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6)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56화(56/269)
56화 싫으면 말고요. (3)
마탑주와 다섯 장로는 허겁지겁 지셀을 만나러 내려왔다. 평소라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미동도 안 했을 테지만, 지금은 사정이 급했다.
그러나 휴베르트는 막상 로비로 내려온 뒤에는 급한 티를 내지 않고, 느긋하게 지셀에게 다가섰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마탑주가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며 지셀에게 말했다.
“자네가 룬스톤을 판매하러 온 사람인가? 나는 적염의 마탑주 휴베르트라고 하네. 6서클 마법사지.”
6서클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든 백작급, 또는 그 이상 직위의 고위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거기다 적염의 마탑주이기까지 하니, 그 위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셀 또한 그의 하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지셀 페르디움이라고 합니다. 룬스톤을 판매하러 왔습니다.”
“크흠, 그래. 그러면…….”
휴베르트는 말을 이으며 지셀의 일행들을 훑어보다 무심코 입을 닫았다.
‘……뭐지? 산적들인가? 사기 치러 왔나?’
북쪽에 페르디움이라는 가난한 영지가 있다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한 영지 출신이라고 해도, 지셀 일행은 전혀 귀족 수행단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적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거칠고 흉악하게 생긴 놈들만 가득했다.
‘귀족 맞아? 도대체 이 새끼들은 뭐지?’
특히 키가 큰 붉은 머리 놈은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서서 시건방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우자는 건가?’
이런 하찮은 도발을 생전 처음 경험해 본 휴베르트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는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나머지 놈들은 행색이며 태도가 죄다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품위 없는 놈들을 마탑에 들인 건 적염의 마탑 역사상 처음이었다.
휴베르트는 다시 지셀을 뜯어보았다. 그나마 얼굴도 멀끔하니 잘생겼고, 제법 총기도 있어 보이는 게 일행 중에 제일 괜찮기는 했다.
하지만 한 영지의 대공자라기에는 옷차림도 꾀죄죄하고, 저런 천박한 자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휴베르트는 옆에 있는 장로에게 살짝 귓속말로 물었다.
“근처에 새로 결성된 산적단이 있습니까?”
“글쎄요……. 이 근처에는 없을 텐데요.”
“그렇죠? 우리가 다 쓸어 버렸잖아요.”
“네, 싹 정리했습죠.”
마탑주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
‘그럼 저놈들은 대체 어디서……. 진짜 페르디움에서 온 놈들인가?’
휴베르트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크흠흠, 페르디움 대공자라고? 그런데 영 일행들 모습이……. 페르디움에서는 병사들 복장이 이런가? 그 동네는 이런 게 유행이야?”
“아닙니다. 이들은 저와 함께하는 용병들입니다.”
“아……. 산적이 아니라 용병이었어?”
그제야 휴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가 적은 가난한 영지에서는 영주나 그 직계가 외유할 때만 잠깐 용병을 고용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 어쨌든 진홍의 마탑이 아니라 이곳으로 오다니 참으로 잘 생각했네.”
겉으로는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휴베르트는 속으로 짜증을 내리눌렀다.
예전 같았으면 마탑주인 자신이 이렇게 직접 거래에 나서기는커녕, 얼굴을 비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부에서 가장 잘나가는 마탑의 탑주가 한낱 장사치와 실랑이하는 건 품위가 떨어지니까.
‘내가 직접 나선 값은 톡톡히 받아 내고 말겠다.’
마탑주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양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을 좀 하겠네.”
그는 수레에 쌓인 룬스톤을 대충 훑어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 난 또 엄청 많다길래 보러 왔지. 어휴, 괜히 왔네.”
사실 심장이 떨릴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장로들은 환호하려다가 휴베르트를 보고 잽싸게 근엄한 척 표정을 관리했다.
“크흐흠, 정말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요. 품질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고…….”
“그래도 여기까지 온 성의가 있으니 전부 사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젊은 친구가 여기 아니면 이걸 다 어디서 팔겠습니까? 흠흠.”
“아무렴요. 우리 아니면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할 테지요. 세상이 참 무서워요. 허허허.”
한마디씩 주고받는 장로들을 보고 용병들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띠었다.
카오르는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연기들 진짜 존나 못하네.”
휴베르트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모두 얼굴이 벌게진 채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장로는 호흡이 가쁜지 연신 숨을 내쉬며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런 꼴을 보고도 연기인 줄 모르는 게 이상했다.
용병들도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야, 마탑도 별거 없다. 딱 봐도 가격 후려치려고 쇼하고 있네.”
“그러니까 말이야. 원래 이런 데는 이것저것 안 따지고 시원시원하게 거래해 주지 않나?”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품위 있는 척하더니, 쟤들도 그냥 멋만 내는 거라니까.”
별별 사람을 다 보고 살아온 용병들의 눈에 마법사들의 어설픈 연기는 뻔하다 못해 그 속내가 투명하게 비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휴베르트는 용병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흥분해 붉어진 얼굴을 식히려는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따로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눠 볼까? 따라오게나.”
지셀과 벨린다, 길리언이 마법사들을 따라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맨 뒤에서 쫓아가던 카오르는 마법진에 올라서기 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눈깔들 똑바로 뜨고 있어. 저거 하나라도 없어지면 훔쳐 간 놈, 내버려 둔 놈 다 대가리를 깨 버릴 테니까.”
마법사들은 천박한 표현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용병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오르까지 올라선 뒤, 마법진이 몇 번 깜빡이자 지셀 일행은 탑 최상층으로 이동되었다.
이 마법진을 유지하는 데에도 룬스톤이 쓰인다. 룬스톤의 쓰임새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셀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마법사들의 뒤를 따랐다.
‘저만한 양이면 눈이 돌아갈 만도 하지. 특히 당신들은.’
전생에 지셀이 얻었던 자료 중에는 적염의 마탑에 관한 자료도 있었다.
적염의 마탑은 진홍의 마탑에 밀려 북부에서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영향력도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 마탑주는 후에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상 누구보다 이성적이라는 마법사가 화병으로 죽은 것이다.
비록 아직은 전생만큼 상황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는 더욱더 안 좋아질 거고.
‘더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지금보다 더 늦게 왔다면 마탑주는 지셀에게 무릎을 꿇는 것도 모자라 머리까지 조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셀도 지금 급박한 상황이라 더 늦게 찾아올 수는 없었다.
‘그래도 속옷까지 모두 벗어 줄 각오는 해야 할 거다. 후후후.’
도착한 곳에는 접견실이 그랬듯 화려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다과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지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세 사람은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휴베르트와 다섯 장로가 지셀 앞에 주르륵 앉았다.
“소개하지. 우리 마탑의 장로들일세. 모두 5서클 마법사로 적염의 마탑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이라 할 수 있지.”
휴베르트의 말이 끝나자 장로들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 자기 이름을 말했다.
마치 ‘우리 누군지 알지?’라는 듯한 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지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장로들은 조금 불편한 듯 얼굴을 굳혔다.
보통 이런 애송이들은 자신들을 만나면 허리까지 굽히며 아부를 떨곤 했는데, 지셀은 전혀 그럴 낌새가 없었다.
장로 중 하나가 비웃듯 물었다.
“페르디움 영지라면 북쪽의 가난한 영지 아닌가? 그런 곳에서 룬스톤을 어떻게 구해 온 거지? 거기 밥도 제대로 못 먹지 않나?”
무시하는 듯한 말에 벨린다는 바로 인상을 구겼지만, 지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모두 5서클이라니 대단하시군요.”
보통 영주들이 전속 계약을 맺는 마법사가 4서클이다.
장로 다섯 명이 모두 5서클이라면 그만큼 강한 마탑이라는 뜻이다.
휴베르트와 장로들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짓다가, 지셀이 말을 잇자 얼굴을 왈칵 일그러트렸다.
“역시 북부에서 두 번째라 불릴 만한 저력이 있는 곳입니다. 하하하.”
‘으으, 이 애송이 새끼가.’
자존심을 긁는 발언에 휴베르트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셀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따져 봐야 마탑의 위신만 깎일 게 뻔히 보였다. 휴베르트는 타는 속을 식히려고 깊이 심호흡했다.
“크흠, 다른 영지에서 와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건 그냥 소문일 뿐이야. 우리가 여전히 북부 제일의 마탑일세.”
“아, 그렇습니까? 뭐, 그렇다고 치지요.”
뒤에서 카오르가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벨린다는 소리 없이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눈매가 잔뜩 휘어 웃는 티가 빤히 났다.
오직 길리언만이 처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휴베르트와 장로들이 예의 없는 두 사람을 노려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며 뭐 어쩔 거냐는 듯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예의도 없는 꼴통들 같으니라고.’
마법사들은 역시 가난하고 못 배운 놈들이라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수준 안 맞는 놈들과 괜히 말을 더 섞어 봤자 좋을 건 없었다.
“그래,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얼마에 팔 생각인가? 참고로 난 바가지를 정말 싫어해. 날 무시하는 거잖나.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소문은 들어 봤겠지?”
휴베르트는 일단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일부러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셀이 가져온 룬스톤을 모두 살 생각이었다.
이대로 계속 룬스톤을 구하지 못하면 영원히 진홍의 마탑을 이길 수 없었다.
‘반드시 모두 확보해야 해. 진홍의 마탑에 조금이라도 굴러 들어가는 꼴은 절대 못 본다.’
그 정도 룬스톤이면 마법 도구를 만들어 팔아도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자신을 비롯해 마탑에 속한 마법사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저 룬스톤은 전부 우리 거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룬스톤을 확보하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욕망에 이글거리는 마법사들의 눈빛을 보며 지셀은 피식 웃었다.
“시세의 두 배는 받아야겠습니다.”
“뭐?”
마탑주가 인상을 구겼다. 바가지를 싫어한다고 말했는데도 감히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다니.
“젊은 귀족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내가 방금 바가지를 매우 싫어한다고 말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휴베르트가 으르렁거리자 다른 장로들도 화를 냈다.
“감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페르디움 따위가 적염의 마탑을 무시하는 거냐!”
마법사들이 인상을 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셀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두 배 반.”
마법사들은 잠깐 어안이 벙벙한 채 지셀을 보다가 곧 크게 흥분해서 외쳤다.
“이놈! 그따위 하찮은 술수가 통할 것 같으냐!”
“어찌 이런 망발을……!”
“정녕 끝을 봐야겠는가!”
마법사들은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지셀은 그들을 쓱 스쳐보고는 다시 말했다.
“세 배.”
“…….”
그쯤 되니 마법사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왠지 입을 여는 순간 지셀이 값을 또 올릴 거 같았다.
탑주와 장로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무시무시한 눈으로 지셀을 노려만 보고 있었다.
지셀을 수행하는 세 사람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룬스톤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시세의 세 배나 주고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돈을 주고 살 바에는 그냥 상단을 찾아가 사도 될 것이다.
물건을 팔겠다고 며칠이나 걸려 이곳까지 왔는데, 팔 생각이 없는 듯 괴상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벨린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또 도련님의 나쁜 버릇이 도진 건가? 마법사들이 오만해서 삐진 걸지도.’
그녀는 옆에 선 길리언과 카오르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지셀을 만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주인의 뜻을 따르겠다는 목석같은 남자와, 재미있을 거 같다고 낄낄대는 망나니를 보며 벨린다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정말, 도련님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벨린다가 고민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셀은 잠시 기다리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휴베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일어나…….”
“거래할 생각이 없으신 거 같아서요. 얼른 진홍의 마탑으로 가 봐야죠. 요새 그곳이 돈도 잘 벌고 룬스톤 가격도 잘 쳐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지셀이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굴이 창백해진 휴베르트가 다급히 지셀을 붙잡았다.
“에헤이!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내가 바가지를 싫어한다고 했지, 바가지를 안 쓰겠다고 한 건 아니잖아?”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잽싸게 문을 막아섰다.
지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뜯어보다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다면야. 좀 더 얘기해 볼까요?”
지셀이 우아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휴베르트는 표정이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그 옆에 있는 장로들도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몰랐다.
적염의 마탑이 처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벨린다는 그들이 쩔쩔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도련님이 하자는 대로 하는 거야? 늙은이들이 죄다 치매가 걸렸나?’
방 안에 지셀의 여유 만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그러면 세 배에 모두 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