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64)
564 – 지금 도망가면 살 수 있다. (1)
564화 지금 도망가면 살 수 있다. (1)
“흐흐흐흐…….”
구원교의 사제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웃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푸후! 이렇게 약할 줄이야. 너무 쉽지 않은가!”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사제의 이름은 플라쿠스. 루타니아의 전 국왕, 베르헴을 옆에서 보좌하며 치료했던 사제다.
그는 지셀이 수도를 점령할 때 바로 도망가 아트로데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속한 군단은 이번에 이동 중인 연합군의 군단 하나를 기습해 승리를 거두었다.
철컥, 철컥, 철컥.
플라쿠스의 곁으로 갑옷을 입은 5군단장, 폴레노 백작이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오오, 이번에는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일단 약속된 장소로 가 대기할 생각입니다. 정보를 받아 봐야지요. 저쪽에도 습격 소식이 들어갔을 테니,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이 정도면 정보가 새어 나갔음을 상대도 알 것이다. 당연히 배신자를 처단하고 작전을 새로 짤 테니, 이쪽도 다시 전략을 짜야 한다.
플라쿠스가 웃었다.
“크크큭, 그래 봐야 루타니아군만 아니면 어렵지 않은 놈들이지요.”
“맞습니다. 다만 루타니아군과 싸우기 전에 착실하게 수를 줄여 가야 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연합군이 다 당하면 루타니아군 혼자 뭘 하겠습니까?”
플라쿠스는 애써 루타니아군을 폄하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모든 군단에 내려진 최우선 명령은, 루타니아군과의 조우를 최대한 피하라는 것이었다.
연합군을 다 잡고 루타니아군을 고립시키는 게 이 전략의 최종 목표였다. 강력한 루타니아군과 먼저 붙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플라쿠스는 자신이 굴욕적으로 도망간 기억을 덮어쓰듯 루타니아군을 깎아내렸다.
“그놈들 대부분은 왕국군에서 편입된 놈들입니다. 오합지졸들이 운 좋게 살아남아서 펜리스 공작을 따른 것이지요. 그냥 숫자만 많은 놈들입니다. 어서 빨리 벌을 내려 주고 싶군요.”
“허허, 그렇습니까? 저희야 초인인 사제님이 계시니 큰 걱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폴레노 백작은 웃으면서 부드럽게 넘어가 주었다. 어차피 지금 루타니아군과 싸울 게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이들은 이미 루타니아군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들 그 주변을 피해 움직이고 있었다.
웃고 있는 폴레노 백작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다.
“조금 아쉽군요. 많이도 도망갔습니다.”
말을 건 자는 아트로데군 6군단의 군단장. 스로우크 백작이었다.
아트로데군은 일정 거리를 두고 두 개의 군단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연합군을 포위하고 기습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군단과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계 작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폴레노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생각보다 줏대가 없는 놈들이었습니다.”
승리는 거뒀지만 완전히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상대는 패색이 짙어지자 바로 절반 이상이 도망갔기 때문이다.
추격하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전략이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폴레노 백작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요.”
“어차피 루타니아군을 제외하면 별거 아닌 놈들입니다. 돼지같이 수만 많을 뿐이지요.”
단번에 괴멸시키지 못한 건 아쉽지만,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연합군의 전력과 사기를 깎아 내기만 해도 이번 작전은 성공할 것이다.
그들은 그럴만한 실력과 인내심을 갖추고 있었다.
폴레노 백작이 말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제 움직입시다. 적들도 정찰 범위를 넓힐 겁니다.”
“그럽시다. 다시 흩어져서 다음 작전을 준비해야지요. 보병들은 약속된 장소에 대기시키겠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트로데군이 군단을 여럿으로 나누었다지만, 한 개 군단이 약 2만에서 3만 정도로 나름대로 대군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들의 절반 이상이 보병이다 보니 빠르게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각 군단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건 5천에서 1만 정도 되는 기마병들이었다.
보병들은 전투 예상 지점에 함정을 파거나, 임시 방어선 등을 만들며 기마병을 지원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들에게 보병은 버리는 수였다. 진짜는 빠른 기동력과 초인들을 앞세운 기습이었다.
스로우크 백작도 말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제 인근 지역에서는 식량을 얻을 수 없습니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야 할 겁니다.”
이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건조 식량만 챙겨 왔다. 당연히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군대를 나눠 곳곳에서 약탈도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연합군의 시야와 정보를 교란하는 효과도 있었다.
폴레노 백작은 스로우크 백작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움직이십시오.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다른 군단에서도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아트로데군의 나머지 군단은, 지셀이 내어준 보급로를 점거하고 이동 중인 연합군의 군단을 노릴 계획이었다.
복잡하고 수행하기도 힘든 전략이었다. 하지만 아트로데군의 지휘관들은 그만한 역량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연합군의 속도가 느린 점도 아트로데군이 승리를 확신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두두두두두두!
아트로데군 5군단과 6군단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취합하여 다음 목표를 잡을 것이다.
아트로데군의 다른 군단들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합군의 군단 하나가 더 당한 상태였다.
연합군의 눈에는 이들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트로데군이 연합군의 시야와 정보를 교란해서이기도 하지만, 배신자에게 정보를 받아 미리 움직이며 함정을 판 덕이 컸다.
그리고 그 배신자는 숙영지의 천막에서 살짝 고민에 빠져 있었다.
“흐음…… 다시 다른 거점으로 이동하라니. 함정인가?”
펜리스 공작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정보가 새어 나간 거 같으니, 비밀리에 다른 군단과 연계하라는 명령이었다.
휘하 장수들과 기사들에게도 말하지 말고 군대를 움직이라고도 되어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아직 눈치를 못 챈 거 같기도 하고…….”
상세한 전략까지 쓰여 있었다. 추가 병력이 올 때까지 인근 군단과 거리를 좁혀서 서로 연계하는 방안이었다.
펜리스 공작과 율리엔도 적들을 추격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쓰여 있었다.
“아직 완전히 특정하지는 못한 모양이군.”
군단장만이 첩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급 지휘관이나 기사, 병사들도 첩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휘하 병력 일부가 첩자 노릇을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펜리스 공작도 누가 배신자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이런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좋아,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어.”
군단들이 연합하면 아트로데군이 치기 힘들어진다.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동 중인 지금이 기회였다.
그가 은밀하게 자신의 심복을 불러 이 사실을 전했다.
곧 정찰대를 빙자한 추가 병력이 숙영지를 벗어났다.
* * *
아트로데군 9군단장, 데프로든 백작이 어두운 숲속에서 한 기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다른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네, 두 개의 군단이 당해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루타니아 본대는?”
“그쪽은 변경이 없습니다. 원래 지키던 보급로와 거점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데프로든 백작이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이제 펜리스 공작과 튜리안의 왕자도 움직였고?”
“그렇습니다. 둘 다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당한 방면일 겁니다.”
“흐음, 그래. 그쪽은 5군단과 6군단, 7군단과 8군단이 있던 곳이니…… 우리가 만날 일은 없겠군. 10군단에 연락해 이동 중인 연합군을 치겠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찰 업무 핑계로 나와 있는 거라 빨리 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쪽은 어디로 갈 거지?”
기사는 지도를 꺼내 한 곳을 가리켰다.
“저희는 이곳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최대한 느리게 움직일 테니 그 전에 습격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이쪽의 다음 접선 지역은 우리 쪽 정찰병을 보내 알리도록 하지. 인근에 남긴 표식을 잘 확인하게나.”
“알겠습니다.”
기사가 떠나고 데프로든 백작은 말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보병들은 야간에 행군해 뒤쫓아 오도록. 목표 지점 인근에 적의 추격에 대비한 저지선을 만들어라.”
데프로든 백작의 9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동 중인 연합군이었다.
원래는 지셀이 미끼로 내어준 보급로를 차단하고 추가 병력을 요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로를 변경한 연합군 쪽이 더 가까워 그곳부터 치기로 한 것이다.
데프로든 백작은 이동하면서 상대의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튜리안 왕국의 기디온 후작. 수는 약 4만이라. 튜리안의 왕자가 빠졌으니 해볼 만하군.”
이쪽이 수는 더 적지만 상관없다. 10군단의 기마병들이 금방 합류할 것이고, 9군단의 초인들만 따져도 상대보다 더 많았으니까.
루타니아 본대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초인이 부족한 연합군과 야전에서 붙으면 이쪽의 필승이다.
“어서 움직여라! 적들이 거점에 도착하기 전에 쳐야 한다!”
두두두두두두!
아트로데군 9군단은 쉬지 않고 달렸다.
이렇게 대놓고 달리면 결국 적 정찰병에 발각될 확률이 높지만 상관없었다. 이 속도를 이용해 빠르게 치고 빠지면 되는 일이었다.
하루를 쉬지 않고 달려 그들은 목표 지점 인근의 작은 숲에 도착했다.
“주변을 확인해라. 적들이 이 근방을 지나갈 것이다. 10군단에도 연락을 취하고.”
9군단의 정찰병들이 넓게 퍼졌다. 연합군이 어디로 움직일지 알고 있으니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루가 다시 지난 뒤에 정찰병들이 소식을 들고 왔다.
“적들을 발견했습니다. 느린 속도로 이동 중입니다.”
“10군단은?”
“주변에 은신할 곳이 마땅치 않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먼저 출발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우리도 당장 움직인다.”
데프로든 백작이 곧장 병력을 이끌고 숲에서 벗어났다. 연합군을 찾는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가서 길을 막고 있으면 10군단도 도착할 것이다.
두두두두두!
아트로데군 9군단은 힘차게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시야에 연합군이 들어왔다.
데프로든 백작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멍청한 놈들,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다.”
적의 경로를 훤히 알고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었다.
계속 쓸 수는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번에도 당한다면 상대는 더 조심스럽게 움직일 테니까.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연합군의 전력이 줄어든 뒤일 것이다.
“앞을 막아라!”
두두두두두!
아트로데군이 연합군의 앞을 막았다. 당장 전투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10군단의 도착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보병인 연합군은 바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어차피 기마병을 상대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데프로든 백작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
“수가 더 많다고 싸워 보려는 건가? 바로 도망가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
두두두두두!
앞을 막고 기다리자 곧 10군단이 적들의 측면에서 나타났다. 이제 이대로 돌격해 적들을 갈아 버리면 된다.
데프로든 백작이 옆에 있는 사제 둘에게 말했다.
“먼저 적의 전열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상대측에 초인이 없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초인은 한 왕국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하다. 당연히 연합군의 초인은 대부분 자신의 왕국에서 왕을 지키고 있었다.
반면 아트로데군은, 비록 반쪽짜리이긴 해도 모든 군단에 배치할 수 있을 정도로 초인이 많다. 게다가 지휘관의 능력도 뛰어나다.
그렇기에 더 많은 병력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명의 사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파아아앙!
사제들이 달려가자 10군단 쪽에서도 두 명의 사제가 뛰쳐나갔다.
이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데프로든 백작이 손을 들며 외쳤다.
“전원!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
아트로데군 9군단과 10군단의 기마병들이 모두 돌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상대를 갈아 버릴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던 데프로든 백작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너무…… 침착한데?’
그간 본 연합군과 기세가 달랐다. 두려워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침착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연합군은 수가 더 많아도 항상 구원교의 초인들에게 당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튜리안 왕국은 율리엔이 나타나기 전까지 반란군에게 밀렸던 곳이다. 그곳에서 온 기디온 후작이 구원교의 힘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배신자가 건넨 정보에 따르면 지금 율리엔도 빠져 있을 텐데.
데프로든 백작은 눈을 찌푸렸다.
‘그간 펜리스 공작과 함께하더니 간덩이가 부은 건가? 건방진 놈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얻어맞으면 잊었던 공포가 되살아날 것이다.
앞서 나아가는 사제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병사들 따위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 같으냐.’
방패를 들어 올리며 진형을 갖추고 있는 병사들은, 지금까지 만난 병사들과 다르게 제법 단단해 보였다.
거기에 전열의 병사들은 병사답지 않게 모두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뛰어들어 몇 번 손만 휘두르면 금방 무너질 것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으니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콰아앙!
상대 진영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어지간한 인간은 내려다볼 정도로 거대한 체구. 그에 걸맞을 정도로 거대한 메이스를 들고 있는 여자였다.
사제들은 순간 멈칫했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군대는…….”
사제들이 혼란에 빠져 눈을 크게 떴다. 성녀 파르니엘이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배신자가 정말 있었구나. 아니, 애초부터 우리 편이 아니었을 테니 배신자도 아니군.”
순식간에 사제 앞에 도착한 그녀가 거대한 메이스를 휘둘렀다.
“허억!”
깜짝 놀란 사제가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파르니엘을 처음 만난 자들은 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직접 체험한 적이 없었기에.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악!”
우드드득!
사제의 두 팔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박살이 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