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26)
526 – 드디어 움직였구나. (1)
526화 드디어 움직였구나. (1)
“이야, 너 살아 있었네?”
일개 건달패 두목이 살아서 수도까지 왔다. 오스턴 시가 수도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크랭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웃었다.
“네, 네. 어쩌다 보니…….”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 클로드와 그는 악연으로 이루어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크랭크는 클로드에게 사기죄를 뒤집어씌워 손목을 자르려고도 했고, 어떻게 지내는지 감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당하고 살던 자가 이제는 엄청난 거물이 되어 돌아왔다. 클로드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이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안 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억울해서 못 죽어!’
과연 클로드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지는 알고 있어?”
“아, 알고 있습니다.”
안정화 작업은 단순히 식량만 나눠 준다고 끝이 아니었다. 지셀은 특히 치안을 중요시했다.
그렇기에 어떤 영지든 새로 점령할 때마다 범죄 조직부터 죄다 박살 내지 않았던가.
세이론 왕국에서도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패악질을 부리던 놈은 죄다 잡혀갔다.
사람들에게 새로 제보를 받고 왕국에서 가지고 있던 정보를 모아, 그중에서도 악독한 놈이라 판명된 놈들은 바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크랭크는 세력을 잃어서 몸을 사리고 있었기에 처형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과거를 아는 클로드가 나타났으니 빼도 박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그는 바짝 엎드렸다. 왕과 귀족들이 클로드의 손에 싹 갈려 나간 건 크랭크도 잘 알고 있었다.
클로드는 옛날 아카데미에서도 속 좁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과거에 원한을 쌓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과연 클로드는 그 쪼잔함을 마음껏 뽐냈다.
“안 돼. 못 봐줘. 나 사실 그때 상처 많이 받았었어.”
“으아아아!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안 돼. 우리 정책은 ‘범죄자 없는 살기 좋은 곳을 만들자’야.”
“전 지금은 손 씻었습니다!”
“그전에 지은 죄가 많잖아. 야, 이놈 잡아가.”
병사들이 크랭크를 바로 붙잡았다. 크랭크가 끌려가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크게 외쳤다.
“안나! 안나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습니다!”
“뭐?”
클로드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렇게 수소문해도 찾지 못했던 안나의 행방을 알고 있다니!
“너 그거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두 번 죽을 줄 알아.”
“네, 네! 살려 주십시오!”
“어디로 갔는데?”
거래를 시도하려던 크랭크는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이 쪼잔한 놈을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나중에 더 큰 화가 돌아온다. 순순히 따르는 게 낫다.
그는 알고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바이런 왕국으로 떠났습니다.”
“뭐? 그게 진짜야?”
“아, 아마 맞을 겁니다. 피난 행렬이 갈라질 때 얼핏 보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흐음…….”
클로드가 의심 어린 눈빛으로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범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랭크는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입니다. 착각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그러니까 그게…….”
균열이 터지고 피난민 행렬이 곳곳에서 줄을 이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피난민이 우연히 만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반대로 의견이 갈려 목적지가 달라지는 그룹도 있었다.
안나가 속한 그룹은 옆 왕국으로 떠나기로 하였고, 크랭크가 속했던 그룹은 그래도 살던 곳이 낫지 않냐며 수도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클로드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타 왕국으로 떠난 피난민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았다. 안나가 세이론 왕국에 없다면 다른 왕국으로 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가정일 뿐이더라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크랭크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아주 높은 자리에 오르셨으니 금방 다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원수도 갚으셨으니 결혼도 하실 수…….”
퍼억!
클로드가 크랭크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스승님의 딸이니 걱정돼서 찾는 거거든?”
원수를 갚았다고 말하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실수로 스승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안나와는 이미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사이였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지지 않았다면 그냥 그때 헤어진 뒤로 잊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괴물들과 사교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면서, 그녀가 별 탈 없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저 과거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안나를 돕고 싶을 뿐이었다. 클로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크랭크가 다시 손을 비비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암요, 암요. 총독님께서 자비롭고 관대하신 분이신 건 제가 잘 알고 있죠. 저기…… 그래도 마지막 행방은 제가 알려 드렸는데 살려 주실 거죠?”
“왜 바로 나한테 와서 얘기 안 했어?”
클로드는 안나를 찾겠다고 며칠간 왕국을 들쑤셨다. 안나를 봤어도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제대로 제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크랭크라면 할 수 있었다.
그러자 크랭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제가 나타나면 바로 죽이거나 최소 노역을 보낼 거 아닙니까. 지금도 그러시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피해 다녔죠.”
“이 새끼……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군.”
“헤헤, 그래도 저희가 오스턴 시에서 같이 도박도 하고 그러던 사이 아닙니까.”
“그래, 행방을 알려 줬으니 살려 줄게.”
“어이쿠! 감사합니다! 총독 각하 만세! 만세!”
크랭크가 기쁜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클로드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입대해라.”
“네?”
“세이론 재건군에 입대하는 거다. 알겠지?”
“…….”
“싫으면 죽든가.”
날이 가면 갈수록 지셀을 닮아가는 클로드였다.
“입대…… 하겠습니다.”
크랭크는 눈물을 떨구며 수락했다. 잡혀가서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개를 숙인 채 떠나가는 크랭크를 보며 클로드는 생각에 잠겼다.
“바이런 왕국이라…… 잘됐군.”
지셀이 세이론 다음으로 구하러 간 곳이 바로 바이런 왕국이었다. 클로드도 곧 그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바이런 왕국에서는 안나를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세이론 왕국보다 크고, 구원교 세력까지 있는 곳이었으니까.
안나는 어쩌면 그곳에서 죽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나라로 떠났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녀의 행방을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클로드는 계속 안나를 찾아다닐 터였다.
* * *
바이런 왕국은 이미 절반 이상이 구원교와 균열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약소국이었던 바이런 왕국이 절반만 먹힌 건 루타니아 왕국의 내전 덕분이었다.
바이런 왕국에 있던 사제들이 일부 철수해 루타니아 쪽으로 넘어가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균열이 통제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구원교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도 균열의 영역을 피해야 했다.
“젠장! 준비할 때랑 다르잖아! 분명 통제할 수 있다고 했었잖아!”
쾅!
바이런 왕국, 반란군의 수장인 브로데스 후작은 책상을 내리치며 화를 삼켰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자신들도 균열의 영역과 싸우면 병력 소모가 있기에 길을 피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왕국군은 방어선을 단단히 세웠다.
그들도 균열의 확장을 막아야 하긴 하지만, 저지만 하면 되는 그들과 달리 이쪽은 균열을 피해 움직여 왕국군을 공격해야 하니 문제였다.
답답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초인들은 언제 다시 보내 준다는 거냐!”
반란군은 현재 격렬히 저항하는 왕국군에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원래 반란군 자체의 세력은 왕국군보다 조금 열세였다. 하지만 구원교 초인들의 힘을 빌려 파죽지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 루타니아에서 내전이 벌어지며 바이런 왕국 쪽의 초인들이 대부분 차출되었다. 초인들이 빠져 버리니 더는 진군이 힘들어졌다.
“어서 다시 연락해 봐! 한 명이라도 보내 달라고!”
그렇게 주변 참모들을 재촉하고 있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사, 사제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뭐?”
“구원교의 사제들이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도망간 거 같습니다!”
“이, 이런…….”
브로데스 후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꼭 초인이 아니더라도 구원교의 일반 사제들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마법사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고, 구원교와의 연락도 맡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하루 사이에 싹 사라졌다니. 이 상태라면 균열과 왕국군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이 자식들이 불리하니까 전부 도망갔구나!”
브로데스 후작은 배신감을 느꼈다. 왕국을 차지할 수 있다고 오래전부터 꼬셨으면서 이런 중요할 때 도망을 가다니!
그런데 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루타니아의 내전이 끝났다고 합니다! 델파인 공작가와 구원교가 패배했다고 합니다!”
“펜리스 공작이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현재 펜리스 공작의 선발대 2만에 전선이 밀리고 있습니다! 어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브로데스 후작은 부들부들 떨었다. 초인도 없고 사제들도 다 도망갔는데 10만의 대군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전선에 있는 모든 군대를 합해도 자신들은 10만이 될까 말까였다. 초인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겨우 왕국군과 비등하게 싸우고 있는데 상대 쪽 병력이 10만이나 늘어 버리면 이길 수 없었다.
브로데스 후작이 다급하게 말했다.
“모든 군대를 소집해서 길목을 막아라! 놈들도 균열의 영역은 피해야 할 테니 그곳만 막으면 될 것이다! 그사이에 다른 왕국에 있는 구원교에 다시 연락해서…….”
“소, 소용없습니다.”
참모의 말에 브로데스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소용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페, 펜리스 공작이…….”
“펜리스 공작이 뭐!”
“그냥 균열까지 밀어 버리면서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피해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
브로데스 후작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게 가능한 건가? 인간의 군대가 그렇게 강할 수가 있는 건가?
그런 군대가 있으면 왜 인류는 지금까지 균열에 당하고만 있었던 걸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쪽이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은 군대라는 것이다.
“괘, 괜히 루타니아 왕국이 가장 먼저 정리된 게 아니구나.”
브로데스 후작이 알기로, 인근 왕국의 고위 사제들은 죄다 루타니아 왕국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그자들을 상대로 승리하고 이제는 다른 왕국까지 지원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도, 도망가자! 어서 채비해라! 도망을 가야 한다!”
브로데스 후작은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도망가면서도 다 챙겨 가려고 한 점이었다.
측근들만 데리고 갔으면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구원교가 있는 곳은 어디든 합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군대와 식량을 챙겨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왕국에 가서도 힘을 쓰고 싶었던 것이었다.
“시간은 충분할 거다.”
거리가 있으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는 펜리스 기동군의 속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두두두두두두!
그들의 뒤로 2만의 기마병이 따라붙을 때까지 말이다.
“저, 저게 뭐냐! 저게 말이 돼?”
브로데스 후작은 유령에 홀린 기분이었다. 전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펜리스 기동군이 먼저 나타났다.
콰아아앙!
“으아아악!”
선전 포고고 대화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냅다 달려와서 밀어 버린다.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투력이 너무 크게 차이가 났다.
브로데스 후작은 몰살당하는 자신의 군대를 보며 넋이 나가 버렸다.
세간 사람들은 구원교를 악마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펜리스 공작의 군대를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이 군대야말로 진정 악마의 군대였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선두에 선 자가 붉은 눈을 빛내며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그 누구도 그자를 막지 못했다.
그 옆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나무 짚단을 베듯이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브로데스 후작은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 악마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페, 펜리스 공작이시오?”
“그렇다.”
“하, 항복을…….”
“필요 없다.”
스각!
지셀은 짧게 말한 뒤 브로데스 후작의 목을 날려 버렸다.
바이런 왕국의 반란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직 잔당들이 몇몇 남긴 했지만 클로드가 군대를 이끌고 뒤를 따라오며 정리하고 있었다.
지셀과 2만 기동군의 역할은 중요한 지역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었다.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지셀은 의문이 들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사제들이 보이지 않는다.’
바이런 왕국에 발을 들인 초반 한두 번 외에는 지금까지 구원교의 사제들을 볼 수가 없었다. 다 도망갔다는 뜻이다.
인근 왕국에 있던 고위 사제는 다 루타니아 내전에 참여했을 테니 안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일반 사제들까지 보이지 않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그놈들도 힘을 모으는 모양이군.’
각개격파 당하지 않기 위해 어디선가 모이는 게 분명했다.
그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모이면 무시무시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니 다른 왕국들도 어서 전력을 추슬러야 했다.
조금 수고스럽겠지만 루타니아 북부군이 더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셀이 혀를 차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튜리안 왕국의 내전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이제 연합군에 합류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루타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내전이 끝난 왕국이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튜리안은 균열이 열리고 구원교가 발호하기 전에도 미친 몬스터들을 막느라 고생하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연합군에도 합류하지 못했던 곳 아니던가.
그런 왕국에서 벌써 내전을 끝내다니, 믿을 수 없는 전과였다.
하지만 지셀만은 그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튜리안 왕국에 대륙 7강 중 한 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지셀이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놈이 드디어 움직였구나.’
전생에 대륙제일검으로 불렸던 사내.
곧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