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63)
563 – 난 언제나 네 판단을 믿는다. (3)
563화 난 언제나 네 판단을 믿는다. (3)
군단을 재편한 연합군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이들은 각 거점을 차지하고 방어에 전념할 것이다.
거점을 차지하고 있으면 상대가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더라도 후방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셀 또한 수많은 정찰병과 다크를 사방으로 보냈다.
“그놈들하고 숨바꼭질을 하게 될 줄이야.”
이제부터는 서로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하는 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거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쪽이 잡으러 다녀야 하는 점은 다소 불리한 점이었다.
루타니아군은 클로드와 테넌트가 이끄는 두 개의 군단으로 나뉘었다.
클로드가 이끄는 군대가 가장 중요한 보급로를 지킬 것이고, 테넌트는 주요 거점 하나를 지킬 것이다.
남은 건 지셀과 율리엔의 부대였다. 이들은 적의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바로 달려갈 것이다.
출정 준비를 마친 율리엔이 물었다.
“……그 추측, 얼마나 확신하지?”
“꽤 많이. 저놈들에게 ‘숨겨 둔 칼’이 있다면…… 꺼내기에는 지금 가장 적기거든.”
“……그런가.”
“부대를 나누고 기동전을 시작한 이상, 저놈들의 연락망은 상당히 헐거워질 수밖에 없어.”
아트로데군은 아무리 바쁘게 전령을 보내도, 가까이 있는 군단이 아니라면 서로 간의 연락이 힘들 수밖에 없다.
아마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미리 전략을 수립해 두었을 테지만, 각 부대의 고리는 거의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단, 그 문제를 완화할 방법이 하나 있다.
“중간에 연락을 대신해 주고 여러 정보를 건네주는 놈이 있으면 한결 수월해지지.”
“…….”
율리엔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율리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배신자가 있다면 피해를 보겠군.”
“그래, 그러니 단순한 추측이기를 바라야지.”
“…….”
“뭐,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놨으니 모두가 당하지는 않을 거야. 단지 의심 가는 놈들이 꽤 있어서 전부 처리할 수는 없었을 뿐이지.”
“미리 밝히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흐음.”
그 말에 지셀이 팔짱을 끼고 잠깐 고민을 했다.
지셀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지셀도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저 경험에 의한 직감, 그리고 전생의 정보와 현생의 정보를 토대로 의심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자신이 회귀자라고 밝힐 수도 없으니, 믿음을 줄 수도 없었다.
“증거가 없어. 그냥 감일 뿐이야. 딱 한 놈만 짚을 수도 없었고.”
“…….”
“만약 증거도 없이 의심 가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적과 싸우기도 전에 분열되겠지. 그리고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가 배신자를 잡는 동시에 적들은 전략을 바꿀 거야.”
아무리 지셀이라 해도 확신과 증거 없이 아군을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
또한 비펜벨트 백작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차라리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며 확실하게 적을 잡는 게 나았다.
율리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지 않은 문제군.”
지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부에 혼란이 일어나면 결국 전쟁은 더 길어질 것이다.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증거는 안타깝게도, 지금같이 급한 상황에서는 아군의 피해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지셀과 율리엔은 단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 왔던 아군 중에 배신자가 있다면, 모두 큰 충격을 받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고작 사흘 뒤,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가져온 소식은 그 바람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기, 기습당했습니다! 적이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아군은 모두 전장을 이탈했습니다!”
한 개의 군단이 거점으로 이동하는 중에 괴멸당했다. 그리고 하루 차이를 두고 또 다른 전령이 도착했다.
“기습입니다! 적의 매복에 당했습니다! 현재 다들 흩어져 도망친 상태입니다!”
또 하나의 군단이 당했다. 의심하고 있던 세 개의 군단 중 두 개가 당한 것이다.
의심하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출발을 명했던 군단들이었다.
‘매복을 하고 있었다고.’
적들은 이쪽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범인이었군.’
결국 범인은 한 명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리함을 느끼자마자 죄다 도망쳐 흩어졌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리하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모두에게 미리 언질을 준 상태였으니까.
지셀은 쓴웃음을 지었다. 의심하고 대비해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였다.
‘비펜벨트 백작.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야.’
대군을 앞에 두고 군대를 나누는 위험을 감수했다. 그렇게 판을 깔아 놓고 어쩔 수 없이 이쪽이 움직이게 했다.
그 뒤에 오래전부터 준비한 칼까지 꺼내 찌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수였다.
‘하지만 수작질도 여기까지다.’
지셀이 서늘한 표정으로 이를 앙다물었다.
그는 범인을 특정했고, 나머지 군단에는 그에 대한 대비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더 이상 그딴 짓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 확실하게 놈들을 잡아 죽일 차례였다.
“…….”
율리엔은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무장을 챙기고 말 위에 올라탔을 뿐이다.
이제 적의 위치가 드러났으니 추격을 시작할 때였다.
율리엔이 출발하기 전, 지셀은 다크를 소환했다. 까마귀로 변한 다크가 율리엔의 어깨에 올라갔다.
“엣헴, 이 몸은 다크 28호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중요한 작전을 진행하자고.”
“……그래.”
지셀도 웃으며 율리엔을 배웅했다.
“조심하라고, 친구. 남은 놈들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그래, 너도.”
언제나처럼 담백한 인사를 건넨 율리엔이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의 등을 바라보던 지셀이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지셀은 언제나 확신에 차서 움직였다. 누구도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결정은 그의 몫이었다.
회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율리엔이라면,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았을까?
그는 전생에서 인류 연합을 이끌던 뛰어난 지휘관이었으니까.
지셀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율리엔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언제나 네 판단을 믿는다.”
그 말에 지셀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자신의 의견에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율리엔밖에 없었다. 역시 참 든든한(?) 놈이다.
다크는 율리엔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떠들어 댔다.
“율리엔, 나는 주인 판단 안 믿어. 왜냐하면 주인은 성격이 더러워서 그냥 자기 성질대로 하는 거거든. 성질부리는 데 판단이 필요할까? 난 그렇지 않다고 봐요.”
“…….”
“너한테만 하는 얘기인데 주인이랑 있는 것보다 너랑 있는 게 더 편해. 왜냐하면 주인은 성질이 너무 더럽거든. 그러니까 며칠 전에…….”
“…….”
율리엔은 단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그냥 말을 몰았다.
그가 탄 말이 점점 빨라졌다. 연합군의 정예 기마병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그들은 질풍과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크도 신이 났는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끼얏호우―!”
저쪽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아니고서야, 저들과 마주치는 적들은 그대로 증발해 버릴 테니까.
율리엔이 떠나자 선임 기사인 루카스가 건들거리며 물었다.
“우리는 출발 안 합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간다. 기다리는 게 있거든.”
적들이 있다고 파악된 곳은 두 곳. 하지만 다른 군단도 곧 습격을 받을 테니 목표는 금방 늘어날 것이다.
지셀은 그렇게 이틀 정도를 더 대기했다. 준비하던 비장의 수가 거의 다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었다.
덜컹, 덜컹, 덜컹.
거대한 감옥과도 같은 마차들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잡혀서 일하던 마법사와 드워프들의 ‘이동 공방’이었다.
눈두덩 아래 시커멓게 그늘을 매단 채 마차에서 내린 갈바릭이 다른 마차들의 문을 두들겨 열었다.
“자, 다 왔어! 내려! 어이, 병사들은 ‘신무기’들 내리라고!”
기동군 병사들이 마차와 함께 온 수레에서 바쁘게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갈바니움 창대에 룬스톤을 결합한 마법 무기였다.
“이야, 이게 새로운 무기구나?”
“정말 여기서 마법이 나간다는 거지?”
“우리는 마나도 없는데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기동군 병사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무기를 훑어보았다.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전장에서 기습적인 일격을 가할 정도는 된다고 들었다.
병사들이 열심히 창을 내리는 동안에도 갈바릭은 마차들을 두들겼다.
“야야야! 졸지 말고 빨리 내려! 다 왔다고!”
“끄어어어어…….”
마차에서 알포이가 좀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내렸다.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연합군에는 정말 많은 마법사가 있었다. 하지만 루타니아의 마법사들은 이렇게 잡혀서 교대로 일을 해야 했다.
전투에도 참여하고 작업도 참여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덜컥.
그리고 한 마차에서, 훗날 대륙 7강이자 일인 군단, 영원의 마도사, 위대한 마법학자 등등으로 불리는 자가 내렸다.
그는 내리자마자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아, 뭐야. 현기증 나. 집에 가고 싶어.”
제롬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갇힌 채 매일 같은 작업만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그 긴 심상 수련에서도 이런 고통은 느낀 적이 없었다.
“아, 햇빛 싫어.”
마차 안에만 있었더니 햇빛만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어쨌든 제롬은 성실하게 일을 했다. 어차피 달리 마차 안에서 할 것도 없었다.
그의 값진 노동 덕분에 지셀은 기동군이 쓸 새로운 무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셀이 그런 제롬을 무척이나 반갑게 맞았다.
“이야! 제롬! 정말 고생 많이 했어!”
“…….”
제롬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삐진 거 같았다.
지셀은 개의치 않고 제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원래 전쟁 때는 다 고생하는 거야. 대신 안 싸우고 편하지 않았어?”
“……싸우는 게 나을 거 같아.”
제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일해 온 펜리스의 마법사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왜 알포이의 마력 운용 능력이 그렇게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누구도 이렇게 반복 학습을 하면 몸이 절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싸우는 게 낫다는 말에 지셀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오자마자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네가 좀 출동해야 할 거 같아.”
“어디를?”
지셀이 제롬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얘기를 들은 제롬이 깜짝 놀랐다.
“뭐? 진짜?”
“그래. 지금 중요한 싸움이라 네 힘이 필요해. 빨리 사람들을 구하려면 말이지.”
“끄응, 알겠어. 바로 출발해야겠네.”
힘이 있는 만큼 누군가를 도와주기 좋아하는 제롬이다. 피곤하긴 했지만, 상황이 급박한 만큼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는 바로 알포이에게 다가갔다. 둘은 그사이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알포이.”
“왜. 아니, 말 걸지 마. 나 피곤해.”
“내가 지금 조금 급해서 말인데. 너의 ‘순수한’ 힘이 필요해.”
“뭐라는 거야? 내 머릿속이 얼마나 타락했는데. 내가 얼마나 지저분한 놈인지 보여 줘?”
펜리스에서 가장 순수함과 거리가 먼 사람을 꼽는다면, 알포이는 한 손에 꼽힐 정도다.
하지만 제롬이 필요한 건 알포이의 더러운 머릿속 생각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정순한 마력이었다.
덥석.
제롬이 알포이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미안. 나중에 갚을게.”
“어? 뭐야? 안 놔? 꺄야아아아아악!”
알포이는 제롬에게 마력을 쪽 빨리고 기절해 버렸다. 의지력이 약한 만큼 그 누구보다 마력을 뺏기기가 쉬웠다.
제롬이 현재 마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급하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알포이의 마력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제롬이 지셀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나 지금 간다.”
“그래, 나중에 보자. 조심하고. 너 또 혼자 나대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말라고.”
번쩍!
순간 섬광이 번뜩이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제롬의 몸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셀도 흑왕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움직이자. 신무기 테스트는 가면서 하자고.”
바네사와 몇몇 마법사들도 말에 올랐다. 이들은 기동군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갈바릭과 함께 루타니아 본대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알포이는 다른 마법사의 등에 업혀 있었다.
히이이잉!
흑왕이 길게 울부짖으며 달려 나갔다. 기동군도 그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두두!
지셀과 기동군은 거칠게 질주를 시작했다.
어느새 지셀의 표정은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적들의 전략과 그에 따른 과감한 행동은 분명 훌륭했다.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상대로 기동전을 선택한 건 너무나도 무모한 수였다.
이제 이 대륙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 똑똑하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