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59)
559 – 싸움은 이제부터야. (1)
559화 싸움은 이제부터야. (1)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제발 목숨만은…….”
그림웰의 수도에서는 연일 학살이 벌어졌다. 이 학살에는 신분의 고하도, 죄의 경중도 의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모든 이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몇몇 인물들이 사람들을 모아 대항했지만, 구원교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도의 광장은 피로 물들었다. 어찌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마치 홍수가 난 것처럼 병사들의 발목은 언제나 피에 잠겨 있었다.
피의 광장 중앙에는 작은 단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수수한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수도에 정말로 동물 한 마리조차 남지 않았을 즈음, 가트로스가 모든 사제들을 불러 명했다.
“의식을 시작하라.”
수십 명의 사제들이 모여 구원교의 비전을 읊었다.
고오오오오…….
마법진에서 사이한 기운이 풍겨 나오며 주변의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피를 먹어 치운 마법진은 곧 선명한 붉은빛을 띠었다. 팔찌가 놓여 있는 단상으로 핏물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단상으로 올라간 핏물은 점점 팔찌에 스며들었다.
가트로스는 긴장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제발…….’
만약 저 팔찌가 성물이 아니라면 붉은빛으로 물들어 버릴 것이다. 생명의 보주와 같은 악물이 하나 더 탄생하는 것이다.
겨우 그런 걸 하나 더 만들려고 이 고생을 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저게 진짜 성물이라면…….
파아아아아아악!
갑자기 팔찌에서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루타니아에서 봤던 그 빛이었다. 저 안에 숨겨진 신성력은 마법진의 기운을 거부했다. 스며들던 핏물들은 신성한 빛에 막혀 꿈틀거리기만을 반복했다.
어지간한 성물도 단숨에 잡아먹을 수 있는 저 힘을 말이다.
가트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가 미친 듯이 웃었다. 찾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염원했던 성물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그렇게도 많은 희생과 실패를 감내한 보람이 있었다.
빛은 하염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세상 곳곳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했다.
가트로스가 그걸 보며 크게 외쳤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이 빛을 어서 느끼시옵소서! 우리가 만날 날을 고대하겠사옵니다!”
자신들의 왕은 분명 이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 그것은 약속되었고 예언된 일이었다. 왕을 만나 사명을 일깨워 주는 것 또한 교의 임무이기도 했다.
왕의 ‘기억’을 깨우기 위해서 성물이 필요한 것이었다.
“어서 기운을 거둬라! 어서!”
사제들이 주문을 멈추자 마법진의 기운이 다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단상을 올라타던 핏물이 모두 흘러내리니 성물에서 새어 나오던 빛도 서서히 꺼져 갔다.
가트로스는 팔찌를 들어 자신의 손목에 조심스럽게 찼다.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 보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아이던이 고개를 저었다.
“어휴, 더러워.”
퀴퀴한 냄새, 진득한 습기, 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흥건한 피.
그가 보기에 이건 전혀 예술적이지 않았다.
피를 싫어하진 않지만, 자신을 찬양하는 자리도 아닌데 이런 깔끔하지 않은 일을 굳이 좋게 봐줄 이유는 없었다.
사실 아이던은 저 사이비 종교에는 관심도 없고 공감도 안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독실한 구원교의 신자인 척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이던이 어깨를 으쓱이며, 제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혁명단장 래너드에게 물었다.
“어때? 이런 의식은 처음 보지? 더럽긴 해도 신기해서 꽤 볼 만하지 않아?”
“…….”
“뭐, 처음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 그냥 저들만의 의식이라고 보면 돼. 굳이 신경 많이 쓸 필요는 없다고,”
“……그래.”
래너드는 짧게 대답하고 대화를 끊었다. 사실 그는 지금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서 의식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기습 작전이 실패한 뒤 그는 제법 망신을 당했다. 다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드러나는 분위기가 있었다.
왜 혼자서 펜리스 공작을 건드렸다가 병력만 잃었냐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젠장…….’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철저하게 당했다. 펜리스 공작이 자기 머릿속에 들어와 전부 훔쳐다 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크게 남은 건 따로 있었다.
‘율리엔.’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을 쓰는 자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기술이 가능한지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 또한 대륙에서 손꼽히는 초인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대일이라면 누구와도 해볼 만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율리엔을 만나고 깨져 버렸다.
래너드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분명 이쪽도 강하긴 하지만…….’
이곳에는 수많은 초인이 있다. 아트로데군도 무척이나 강하다. 자신의 혁명단도 합류했다.
이 정도면 대륙 최강이라 할 만했다. 연합군이 아무리 늘어나도 상대가 될 수 없을 거라 믿었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다. 승리를 자신했다.
‘펜리스 공작, 율리엔…….’
이 두 사람을 마주하기 전에는 말이다.
둘 다 소문 이상이었다. 더 불안한 부분은, 두 사람의 능력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래너드가 가트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피로 물든 광장에서, 자신의 손에 찬 팔찌만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소문대로 말세인가. 미친놈들 천지야.’
그저 자신의 왕국을 하나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욕망을 채우려면 구원교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원교는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놈의 왕인지 뭔지를 찾겠다고 불리한 전략을 짜고 상당수의 병력을 날려 먹었다.
‘지금 이게 사람 하나 찾아서 승리할 전쟁인가? 그런 건 전쟁이 끝나고 찾아도 되는 일이 아닌가.’
래너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왕도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였다.
그리고 우연히 이들과 함께하며 알게 된 사실도 하나 있었다.
구원교가 부르는 왕의 다른 호칭은 여신의 대적자.
‘여신과 싸우겠다는 뜻이지.’
래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대륙을 제패하지도 못했으면서 신과 싸우겠다는 오만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하는 꼴을 보니 뭐가 있긴 있는 듯하지만, 아직은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밖에 안 보였다.
하지만 일단 그들과 손을 잡은 이상, 아무리 불리해도 연합군과 싸워야 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고민은 오직 하나.
‘율리엔.’
괴물 같은 그놈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지뿐이었다.
* * *
“와아아아아! 이겼다!”
율리엔이 이끄는 연합군은 아트로데군의 요새를 점령하고 환호했다.
너무나도 쉬운 승리였다. 상대는 약했고 이쪽에는 율리엔이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부상병들을 챙기며 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율리엔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음.”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 기운은 선명할 정도로 강렬했다.
율리엔은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사사삭.
스스슥.
몇 사람이 자신을 에워싸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루타니아군의 총관 클로드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연합군이 갈라졌을 때부터 따라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전쟁 기록 사관’이라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제로 전쟁에 종군하여 전황을 기록하는 자들은 존재했으니까.
그런데 다들 너무 과했다. 처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지만, 갈수록 노골적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행태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꼭 그래야 하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율리엔이 말을 걸자, 한 화가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저희는 율리엔 님을 상세히 기록하라는…… 아니, 앗차! 이 전쟁을 상세히 기록하라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았기에 한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
화가의 대답을 들은 율리엔은 그냥 입을 닫았다.
말로는 전쟁을 기록한다 하지만, 자신만 그리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일절 그리지 않았다.
율리엔이 반대쪽을 돌아보았다. 파견되어 온 문장관들이 열심히 자신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튜리안군을 이끄는 기디온 후작이 ‘사관 대표 문장관’을 불러 확인을 한 적이 있었다.
― 아니, 율리엔 님이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가 왜 중요하다는 말인가?
― 율리엔 님이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 그쪽이 왜?
― 율리엔 님은 중요한 분이시니…….
― 율리엔 님이 쓰다 버린 물건들은 왜 가져가는 건데?
―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보호를 위해 저희가 앞장서기로……
― 그럼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 넘겼는지는 왜 써?
― 그거야 율리엔 님의 ‘멋짐’을 기록하기 위해…….
― …….
― …….
이쯤 되자 서로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사관들은 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도대체 저런 게 전쟁 기록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당히 수상했지만, 기디온 후작으로서는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하, 진짜 그 클로드란 놈 때문에…….’
자칭타칭 루타니아군의 ‘이인자’가 시킨 일이니 자신의 선에서 막기는 껄끄러웠다.
게다가 별로 중요한 정보도 아니었다. 정말 그냥 율리엔에 대한 칭찬과 이야기만 잔뜩 쓰여 있었으니까.
사실 율리엔 본인은 관심이 없지만 그의 인기는 요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버림받은 왕자라는 신분과 서사,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몸짓, 신이 빚은 조각과도 같은 외모, 신비로운 분위기.
거기에 지금까지 보여 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력.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도 열광했다. 한 번이라도 율리엔을 보는 것이 소원인 자들도 많았다.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세상은 지금 율리엔과 지셀, 이 두 사람으로 인해 격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서 클로드는 다시 한번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 알지? 우리 이미 한번 해 봤잖아. 이건 돈이 된다고.
율리엔의 초상화와 개인 정보, 사용했던 물건들은 클로드의 손을 거쳐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런 짓을 하는데도 전쟁 중이라 아무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지셀에게 한번 걸려 실패한 클로드가, 구원교와 혁명단의 조직 구도를 참고해 더 은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엔은 그렇게 자칭 사관들을 이끌고 계속 진군했다.
루타니아군처럼 메테오 작전을 쓸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은 아니지만, 그의 말도 안 되는 무력 덕분에 다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쏴라!”
콰앙! 콰앙! 콰앙!
기디온 후작이 명령을 내리자 연합군이 투석기로 연신 돌을 날려 댔다.
하지만 이곳의 투석기 양으로는 요새를 완전히 허물어뜨릴 수가 없다. 그저 성벽의 병사들을 공격하고 견제할 뿐이었다.
그래도 튜리안군 쪽이 더 유리했다. 마법사가 부족한 아트로데군은 마법 공격도 막을 수가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투석 공격과 마법 공격에 요새의 병력이 상당한 피해를 보았지만, 아트로데군은 마법 봉쇄를 포기하고 열심히 반격했다.
시간을 좀 더 들이면 분명 튜리안군은 큰 피해 없이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력의 차이가 컸다.
하지만 율리엔은 그렇게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시간을 들인다고 피해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 가겠다.”
적당히 성벽의 병력이 줄어들자 율리엔이 홀로 뛰쳐나갔다. 동시에 그의 뒤로 완전한 무장을 갖춘 기사들이 따라갔다.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는 걸 보고 요새 지휘관이 외쳤다.
“저놈들을 죽여!”
파아아앗!
성벽 위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요새 위의 병사들은 곧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저, 저게 뭐야?”
탕! 타탕! 탕!
뒤따라오는 기사들은 방패를 들며 화살을 막거나 튕겨 내었다. 갑옷을 믿고 몸으로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거야 전쟁에서 흔히 보이는 광경이니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선두에 선 자는…….
툭, 투둑, 툭.
날아가던 화살이 갑자기 방향을 틀며 땅에 박혔다. 선두에 선 자는 그냥 계속 달리기만 할 뿐이었는데도.
보통 초인들은 강력한 힘으로 화살을 없애거나 튕겨 낸다. 충격을 받으면 적은 양이라도 마나가 소모되니 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달려오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화살이 알아서 그를 피해 갔다.
“뭐, 뭐야! 저게 뭐야!”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요의 병력이 모두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어느새 공격도 멈추고, 달려오는 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충격적인 상황에 넋이 나가 버린 것이었다.
요새의 앞까지 다가온 율리엔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했다. 그가 상당한 기운을 썼다는 증거였다.
율리엔은 그대로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각!
쿠르르릉!
요새의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