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17)
617 – 왜 대화라는 걸 할 줄 몰라요? (1)
617화 왜 대화라는 걸 할 줄 몰라요? (1)
한참 동안 자신의 손만 내려다보던 에른하르트가 고개를 들었다.
“가트로스.”
“하문하소서.”
“그대 생각이 궁금하다. 정말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약속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제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그 증거이옵니다.”
성물을 구하지 못했다면, 가트로스는 제롬의 마법에 영혼까지 소멸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숙적인 성녀가 남긴 성물이 그를 살려 주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 이것은 뜻을 이루라는 신의 가호임이 분명했다.
그의 말에 에른하르트가 반문했다.
“신께서 내려 주신 계시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어긋나고 말았지. 미래는 약속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
가트로스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에른하르트의 꿈은 에른하르트만이 알고 있다. 그 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은 알 수가 없었다.
설령 꿈의 내용을 안다 해도 에른하르트에게 공감하진 못했을 터였다. 고작 꿈 따위에 저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자신들은 그저 왕을 영접하고 부활을 앞당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몇 번 실패하긴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든 결국 예언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꾼 꿈은 개꿈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에른하르트는 진심으로 그 꿈을 믿고 있었다.
‘설령 그게 계시라 하더라도 자잘한 변수는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트로스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경전에도 모든 게 상세히 적혀 있진 않사옵니다. 약간의 변수와 오차는 생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중요한 건 징조와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흐음…….”
“대기근과 균열, 전염병, 전쟁 등 이미 수많은 징조가 실현되거나 절로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이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에른하르트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대부분은 우리가 일으킨 일 아닌가? 예언을 실제로 만들겠다고 말일세.”
“……그 또한 정해진 일이옵니다. 저희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그래, 내 꿈에서도 일어난 일들이니 아예 부정할 수는 없군.”
“……맞습니다. 모든 건 오래전부터 안배된 일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왕의 부활만 기다리시옵소서. 전하께서는 마지막으로 남은 ‘사도’이시옵니다. 약속된 날을 기다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가트로스는 에른하르트를 예전부터 사도라 존칭해 왔다. 그것은 구원교의 고위 인사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에른하르트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역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저 가트로스마저 말이다.
“그래, 모든 것은 순리대로 진행될 테니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것이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지금도 왕이 곧 부활하리라는 징조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세상에 퍼진 신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왕이 어서 부활하기를.”
그것은 에른하르트가 그 누구보다 바라는 일이었다. 왕이 부활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 부활하는 것도, 그로 인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도 확정된 미래였다.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항상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계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에른하르트가 알고 있던 미래는 모두 망가졌다. 남은 것은 혼돈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에른하르트의 머릿속에는.
‘지셀 페르디움.’
오직 그에 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델파인 공작가의 정체에 관해 한참을 고민하던 지셀은 곧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잡아 죽여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에른하르트는 검도 마법도 전혀 익히지 않았다. 직접 대면했을 때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 있다면 분명 전쟁에서 활약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에른하르트는 수하들에게 전부 맡겨 놓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속 구경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묘한 여유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에른하르트는 고위 귀족으로서의 품격과는 다른,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거기에 그간의 행적을 보면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놈이었다.
― 그 악마는 정말 강했지.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 왕국의 어떠한 군대도 그 악마를 막지 못했다. 그 악마는 형체도 없는 죽음의 구름과도 같았다.
에른하르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지셀은 내심 놀랐다.
꼭 자신의 전생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자신처럼 회귀를 하진 않은 듯한데 말이다.
거기에 악마라니.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지셀도 대적자란 존재에 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에른하르트가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찝찝했다. 꿈에서 봤다는 그 악마라는 존재가 말이다.
“꿈이라…….”
자신이 성물을 통해 꿈을 꾸듯, 에른하르트도 정말 계시를 받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했다.
― 지셀 페르디움, 네가 그 악마로구나. 네가 나의 숙적이었다. 네가 나의 길을 막는 악마였어.
‘숙적.’
그래, 그놈과 자신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이다.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끈질긴 악연으로 점철된 관계였다.
전생에는 에른하르트가 승리했다. 지금은 자신이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아직 결과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구원교가 몰락하고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그놈을 죽여야 진짜 끝이라 할 수 있지.”
드래곤 사냥이 끝나는 대로 전 대륙에 추격대를 뿌릴 것이다. 반드시 찾아 없애야 한다.
지셀은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꿈 이후로 지셀은 조금 더 수련에 집중했다. 새로 눈에 담은 경지들이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꿈에서 그리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셀은 다르다. 그는 세상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거기에 꿈에서 본 자들의 기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셀은 꿈에서 본 기술들을 하나로 융합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공한다면 다시금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요새 안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쉬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쿠우웅!
지셀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이 들썩였다.
“후우…….”
한참을 연무장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던 지셀에게 한 기사가 찾아왔다.
“모두 모였습니다.”
“그래.”
며칠 사이에 연합군 지휘관들이 다시 모였다. 그들은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몬스터들을 상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피곤한 전투였다.
하지만 미리 대비한 덕에 큰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펜리스 공작은 준비가 참으로 철저합니다.”
“마치 상대의 전력을 미리 아는 듯한 느낌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까딱 잘못했으면 큰 피해를 볼 뻔했는데, 지원군과 마법사들이 적절하게 잘 배치됐습니다.”
지휘관들은 삼삼오오 떠들며 지셀의 판단에 크게 감탄했다.
지셀로서는 이미 전생에 겪어 본 일이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는 지셀이 정말 예언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지셀이 회의실로 들어오자 모두가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 할 일은 끝났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드래곤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어.’
쉬지 않고 싸워 왔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특히 드래곤처럼 무서운 존재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펜리스 공작이 알아서 한다 했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지셀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예정대로 다른 분들은 곳곳의 잔당 토벌을 위해 움직이시죠. 드래곤은 저와 초인들, 준비된 마법사들끼리만 상대하겠습니다.”
“오오…… 크흠!”
연합군 지휘관들은 환호하려다가 애써 참았다.
가장 위험한 적과 싸워야 하는 사람 앞에서 대놓고 좋아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년간 다진 귀족의 처세술을 보여 주었다.
“어험험, 정말 우리가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 저희만 잔당 토벌을 가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기는 게 아닌지…….”
다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펜리스 공작이 한번 결정한 일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성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최정예 인원들로만 드래곤을 상대한다고 했다. 자신들이 있어 봤자 피해만 커지지 도움 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음껏 겸양을 떨 수 있었다.
“언제든 저희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럼요, 오랜 전쟁을 함께 한 사이 아닙니까?”
“이게 벌써 몇 년째입니까? 이 정도면 혈맹이지요, 혈맹.”
각국의 지휘관들이 모두 호기롭게 말했다. 지셀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역시 전우란 이런 것이다. 다들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마음 편히 얘기하기로 했다.
“정말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전장을 누빈 것은 제 일생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크흠흠, 뭘 또 그런 말씀을.”
“저희야말로 영광이지요.”
“이거 전쟁이 끝나고 친목회라도 하나 결성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모두가 호탕하게 웃었다. 지셀도 함께 웃다가 툭 하니 말했다.
“제가 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들 이리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하…… 뭐든…… 말씀하시지요…….”
지휘관들의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펜리스 공작이 하는 부탁은 상식적인 일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지셀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최근에 병사들에게 약속을 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미 소식을 들었기에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바로 예상이 갔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저 인간의 성격을 모르면 첩자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알페렌 후작이 다급하게 선수를 쳤다.
“어험, 어험. 다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펜리스 공작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기로 하셨으니까 말이죠.”
이 정도 했으면 체면 때문에라도 말을 꺼내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지셀은 필요하면 자기가 했던 말 따위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남자다.
“아,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서는 좀 힘들 거 같아서요.”
“…….”
“다들 조금씩이라도 도와주셔야 할 거 같은데?”
“…….”
“각 왕국에서 돈 좀 걷읍시다. 아, 내가 요새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
다들 침묵을 지켰다. 지금 다른 왕국도 재정이 다들 간당간당했다. 도대체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끌어온다는 말인가?
게다가 경제가 개판이 된 상황이라 돈을 풀어도 제대로 돌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건 지셀이 고민할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 문제는 클로드가 해결해 줄 거다.
“다들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비한 정책은 전쟁이 끝나는 대로 저희 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재원만 준비해 주세요.”
“…….”
다들 침만 꿀꺽 삼켰다.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져 버렸다.
지셀이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아까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면서요.”
모든 지휘관들이 그 말을 한 자를 노려보았다. 왜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저런 말이 나오게 한다는 말인가.
한 지휘관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저기……. 아시다시피 오랜 전쟁 때문에 다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 군량미의 절반은 루타니아에서 지원받고 있지 않습니까.”
지셀이 피식 웃었다. 식량이야 가뭄 때문에 다들 사정이 안 좋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가뭄에 영향을 받은 작물들뿐이다.
“돈 되는 물건이 식량만은 아니지요. 식량은 제가 많이 뿌릴 겁니다. 여러분은 다른 걸로 지원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무, 무엇으로요?”
“금과 은, 보석을 비롯한 각종 희귀 광물, 예술품, 마법 도구, 이미 쌓일 대로 쌓인 고급 의류나 장신구…… 많잖습니까. 뭐, 그것들은 돈 아닙니까?”
“왕국에서는 재정 문제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미 대부분 처분하여…….”
“그게 다 어디로 갔습니까?”
“당연히 각 귀족과 상단들에…….”
“그럼 재물이 다 거기에 있는 거네요?”
“아니, 그게…… 그건 저희 것이 아니라서…….”
지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그게 뭐가 문제냐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뺏으면 되잖아요?”
“…….”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이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