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10)
510 – 여기서 결판을 내자. (1)
510화 여기서 결판을 내자. (1)
최근 아멜리아는 약간 곤란한 처지에 빠진 상태였다. 그녀는 공작가가 물러난 뒤 며칠이나 영지 안정화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단번에 6개의 백작령을 먹은 부작용이었다.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 아니라 기회를 틈타 빠르게 영토 확장을 했으니 문제가 산적할 수밖에 없었다.
균열에 전쟁까지 겪으며 동부의 경제력이 말도 못 할 정도로 떨어진 상태라 더 문제였다.
그녀는 매일 같이 가신들을 닦달했다. 먹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식량 운송은 끝났어?”
“그, 그게…… 보내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은 모든 역량을 그쪽에 집중하라고 말했을 텐데?”
“영토가 갑작스럽게 늘어나서 아직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쯧, 한꺼번에 너무 많이 차지하긴 했지.”
평소였다면 앓는 소리를 하는 가신들을 대차게 혼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아멜리아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백작령 여섯이라고만 하면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동부에서도 영지가 넓고 비옥한 알짜배기만 골라 먹었다.
남작령으로 따지면 수십이 넘어가고, 영토 크기로 치면 세이론 왕국에 버금간다. 소국이라고는 하나 한 나라와 비견될 크기인 것이다.
영토 하나만 늘어도 안정화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지셀도 점령 후 안정화에 가장 신경 썼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나다 해도 단번에 이 정도로 먹으면 체하는 게 당연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뭐? 브랜포드 후작이 실각했다고?”
“예, 폐하께서 기력을 찾으셨습니다. 영지를 뺏긴 영주들이 전부 그쪽으로 붙었습니다.”
“으음…….”
“협약은 취소할 테니 영지를 모두 본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라는 명이 내려졌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멜리아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괜히 이렇게 무리해서 영지를 차지한 게 아니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단숨에 이렇게 많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약을 주관했던 귀족들이 물러난 건 그녀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왕실에서는 연일 영지를 돌려주고 왕에게 충성 서약을 다시 하라고 재촉했다.
아멜리아가 답장도 안 하고 무시하자 그들은 레이폴드와 동부를 연결하는 운송로를 막아 버렸다. 북부까지 갈 강단이 없으니 길목만 막아 버린 것이다.
“이놈들이…….”
아멜리아가 이를 갈았다. 당장 영지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레이폴드의 재원을 잔뜩 끌어와야 했다.
브랜포드 후작이 실각하고 북부군과 갈라진 왕국군 정도야 얼마든지 혼을 내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왕이 공작가와 손을 잡은 게 문제였다. 자신은 이미 공작가를 배신하고 그들과 적이 된 상태였다.
결국 당장은 싸우든 양보하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녀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페르디움 후작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네, 현재 펜리스 백작과 함께 수도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북부군을 비롯한 나머지 군대는 공작가를 막기 위해 남부 전선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아멜리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기회다.’
양쪽이 다시 싸운다면 그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지셀의 연락이 도착했다.
푸드덕!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
친구 집 놀러 오듯 대놓고 들어온 까마귀를 보며 아멜리아가 표정을 굳혔다.
저놈이 왔다는 건 지셀이 또 뭔가를 요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일이지?”
“당연히 주인님의 명령을 전달하러 왔지요.”
“말해 봐라.”
“주인님의 의식과 연결해서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흠.”
다른 걸 떠나서 이건 정말 탐이 나는 정령이었다. 정찰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연락용으로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한테 이런 게 있다면 정말 알차게 잘 쓸 수 있을 텐데 참 아쉬웠다.
잠시 기다리자 까마귀의 말투가 변했다.
“어이, 아멜리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뭐 좋은 사이라고 친한 척을 하지? 용건만 간단히 해.”
“까탈스럽기는……. 지금 수도를 점령하러 가는 중인데 남부 전선에 가서 힘을 좀 보태줘. 공작가가 당장 못 올라오게 말이지.”
“…….”
“왜 대답이 없어? 야, 다크. 지금 제대로 연결된 거 맞아? 아, 연결됐다고!”
“…….”
까마귀가 혼자 말하고 대답하는 걸 구경하던 아멜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널 도와줘야 하지?”
아주 웃기는 놈이다. 몇 번 도와줬더니 이제는 같은 편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지셀은 너스레를 떨면서 답했다.
“아, 공짜로 도와달라는 건 아니야. 저번에도 두둑하게 챙겨 갔잖아? 이번에도 만족할 만한 대가를 줄게. 나도 공짜는 싫어한다고.”
그 말에 아멜리아는 조금 흥미가 생겼다.
“그래, 공작가만 막으면 수도를 점령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 대가로 뭘 준다는 거지?”
“영지 안정화를 도와주도록 하지. 요새 골치 아프잖아? 수도를 점령한 뒤에 식량과 자재들을 잔뜩 보내 줄게.”
“흐음…….”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지만 그걸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건 시간만 있으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데?”
“공작가가 북상하면 그 시간이 없을 거야. 북부군이 막아 내도 마찬가지지.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그 정도 물량을 구하기 힘들 테니까.”
아멜리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확실히 저놈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남부 전선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텐데. 굳이 내 힘까지 필요한가?”
“뭐, 첫 번째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지. 네 능력이라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두 번째도 있다는 건가?”
“뒤에서 네가 수작 부리기를 원하지 않아. 그럼 피곤해지거든. 지금도 어떻게 이 상황을 이용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테니까.”
“…….”
아멜리아는 이번에도 소리 없이 웃었다. 역시 이놈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셀이 조금 진중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내 목표는 공작가와 구원교야. 다른 쓸데없는 데 시간을 쓰고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거절한다면 이번이야말로 네 목을 칠 거다. 수도를 점령하는 대로 바로 동부로 향하겠다.”
“너…… 감히…….”
“선택해라. 나도 너랑 싸우면 피곤해지는 건 알아. 피해도 보겠지. 하지만 공작가와 전력으로 맞붙기 전에 널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뿌드득.
아멜리아가 이를 갈았다. 이놈은 또 저번처럼 자신의 힘을 이용하려고 협박하고 있었다.
지셀의 말뜻은 이해했다. 왕국제일검이 나선 이상 이제 결판을 내야 한다. 그리고 지셀은 자신을 위험 요소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즉, 아멜리아가 그와 손을 잡을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뜻이었다.
“…….”
아멜리아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
지셀도 아무런 말을 안 하고 있었다. 다크는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둘 다 기 싸움 뭐야…….’
아멜리아는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솟은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지금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지 말이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건 저놈한테도 부담스러운 일이야.’
누구보다 빨리 남부 전선으로 내려가고 싶어 할 지셀이다. 여기서 자신과 싸우는 건 공작가에만 좋은 일 시켜 주는 셈이었다. 그걸 원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뻗댈 수는 없었다. 지셀이 자신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자신도 지셀에 대해 잘 알았다.
‘저놈도 이제 지켜야 할 게 많아졌지만…… 정말 수틀리면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지.’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으로 들이닥칠 수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봐야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이어져 왔다. 그만큼 자신의 힘이 필요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마…….’
아멜리아는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 전선에 가 있는 전력만으로도 공작가의 발목을 잡기는 충분했다. 자신이 수작을 부린다 해도 지셀은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수도에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이 남아 있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에게 힘을 보태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피해를 아끼고 싶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자신을 이용할 일이 더 남아 있기에 저리 나온다고 봐야 했다.
아멜리아는 지셀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렇다는 건…….
“더 줄 게 있지? 이게 끝이 아닌 거 같거든.”
그 말에 지셀이 웃었다. 정말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여자였다.
“그럼, 더 있고말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 좀 해 볼까?”
두 사람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고, 다크가 돌아간 뒤 아멜리아는 바로 병력을 모아 남부 전선으로 향했다.
새로운 야망을 가슴에 품은 채 말이다.
* * *
“지휘권은 내가 받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지셀에게 미리 연락을 받은 길리언은 순순히 아멜리아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그녀의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으니 딱히 반대하는 자들은 없었다.
이때부터 전투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발루아 남작, 오른쪽 성벽을 맡아라.”
“알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우선 모든 방어 병력을 새로 배치했다. 데이븐이 죽은 뒤 항복해 온 발루아 남작을 데려온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수성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는 기대만큼 훌륭히 델파인군을 막아 내었다.
물론 그녀는 단순히 버티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 쪽 병력이 너무 많고 전력도 강했다. 피해를 줄이고 시간을 끌려면 상대의 전력을 조금 더 깎아 내야 했다.
“너희들이 전에 이상한 말뚝을 세운 드워프들이지?”
아멜리아의 물음에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땅에 말뚝을 박아 아멜리아의 진군을 방해한 적이 있었다.
[위대한 대장장이와 친구들이 만들고 감.]이런 글귀까지 적어 넣기도 했다.
그 일을 빌미로 괴롭힘당할까 봐 겁이 났다. 역시 사람은 누군가를 도발하고 살면 안 된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피식 웃더니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땅굴을 판다. 부족한 인력은 레이폴드 병력이 채워 줄 것이다.”
“네?”
“하라는 대로 해.”
병력이 충원됐으니 공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드워프들은 명령대로 곳곳에 땅굴을 열심히 만들었다.
델파인군을 지휘하는 카이엔도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적의 전술이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며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 쪽은 점점 피해가 줄어들고 있었다.
다소 거칠고 흉포한 느낌이 들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마치 정교한 기계 장치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이 수성에는 더 효과적이었다.
“골치가 아프군.”
이쪽에는 초인이 열 명도 넘지만, 상대 초인들의 능력이 기상천외해서 쉬이 압도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강대한 신성력이 터져 나와 아군을 회복시켜 주고 정령들이 튀어나와 적의 공격을 방해한다.
초인임에도 따로 움직이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하며 방어에만 신경 쓰니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뚫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왕국군이 페르디움에 항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그렇게 힘겨루기만을 하고 있을 때, 한 마법사가 말했다.
“요새 내부의 시야가 가려졌습니다. 마법 전력이 전부 시야 차단에 투입된 모양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전투가 벌어지면 마법사들도 수백 명씩 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중 일부는 서로의 진영을 감시하는 마법을 썼다.
방해 마법을 써도 완벽할 수 없기에 듬성듬성 공간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 진영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음.”
카이엔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야간 기습에 대비해라.”
수성하는 측이 시야를 가리는 이유는 한정적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야간 기습이었다.
과연 카이엔의 예상대로 야간에 몰래 빠져나온 궁기병들이 델파인군 진영의 측면을 노렸다.
“쳐라!”
이미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그들을 쫓았다. 궁기병들은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확실히 쫓아내기 위해 궁기병들에게 집중해 움직이는 사이,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콰앙! 콰앙! 콰아앙!
“뭐냐!”
뒤쪽에서 들려온 소동에 카이엔이 깜짝 놀랐다. 잠시 후 병사 하나가 달려와 상황을 보고했다.
“적 마법사들이 후방에 나타났습니다!”
“뭐? 어떻게?”
“땅굴을 판 거 같습니다!”
카이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땅굴을 공격 측이 아니라 수성 측에서 파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해 버렸다. 적도 기습이 성공하자마자 금방 물러나서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피해를 보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놈들이…….”
적들이 갑자기 대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제 후방 경계에도 더 신경 써야만 했다.
혹시나 해서 적의 땅굴을 이용해 보려 했지만 이미 단단히 막힌 뒤였다. 다시 판다 해도 적들이 금세 눈치챌 것이다.
“후우……. 수성을 하는 주제에 이렇게 대범하게 움직일 줄이야.”
비슷한 병력이면 수성 측이 더 유리한데 심지어 적극적으로 공격해 오니, 델파인군 병사들의 피로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는 자칫 위험해 보일 정도로 병력을 운용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열기구를 이용해 화살과 마법을 쏘고 오기도 했고, 툭하면 야간에 튀어 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놀랍게도 그건 효과가 있었다. 델파인군의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람 괴롭히는 데는 도가 튼 여자였다.
카이엔도 계속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진형을 새로 짜고 효율적으로 경계조를 배치했다.
그러고 나니 상대도 감히 유격전을 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시간을 너무 끌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수도가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새로 들려온 소식에 카이엔이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이제 펜리스 백작과 기동군, 페르디움군, 왕국군이 남하할 것이다.
그들까지 합류하면 이쪽이 불리해진다.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그가 가트로스에게 말했다.
“피해를 더 감수해서라도 어떻게든 빨리 맞붙어야 하오.”
“그리합시다. 사제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전하겠소.”
델파인군의 전술이 바뀌었다. 이제 전 병력이 성벽에 달라붙었다. 사상자가 늘어도 개의치 않았다.
특히 한쪽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투석기와 마법 전력이 모두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그쪽을 중점적으로 막으려 해도, 다른 쪽에서는 병사들이 달라붙어 악귀처럼 기어 올라오는 통에 병력을 빼기도 쉽지 않았다.
상대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막는 쪽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조금 다른 선택을 내렸다.
“현재 집중 공격당하는 성벽의 뒤로 석재와 목재, 그 밖에 크고 단단한 자재들을 전부 옮겨라. 다 버린다고 생각해.”
임시로 막을 수 있는 자재들을 잔뜩 옮겨 두고 그쪽을 내버려두었다.
남은 병력이 다른 쪽을 지원하니 피해도 적어졌고 막기도 쉬워졌다.
콰앙! 콰앙! 콰앙!
물론 방치된 쪽은 방어가 취약해 점점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쪽을 지키던 마법 전력까지도 빼 왔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결국 성벽은 적의 집중 공격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델파인군은 2차로 쌓아 놓은 자재들에 막혀 들어오지 못했지만, 그것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카이엔이 잔뜩 쌓인 자재들을 보고 서늘한 눈빛을 내비쳤다.
“내일이면 진입할 수 있겠군. 전부 죽여 버리겠다.”
제법 많이 쌓아 두긴 했지만, 초인들까지 합세하면 하루면 치울 수 있는 양이었다. 성벽 없이 맞붙으면 자신들이 유리했다.
아멜리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벽을 포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요새를 버리고 후퇴한다. 다음 요새에서 적을 막겠다. 이제 적을 깊게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아멜리아의 명령에 따라 모든 병력이 야간에 은밀히 요새를 빠져나갔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카이엔이 쾌재를 불렀다.
“좋다! 어서 적을 쫓아라!”
다음 요새는 무척이나 작았다. 상대의 대군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그 말은 방어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몇 번의 공격에 그냥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델파인군은 북부군이 움직이는 대로 쫓아가기 바빴다. 그들은 결국 작은 요새까지 물러난 북부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적의 움직임은?”
“현재 남하하고 있습니다. 대군이라 속도가 느리니 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라 예상합니다.”
“이틀 내로 이곳을 점령하고 적들을 몰살시킨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요새 안의 적도 만만치 않은 대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인들의 수도 이쪽이 더 많고 병사들도 이쪽이 더 강하니 해볼 만했다. 상대의 절반 이상은 오합지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공격해라!”
콰앙! 콰앙! 콰아앙!
과연 상대는 이제 막기에 급급했다. 요새가 워낙 작고 약해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이 상태라면 금세 전면전으로 맞붙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멜리아도 상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무력만 뛰어난 게 아니야. 병력 운용 실력이 대단하군.”
카이엔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들을 쫓아왔다. 처음 몇 번 기습에 당하긴 했어도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다.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언제 승부를 걸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이쪽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웃음을 지었다.
“내가 해야 할 만큼은 다 한 거 같네.”
그녀는 지셀이 원했던 만큼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아직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이 오려면 멀었지만…… 왕국 최강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펜리스 기동군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까마귀 하나가 빙빙 돌고 있었다.
“저거 참 연락하기 편하단 말이지.”
저것도 갖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아멜리아가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는 사이에도 델파인군은 폭풍처럼 요새를 공격했다. 이대로 가면 이틀 안에 요새를 무너뜨릴 수 있을 터였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요새를 노려보던 카이엔에게 먼지투성이가 된 전령이 달려왔다.
“뭐냐? 무슨 일이냐?”
“페, 펜리스 백작이…….”
“펜리스 백작? 기동군이 도착한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이냐. 빨리 말하라.”
카이엔의 으름장에 전령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전선을 우회하여 모브레이 백작령으로 갔습니다! 현재 공작령으로 바로 진군 중입니다!”
지셀은 모브레이 백작의 아들, 에드윈의 몸에서 다크를 빼내어 구해 주었다. 모브레이 백작은 그때 약속했던 대로 지셀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카이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 병력이 튀어나온 지금, 본진이 공격당하게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