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05)
505 – 왕에게 죄를 묻겠다. (3)
505화 왕에게 죄를 묻겠다. (3)
베르헴의 광기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전쟁 준비가 안 끝났느냐!”
자신을 이렇게 몰아간 펜리스 백작을 잡아 죽여야 했다. 지금도 놈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연신 도몬트 후작을 재촉했다. 어서 빨리 위대한 자신의 군대로 북부를 밀어 버리고 싶었다.
도몬트 후작은 연신 진땀을 흘리며 베르헴을 말리기 바빴다.
“폐하,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하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전쟁은 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북부군과 같은 강력한 적이 상대라면 더 그랬다.
북부군의 수성 능력은 로드리크 후작과 싸울 때부터 이미 증명됐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그들을 이기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점점 부족해지는 식량도 다시 확보하고 공성 병기도 제대로 정비해야 했다.
“아직 회답을 보내지 않은 영주들이 있사옵니다. 그들의 군대까지 모두 끌어모아야 합니다.”
“으으으……. 고얀 것들 같으니라고! 짐이 복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달려오지 않고 있다는 말이냐!”
지방 영주들과 귀족들은 적극적으로 왕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특히 동부를 야금야금 뺏어 먹은 레이폴드 백작이 문제였다. 그녀는 브랜포드 후작이 실각한 틈을 타 벌써 6개나 되는 영지를 차지한 상태였다.
그들의 군대를 모두 모아야 하는데 다들 따로 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왕국군을 전부 북부에 보낼 수는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다른 영주들이 반역을 일으킬까 봐 무서워하고 있었으니까.
도몬트 후작이 베르헴을 계속 달래며 말을 이었다.
“영주들도 폐하를 충심으로 따를 것이옵니다. 그들은 지금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겁을 먹어?”
“예. 그들은 전에 공작가와 싸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정전 협상을 맺었으니 후환이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되겠는가?”
“폐하께서 넓은 아량을 보여 주시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면 될 겁니다. 그들을 지켜 주겠다고 약조해 주시면 되는 문제이옵니다.”
“그래,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니라. 그것만 해결되면 되는 것인가?”
“그들이 모두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더라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지방의 영지군까지 끌어모아도 북부군을 상대하기는 부족했다. 그 정도로 그들이 보여 준 위용은 대단했다.
거기에 연합군의 10만 병력도 아직 건재했다. 이들까지 상대하려면 지금의 왕국군으로는 턱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작가가 이번 전쟁에 확실하게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었다.
베르헴의 건강을 돌보는 플라쿠스가 옆에서 말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옵소서. 공작가에서 곧 출진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끄으으음…….”
베르헴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 왕국의 주인인 자신이 계속 공작가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북부를 차지한 뒤 건강만 되찾으면 짐의 위엄을 보여 줄 것이니라.’
베르헴은 그 말을 속으로 삭였다. 그에게는 공작가도 결국 쓸어버려야 할 불충한 신하에 불과했다.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머리가 아프구나. 어서 제물들을 가져오거라. 오늘은 젊은 놈들도 마련하도록 하여라.”
인간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코어가 없는 그는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고 툭하면 코피를 흘렸다. 부작용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머리를 짚는 베르헴을 보고 플라쿠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코어를 다 만들기도 전에 죽어 버리겠군.’
워낙 몸이 약해 시술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의 보주’는 그저 제물이 많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연단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죽기 전에 출정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생명의 보주는 다른 사제를 만드는 데 쓰면 되는 거고.’
왕국군을 손에 넣을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했다. 앞으로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왕국군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병력을 잃었고 북부군과 싸우면서 또 병력을 잃게 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공작가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움직일 것이다. 왕은 그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됐다.
개판이 된 이 왕국을 먹는 건 이제 너무 쉬운 일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페르디움 후작이 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무, 무어라? 그놈이 반역을 일으켰다고?”
어느 날, 국정 회의 중 들려온 소식에 베르헴은 매우 놀랐다. 반역자라는 핑계로 북부를 쓸어 버리려고 했지만, 정말로 대놓고 반역을 일으킬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작가와 손을 잡은 걸 알면서도 먼저 공격해 오다니! 참으로 정신이 나간 놈이었다.
베르헴은 씩씩거리며 외쳤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놈들이 기어 나오지 않았느냐! 당장 모든 왕국군을 보내 그 요망한 놈들을 죽여라!”
귀족들은 긴장한 채 마른침만 삼켰다.
왕은 지금 왕국의 재정이 어떤지, 군대의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몰랐다. 밑에 있는 귀족들이 알아서 다 갈라 먹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보급도 개판이고 장비도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공작가만 믿고 있었는데.’
‘왕국군만으로는 절대 북부군을 막을 수 없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정전 협상 때 델파인군 포로를 다시 돌려주진 않았다. 베르헴이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작가도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될 일이라 여기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까지 포함하여 재편했기에 왕국군의 수도 꽤 되었다. 그들이 모두 몰려가면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귀족들은 그 틈을 타 재산을 챙겨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런 속내를 모르는 베르헴이 노한 목소리로 연신 외쳤다.
“어서 모든 영주들에게 소집령을 내려라! 반역자를 치라고!”
봉건 계약에 따르면, 평소에는 각 영주의 자치권이 보장되지만 전쟁 시에는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페르디움이 내전을 일으킨 이상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영주들도 군대를 모아 수도로 와야 했다.
베르헴은 정말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은 그들에게 절망적인 소식뿐이었다.
“3군단이 모두 항복했습니다!”
“다른 군단들 또한 지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병력이 통제되지 않습니다!”
페르디움군과 만난 왕국군은 3군단처럼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기가 부지기수였다.
어떤 군대는 하급 지휘관들과 기사들이 군단장을 암살하고 한꺼번에 항복하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왜 다들 항복을 한다는 말이냐! 짐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정녕 하나도 없다는 뜻이냐!”
“싸, 싸우러 나가도 펜리스 백작만 달려오면 병사들이 모두 피하기에 바쁩니다.”
병사들이 바로 항복하지 않아도 결과는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즈발터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군대에서는 가장 먼저 지휘관의 목이 날아갔다.
그냥 지셀이 홀로 달려가기만 해도 병사들이 피하고 도망쳐 지휘관이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왕국군 병사들에게 지셀은 전쟁의 신이자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싸울 마음이 들 리가 없었다.
그렇게 지셀이 윗대가리를 날려 버리면 병사들은 마음 편하게 페르디움군에 합류했다.
이어 들려온 소식은 더 황당한 것이었다.
“와, 왕국의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페르디움군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페르디움군이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르헴이 기겁했다. 왕국의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적대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감히 하찮은 백성들이 왕인 자신에게 말이다!
“이,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더러운 핏줄을 타고난 주제에…….”
평생 열등감에 찌들어 살아왔던 베르헴이다. 왕국의 백성들마저 자신을 적대한다는 소리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고작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식량 같은 놈들 주제에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터졌다.
“폐하! 각지의 영주들이 페르디움 후작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어라!”
베르헴의 표정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던 영주들이 결국 페르디움 후작을 선택했다는 뜻이 아닌가!
실제로 그러했다. 고민하던 영주들은 즈발터의 진심이 적힌 격문을 받아 들고 마음을 정했다.
애초에 그들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영주들이었다. 지금 왕의 행태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들은 각지에서 같은 성명을 내고 군대를 일으켰다.
― 폭군을 몰아내고 왕국을 바로 잡을 것이다.
상황을 알게 된 베르헴이 몸을 떨며 물었다.
“그, 그 모든 군대가 수도로 오고 있다는 말이냐? 공작가는, 공작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공작가도 곧 출진할 거 같사옵니다. 하나…….”
“왜? 왜? 공작가만 오면 다 해결될 것 아니냐?”
“중부와 동부 영주들의 군대가 모두 남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수, 수도가 아니라 남부 전선으로?”
“페르디움군이 이곳을 치는 동안, 공작가의 군대를 막으려 하는 거 같습니다. 연합군과 서부군, 북부군도 대부분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공작가가 아무리 강해도 저만한 대군이 몰려들면 진군이 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대군을 다 뚫고 델파인군이 수도에 도착할 즈음이면 이곳은 폐허가 되어 있을 터였다.
모든 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터졌다. 베르헴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다급하게 물었다.
“브, 브랜포드 후작과 귀족들을 인질로 잡는 건 어떠하냐?”
“소용없을 것이옵니다. 이미 반역을 일으킨 자들이 인질 따위에 신경을 쓰겠사옵니까? 게다가 그들을 잡으려면 피해가 클 것입니다.”
브랜포드 후작에게는 아직 수준 높은 기사들과 사병들이 있었다. 한때 왕국을 이끌었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쪽의 병력이 훨씬 더 많으니 싸우면 결국은 이길 것이다. 하지만 이쪽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병력을 소모하면 이쪽이 더 손해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다들 의견을 내 보란 말이다!”
베르헴이 대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국정 회의에 참여한 귀족들의 수가 평소보다 현저하게 적었다.
“다, 다들 왜 이런 급한 상황에서 왕성에 오지 않은 것이냐? 어, 어서 모두를 불러라.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귀족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치 빠른 자들은 이미 소식을 듣자마자 재산을 챙겨 수도를 떠나 버린 뒤였다.
그제야 베르헴도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 짐에게 충성을 바치던 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저, 정말 도망을 갔다는 말이냐? 아무도 이 왕국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폐하.”
“이,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지, 짐이 그들에게 많은 권한과 보상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짐을 배신했다는 말이냐!”
발광하는 베르헴을 보며 도몬트 후작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정말 몰랐다.
왕국군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공작가와 힘을 합하면 북부군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순식간에 망가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베르헴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브랜포드 후작을 불러와라. 그에게 중재를 부탁해야겠다. 어서, 어서 브랜포드 후작을…….”
“……폐하.”
“브랜포드 후작이라면 짐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니라. 다들 브랜포드 후작을 따르지 않았느냐. 어서 그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고…….”
브랜포드 후작을 누구보다 죽이고 싶어 했던 베르헴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의지할 사람이 그 말고는 없었다.
베르헴은 무척이나 추한 모습으로 매달렸다.
“브랜포드 후작은 왕실에 충성을 바치던 자가 아니었더냐. 그가 와야 한다. 그가 이 일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평생 이런 위협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문제는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예전에는 그림자 기사단장이 왕실을 지켜 주었다. 그 이후에는 브랜포드 후작이 왕실을 지켜 주었다.
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는 누가 감히 왕실에 반기를 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저 강대한 공작가도 막아 낸 자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베르헴은 그런 그들을 보고 자신의 권력을 뺏어간 찬탈자라고만 생각했다. 언제나 열등감에 시달리며 그들이 없어지기만을 바랐다.
모두 다 죽여 버리고 자신이 절대적인 왕권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그들의 보호 속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겨 왔다는 걸.
몸이 약한 자신을 대신해 그들이 왕실을 지켜 주었다는 걸.
세상 물정도 모른 채 그저 권력만 잡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베르헴이 울부짖듯이 외쳤다.
“어서 브랜포드 후작을 불러오란 말이다!”
도몬트 후작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제 와 브랜포드 후작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반역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백성들이 페르디움 후작을 따른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안락을 꾀했으면 브랜포드 후작을 내치지 말았어야 했다. 권력을 탐했으니 그만한 책임을 져야 했다.
베르헴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로? 어디로 도망을 간다는 말이냐? 이 땅은 전부 짐의 것이거늘.”
“……공작가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왕을 지켜 줄 수 있는 곳은 이제 공작가밖에 없었다. 구원교와 손을 잡은 이상 다른 왕국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베르헴이 플라쿠스에게 물었다.
“짐을 공작가로 안내할 수 있겠느냐?”
플라쿠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왕국군이 와해된 이상 베르헴은 정말로 쓸모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베르헴에게는 아직 이 왕국의 주인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으니까.
그를 버릴지 말지는 교와 공작가에서 판단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초인이옵니다. 어서 왕실 기사단과 수도 방위군을 소집하시지요. 제가 공작가까지 모시겠습니다.”
“그, 그래. 그래야겠다. 어서 준비하거라!”
왕실 기사단장인 팔란츠 백작과 도몬트 후작이 수도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하급 지휘관 하나가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채 달려와 외쳤다.
“폐, 폐하! 수도가 포위됐습니다!”
“무어라? 페르디움군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 벌써 수도가 포위됐다는 말이냐!”
“펜리스 백작이 따로 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그 유명한 기동군인 거 같사옵니다!”
왕국군을 흡수하고 백성들까지 받아들인 페르디움군은 이동 속도가 무척 느려졌다.
그 기세야 왕의 진군이라 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마냥 느리게 갈 수는 없었다.
공작가도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셀은 기동군만 이끌고 수도로 먼저 진격했다.
카르데니아.
그 어떤 이에게도 무력으로 점령당한 역사가 없는, 난공불락의 성채.
지셀은 전생에 이어 또다시 이곳을 점령하러 오게 되었다.
전생에는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와서 바로 박살을 내 버렸다. 카르데니아의 성벽이 아무리 튼튼해도 대륙 7강의 군대를 막기는 무리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다소 전력이 부족하지만, 카르데니아를 점령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지셀은 굳이 피곤하게 성을 함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당하게 외쳤다.
“문 열어라!”
곧바로 성벽에서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