보며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제 보니 아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더군. 어쩜 그 많은 걸 혼자 다 먹을 생각을 할까.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그는 마음속으로 지셀을 욕하면서도 겉으로 티는 내지 못하고 만면에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어제 대공자님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과연 우리 영지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공자님, 과연 대공자님 개인의 영달만 채워서 영지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란돌프의 말에 지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개인의 영달이라뇨? 저는 분명 레이폴드 대신 영지를 지원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란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원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기사들이죠.”
사실 페르디움의 기사단장 자리는 안 하느니만 못한 자리였다.
매번 북방에서 싸우기만 해야 하고 급여는 처참한 수준이다.
그러니 기사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배신자들까지 나왔다.
사실 쟈말과 필립이 배신했을 때 가장 분노한 사람은 란돌프였지만 그들을 가장 이해한 사람도 그였다.
‘솔직히 누가 여기서 기사 생활을 하고 싶겠냐고!’
기사는 고급 전력이다. 재능이 없다면 기사가 되지도 못하고, 재능이 있더라도 오랜 시간을 들여 키워야 한다.
다른 영지에서는 높은 급여를 주기도 하고, 땅이 많은 영주는 작은 장원을 하사해 세금까지 걷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대우를 마다하고 페르디움에 남아 있는 기사들은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
아직 충성심이 남아 있는 자들과, 그저 북방에서 야만인과 싸우고 싶어 하는 살짝 맛이 간 놈들.
하지만 있던 충성도 굶으면 사라지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란돌프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크흠흠, 대공자님의 성의가 약간 필요합니다. 어, 음. 그러니까 기부 같은 거지요. 아니면 발전 기금?”
요컨대 세금이니 지원이니 이딴 거 말고 기사단에 따로 돈을 좀 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발전 기금이라는 말은 지셀이 가장 내뱉기 좋아하는 말이지만 듣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다.
그건 자신이 아멜리아에게 돈을 요구할 때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저 돈 없는데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말하는 모습이 유난히 얄미워 보였다.
란돌프는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간신히 참고, 머리를 긁는 척했다.
‘흥분하지 말자. 어떻게든 따로 돈을 받아 내야 해.’
“하하하, 영지에서 제일 부자이신 분한테 돈이 없다는 말은 산적이 돈을 안 뺏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죠. 하하하하.”
비유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지셀은 속으로 어이없어하면서도 란돌프와 똑같이 웃었다.
“이미 다 쓸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 쓴 거나 마찬가지죠. 하하하하.”
란돌프는 주먹으로 이마를 짚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참아야 한다. 돈 나올 구멍이 없어.’
알버트를 찾아가도 매번 돈이 없다는 소리만 하고, 도무지 설득이 되질 않았다.
돈이 생겨도 꼭 다른 곳에 먼저 쓰니, 기사단의 형편이 나아질 수가 없었다. 뭘 해 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레이폴드 대신 지셀이 지원해 준다 해도 실상은 마찬가지다.
어차피 원래 받던 돈을 채우는 것일 테니, 거지 같은 기사단에 예산이 더 배정될 리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계속 거지 같을 게 뻔했다.
그래서 란돌프는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도대체 그 많은 돈을 혼자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영지를 위해 쓰셔야죠! 영지를 위해!”
지셀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앵무새처럼 란돌프가 한 말을 따라 했다.
“그럼요, 영지를 위해 써야죠. 당연히 모두 영지를 위해 쓸 생각입니다.”
“영지를 위해…… 어떻게요?”
“제가 다 계획이 있습니다.”
란돌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계획에 기사단 지원은 들어가 있나요?”
지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안 할 건데요? 없어요.”
란돌프는 울컥하는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호흡을 조절했다.
‘와, 진짜 혼자 쓰려고 작정한 모양이네. 협박이라도 해야 하나?’
기사단장이 극단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찰나, 누군가가 지셀을 찾아왔다. 바로 영지의 재무관인 알버트였다.
“어험, 먼저 온 사람이 있었군요. 대공자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알버트가 왜 나타났는지는 안 봐도 빤했다. 란돌프는 경계하며 그를 막아섰다.
“형님? 아니, 재무관님이 여긴 왜 오셨습니까? 일하셔야죠, 일. 대공자님하고는 제가 먼저 대화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오시죠.”
란돌프가 은근슬쩍 밀어 내려고 했지만, 알버트도 꿋꿋하게 서서 버텼다.
그는 혀를 차며 란돌프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그러는 기사단장이야말로, 훈련은 안 하시고 여기서 죽치고 계시면 되겠습니까? 어서 가서 훈련에 전념하십시오. 훈련 때 흘린 땀 한 방울이 전쟁에서 피 한 방울을 덜 흘리게 해 주는 법입니다.”
“아니, 검 한번 안 잡아 본 양반이 아는 척은 무슨……. 제가 알아서 합니다. 재무관님은 가서 돈 계산이나 하십쇼.”
“돈이 있어야 돈 계산을 하지요.”
두 사람은 웃으면서도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히 대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지셀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 두 사람은 쉽게 자신의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지셀은 알버트에게 물었다.
“재무관님도 약간의 기부나 뭐 발전 기금…… 그런 게 필요하셔서 오신 겁니까?”
단도직입적인 말에 알버트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
“크흠흠, 대공자님이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과연 이렇게 명석하시니 룬스톤을 구해 오는 큰일을 하신 거죠. 과연 크게 되실 분입니다.”
알버트는 나름대로 열심히 아부했지만, 란돌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셀이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버트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흠흠, 레이폴드 대신 지원해 주시는 건 고마운 말씀이시나…… 당장 급한 일을 해결하려면 목돈이 조금 필요해서요.”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무관님이 급하다고 하실 만한 일이라면…… 아무래도 빚 문제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빚을 갚는 게 가장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결국 영지의 빚은 페르디움을 물려받을 대공자님이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문의 빚이 대공자님의 빚이고 대공자님의 돈이 가문의 돈 아니겠습니까?”
알버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셀은 황당한 듯, 무슨 소리 하냐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단언했다.
“아닌데요.”
“네?”
“제 돈은 제 돈이죠.”
이 사람이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칼같이 끊는 지셀의 태도에 알버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와, 얘 이렇게 안 봤는데 아주 돈 귀신이네. 돈 귀신이야.’
알버트도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차마 티는 내지 못하고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커흠흠, 누구 돈인지를 떠나서, 영지가 어려운데 대공자님께서 모른 척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빚만 갚아도 영지 살림은 금세 나아질 겁니다. 이게 다 영지를 위한 일이라고요.”
지셀은 알버트가 이렇게나 표정이 변화무쌍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평소에는 항상 냉랭한 표정만 짓던 사람인데.
시시각각 일그러졌다 웃었다 하며 변하는 얼굴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알버트가 하는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그 얼굴만 구경하며 딴생각하던 지셀은 뒤늦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저 돈 없는데요?”
그 말을 듣고 란돌프가 그랬던 것처럼, 알버트도 얼굴을 구겼다.
그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려는 듯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내뱉었다.
“돈이…… 왜 없습니까?”
“기사단장님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이미 쓸 곳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없어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알버트는 사정하듯 매달렸다.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그 큰돈을 쓰려면 저희랑 상의라도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내 돈 내가 쓰는데 상의를 왜 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걸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알버트가 절규했지만, 지셀은 두 사람을 상대하기가 슬슬 귀찮아져서 툭 내뱉었다.
“영지를 위해 쓰는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지셀의 전적을 생각하면 지금도 말만 번드르르하지, 제 유흥비로 탕진할 게 뻔했다.
그 많은 돈을 쓸데없는 데에다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다급하게 항의했다.
“아니, 도대체 영지에 빚을 갚는 것보다 급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자로 나가는 돈이 아깝지도 않습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빚보다 기사단을 챙기는 게 우선이지요. 다른 영지들을 보십시오. 빚을 져도 기사단만큼은 최상의 상태로 유지합니다. 기사단이 바로 영지의 힘 아니겠습니까! 힘!”
“어허, 무식한 소리! 이자만 안 나가도 그 돈을 수많은 곳에 쓸 수 있는데 기사단은 무슨 기사단이야!”
“아니, 이 형님이 매일 방구석에 돈만 만지니까 현실 감각이 없어지셨네. 이자니, 뭐니 해도 결국 싸울 힘이 없으면 그냥 다 쓸리는 거라니까요? 힘이 있으면 돈을 갚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못합니다.”
“쯧쯧, 그게 강도지 기사야?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이야.”
“그 순서가 기사단과 병력부터라고요!”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은 지셀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지셀에게 돈을 못 받을 거 같으니 서로에게 화풀이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빚부터 먼저 갚는 걸로 해! 우리 영지는 신용이 바닥이라고!”
“기사단부터 먼저 하면 빚쟁이들은 내가 막아 준다니까? 칼 앞에는 장사 없어!”
“…….”
왜 남의 돈을 가지고 서로 순서를 정하는지 모르겠다.
지셀이 한숨을 내쉬고 힘으로 몰아내려고 할 때, 기사 한 명이 찾아왔다.
“대공자님, 영주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오, 그래? 그럼 바로 가야지.”
반가운 소식에 자리를 뜨려고 하자 알버트와 란돌프 두 사람이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꼭 대공자님 혼자만 오라고 하셨습니다.”
지엄한 영주의 명에 두 사람은 따라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소리만 질렀다.
“빨리 빚 갚아야 하는데 데려가면 어떻게 해!”
“기사단 내놔! 안 주면 돈 쓸 때마다 방해할 거야! 다 부숴 버릴 거야!”
방방 뛰는 두 사람을 버려두고 지셀은 바로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솔직히 더 있다가는 세 명이서 다 같이 돌아버릴 거 같았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기사들은 지셀이 도착하자 천천히 문을 열어 주었다.
끼이익.
싸늘하다. 가슴에 스산한 기운이 날아와 꽂힌다.
방 안에는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즈발터는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지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몸은 괜찮으냐?”
“네, 큰 부상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다행이구나. 큰일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몸을 조심하도록 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지셀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고를 치고 다니다 지금보다 크게 다쳤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신경 써주듯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즈발터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창밖만 바라보며 말했다.
“날씨가 좋구나. 그래, 룬스톤을 판매하고 어떻게 쓸지는 생각해 보았느냐?”
“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레이폴드에서 빠진 금액만큼 지원해 드리고 나머지는 제가 따로 계획하고 있는 일에 쓸 생각입니다.”
지셀의 대답에 즈발터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어떻게 쓰든 영지를 위해 쓰겠다는 너의 말을 믿는다.”
“네.”
“네가 어렸을 때부터 참 사고를 많이 쳤었지. 영지에 손해도 많이 끼쳤고 말이야.”
“……네.”
“가신들이 몇 번이나 너를 감금하자고 했을 때도 나는 매번 용서해 주었다. 그래도 자식이니까. 아비의 마음이란 그런 거란다.”
“네, 뭐…….”
지셀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무지 대화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부상을 걱정해서 부른 건지, 갑자기 예전 일을 탓하고 싶어서 부른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즈발터가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어떻게 쓰든 영지를 위해 쓰겠다는 너의 말을 믿는다.”
“…….”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지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