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02)
502 – 부숴 버린다? (3)
502화 부숴 버린다? (3)
피오테는 눈을 꼭 감고 생각했다.
‘으…… 이놈의 영지는 왜 작전이 항상 이런 식인 거야.’
그는 ‘쥬아나의 가호’ 덕분에 모든 공격을 무효로 할 수 있었다. 그 강력한 에퀴데마도 피오테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물론 공격이 강할수록 신성력도 많이 소모되지만, 피오테의 신성력은 이제 파르니엘도 놀랄 만큼 강해졌다.
그러니 지셀이 도망치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할 수 있도록 대신 맞아 주는(?)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카이엔이 잠깐 얼이 빠져 멈칫한 사이 지셀이 바로 손을 뻗었다.
콰아앙!
“크윽!”
강렬한 충격이 카이엔의 배에 적중했다. 그가 비틀거린 틈을 타 지셀이 다시 앞으로 뛰었다.
가트로스는 다시 도망가는 지셀을 향해 힘을 아끼지 않고 쏘아내었다. 다른 구원교의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지셀을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콰앙! 콰아앙! 콰앙!
검은 기운이 빛처럼 날아와 지셀의 등을 두들겼다. 하지만 지셀의 등에 매달려 있는 피오테에게 모두 막혀 버렸다.
“저, 저놈은 뭐냐!”
가트로스가 쫓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공격은 초인이라도 쉽게 받아 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림자 기사단장과 싸울 것을 대비해 그 누구보다 많은 생명력을 빨아먹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펜리스 백작 등에 매달린 여자(?)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자신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피오테는 지셀의 등에 매달려 기도하듯이 손을 꼭 맞잡고 눈만 감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신을 위해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만, 솔직히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다.
들어오는 공격들이 어찌나 강한지, 맞을 때마다 신성력이 뭉텅뭉텅 사라지고 있었다.
“영주님…… 이러다가 나 죽어…….”
예전에는 일하다가 과로로 죽을 뻔했는데 지금은 맞아 죽을 거 같다.
지셀이 달리면서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공격을 막고 피할 때마다 지셀 자신도 상당한 마나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피오테 덕분에 모든 힘을 도망치는 데만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저 죽는다고요…….”
“괜찮아, 괜찮아.”
콰앙! 콰앙! 콰아아앙!
지셀은 자신만만하게 괜찮다고 말하며 달리는 데만 집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때까지 피오테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피오테의 말도 안 되는 방어력 덕분에 적들도 당황해서 조금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거리가 더 벌어졌다.
카이엔은 굳은 얼굴로 다시 지셀을 쫓아갔다.
‘분명 신성력이었다. 이번에 합류했다는 성녀인가?’
파르니엘이 북부군에 합류한 건 왕국군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공작가도 정보를 받아 보았다.
그런데 받은 정보와 외모가 영 다르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전투 방식도 달랐다.
피오테가 남자라고 판명이 난 뒤 라울이 정보 중요도를 낮춘 탓에 오히려 혼선이 온 것이었다.
‘그래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거다.’
믿을 수 없는 능력이지만 저 상태가 계속될 리가 없었다. 카이엔은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을 쫓아갔다.
가트로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기이한 능력에 잠깐 당황했으나 금세 정신을 차렸다.
“놓치지 마라!”
결국 이 인원이 쫓아가면 이긴다. 지칠 때까지 쫓아가면 된다. 이쪽이 먼저 지치지만 않으면 잡을 수 있다.
콰앙! 콰아앙! 콰앙!
추격전은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피오테 덕분에 지셀은 추격자들과 일정 거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파악!
“도련님!”
갑자기 어둠이 짙게 퍼지며 벨린다가 나타나 지셀의 옆에서 뛰었다.
그녀는 쫓아오는 인원들을 향해 백여 개의 단검을 단번에 던졌다.
쏴아아아악!
모든 단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서려 있었다. 그것들은 허공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쫓아오는 자들을 노렸다.
이 말도 안 되는 기술에 카이엔이 눈을 부릅떴다. 놀라운 기술이다.
그는 왕국제일검답게 검에 마나를 잔뜩 불어넣어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단 한 수에 십여 개의 단검이 떨어져 나갔다. 아직 주변에 맴도는 단검들이 많았지만 그는 잠깐 난 틈을 타 단숨에 그곳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다른 구원교의 사제들과 기사들은 카이엔처럼 빠르게 돌파하지 못했다.
“어서 쳐 내라!”
카가가가가강!
살아있는 뱀처럼 집요하게 날아오는 단검들을 쳐 내느라 그들의 발이 잠깐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가트로스는 벨린다가 펼친 기술을 보고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힘을 과하게 끌어모았다.
콰아아아앙!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단검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가트로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표정을 굳혔다.
‘그림자 기사단장!’
이 기술을 알고 있다. 분명 그림자 기사단장이 쓰던 기술이었다.
가트로스는 그림자 기사단장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기술의 가공할 결과는 본 적이 있었다. 가장 두려워하던 적이 나타난 것인지 등줄기가 선득했다.
‘아니다.’
분명 같은 기술인데 무언가 부족했다. 만약 진짜 그림자 기사단장이라면 단숨에 몇 명은 죽었을 터였다.
‘설마 후인을 키운 것인가?’
그제야 지셀 옆에서 달리는 새로운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콰앙!
가트로스가 다시 쫓아갔다. 저자를 잡아서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잠깐 놀라서 멈칫하는 바람에 거리가 또 벌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제들은 이제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이 건방진 놈들이 감히 이딴 수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놈들 때문에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떻게든 잡아서 사지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나마 발자크 백작이 잘 따라가고 있다. 그가 잠깐이라도 발목을 잡아 주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카이엔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에레네스와 바네사였다.
“됐다. 충분히 거리가 벌어졌다.”
벨린다의 공격 덕분에 조금 더 거리가 벌어졌다.
에레네스의 말에 바네사가 손을 뻗었다.
지잉―! 지잉―! 지잉―!
그녀의 장기인 다중 영창이 시전되었다.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어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곧 마법진에서 엄청난 벼락이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쾅!
벼락은 무차별적으로 떨어졌다. 선두에 선 자들은 모두 수준이 높기에 그걸 맞고 죽은 이들은 없었지만, 구원교의 사제 중 몇몇은 벼락을 맞고 나동그라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법을 막거나 피하느라 걸음이 늦춰졌다. 오직 카이엔만이 모든 벼락을 피하며 속도를 유지했다. 가트로스는 그냥 대놓고 맞으면서 쫓아갔다.
‘이놈들이…….’
카이엔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한 다른 이들은 쫓아오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가트로스만이 속도를 내어 자신을 뒤따라올 뿐이었다.
쿠르르르릉!
그런 그의 앞에 갑자기 거대한 바위의 벽이 올라왔다. 에레네스가 소환한 대지의 정령이었다.
“흐읍!”
콰아아아앙!
카이엔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단숨에 벽을 뚫었다.
그런데 벽을 뚫자마자 이번에는 거대한 불의 도마뱀이 앞을 막으며 불을 뿜어내었다.
“이따위 수를!”
쿵!
분노한 그가 강하게 땅을 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파아악!
불의 정령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불길이 되어 스러졌다. 정령마저 벨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하지만 지셀과 일행들은 그사이 더 멀리 도망을 간 상태였다.
그들을 시선으로 좇던 카이엔의 눈에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열기구?’
소문으로만 듣던 하늘을 나는 기구였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만 저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카이엔도 잘 알고 있었다.
안 된다. 저걸 타고 날아가 버리면 완전히 놓치고 말 것이다.
카이엔이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검에 불어넣었다.
드드드드득!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그의 팔뚝에 징그러울 정도로 힘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에 휩싸인 검이 떨렸다. 그는 그대로 지셀의 등을 향해 검을 던졌다.
파아아아악!
공간을 무참히 찢어발기며 검이 날아갔다. 이걸 막든 피하든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춰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지셀과 일행들은 뒤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날아오는 검을 무시했다.
그걸 상대할 자는 따로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파르니엘이 손에 든 메이스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두꺼운 팔에도 힘줄이 가득 튀어나왔다.
파르니엘은 날아오는 검을 향해 강하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천지가 울리는 듯한 폭음과 함께 검이 박살 났다.
드드득!
파르니엘은 저릿하게 뒤틀리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메이스도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역시 왕국제일검이라는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당장 달려가서 붙어 보고 싶지만 그 욕망을 억눌렀다. 아무리 그녀라도 저 많은 초인과 10만 대군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파르니엘도 곧바로 몸을 돌려 일행을 따라갔다. 그녀가 강력한 신성력을 퍼트려 모두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자 다들 속도가 더 빨라졌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카이엔과 가트로스가 이를 악물고 쫓아갔지만, 그들을 놀리듯 끝없이 대지의 벽이 솟아나고 벼락이 떨어졌다.
그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뚫거나 쳐 낼 때마다 조금씩 더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지셀과 일행들은 무사히 열기구 근처에 도착했다.
파아악!
“어서 잡으십시오!”
길리언이 크게 외치며 열기구에서 밧줄을 던졌다.
마나가 담긴 밧줄은 빠르게 뻗어 나갔다. 지셀과 일행들이 밧줄을 잡자마자 열기구는 바로 움직였다.
열기구에는 포로로 잡았던 6서클 마법사들이 다섯 명이나 타고 있었다. 그들이 마나를 쏟아붓자 열기구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고도를 높이며 도망가는 열기구를 보고, 가트로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이제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펜리스 백작도 죽이지 못하고 물건까지 전부 빼앗기고 만 것이다.
“저놈이…… 저놈이…….”
가트로스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살면서 이런 굴욕을 느껴 본 적이 없다.
과거 교의 전력을 쏟아붓고도 그림자 기사단장에게 당했을 때도 이 정도로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만큼 상대가 강했기에 패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저놈은 왕국군에 괴상하게 숨어들어 와서는 자신만만하게 물건을 강탈해 도주했다.
수많은 강자와 10만 대군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저 미친 망둥이 같은 새끼를 잡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
가트로스가 두 눈이 시뻘게진 채로 괴성을 질렀다. 이렇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건 난생처음이었기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을 수양하며 지내온 그로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한 것이다.
구원교의 사제들은 모두 가트로스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평소에는 무척이나 여유롭고 인자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누구보다 잔인해지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속이 쓰린 건 가트로스뿐만이 아니었다. 카이엔 또한 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지셀 페르디움.’
단 한 사람 때문에 계속 일이 망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점점 더 강한 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죽였어야 했다.’
예전 연회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든 죽였어야 했다.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왕국을 차지하려 했기에 정치적 위험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공작가의 모두가 큰 실수를 했다.
저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이제 최악의 적이 되고 말았다.
“돌아갑시다.”
카이엔은 무거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후회하고 있을 시간에 저놈을 어떻게 잡아 죽일지 고민하는 게 나았다.
가트로스가 사나운 표정으로 물었다.
“왕은?”
왕실의 비보가 없어진 이상 왕의 비위를 맞춰 줄 이유도 사라졌다. 짧은 한마디에 어떻게 할 거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당장 우리가 싸워서 좋을 건 없지 않소.”
여기서 왕국군과 싸우거나 왕을 죽인다고 얻을 이득이 없었다. 차라리 왕국군을 이용해 북부군을 함께 치는 게 나을 터였다.
그를 살려 두는 것이 나은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은 아직 쓸모가 있소. 살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자들을 죽이고 폭정을 할 게 뻔하니까. 차후 북부군을 없애고 우리가 왕국을 차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왕이 미쳐 날뛸수록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게 된다. 그때 공작가가 왕국을 차지하면 그들은 환호하며 공작가를 받아들일 것이다.
브랜포드 후작이 실각했지만 아직도 왕을 따르지 않는 지방 영주들과 귀족들이 남아 있었다.
왕의 폭정이 이어지면 그들 또한 공작가 쪽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가트로스는 카이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나는 어떻게든 다른 왕국에서 성물을 찾는 일에 집중하겠소.”
“알겠소.”
두 사람은 그렇게 얘기를 끝내고 돌아갔다. 기다리고 있던 베르헴은 지셀을 놓친 걸 알자 광분하여 외쳤다.
“반드시 그놈을 죽여 버리겠다! 이 반역자 놈! 감히 짐을 이리 능멸하다니! 당장 왕국의 모든 지역에 이 소식을 전해라! 페르디움 후작가와 그에 관련된 자들은 이제부터 왕국의 적이니라! 반역자이니라!”
그걸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베르헴은 옆에 있는 도몬트 후작에게 말했다.
“시종장! 연합군의 모든 사령관들에게도 전해라! 당장 북부군을 치라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북부군이 아니라 왕국이니라!”
“……예, 폐하.”
도몬트 후작의 낯빛은 어두웠다. 애초에 연합군은 브랜포드 후작과 펜리스 백작을 보고 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그 문제를 제하더라도 연합군이 구원교와 손을 잡은 자신들을 도와줄 리가 없었다. 지금 그들의 왕국도 구원교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베르헴이 피까지 토해 내며 난리를 피우니 지금은 말할 수가 없었다.
소동은 베르헴이 지쳐서 쓰러질 즈음에야 끝이 났다. 그렇게 왕국군과 델파인군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야 했다.
왕국군 2군단 제3보병 중대가 어느새 사라졌지만,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