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11)
511 – 여기서 결판을 내자. (2)
511화 여기서 결판을 내자. (2)
‘당했구나!’
카이엔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펜리스 기동군은 빠르기로 유명했다. 그들이 따로 움직일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고작 2만이었다.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적군에 합류해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그러기를 바랐다.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이 도착하기 전에 펜리스 백작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다시 병력을 모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큰 피해를 보더라도 그놈만 없애면 성공한 셈 칠 수 있었다.
‘그런데…… 뒤를 쳤다고?’
모브레이 백작은 지금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공작가에서 몇 번이나 압박했지만 승자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하며 영지를 굳게 닫아걸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에 힘으로 무너뜨리기에는 공작가로서도 부담스러워서 일단은 내버려두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주변에 감시 병력을 배치했지만, 친왕파도 그와 접촉하지 않았다.
‘누굴 만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모브레이 백작은 자신의 군대로 철통같이 영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공작가의 감시 병력은 그들을 계속 주시했다.
그럼에도 길을 내어주었다는 건.
‘이미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도대체 언제 만난 건가!’
카이엔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둘이 만났던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바로 길을 내어줄 리가 없었다.
지셀이 모브레이 백작의 아들, 에드윈의 몸에서 다크를 빼내어 구해 준 건 오래전의 일이었다.
공작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으니 공작령으로 직접 쳐들어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부 초입의 끄트머리 영지라 신경을 안 쓴 것도 실수였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진작에 입장을 확실히 정하게 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작령에는 병력이 거의 남지 않았다. 수비군 1만이 전부였다.
물론 쉽게 당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공작령에는 7서클 마법사인 일로이스가 남아 있었고, 그가 함정도 잔뜩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안했다. 펜리스 백작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짓을 해 왔으니까.
‘당장 움직여야 한다!’
펜리스 백작이 공작령을 유린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기동군이 빨라도 남부 끄트머리를 우회해서 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쪽에서는 곧바로 남하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바로 가트로스에게 말했다.
“이곳을 맡아 주시오. 남부로 가야 할 거 같소이다.”
“……뒤통수를 맞았군. 막기가 힘들 거 같소?”
“반반이오. 기동군은 저지한다 해도 펜리스 백작을 놓칠 수도 있소. 차라리 이 기회에 확실히 잡아 죽이는 게 나을 거 같소.”
“으음……. 알겠소이다. 이곳은 내가 막아 보고 있겠소.”
지셀의 우회 공격으로 상황이 단숨에 역전되어 버렸다. 이제는 이쪽이 요새에 웅크린 북부군을 막는 역할을 해야 했다.
페르디움군과 왕국군까지 도착하면 저 대군이 전부 남부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이엔은 최정예 기마병 4만을 추렸다. 다른 병종은 데리고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서 펜리스 기동군과 맞붙어야 하니까.
4만이면 기동력도 최대한 챙기고 병력의 수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건방진 놈…….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목을 날려 주겠다. 가자!”
두두두두두두!
분노한 카이엔의 명령에 따라, 델파인군 기마병 4만이 남부를 향해 움직였다.
아멜리아가 요새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정말로 왔군. 믿기지가 않아.”
모브레이 백작은 지셀을 보고 감탄을 내뱉었다.
그간 지셀의 활약상은 소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잠깐 ‘퇴마사’로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다.
심지어 이제는 수도를 함락하고, 그의 아버지는 왕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셀도 모브레이 백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약속을 지켜 주셨군요.”
모브레이 백작은 지셀을 막아설 수 있었다. 전쟁에 대비해 모든 병력을 모아 두었기 때문이다.
아직 공작가와 결판이 나지 않은 이상, 지셀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아예 발을 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병력을 물리고 길을 터 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주할 수 있던 것이다
모브레이 백작은 가슴을 펴며 말했다.
“어길 거면 뭐 하러 약속을 하겠소. 그렇게 치사한 인간은 아니오.”
그의 옆에는 에드윈이 무장을 갖추고 서 있었다. 예전처럼 심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긴장은 한 상태지만 눈빛이 살아 있었다.
과연 당시 지셀이 행했던 물리 치료가 꽤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에드윈을 발견한 다크가 슬그머니 나와서 깐족거렸다.
“크크큭, 내 ‘전’ 주인 아닌가? 잘 지냈어?”
“으…….”
에드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의 기억이 나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 것이다.
다크 덕분에 세상과 단절한 채 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실상은 짐승처럼 살았을 뿐이었다.
지셀이 무장까지 한 에드윈의 모습을 보고 모브레이 백작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공작가는 이번 전투로 끝장이 날 테니까요. 혹시나 제가 패하면 페르디움군에 합류하십시오.”
“나도 따라가겠소.”
“네?”
“왕국이 사교에 넘어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펜리스 기동군만큼 속도는 안 나겠지만 내 모든 기마병을 이끌고 최대한 빨리 따라가 보겠소.”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이제는 나도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뒤따라오는 ‘다른 군대’도 안내할 겸 말이오.”
모브레이 백작이 씨익 웃었다. 언제까지 중립을 외칠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구원교가 발호했을 때 그 생각을 버렸다.
지금 이때를 위해 공작가가 압박해도 버텼고 친왕파가 손을 내밀어도 거절했을 뿐이었다.
언젠가 지셀이 올 것을 믿으며, 공작가의 감시와 정치적 압박을 견디며 기다린 것이다.
지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병력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자신이 우회해서 공작령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곧 카이엔에게도 들어갈 테니까.
이미 주변의 감시 병력을 자신이 없애 버렸다. 그는 소식을 받는 즉시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내려올 게 뻔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보겠소.”
지셀은 모브레이 백작이 붙여 준 병사의 도움으로 가장 빠른 길을 골라 움직였다.
펜리스 기동군을 막는 자는 없었다. 이미 공작가에서 최소한의 경계 병력을 빼고 죄다 소집해 갔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두!
덕분에 지셀과 펜리스 기동군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공작령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경계 병력은 순식간에 괴멸되었다. 남부의 영주들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펜리스 백작이 이곳까지 직접 오다니.”
“어찌 이리 대범하게 움직인다는 말인가.”
“정말 허를 찌르는 건 왕국 제일이구나.”
다들 성에 틀어박혀 감히 나서지 못했다. 병력이 없기에 자신들의 영지조차 건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만약 공작가 패배한다면 자신들도 전부 자리를 잃게 될 테니 말이다.
공작가에도 지셀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그놈 참,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놈이로다.”
왕국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 공작가의 7서클 마법사인 일로이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요제프 자작, 성에서 막을 수 있겠는가?”
라울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펜리스 기동군은 강력한 공성 병기를 휴대하고 있습니다. 약하디약한 이곳의 성벽으로는 막기 힘들 것입니다.”
공작의 성, ‘이클립스’가 있는 곳은 공작령의 중심이자 거대한 도시였다. 하지만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아름다움만을 강조할 뿐, 방어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사실 방어력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누가 감히 공작가를 치려 하겠는가.
애초에 이곳까지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봉신 영지와 요새를 뚫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으로 짓쳐들어오는 군대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일로이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어, 내 팔십 평생을 살면서 그런 대단한 군대는 처음 보는고. 북부의 애송이가 이제는 왕국의 운명을 가를 존재가 되었구나.”
라울이 침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직접 나가서 싸워 주셔야겠습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굳이 이 아름다운 곳을 망가뜨릴 필요는 없겠지. ‘그걸’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가 생기는구나.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로다.”
공작가가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환영 마법의 대가인 일로이스는 공작가에 처음 왔을 때부터 꾸준하게 함정을 만들어 왔다.
수십 년에 걸쳐 만든 함정은 수만의 군대도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내 역작을 드디어 시험해 볼 수 있겠구나. 상대가 왕국의 신성이라면 그리 아깝지 않은 대가로다.”
일로이스와 라울은 1만의 수비군을 이끌고 나갔다.
상대의 전력이 훨씬 더 많고 강력했지만 다들 겁먹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7서클 마스터가 지닌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수비군은 미리 준비한 장소에서 대기했다. 꼭 이 자리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일로이스가 버릇처럼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라울에게 물었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가?”
신분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군사학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일로이스가 지휘를 맡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옆에서 라울이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곧 도착할 것입니다.”
“흐음, 소식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개 기병도 아니고, 군대가 정말 그렇게 빠르다는 말인가?”
“기동력 하나만큼은 왕국 제일…… 아니, 대륙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공성 병기까지 들고 움직이는데, 보급마저 필요 없다. 어떠한 군대도 그 기동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기술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들의 상대로서는 그래서 더 미칠 거 같았다.
일로이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운지고. 우리 편이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말이다.”
“그럴 놈이었으면 진작에 회유했겠죠.”
라울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 연회 때 살짝 운을 띄워 봤지만 지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쉬운 일이었다.
‘차라리 계속 회유해야 했을까.’
어쩌면 같은 편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북부를 전부 주겠다고, 많은 지원을 해 줬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미 당시에도 지셀은 공작가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지금이야 이런저런 이유가 엮여 확실한 적이 되었지만, 사실 라울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때 지셀이 그런 강한 적개심을 보였는지 말이다.
‘우리의 숙적이 될 운명이었나 보군.’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 페르디움을 없애려 했던 걸 당시의 펜리스 백작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라울은 상념을 멈췄다. 저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군대가 보였다.
일로이스가 감탄 섞인 어조로 말했다.
“정말이군. 정말 빨라. 대단하구나.”
여유로운 일로이스와 달리 라울은 재빠르게 주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철컹! 철컹! 철컹!
병사들이 방패를 들며 창을 내밀었다.
이곳 수비군은 전원이 보병이었다. 수도 펜리스 기동군보다 훨씬 적었다.
아무리 정예라 해도 이대로 돌격을 허용하면 허무하게 쓸려버릴 것이다. 상대는 돌파력 또한 왕국 최강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두두두두두두!
과연 지셀은 아예 숨을 고를 생각도 없는지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돌파한다! 단숨에 쓸어버려라!”
철컹! 철컹! 철컹!
지셀의 외침에 따라 선두의 기사들이 창을 들었다. 푸르게 빛나는 그들의 창은 단숨에 적의 전열을 무너뜨릴 것이다.
철컹! 철컹! 철컹!
기동군이 넓게 퍼지며 똑같이 창을 들었다. 선두의 기사들이 진형을 무너뜨리면 이들이 뒤에서 나머지를 갈아 버리는 방식이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깔끔한 전술이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압도적인 파괴력 하나뿐.
이것이야말로 지셀이 가장 즐겨 쓰는 돌격 전술이었다.
두두두두두두!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는 기동군을 보며 라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비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있는 병력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아니, 어떤 군대도 저 돌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로이스 님, 어서…….”
“그래, 그래. 걱정하지 말게나.”
유일하게 여유를 잃지 않은 일로이스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마력이 땅 밑 곳곳으로 스며 들어갔다.
지잉―!
오랫동안 땅 밑에 숨어 있던 마법진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단 발동하면 마력을 봉쇄해도 막기가 쉽지 않았다. 마법진들은 그저 일로이스의 마법을 증폭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 배로 증폭된 7서클 마스터의 마법이 전장에 펼쳐졌다.
“모두 행복한 꿈을 꾸거라.”
사아아아아…….
일로이스의 말과 함께 빛나는 입자들이 땅에서 올라왔다. 그것들은 달려오는 기동군의 몸 곳곳으로 하늘거리며 파고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공에 흩어진 빛의 입자들은 저절로 갈라지고 갈라지며 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마법에 노출된 기동군들은 그 광경을 눈에 담지 못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힘차게 달리던 말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말들은 눈이 풀려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위에 타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천지를 뒤엎을 듯한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들 초점을 잃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환영을 보고 있었다. 보이는 환영은 각자 달랐다.
어린 시절을 보는 사람,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을 보는 사람, 맛있는 걸 먹는 사람, 운동하며 근육을 키우던 시절을 보는 사람…….
다들 멍하니 자신이 행복하거나 좋았던 시절을, 또는 보고 싶었던 것을 보고 있었다.
“크읏!”
몇몇 수준이 높은 기사들은 입술을 깨물며 피를 흘렸다. 제대로 환영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연신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넘나들 뿐이었다.
일로이스가 점점 느려지고 대열이 흐트러지는 기동군을 보며 미소 지었다.
“펜리스 백작은 내가 잡도록 하지. 나머지는 문제없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울이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대를 죽이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역시 대단했다. 이것이 진정한 마법사의 힘이었다. 전장의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킨 것이다.
오랫동안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마법진을 설치한 보람이 있었다.
두두두두두!
오직 지셀만이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라울은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쳐라! 적들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수비군이 기세등등하게 달려 나갔다. 저항도 못 하는 상대에 겁먹을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지셀이 그런 그들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과연 왕국 최고의 마법사다운 준비군.”
만약 몰랐다면 이곳에서 허무하게 전멸했을 것이다. 환영을 파훼하거나 아군을 보호할 마법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
마법사들을 데리고 왔다면 그만큼 속도는 느려졌을 테고, 그사이 저쪽도 더 많은 준비를 해 두었을 것이다.
어쨌든 일로이스의 마법에 한 번은 크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셀은 이미 적들의 비책을 알고 대비를 한 상태였다.
“다크!”
지셀의 목소리가 전장에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파아아아악!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가 가진 마나를 무려 절반이나 단숨에 먹어 치운 다크가 허공에서 거대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렁거리는 사람의 형체를 본 일로이스가 순간 멈칫했다.
“저, 저건 무엇이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저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지셀이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깨어나라!”
쩌엉―!
다크의 형체가 폭발하듯이 터지며 기동군 전체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