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55)
555 – 내 꿈에 네가 나왔어. (1)
555화 내 꿈에 네가 나왔어. (1)
‘여기는…….’
지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다시 전장이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상황은 저번 꿈과 같았다.
“와아아아아!”
현시대의 인류 연합과 같은 군대가 균열의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예전에도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싸웠군.’
여전히 의문은 든다. 이 정도로 처절하게 싸웠는데 왜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았을까.
만약 기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회귀하기 전에 인류가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꿈을 온전히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옛 기록을 지웠다는 베르헴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 없다, 아무것도 없다. 당시 사람들이 모든 기록을 일부러 지웠다고 했다.
꿈에서 보이는 전쟁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타니아의 건국 기록은 일부러 지운 것이 확실했다.
그림자 기사단과 델파인 공작가가 기묘할 정도로 강한 권력을 쥔 이유를 왕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만약 이 꿈이 사실이라면, 이 전쟁에 대한 기록도 권력자들이 지웠을 확률이 높다.
지셀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역시 저번에 봤던 성녀가 이번에도 있었다.
성녀를 보자 베르헴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 그 목걸이는…… ‘최초의 성녀’라 불리는 자의 목걸이다. 모든 여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성녀.
‘최초의 성녀.’
모든 여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말은 믿을 만했다. 실제로 그 기적을 보았으니까.
― 건국왕은…… 성녀의 하인이었다고 한다.
‘하인.’
그렇다면 지금 저 성녀를 모시는 자 중에 루타니아의 건국왕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성녀의 목걸이를 받아 왕실의 비보로 간직했을 테니까.
지셀은 상념을 털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어차피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모두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다.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아니, 이게 정말 사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꿈이 계속 무언가를 보여 주고 있으니 하나씩 알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밀어 버려라!”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괴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셀의 시대는 구원교의 수작질로 전 대륙이 혼란과 분열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어 싸웠다.
카아아아앙!
그 강대한 에퀴데마도 하나가 된 인류의 힘 앞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군세를 자랑하는 균열인들 또한 인류의 군대를 뚫지 못했다.
그 기적을 가능케 하는 사람은 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성녀였다.
그녀가 이번에도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충실한 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소서. 이 험난한 전장에서 우리의 용사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소서.”
파아아아아아!
하늘이 갈라지며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은 산란하듯 퍼지며 인류 연합의 군대에 놀라운 힘을 주었다.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의 검에 힘을 실어 주소서.”
모든 병사들의 검에서 빛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당신의 신성한 빛으로 우리의 방패를 단단하게 하소서.”
모든 병사들의 방패가 신성한 빛에 감싸였다.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시어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병사들의 몸에 은은한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었다. 성녀 혼자서 수십만에 이르는 군대에 축복을 내려 주었다.
지셀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기적이라 불리는 채널링이 저 성녀에게는 이리도 쉬운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의 사기는 끝도 없이 올라갔다. 이게 모두 성녀의 힘 덕분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괴물들은 이번에도 밀려 괴멸될 것이다. 전쟁의 귀재인 지셀은 슬쩍 훑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카아아악!
과연 균열인들은 어마어마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인류 연합의 초인들이 에퀴데마를 죽여 나갔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지옥이다.
콰아아아아!
갑자기 검은 기운이 대지를 잡아먹으며 몰려들었다.
검은 뭉게구름이 사정없이 피어나는 광경은 마치 악마들이 몰려오는 듯 보였다.
성녀가 사방에 뿌린 찬란한 빛을 잡아먹으려는 듯, 그 검은 기운은 맹렬하게 전장을 덮쳤다.
파아아아아악!
빛과 어둠이 부딪쳤다. 두 기운은 서로가 한 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어둠이 하늘의 반을 가리자 괴물들이 다시 힘을 내었다. 놀랍게도 괴물들 또한 검은 기운에 물들어 더 강해진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인류가 우세했다. 그들은 여전히 괴물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파아앗!
어둠 속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이 수백 명이나 튀어나왔다.
지셀은 그 모습을 보고 눈매를 꿈틀거렸다.
‘구원교.’
검은 로브와 검은 기운. 그리고 로브 아래로 얼핏 보이는, 손등과 목에 새겨진 검은 태양의 문신. 저들의 정체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이미 구원교는 이때부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단순한 사이비가 아니야.’
괜히 에레네스가 구원교와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었다.
그러니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오래된 과거인 것일까?
에레네스는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엘프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면 정말 이게 천 년 전 일인 건가?
‘말이 안 되지.’
엘프의 수명이 길다 해도 천 년은 말이 안 된다. 그 반만 살아도 장수한 엘프라고 할 수 있었다.
지셀의 상념은 길게 가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구원교의 사제들이 끼어들자 인류 연합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정말 강했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특별한 사제가 하나 있었다.
가장 가운데서 튀어나온 그 사제는.
“모든 심판관은 쉬지 말고 적들을 밀어붙여라. 내가 성녀를 잡겠다.”
온몸에 검은 기운을 휘감고, 붉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인류 연합의 진형을 뚫었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를 본 인류 연합의 모든 병사가 전의를 불태우며 외쳤다.
“대적자가 왔다!”
“막아라!”
“성녀를 지켜라!”
인류 연합은 그의 강대한 힘을 보고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광기 어린 눈빛을 내비치며 다가오는 자를 죽이려 덤벼들었다.
“죽여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와아아아!”
하지만 대적자라 불린 사제는 너무도 강했다.
“벌레 같은 놈들.”
콰아아아앙!
검은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쓰는 그를 아무도 막지 못했다.
지셀은 그자를 보며 다시 눈을 찌푸렸다.
‘저놈…….’
불쾌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자신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로 사제가 보이는 모습은 지셀이 증폭을 사용할 때와 흡사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인류 연합은 대적자에게 덤비는 족족 몸이 찢겨 나갔다. 순식간에 진형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정도였다.
폭풍은 그대로 전진했다. 주변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오직 저 뒤에서 빛을 뿌리고 있는 성녀만이 목표인 듯 보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
강력한 신성력으로 무장한 인류 연합의 기사들은 허무하게 쓰러져 갔다.
하지만 인류 연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앞선 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금세 진형을 정비하며 다시 성녀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다시 외쳤다.
“성녀를 지켜라!”
콰아아앙!
그들의 마음과 다르게 진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 누구도 검은 폭풍이 된 사제를 막을 수 없었다.
그때 진형의 우익에서 싸우고 있던 드워프 왕이 할버드를 땅에 강하게 찍었다.
쿠르르르릉!
지진이 일어나며 그에게 덤벼들던 괴물들과 사제들이 쓰러졌다.
드워프 왕은 검은 폭풍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
지셀의 귀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진형의 좌익에서 싸우고 있던 에레네스가 거대한 상급 정령들을 소환했다.
콰아아아아!
정령들은 주변에 다가오는 괴물과 사제들을 막아섰다.
그녀는 그 틈을 타 자신의 결전 병기, 엘븐 세레네이드를 꺼내 당겼다
파아아아앗!
녹색 빛을 내뿜으며 거대한 화살이 검은 폭풍을 향해 날아갔다.
거칠 것 없이 전진하던 검은 폭풍도 그 힘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흐읍!”
그가 기운을 더 뿜어내자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둠이 몰려 그의 앞에 거대한 장막을 만들었다.
콰아아아앙!
화살은 장막에 부딪혀 소멸했다. 장막 또한 소멸했지만 사제는 멀쩡했다.
다른 초인들 또한 그를 향해 마법을 뿌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내거나 피했다.
그는 다른 이들과의 싸움에 제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콰아아앙!
다시 폭풍이 된 그가 성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어떤 방해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앞을 막은 병력은 거의 없었다.
놀라운 힘이었다. 지금의 지셀도 저런 돌파는 할 수 없었다. 대륙제일검이라 불린 시절의 율리엔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정도로 사제의 강함은 초월적이었다.
공격이 실패한 에레네스가 크게 외쳤다.
“―――!”
이번에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함성과 대화는 모두 들리는데 유독 몇몇 사람이 하는 말만 들리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던 성녀가 눈을 떴다. 어느새 사제가 그녀의 앞에 다가온 상태였다.
주변에 있던 병력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구원교의 사제가 성녀의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변을 힐끗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성녀.”
“…….”
“저번에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반드시 널 죽이겠다.”
성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신의 대적자, 인류의 배신자를 다시 만나는군요.”
“나는 교의 첫 번째 종이자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자, 그리고 버림받은 자들을 구원하러 온 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대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할 거예요.”
“나는 오직 내가 믿는 신의 뜻을 따를 뿐이다.”
사제가 손을 들었다. 이걸 내리친다면 성녀는 이대로 몸이 찢길 것이다.
하지만 성녀는 여전히 의연한 표정이었다. 저 평범한 겉모습 안에 얼마나 강한 의지가 숨어 있는 걸까.
붉은 눈을 빛내는 사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끝이다. 성녀. 너희들은 절대 성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니.”
그가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휘둘렀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앙!
순간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며 빛과 어둠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은 기운으로 일렁거리던 사제의 손은 누군가의 검에 막혀있었다.
검은 기운이 분노한 듯 세차게 흔들렸다.
“너…….”
갑자기 나타나 사제의 공격을 막은 남자.
그의 얼굴은 마치 신이 극진한 정성으로 조각해 낸 듯 완벽했다.
청명한 하늘빛과 깊은 바다의 색채를 동시에 품은 그 푸른 머리카락은, 마치 그의 넘치는 열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했다.
눈빛은 마치 별들이 춤추는 밤하늘 같았다. 푸른 눈동자 속에는 물러서지 않는 용기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 속에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희망이 담겨 있었다.
만약 전설의 용사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일 것이리라.
갑자기 나타난 그 남자를 본 모든 사람이 함성을 내뱉었다.
“와아아아아아!”
드워프 왕도 크게 웃으며 할버드로 땅을 여러 번 찍었다.
에레네스도 나타난 자를 보고 기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심각한 상황에도 모두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금 나타난 자가,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만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는 등장만으로도 모든 이들의 가슴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셀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을 가라앉히느라 애쓰고 있었다.
저 남자는 그가 잘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왜 여기에…….’
절대 과거에 있을 수 없는 얼굴.
아니다, 아닐 것이다.
자신이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세히 보면 다른 면이 많지 않은가.
그의 머리카락은 저렇게 아름답고 정열적인 푸른색이 아니었다. 밤하늘의 장막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이었다.
그는 저렇게 표정이 풍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언제나 차가운 대리석을 연상케 하는 무표정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저렇게 반짝이는 별 같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깊고 어두운 심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지셀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내뱉고 말았다.
“율리엔.”
번쩍.
그 이름을 입에 담자, 지셀의 꿈이 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