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85)
585 – 적을 섬멸하라. (2)
585화 적을 섬멸하라. (2)
폭발음을 내며 화살이 아트로데군을 무자비하게 뚫고 가기 시작했다. 화살이 향하는 경로에 있던 자들은 모두 몸이 찢겨 나가 죽고 말았다.
“으아아악!”
“뭐야! 누구야!”
“뒤다! 뒤에서 적이 나타났다!”
다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화살 하나가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선보였다. 가뜩이나 제롬의 마법을 보고 경악했던 아트로데군은 연달아 나타나는 기현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만한 위력을 선보인 지셀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마를 잡고 비틀거렸다. 어느새 코에서 조금씩 피가 흘러나왔다.
“아우, 힘들어. 어질어질하네.”
단 두 번 공격했을 뿐인데 지치고 말았다. 역시 아직 새로 얻은 힘은 쓰기가 힘들었다.
아이던과 싸우느라 크게 다치고 지친 상태였다. 의지의 힘을 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들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리려면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펜벨트 백작도 뒤를 돌아보고 눈을 찌푸렸다.
“펜리스 공작.”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뻔했다. 이런 위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기 때문이다.
검은 말을 타고 있어 더더욱 정체를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참 겁이 없군.”
비펜벨트 백작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곳이 어디라고 저렇게 혼자 나타났다는 말인가. 아마 요새가 위험한 걸 알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가 곧바로 뒤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자부터 죽여라!”
펜리스 공작만 죽여도 전쟁은 승리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나타난 지금이 기회였다.
처억!
요새로 달려가던 아트로데군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수준 높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여라!”
“저자를 죽이면 전쟁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와아아아!”
절반이나 되는 아트로데군이 움직였다. 그 정도로 지셀은 중요한 먹잇감이었다.
달려오는 아트로데군을 보며 지셀이 웃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지금 남은 힘으로는 저 정도 인원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별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들 훈련 부족이야. 더 빠르게 달려야지. 쯧쯧.”
지셀이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씩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셀을 향해 달려가던 아트로데군은 곧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두두!
지평선을 가리며 길게 늘어진 군대가 나타났다.
저 군대가 어떤 군대인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장 앞에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펜리스의 기사들이 섰다. 그 뒤로 2만에 가까운 군대가 나타났다.
흉포한 기세를 내뿜으며 나타난 기마병들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고 대지는 그 진동에 떨리는 듯했다.
지셀은 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뒤에 펼쳐진 장관은 적군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대군에 아트로데군은 크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루타니아군이다.”
“펜리스 공작의 기동군이야.”
“저들이 벌써 도착하다니…….”
펜리스 공작의 기동군은 그 위명이 자자했다. 아무리 최정예로 이루어진 아트로데군이라 해도, 그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지금은 사제들도 힘이 빠졌고 요새엔 병력이 남아 있었다. 지금 아트로데군으로서는 절대 양측의 합공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전세가 단숨에 뒤바뀌었다. 요새를 거칠게 공격하던 그들은 어느새 앞뒤로 포위를 당한 꼴이 되었다.
요새의 병력은 아트로데군과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기디온 후작이 떨리는 눈으로 검을 내려놓았다.
“왔다……. 루타니아군이 왔다.”
동시에 요새에서 크나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펜리스 기동군이다!”
“대공 전하께서 오셨다!”
병사들은 누구 하나 참지 않고 미친 듯이 외쳤다. 죽기 직전에 살아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본 병사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디온 후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더 크게 외쳐라! 더! 더 크게 외쳐라!”
“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여신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한다!”
전투의 결과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마치 승리를 이미 거머쥔 것처럼 기뻐 날뛰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고함 소리가 전장을 타고 퍼져나가며 아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요새 병력의 환호성이 커질수록 아트로데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승리를 확신하며 달려왔던 그들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장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깃발을 올려라!”
요새의 병사들은 기디온 후작의 말에 승리의 깃발까지 높이 들어 올렸다. 그들의 기세는 이미 전장을 뒤덮고 있었다.
거침없이 진격하던 아트로데군은 어느새 진영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비펜벨트 백작이 병력을 물린 것이었다.
그는 눈을 찌푸리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놈들이…….”
펜리스 공작의 위세가 이 정도였다는 말인가.
상대는 칼 한 자루 부딪치지도 않았음에도, 이미 승패의 방향이 결정된 듯 행동하고 있었다.
전투에서 사기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싸우기도 전에 분위기가 바뀌어 버렸다.
요새 병력의 환호성은 무형의 무기가 되어 아트로데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들이 보이는 승리에 대한 확신은 아트로데군의 전의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지셀과 기동군은 평소와 다르게 단숨에 돌격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속도를 줄이더니 천천히 다가오다 진군을 멈추었다.
이제 아트로데군은 앞뒤로 포위된 상태였다. 만약 그들이 기동군을 상대하려 하면 요새의 병력이 튀어나올 것이다.
가트로스가 비펜벨트 백작을 붙잡고 황망한 어조로 물었다.
“어, 어찌해야 하는가!”
“…….”
“어서 말을 해 보게!”
이대로 싸우면 필패였다. 사제들의 기운이 모두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단 하나 희망이 있다면, 저돌적이기로 유명한 펜리스 공작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쪽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비펜벨트 백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다리셔야 합니다.”
“무엇을?”
“다른 군단에 이미 전령을 보냈습니다. 작전을 중지하고 이곳으로 달려온다면 저들을 역으로 포위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 공격하면 어쩌려는 건가?”
“상대도 아군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니, 같이 기다리면 됩니다.”
양측 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서로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펜리스 공작도 피해를 줄이고 싶어 아군을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터다.
가트로스가 분통을 터트렸다.
“제롬! 그놈 때문에 일이 망가졌구나!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제롬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도착해 요새를 점령했을 것이다.
아니, 설사 지금 요새를 점령하지 못했다 해도 괜찮았다. 사제들의 기운을 모아 펜리스 공작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제롬 때문에 요새도 점령하지 못하고 비장의 한 수까지 전부 써 버리고 말았다.
비펜벨트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운이 아닙니다.”
“뭐라?”
“그 마법사는 처음부터 우리를 계속 방해했습니다. 그런 작전이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작전은 펜리스 공작이 짰을 것이다.
속도가 중요한 전쟁이었다. 펜리스 공작은 빠르게 움직이는 동시에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 결과 간발의 차이로 자신들이 늦어진 것이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펜리스 공작이 나타났다는 건, 홀로 움직인 3군단을 그가 상대했다는 뜻입니다. 아직 2군단과 4군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먼저 도착하면 우리가 승리할 겁니다.”
“으으음…….”
“조금이라도 빨리 사제들의 기운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이제 최후의 결전만이 남았습니다.”
“알겠네.”
가트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회복하기는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가트로스와 사제들은 힘겹게 간이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죽은 자들의 기운이라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흡수된 기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을 죽일 때 나오는 기운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자들에게서 빼낼 수 있는 기운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기운을 회복하긴 해야 하기에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비펜벨트 백작의 추측처럼 지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무겁게 자리를 지키며 아트로데군을 압박할 뿐이었다.
다만 다크에 바네사를 태워 보내 제롬을 살피게 했다.
다크가 바네사를 들고 날아가며 물었다.
“진짜 주인 완전 짜증 나지 않아?”
“…….”
“맨날 나한테 잡일이나 시키고 말이야. 조금 더 위대한 일을 시켜 달라고.”
“…….”
“주인이 나 사용하는 수준 실화냐? 차라리 주인 마나를 전부 나한테 몰아넣어서 어? 내가 그냥 아주 거대해져서 혼자 다 쓸어버리면 주인은 그냥 편하게 누워 있어도 되잖아? 그렇게 내가 다 깨부수고 다니면 되는데 이걸 안 써? 진짜 독하다. 독해…….”
다크는 거대화한 가트로스를 보고 무척이나 감명받은 상태였다. 지셀의 마나를 모두 혼자 독차지하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꽤 커질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전투 센스는 엉망이기에 실제 힘의 반도 내지 못하겠지만 그냥 거대해지고 싶었다.
“…….”
바네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다크와 함부로 말을 섞으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같이 도망갈래? 바네사 정도 실력이면 주인한테서 내 의식 빼내 줄 수 있지 않아?”
“…….”
“하, 율리엔한테 부탁해야 하나.”
“…….”
“왜 여자들은 항상 대답을 잘 안 하는 걸까? 왜 항상 바쁘다고 거절하기만 할까? 여자들은 다 그런 거 같더라고. 부끄러워하는 건가?”
바네사는 진실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아트로데군도 바네사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걸 보았지만 건들지 않았다. 굳이 지금 건드려서 전투가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양쪽 다 대놓고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잠깐의 정비 시간이었다. 요새 병력은 한숨 돌리고 바네사와 함께 제롬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여기까지 강행군한 펜리스 기동군도 불편하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아트로데군도 쉬긴 했지만 마음 편히 지내지는 못했다.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양쪽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긴장한 채 하루가 지났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회복한 사제들도 초조하게 아군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한쪽 방면에서 일단의 군대가 나타났다.
“와아아아아!”
요새 병력이 크게 환호를 내질렀다. 새로 나타난 자들은 길리언이 이끄는 루타니아군이었다.
그 옆에서 카오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바아아아알! 나도 이제 초인이다아아아!”
벨린다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며 카오르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아트로데군은 하나같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적이 더 늘어난 것이다.
이제 이길 확률은 아예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긴장한 채 무기를 꽉 쥐었다.
가트로스가 비펜벨트 백작에게 물었다.
“어, 어찌해야 하는가! 적이 늘어나지 않았는가!”
비펜벨트 백작의 눈꼬리가 떨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신묘한 전술을 펼쳐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펜리스 공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군대도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를 완전히 짓밟으려는 것인가!’
남은 한쪽까지 막은 채로 깡그리 쓸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그걸 대놓고 하고 있었다.
으드득.
비펜벨트 백작은 이를 갈며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뚫린 방향을 통해 도망가야 할지 말이다.
‘불가능하다.’
의미가 없었다. 적들은 대륙에서 속도로 둘째라면 서러운 자들이었다. 거기다 휴식까지 취했다.
도망친들 어차피 따라잡혀 대부분이 죽고 말 것이다.
남은 희망은 단 하나.
아직 적들이 대기하고 있을 때 아군이 나타나는 것이다.
비펜벨트 백작은 그렇게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하지만.
“와아아아아아!”
환호성은 더 커졌다. 길리언이 이끄는 부대 반대쪽에서 테넌트와 파르니엘이 이끄는 루타니아군이 나타난 것이다.
이로써 아트로데군은 완벽하게 포위되었다.
쿠웅!
파르니엘이 사납게 웃으며 가장 앞으로 나섰다.
“오늘 죽일 놈이 많구나.”
그녀의 메이스에서 점점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테넌트가 이끄는 루타니아군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성녀의 빛이 신호가 된 것처럼 반대쪽에서 길리언이 이끄는 루타니아군도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요새 병력도 성문 앞으로 모였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셀이 천천히 창을 비껴들었다. 그의 동작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군…….”
히이이잉!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흑왕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셀의 창끝에서 붉은빛이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창 전체를 감쌌다.
지셀의 목소리가 낮고 깊게 울려 퍼졌다. 전장의 모든 이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적을 섬멸하라.”
그 한마디와 함께, 대지를 울리는 진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