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1)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61화(61/269)
61화 바보를 어디에 쓰려고? (4)
바네사가 미친 건 마나 연공법을 잘못 익힌 탓이 가장 크지만, 그간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에 쌓인 울화가 잘못된 마나 연공법과 엮이며 표면에 드러났겠지.
기사들 중에도 수련하다가 그런 심마(心魔)에 빠지는 자들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거다.’
지셀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마나 연공법을 가르치고 봐줄 생각이었다.
바네사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가르친다면 이번 전쟁에서도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시일이 촉박해서 마력을 필요한 만큼 많이 쌓지는 못하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지.’
그러려면 협박을 해서라도 데려와야만 했다. 물론 지셀은 협박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적염의 마탑에 온 목적을 전부 이루니 보람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셀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거래가 마무리되었으니 이만 떠나겠습니다. 영지 사정이 안정되는 대로 다시 룬스톤을 가지고 오지요.”
떠나겠다는 말을 듣고 탑주와 장로들은 노골적으로 기뻐했다.
꼴 보기 싫은 놈이 스스로 꺼져 주겠다고 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교 모임에서 단련된 휴베르트의 입이 문제였다.
“어이쿠, 왜 벌써 가려고? 도시 구경도 좀 하고 쉬었다 가지.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도시 운영에도 좀 신경을 써서, 다른 곳보다 구경거리가 많을 거야.”
휴베르트가 은근히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흠, 그럴까요?”
그러나 지셀이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모두는 바로 표정을 구겨 버렸다.
장로들은 휴베르트를 보며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냐고 눈빛으로 핀잔을 주었다.
휴베르트 또한 썩은 생강 씹은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오, 눈치 없는 새끼.’
예의상 하는 말은 적당히 눈치채고 거부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인데, 눈앞의 무례한 놈은 도무지 그런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법사들의 표정을 보며 지셀은 속으로 낄낄댔다.
‘연기는 참 더럽게들 못한단 말이지.’
자신도 그다지 연기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마법사들은 정말 노골적일 정도로 연기 실력이 형편없었다.
하기야, 젊어서부터 굉장한 인재로 촉망받는 그들이 굳이 남의 비위를 맞출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놀리는 맛이 있긴 했지만……. 계속 이곳에서 죽치며 시간을 버리기에는 지셀도 할 일이 많았다.
“아닙니다. 저도 할 일이 많아서 이만 가 봐야겠네요. 다음에 오면 한번 즐겨 보겠습니다.”
그러자 휴베르트의 낯빛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는 지셀이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기 전에 급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대공자가 영지를 오래 비우면 안 되지. 돈은 이미 준비해 놨으니 확인해 보게. 마법사들도 늦지 않게 보내 주겠네.”
마법사들은 시간을 두고 출발해 지셀 일행과 따로 영지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같이 움직인다면 적염의 마탑에서 마법사가 따라왔다는 소문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셀은 휴베르트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바네사도 안전하게 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 그 전까지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십시오. 이제 제 전속 마법사니까 아주 잘 대해 주셔야 합니다. 다치면 안 되거든요.”
“아무렴! 아주 귀한 손님처럼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휴베르트가 호들갑까지 떨며 답했다.
지셀은 바네사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출발하고 싶지만,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는 안 되겠네. 어쨌든 조심해서 와라.”
“알겠습니다. 공자님.”
바네사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지셀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누가 괴롭히면 꼭 말해라. 너는 속에 쌓아 두면 안 돼. 그러다 폭발하면 큰일 나거든. 알겠지?”
영문 모를 말이었지만 바네사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지셀은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 바로 몸을 돌렸다.
모두 함께 로비까지 내려오니, 로비에는 이미 용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수레에는 금화 궤짝이 잔뜩 실려 있었다.
“금액을 확인해라.”
지셀이 명령하자마자 용병들은 바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저리 천박하게 바로 앞에서 확인하다니, 설마 돈을 덜 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신들을 어찌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병들이 의아한 듯 말했다.
“3골드가 부족합니다. 마법사들은 똑똑하다던데, 돈 계산은 제대로 못 하는 모양입니다?”
순간, 마법사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금액이 워낙 크니 실수한 모양이었다.
거래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지만, 마탑의 명성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실수였다.
휴베르트는 당황하여 떠듬떠듬 말했다.
“계산을 맡은 자가 실수한 모양이네. 내 다시 확인하겠네. 미안하네.”
지셀이 한숨을 내쉬며 누군가를 불렀다.
“고든.”
“…….”
고든이 조용히 사타구니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5골드를 꺼내 궤짝에 짤그랑 집어넣었다.
“……?”
잠시 로비에 적막이 흘렀다.
고든이 집어 간 것도 문제지만, 용병들의 셈마저 잘못된 것이다.
카오르가 고든의 목을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가 주먹을 휘둘렀다.
“이 오줌싸개 새끼야!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간다. 돈 같은 거 관심 없다며?”
퍽! 퍽! 퍽!
“윽! 미안! 어차피 받을 거 미리 받아도 되겠다 싶어서…… 으엑! 그만 때려! 나 안 참는다? 악! 폭력 멈춰!”
구석에서 맞고 있는 고든을 보며 휴베르트와 장로들이 눈만 끔뻑거렸다.
지셀이 그들을 향해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워낙 못 배운 놈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지셀이 잽싸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 빨리 떠나자. 이 무식한 놈들아.”
지셀 일행은 재빠르게 마탑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마법사들은 멍하니 서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나서자마자 지셀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에요?”
“문지기 얘기하는 거 잊어버렸네.”
벨린다가 황당해하며 지셀을 쳐다보았다.
“괘씸해서 놀린 거 아니었어요?”
“놀리다니, 난 항상 진심이야.”
“퍽이나…….”
길리언이 그를 노려보는 벨린다를 슬쩍 막아섰다.
“정말 공자님의 계획이 성공했군요. 마탑이 조건을 전부 들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드디어 도련님 운도 확 트였나 봐요. 하는 일마다 다 잘되네.”
“쟤네들 마법사가 아니라 다들 그냥 바보 아닙니까? 도대체 왜 다 들어준 겁니까?”
“그래, 바보들인가 보다. 앞으로도 바보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명확한 이유가 있지만, 지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셀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뭐 하러 전속 마법사로 삼으셨습니까?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데.”
카오르가 재차 물었다.
마나도 기세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여자.
마탑에서도 하녀 노릇이나 했던 모양이니 학식이 높다든가, 상재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지셀은 그 물음에도 대답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카오르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곧 지셀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셀은 카오르를 무시하고 길리언에게 말했다.
“겨우 한 계단 올라왔을 뿐이야.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지.”
“알겠습니다.”
적이 어떤 인물을 내세워, 어느 정도 전력을 이끌고 올지 모르니 방심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방심한다는 건 곧 목숨을 내버리는 것과 같다.
지셀은 확실한 승리를 원했다.
‘누구든 우리를 건들면 죽는다는 걸 보여 주마.’
굳게 다짐하는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서늘했다.
* * *
페르디움의 총관 호메른은 지셀이 언제 올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인에게 청탁하는 전략이 실패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달라고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룬스톤을 팔러 간다던 대공자는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왜 안 오지? 설마 산적이라도 만나서 다 털린 거 아냐?’
한번 이상한 생각이 들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셀은 이 영지의 희망이다. 아니, 지셀이 아니라 그가 가져간 룬스톤이 페르디움의 희망이었다.
‘산적한테 잡혀서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멍청하긴! 그러니까 병사들을 좀 더 데리고 갔어야지!’
사실 병사라고 해 봤자 현재 페르디움의 상황으로는 채 백 명도 지원해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호메른은 확신했다.
‘대공자가 죽었어도 룬스톤은 영지에서 채취하면 되는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인부들을 고용할 돈도 없잖아!’
대공자의 신변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만약 정말 죽었으면 남은 룬스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그나마 지셀이 룬스톤이 있는 곳까지는 길을 냈다고 하니 쉽게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아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치겠군.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가신들도 걱정이 되는지 요새는 대공자에 대한 얘기로 성이 어수선했다.
북방 요새를 계속 비워 놓을 수는 없기에 슬슬 페르디움 백작도 요새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셀이 돌아오지 않으니 백작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행선지도 말하지 않고 떠났으니 지금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안 되겠다. 일단 찾으러 가야겠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호메른은 이틀을 더 기다리다 결국 즈발터에게 허가를 받고 추적대를 꾸렸다. 기사 한 명에 병사 십여 명 정도로 단출한 규모였다.
추적대를 대규모로 꾸릴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지셀이 데려간 병력의 규모가 크다 보니 굳이 사람을 많이 쓰지 않아도 행방을 수소문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들이 성문을 열고 막 출발하려는 찰나,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뭐, 뭐야?”
“누가 쳐들어온 건가? 파발은 없었는데?”
“성문! 일단 성문부터 닫아!”
무장한 병력 수백 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깃발도 들지 않아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기겁한 사람들은 일단 성문을 닫고 들어가 무슨 일인지 살펴보았다.
“어, 저, 저 사람은?”
기사 하나가 선두에서 말을 모는 사람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영지를 떠났던 대공자였다.
“대공자님이다! 대공자님이 돌아오셨다!”
“그럼 그 뒤에 병력은?”
“용병들인가? 그런 것치고는 장비들이 너무 좋은데?”
지셀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호메른이 헐레벌떡 성문 앞까지 뛰쳐나갔다.
그는 지셀을 뒤따르는 병력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헐, 저게 뭐야?”
지셀이 성문 앞에서 말을 세우며 호쾌하게 웃었다.
“총관님이 마중 나와 주신 겁니까?”
“아, 아니, 대공자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뒤에 있는 병력은 어찌 된 겁니까?”
“마수의 숲을 개척하고 영지를 방어하려고 고용한 사람들입니다.”
“고, 고용이요? 용병들입니까?”
“맞습니다.”
호메른이 어안이 벙벙해서 용병들을 훑어보았다.
무기들은 제각각이지만 갑옷과 군마는 거의 비슷한 모양새에,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호메른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물었다.
“숲 개척은 그렇다 쳐도…… 영지를 방어한다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룬스톤 자원지가 발견되었으니 다른 영주들이 침략해 올 거 아닙니까? 대비해야죠.”
지셀이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말에 호메른은 이마를 짚었다.
‘이 멍청한 놈! 전쟁이 애들 소꿉장난인 줄 아는구나!’
룬스톤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언젠가는 영지전이 일어나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용병은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 고용해도 됩니다! 룬스톤을 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영주가 쳐들어오겠습니까? 적어도 일이 년은 지나야 일어날 일을, 벌써!”
호메른이 열변을 토했지만, 지셀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호메른의 생각은 틀렸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 용병을 구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모으지도 못할 것이다. 아무도 페르디움의 편을 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해 봤자 누가 믿겠는가?
미친놈 취급을 받더라도 그냥 알아서 준비하는 게 나았다.
“어쨌든 이미 고용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마수의 숲을 개척하는 데 쓰면 되죠.”
“으으으…… 그러면 돈은? 이번에 판매한 룬스톤 대금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다 썼는데요.”
“네?”
“용병들을 고용하고 물자를 준비하는 데 다 써서 이제 남은 돈이 없습니다.”
“한 푼도?”
“한 푼도.”
“…….”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눈가가 촉촉해진 호메른이 이마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