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588)
588 – 적을 섬멸하라. (5)
588화 적을 섬멸하라. (5)
율리엔이 추적을 시작했을 즈음, 래너드는 상당히 멀리 도망을 친 상태였다.
“허억, 허억…….”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당혹감 가득한 표정으로, 쉼 없이 중얼거렸다.
“미친…… 그사이에 더 강해져? 그게 말이 돼? 도대체 저놈은 뭐지?”
율리엔과는 예전에 한 번 싸워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너무 강해서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었다.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문드 백작을 설득했다.
― 저놈이 혼자 있을 때 죽여야 합니다. 사제와 최정예 기사들을 보내십시오.
칼문드 백작은 훌륭한 지휘관이다. 율리엔이 연합군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칼문드 백작은 래너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제와 기사들을 내보냈다.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래너드가 판단했을 때, 그 정도면 율리엔이 아무리 강해도 문제없이 죽일 수 있었다.
자신과 사제 네 명, 최정예 기사 오십이면 어지간한 영지도 하루면 박살 낼 수 있는 전력이니까.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 대단한 전력도 율리엔을 상대로 ‘제법’ 버틴 게 전부였다. 율리엔은 놀라운 실력으로 사제들과 기사들을 쓸어버렸다.
래너드는 공황 상태에 빠져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미친 괴물 새끼…….”
래너드는 연신 욕만 내뱉었다. 율리엔이 난입하는 바람에 아군 병력도 대열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그 사이를 적 기마대가 치고 들어왔으니 당해 낼 리가 없었다.
“그놈을 잡을 수는 있나?”
사실 전 병력이 덤빈 터라 율리엔도 그들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인 이상 무한한 힘을 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리엔은 전투가 길어져도 지친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 그의 절제된 마나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가 그의 실제 상태를 가늠할 방도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지레 겁먹고 전투를 포기하거나 무너지는 것이다.
“허억, 허억…….”
도망치던 래너드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숨어든 곳은 전장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산이었다. 미친 듯이 도망쳤기에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 숨어 있다가 멀리 도망가야겠어.”
어쨌든 자신은 살아남았다. 혁명단의 주력은 3군단과 함께 괴멸됐지만, 아직 대륙 곳곳에 자잘하게 흩어진 놈들이 남아 있었다.
“세력이야 다시 모으면 되지.”
전쟁 통에 도적놈들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그놈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을 차지해 양지로 나선다는 야망은 접어야겠지만, 예전처럼 은밀하게 영지를 털고 다니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그도 초인이 아니던가.
“펜리스 공작…… 튜리안의 왕자……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는 성격이 조심스러운 만큼 상황 파악도 잘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후우…….”
래너드는 나무가 우거지고 바위가 많은 곳에 몸을 숨겼다.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뭣!!”
깜짝 놀란 래너드가 몸을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여기.”
고개를 살짝 든 래너드의 눈이 커졌다. 나무 위에 까마귀가 하나 앉아 있었다.
“까마귀……?”
“용케 여기까지 도망쳤네. 아, 쫓아오기 힘들었어.”
“무슨 까마귀가 말을…….”
래너드는 곧 입을 닫았다. 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까마귀를 본 적이 있었다. 분명 율리엔의 주변에서 날아다니던 까마귀였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펜리스 공작을 피해 도망갈 때도, 도망치던 중에 까마귀 하나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루타니아군에는 말하는 까마귀가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렇기에 연락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는 것도.
믿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사실이었다. 저 죽지도 않는 까마귀가 전령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나를…… 추격해 온 건가?”
“그래, 감히 이 몸을 피해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무지한 놈 같으니라고. 실력 차이가 느껴지냐?”
다크는 무척이나 오만하게 턱을 들고 말했다. 기세만 보면 전설의 마왕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촤르르륵.
래너드가 사슬낫을 하나 꺼내 들었다. 위치가 발각됐으니 당장 죽이고 도망가야 했다.
그때, 다크가 래너드를 향해 말했다.
“너, 내 부하가 돼라.”
“……뭐?”
“당장 무릎을 꿇고 내 부하가 되겠다고 빌면 살아날 기회를 주지. 율리엔이나 지셀이나 사실 다 내 부하들이거든.”
“…….”
“둘 다 내 말이면 껌뻑 죽지. 너 하나 정도 살리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으드득.
래너드가 이를 갈며 사슬낫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도망 한두 번 쳤다고 이제는 까마귀마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
까마귀가 말하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정령 같은 거라 생각한 그가 바로 사슬낫을 뻗으려 했다.
‘뒤?’
사슬낫을 뻗으려던 래너드는 바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뒤쪽에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다크가 웃었다.
“푸하하하! 뭐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혼자 굴러!”
래너드가 다크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과연 뒤쪽에는 율리엔이 서 있었다.
율리엔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여러 번 당해 본 래너드는 일단 기척이 느껴지자마자 몸을 피한 것이다.
‘벌써 쫓아왔을 줄이야…….’
래너드가 이를 깨물었다. 저 망할 놈의 까마귀 때문에 추격을 당한 거 같았다.
일대일로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그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양손을 들었다.
“항복, 항복하겠다. 뭐든 할 테니 살려만 다오. 내 실력이 쓸 만하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래너드가 힐끗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 까마귀가 살려 준다고 약속했다. 너희들이 저 까마귀의 부하라 하던데……. 약속을 지켜 주길 바란다.”
그러자 다크가 후다닥 율리엔의 곁으로 날아가 외쳤다.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저놈을 붙잡고 시간을 끌려고 한 거라고!”
다크는 당황했다. 래너드가 충성을 바치면 적당히 율리엔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고자질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율리엔은 래너드의 말과 다크의 말을 무시했다.
스르릉.
그가 검을 뽑았다. 어차피 무슨 일이 있든 래너드를 살려 줄 생각은 없었다.
래너드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봐, 항복한다고. 까마귀도 살려 준다고 했단 말이다.”
“거절한다.”
혁명단은 구원교가 발호하기 전부터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다. 수많은 약탈과 소동을 벌여 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그러니 이 기회에 반드시 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율리엔은 합류도 미루고 래너드를 쫓은 것이다.
율리엔은 더 말을 섞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스각!
“크윽!”
래너드는 가슴이 길게 베이며 옆으로 피했다. 몇 번이나 당했지만 저 수법의 원리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저 몸이 완전히 베이기 전에 겨우 피하는 게 전부였다.
퍼엉!
짙은 안개가 주변을 덮었다. 래너드의 연막탄이 만들어 낸 안개였다.
연막탄을 뿌리며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숙였다. 어깨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스각!
“크윽!”
운이 좋았다.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어깨가 아니라 목이 베였을 것이다.
이걸로 알게 된 점도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기척을 잡아내긴 하지만, 안개가 있는 이상 감지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빠르게 움직인다면 감지를 피해 도망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즉시 한 개의 사슬낫을 율리엔에게 던졌다.
카앙!
통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어차피 몸을 빼기 위해 견제한 것에 불과했다.
이미 다른 사슬낫을 주변에 있는 나무에 걸어 둔 상태였다. 그는 사슬낫을 당기며 몸을 움직였다.
퍼엉! 퍼엉!
래너드는 연막탄을 여러 번 터뜨렸다. 어느 방향으로 도망가는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연막탄이 터질수록 더욱 짙은 안개가 주변을 뒤덮었다.
율리엔이 있는 방향으로 계속 사슬낫을 던지며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래너드는 이렇게까지 죽을힘을 다해 싸운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는 각오였다.
카앙! 카앙! 카앙!
율리엔은 멀리서 날아오는 사슬낫을 쳐 내며 래너드를 쫓았다.
확실히 래너드는 뛰어난 강자였다. 기척을 감지하고 베어도, 빠르게 움직이며 어떻게든 치명상은 피하고 있었다.
특히 시야를 가리는 이 안개는 래너드 같은 강자를 상대할 때는 상당히 방해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율리엔이 달리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일단은 이 안개부터 없애야 한다.
그가 ‘의지’를 담아 검을 들어 올리자,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며 뒤틀렸다. 안개 속에 숨겨진 세상의 비밀스러운 흐름,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율리엔은 느낄 수 있었다.
율리엔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악!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리며 안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율리엔의 의지 앞에서는 무력했다.
순식간에 안개는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맑고 선명한 세상이 드러났다.
하늘에 떠 있던 다크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당신은 괴물입니까?”
실체 없이 기운이 뭉친 존재인 다크이기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현상과 흐름. 율리엔은 억지로 그것을 끊어서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거…….”
지셀이 최근에 선보인 기술과 다르면서도 묘하게 비슷했다. 분신 간에 의식을 공유하는 다크는 두 가지를 전부 볼 수 있었다.
지셀이 세상의 흐름과 함께 하며 그 힘을 발휘한다면, 율리엔은 흐름을 강제로 역행하며 지배하고 있었다.
도망가던 래너드는 갑자기 시야가 확 밝아지자 기겁했다.
“이, 이게 무슨…….”
그렇게나 자욱하게 퍼져 나갔던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설령 마법사도 안개를 날려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이렇게 단숨에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잠깐 머뭇거렸을 뿐이지만, 큰 실책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율리엔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가까스로 사슬낫을 휘둘러 막은 래너드가 반대쪽 사슬낫을 율리엔에게 던졌다.
카앙! 카앙! 카앙!
두 개의 사슬낫과 한 개의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남들이 본다면 이 수준 높은 싸움에 감탄을 그지 못했을 것이다.
래너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근육은 극도로 긴장했고, 신경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는 본능까지 끌어내며 정말 모든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단 한 번만 틈이 보이면…….’
하지만 율리엔의 검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래너드를 조여 왔다.
카가가가가가강!
순식간에 수백 번의 공격과 방어가 오갔다.
그 속도와 정확성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래너드는 구원교의 사제들을 훨씬 뛰어넘는 실력이었지만, 그조차도 율리엔의 압도적인 실력에 밀리고 있었다.
카앙!
사슬낫을 교차해 검을 막은 래너드의 두 눈에 희망이 스쳤다. 그는 틈을 노려서 한쪽 사슬낫을 인근의 나무를 향해 던졌다.
탈출할 기회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 바로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었다.
스각!
시간이 멈춘 듯했다. 율리엔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푸른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래너드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크아아악!”
래너드의 비명이 울렸다. 전투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진 그 찰나의 순간, 율리엔의 검이 무자비하게 그의 육체를 갈랐다.
파아아앗!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래너드의 눈에 공포와 절망감이 스쳤다.
그는 알았다. 이로써 이 싸움도 끝이 났다는 것을.
래너드는 고통에 몸을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남은 사슬낫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달리, 몸은 이미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
율리엔의 동작은 마치 시간 자체를 지배하는 듯했다. 그의 검이 래너드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스각!
래너드의 목에 선명한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입에서는 붉은 거품이 솟구쳤다.
래너드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괴물 같은 놈……. 넌 인간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경외심, 그리고 깊은 절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철컥.
율리엔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투욱.
검집에 검이 완전히 들어감과 동시에 래너드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때 대륙을 어지럽혔던 혁명단장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율리엔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래너드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 넌 인간이 아니야…….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었다.
그의 기이한 성장세와 불길한 기세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는 중에도 율리엔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임무를 완수한 도구처럼, 그는 무덤덤하게 전장을 벗어났다.
다크가 후다닥 날아와 아부를 떨었다.
“오빠, 너무 멋있다. 그냥 세계 최강 아냐? 캬, 나 같으면 바로 세계 정복 들어간다. 이런 실력으로도 안 한다고? 진짜 독하다, 독해.”
“…….”
율리엔은 언제나처럼 다크의 말을 무시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제 지셀과 합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 *
“역시 해낼 줄 알았다니까.”
다크를 통해 율리엔의 활약상을 전해 들은 지셀이 웃었다.
래너드는 전생에서도 골치 아픈 놈이었다. 이쪽은 균열과의 싸움이 급한 데 은밀하게 숨어다니는 놈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었다.
그놈이 그런 틈을 타서 얼마나 세력을 늘리며 사람들을 약탈했었던가.
율리엔이 확실히 끝내 줘서 속이 시원했다.
“자, 그럼 다음 놈을 처리해 볼까.”
전후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는 사르디나 왕국에서 연합군과 함께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처리하고 가야 할 놈이 있었다.
철컥, 철컥, 철컥.
일단의 병력이 누군가를 끌고 힘차게 걸어왔다.
끌려오는 자는 바로 이번 전쟁에서 첩자 짓을 한 배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