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60)
560 – 싸움은 이제부터야. (2)
560화 싸움은 이제부터야. (2)
초인 없이 초인을 상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술은 바로 인해전술이다.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마나를 과도하게 사용해 힘이 빠지면 병사들에게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의 지휘관도 그 방식으로 초인과 싸울 준비를 해 두었다. 성문이 무너질 걸 대비해 각종 장애물과 병사들을 배치한 상태였다.
“온다! 버텨라!”
문 뒤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무기를 치켜들었다.
차가운 표정의 남자가 그들 앞에 홀로 서 있었다.
혼자 온 것이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성문을 단숨에 가를 정도로 강한 자였다. 목숨을 걸고 막아야 했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도 어떻게든 율리엔을 막아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율리엔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굳이 앞을 뚫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편하게 문을 미리 열어 놨을 뿐이었다. 끝까지 적들이 저항할 것에 대비해서 말이다.
파앗!
율리엔이 갑자기 요새의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 뒤에 있던 병력은 열린 문을 지켜야 하기에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위에 있던 병력은 여전히 얼이 빠진 상황이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타악.
그림 같은 모습으로 요새 위에 착지한 율리엔이 바로 검을 휘둘렀다.
스각.
“으아아악!”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른 병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쳐라! 어서 저놈을 죽여!”
요새 지휘관이 멀리서 악을 썼다.
초인이 홀로 올라왔다. 어떻게든 힘을 빼고 피해를 줘야 했다. 이쪽도 피해가 크겠지만 전 병력이 달라붙으면 못 잡을 것도 없었다.
초인 혼자서 요새 하나를 점령하는 짓이 가능했다면 초인들이 혼자서 전쟁을 끝내고 다녔을 것이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율리엔에게 달려들었고 지휘관을 호위하던 기사들마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지금 말고는 홀로 있는 초인을 잡을 기회가 없다는 걸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율리엔은 개떼처럼 몰려오는 병사들을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스각.
큰 원을 그리며 달려들던 병사들의 목이 동시에 떨어졌다.
가장 앞 열에 선 병사들의 목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율리엔이 한 번 더 움직였다.
스각.
후두둑.
병사들의 목이 다시 떨어졌다. 그제야 달려들던 이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어? 어?”
“지금 무슨 일이…….”
“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전장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들이 생각하고 봐 왔던 초인들은 전쟁 병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강력한 힘으로 전장을 파괴하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각오했던 일이었다.
율리엔이 차라리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병사들이 당황하진 않았을 것이다.
몸이 부서지고 터져 나가도 일단은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전쟁의 광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건 이상하다.
거리에 닿지도 않고 어떠한 폭발조차 일지 않았다. 그저 검을 들고 휘둘렀을 뿐인데 멀리서 달려들던 이들이 모두 목이 떨어진 것이다.
공포.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아트로데군은 모두 얼어붙었다.
“이, 이런 건 못 이겨.”
“다가갈 수가 없잖아.”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가뜩이나 사기도 낮고 경험도 별로 없는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격’으로는 율리엔의 검을 조금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때, 율리엔을 뒤따른 기사들이 갈고리를 걸고 요새 위로 올라왔다.
“율리엔 님!”
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잽싸게 다가와 율리엔의 주변을 감쌌다.
그들은 튜리안군과 연합군의 기사들이었다. 수는 백여 명.
적지 않은 수였지만 이들만의 힘으로 요새의 모든 병력을 없애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율리엔과 함께라면 언제나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동시에 연합군을 이끄는 기디온 후작이 외쳤다.
“문이 열렸다! 어서 가자!”
“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두!
대기하고 있던 연합군의 기마병들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이들은 이제 문이 열린 곳을 공략할 것이다.
요새 위의 병력은 화살과 병기를 이용해 몰려오는 군대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율리엔이 성벽 위에 서 있으니 아무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지휘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죽여라! 어서 싸우란 말이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다가서지 못했다.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율리엔이 천천히 검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비켜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율리엔이었다. 그가 달리 구원자라는 이명을 얻은 게 아니었다.
될 수 있는 한 피해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서늘한 한마디에 요새의 전 병력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비록 초급이지만 이곳에도 기사의 맹세를 한 이들이 있다.
“공격을 하란 말이다!”
요새의 기사들이 크게 외치며 동시에 율리엔을 향해 뛰어들었다.
자신들을 희생해서라도 전의를 끌어올리려는 의도였다.
적이지만 훌륭한 자세였다. 그들은 기사의 본분에 충실했다.
“…….”
율리엔은 그런 기사들에게 조금 예의를 차려 주기로 했다. 평소보다 힘을 더 써야 함에도 말이다.
스각.
파아아아악!
그에게 덤벼들던 기사들의 심장 부근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가슴과 심장이 동시에 베인 것이다.
쿵! 쿵! 쿠웅!
기사들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목이 떨어지지 않아 시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훌륭한 적에게 보내는 율리엔의 예우였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겁에 질려 더 뒤로 물러났다. 다가가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타앗!
율리엔은 더 말하지 않고 그냥 뛰어올랐다.
그는 병사들의 어깨와 머리를 밟으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요새 지휘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율리엔을 보며 검을 뽑았다.
스각!
율리엔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요새 지휘관은 자신이 뽑은 검을 휘두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몸이 사선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쿠웅!
철컥.
잠시 시체를 내려다본 율리엔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의 전투는 여기까지였다.
율리엔을 뒤따라 올라왔던 기사들이 크게 외쳤다.
“적 지휘관이 죽었다!”
“지휘관이 죽었다!”
“항복해라!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한 기사들이 1만이 넘는 병사들에게 항복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트로데군 병사들은 자신을 직접 지휘하는 하급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하급 지휘관들도 어쩔 줄 몰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저벅, 저벅.
율리엔이 몸을 돌려 걷자, 요새의 병력은 알아서 비켜 주었다. 아무도 그의 옷깃 하나조차 건들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
연합군의 본대가 성문 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대기했다.
만약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한다면 이제 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끝까지 버텼던 요새들은 전부 그렇게 됐으니까.
지금 율리엔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챙그렁.
가장 가까이 있던 하급 지휘관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다들 앞다투어 무기를 던지기 바빴다.
사실 이들도 율리엔의 힘을 보고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싸우려면 싸울 수는 있겠지만 먼저 죽기는 싫었으니까.
“모두 엎드려라!”
기디온 후작의 외침에 요새의 전 병력이 엎드렸다.
“와아아아아!”
“또 이겼다!”
“역시 율리엔 님이다!”
연합군이 무기를 들고 크게 외쳤다. 이번에도 율리엔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빠르게 요새를 점령한 것이다.
이러니 다들 자신감이 넘치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기디온 후작이 다가와 율리엔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
율리엔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제 전장 정리가 끝나는 대로 다음 요새를 향해 이동할 것이다.
문득 든 생각에 율리엔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장 험한 경로로 이동 중인 루타니아군이 진군 속도는 가장 빠르다고 한다.
‘역시…….’
압도적인 전력 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폄하할 수는 없었다. 그 전력은 지셀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키워 낸 것이니까.
펜리스 대공 연대기(개정판 – 클로드 저)를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못지않은 강한 무력,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 영지를 거대하게 키워 낸 행정 능력까지.
생각할수록 정말 대단한 친구였다. 자신도 그렇게는 못 할 거 같았다.
다시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친구라…….’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함께한다는 것. 율리엔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전쟁에 참여하고서 그는 점점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홀로 판단하고 싸워야 했던 이전과 달리, 누군가와 그 부담을 나눌 수 있다. 그건 정말 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지독하리만큼 외로워 감정까지 메말라 버렸던 그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 준 친구.
‘지셀.’
이런 것조차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맑은 하늘을 보며 상념에 빠진 율리엔의 주변으로, 클로드의 수하들이 다가왔다.
스스슥.
사사삭.
뭔가 바퀴벌레처럼 다가온 그들은 열심히 율리엔을, 이 전투에서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리고 율리엔은.
“…….”
그냥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와아아아!”
루타니아군은 아트로데 왕성을 점령하고 크게 환호했다.
드디어 모든 성과 요새를 뚫고 점령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직 남은 지역에서 싸우는 연합군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웰 왕국으로 향하던 모든 보급을 총괄하는 수도가 점령됐으니, 이제 아트로데 왕국은 끝났다고 해도 될 것이었다.
지셀이 당당한 걸음으로 아트로데 왕성으로 들어갔다. 각자 맡은 지역을 정리한 연합군들이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자자, 빨리 움직입시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요.”
클로드와 행정관들이 왕성 곳곳을 뒤지며 서류를 챙겼다. 이들은 이제 남은 재화들을 거둬 연합군을 위해 쓸 것이다.
물론 클로드는 자신이 뒤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후훗, 두고 보자. 내가 왕국 최고의 부자가 될 거야.’
어차피 노예 신분이라 저번 논공 행사 때 작위도 못 받았다. 이럴 바에는 돈이라도 잔뜩 벌어서 돈으로 다 찍어 누를 셈이었다.
이전보다 더 은밀해진 수법에 이번에는 웬디마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왕성을 정리하는 중에 벨린다가 지셀에게 물었다.
“라인스터 공작은 안 보이네요? 아니, 이제 아트로데 국왕인가. 아무튼 도망갔나 봐요?”
“아니, 애초부터 여기에 없었을 거야.”
“그래요?”
“어차피 그놈들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역시 그 성물이라는 건가요?”
“그래. 우리가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기껏 얻은 왕국까지 포기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셀이 측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싸움은 이제부터야. 진짜 강한 놈들은 그림웰 왕국을 점령하러 갔으니까.”
대륙 7강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던, 음습하기 이를 데 없는 혁명단장 래너드.
뛰어난 전략가인 비펜벨트 백작과 칼문드 백작.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구원교의 고위 사제들과 가트로스까지.
적의 편에는 아직도 수많은 초인과 명장들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연합군의 전력이 더 강하다 해도 방심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는 한 번의 실수로도 판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루타니아군이 도착하고 얼마 뒤, 율리엔이 이끄는 연합군이 도착했다.
지셀은 율리엔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어, 별문제 없었지?”
“그래.”
언제나처럼 담백하게 대답한 율리엔이었지만 지셀은 싱글벙글 웃었다.
전생의 대륙제일검과 함께하니 지셀로서도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엔의 무력은 정말로 큰 도움이 됐으니까.
생각보다 빨리 율리엔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율리엔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올 줄은 지셀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율리엔을 처음 마주하는 놈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정보가 들어갔다 해도 율리엔의 저력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게 이 전쟁의 강력한 변수가 될 거야.’
물론 그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지셀은 자신의 부담을 함께 짊어지는 율리엔과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홀로 용병들만 이끌고 싸웠던 전생에는 정말 힘들었었으니까.
‘꿈에 나왔다고는 절대 말 안 해야지.’
말해 보면 저 무표정한 얼굴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긴 했지만, 순간의 재미를 위해 미친놈들의 타깃이 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다른 연합군들도 속속 도착했다.
적의 저항이 거세 조금 늦어진 군단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큰 피해를 본 군단은 없었다.
연합군이 다시 모이자 지셀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전군, 그림웰 왕국으로 진군한다.”
이제 남은 놈들을 확실하게 짓밟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