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2)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62화(62/269)
62화 이 꽉 깨물고 잘 버텨라. (1)
“총관님!”
옆에 있던 기사가 비틀거리는 호메른을 잽싸게 붙잡았다.
그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지만, 다리는 여전히 흐느적거렸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지금 영지에 돈 나갈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 돈을 다 썼다고? 그것도 쓸모도 없는 용병만 저리 잔뜩…….”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 쳐도, 겨우 삼백여 명의 병력이 더해진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차라리 다른 영주들에게 룬스톤을 바치고 지원군을 요청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아니면 룬스톤을 일정 부분 바치겠다고 약조하고 항복하는 방법도 있다. 영지전에 승리한다고 영주와 가신들 가문을 몰살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차라리 그 돈을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썼어야지!”
보아하니 용병들을 고용하고 장비까지 끝내주게 맞춰 준 모양이다.
이 멍청한 놈이 제 병력을 키우겠다고 돈을 아무렇게나 써 버린 것이다.
호메른의 창백한 얼굴에 실망감이 묻어 나왔다. 지셀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에게 드릴 5천 골드는 남겨 놨습니다. 곧 룬스톤도 더 구해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도 호메른은 여전히 안색이 어두웠다.
다시 룬스톤을 구해 올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곳이 많았다.
그래서 지셀이 가져올 돈을 기대했던 건데……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커진 것이다.
‘으으, 역시 이런 망나니한테 돈을 맡기면 안 돼. 어떻게든 영지에서 룬스톤을 관리해야 한다.’
호메른은 말도 잇지 못하고 슬픈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여덟 마리 백마가 이끄는 마차는 돈 많은 귀족이나 탈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잠시 후, 지셀의 앞에 마차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내린 남자가 지셀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오, 공자님께서 직접 마중 나오신 겁니까? 이제 좀 귀족다운 품위가 보이시는 거 같습니다. 하하하.”
시건방진 말을 내뱉는 자는 적염의 마탑에서 온 알포이였다.
한 달 정도 후에 페르디움에 도착하도록 시간을 잘 맞춰서 출발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잘 지켰는지 지셀과 동시에 도착한 것이다.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는 마법사를 보며 지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말들은 진짜 존나게 안 들어요.”
분명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오라고 했는데 마차 꼬락서니가 범상치 않았다. 마차가 지나간 걸 기억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그나마 일행 모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호메른은 지셀과 알포이를 번갈아 보다가 멍하니 물었다.
“이자들은 누구입니까?”
“제가 고용한 용병들입니다.”
“뭔 용병들이 이렇게 로브를 뒤집어쓰고 저런 마차를…….”
그는 다시 지셀과 용병들을 둘러본 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끼리 전쟁놀이하면서 잘들 놀아라. 재미있겠네.”
호메른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비틀거리며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는 화병이 도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셀은 어깨를 으쓱한 뒤, 마법사들 뒤에서 주뼛대고 있는 바네사를 챙겼다.
“무사히 왔네. 별일 없었지?”
“고, 공자님을 뵙습니다. 저, 저는 별일 없이…….”
“괴롭힌 사람 있었어?”
“어, 없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일단 들어가자.”
마법사들은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용병들도 지셀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외성을 지나 영주성 앞에 멈춰 선 지셀은 벨린다에게 마법사들의 안내를 맡겼다.
“벨린다, 마법사들이 묵을 방을 준비해 줘. 난 용병들을 주둔지로 데리고 갈 테니까.”
“알겠어요. 저도 오랜만에 정리를 좀 해야겠네요.”
다시 용병들을 이끌고 움직이려 할 때, 상당히 거슬리는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다.
“하, 이 새끼들 진짜…….”
마법사들은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영주성을 구경하며 자기들끼리 품평하고 있었다.
“흐음, 제법 흥미로운 양식으로 지어진 성이군요. 이건 이 지역의 기후에 걸맞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의…….”
“조화와 비례에 바탕을 두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마법사들이 허세 부리는 거야 그네들 특징이니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우아하게 토론하는 동안 바네사 혼자 끙끙거리며 무거운 짐들을 마차에서 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짐이 꽤 무거운지, 그녀는 힘겨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짐 몇 개를 내리자마자 그녀는 다시 마차의 짐칸으로 쏙 들어갔다. 가져온 짐이 꽤 많기에 여러 번 걸쳐 옮겨야 했다.
지셀이 마법사들에게 다가가 차갑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내가 분명 바네사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 여자가 원래 저런 일을 잘합니다. 일은 잘하는 사람한테 맡겨야죠.”
비죽거리며 말하는 꼴을 보니, 요 한 달 사이에 마탑이 제 처지를 잠깐 잊은 모양이었다.
지셀이 떠난 뒤, 평소처럼 바네사를 막 대하고 부려 먹은 게 분명했다.
지셀은 짐을 가지고 내리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바네사, 그만하고 이리 와라.”
“아, 아닙니다. 짐을 옮기고…….”
그러자 지셀이 서늘하게 내뱉었다.
“대체 누가 네 주인이라고 생각하나? 넌 내 말만 따르면 된다.”
하지만 바네사는 알포이의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셀이 손을 들어 까닥이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춤주춤 그에게 다가갔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 말 외에는 누구의 명령도 듣지 마라.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지셀은 바네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알포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바네사는 더 이상 너희의 하녀가 아니다. 이제 내 사람이니 함부로 굴지 말도록. 처음이니 한 번은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목을 걸어야 할 거다.”
“이이익…… 어찌 저런 하찮은 년에게…….”
알포이는 모욕감에 이를 갈았다.
마탑의 후계자인 자신보다 저런 하녀 따위에게 신경 쓰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지셀은 여전히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분이 차올랐다.
‘그냥 죽여 버릴까?’
당장이라도 마법을 날려 저 건방진 얼굴을 갈아 버리고 싶었다.
마탑의 어른들마저 없으니 감정이 쉽게 제어되지 않았다.
‘그래, 마탑에는 사고였다고 하면 되잖아?’
알포이는 분노에 매몰되어 흉악한 기세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알포이는 그 정도로 숨김없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확실히 마탑에서 귀하게 자라서인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놈이었다.
지셀이 진한 비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놈들은 말로 하면 듣지를 않아.”
“뭐?”
알포이가 인상을 쓰자 지셀은 성문 앞을 지키는 병사에게 다가갔다.
“창 줘 봐.”
“네?”
지셀은 두 번 말하지 않고 병사의 손에서 그냥 창을 빼앗아 바로 부러뜨렸다.
우지끈!
페르디움이 워낙 가난하다 보니, 병사가 쓰는 창도 창대가 나무로 된 저렴한 물건이었다.
창날을 떼어 내니 자연스럽게 손에 딱 맞는 몽둥이가 되었다.
지셀은 창대였던 몽둥이로 한쪽 손바닥을 툭툭 치며 알포이에게 다가갔다.
“대가리에 똥만 찬 것들은.”
“뭐?”
“역사적으로도 이게 약이었다.”
“이 새끼가!”
모욕적인 말에 폭발한 알포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심장의 서클이 힘차게 돌아가며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 마법을 구현했다.
콰아아!
그는 바로 손을 뻗어 강대한 마법의 위대함을 보여 주려 했다.
따악!
“어억!”
그러나, 마법이 나가기는커녕 눈앞이 번쩍이며 고통이 몰려왔다.
“뭐, 뭐지?”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른다.
공격이 보이지도 않았고, 왜 마법이 끊겼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이익!”
알포이가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법을 시전하려 했지만, 지셀의 손이 더 빨랐다.
빠아악!
“으아악!”
이번에는 소리가 더 컸다. 알포이는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곧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고통이 몰려왔다.
퍼억! 퍼억!
“끄아악!”
지셀은 조금 전 마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만 알포이를 패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퍼억!
“으어억! 자, 잠깐!”
알포이는 미칠 거 같았다.
마력을 끌어올리려고만 하면 절묘한 타이밍에 끊기고 만다.
마치 몸 안에 무언가 들어와서 흐름을 막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퍼억! 퍼억!
“으게게겍!”
더 미칠 거 같은 건 쓰러지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쓰러지려고 하면 그 반대편에서 몽둥이가 날아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으어어억!”
“멈추시오!”
보다 못한 나머지 마법사들이 마력을 내뿜으며 움직이려 했다.
차차창!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려는 낌새가 보이자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순식간에 그들의 목에 무기를 갖다 대었다.
마법사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으으으…….”
다른 마법사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알포이는 정말 쉴 새 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퍼억! 퍼억! 퍼억!
“어어억, 그만! 잘못했어!”
그가 이런 고통을 겪은 건 생전 처음이었다.
마탑에서 최고로 대우받으며 언제든 원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몰상식한 짓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흠, 이쯤 할까?”
지셀이 몽둥이질이 멈추자 알포이는 땅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끄허억, 으억…….”
지셀은 고통스러워하는 알포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거 진짜 생각이 짧은 놈이네. 너 마법사 맞아? 여기 우리 영지야. 여기서 지랄하면 감당할 수 있겠냐? 도망이나 갈 수 있겠어?”
만약 지셀이 그의 마법을 맞고 죽거나 다쳤다면 알포이는 이곳에서 즉결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던 것이다.
알포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같이 온 마법사들도 용병들에게 목을 내어 주고 있었다.
“으으…….”
알포이는 이를 갈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삼백여 명에 이르는 용병들이 지척에 붙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싸우면 마법사 여섯 명은 순식간에 피떡이 될 것이다.
“끄으, 네, 네놈…….”
알포이는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몸의 고통보다 자존심의 상처가 더욱더 컸다.
“우,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내 반드시 이 일을 보고해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발작하며 외치는 알포이에게 지셀이 웃으며 답했다.
“보고해 봐. 니 스승이 누구 편을 들어 줄까? 너 계약이 뭔지 벌써 잊은 거냐? 지금 돌아갈래?”
“으, 으으…….”
휴베르트는 몇 번이나 지셀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강조했었다.
― 그놈은 정상이 아니니까 말도 섞지 말고 하자는 대로 해라. 말을 섞을수록 손해다.
반박할 수 없는 현실에 이만 악물고 있는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는 멀쩡할 거 같냐?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너도 꼬리 자르기를 당해 스승한테서 쫓겨날 거다.”
그 말에 알포이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마탑은 일부 마법사들의 단독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며 지셀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게 뻔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룬스톤의 수급이 막히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알포이와 마법사들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멀쩡히 돌아가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 도와라. 계약 파기 당하기 싫으면 평소에도 잘하고. 크크큭.”
하지만, 마탑의 후계자로서 떠받들어지기만 하던 알포이는 지셀의 폭거를 참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귀족도 우리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소! 우리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는 말이오! 대우를!”
알포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하지만 지셀은 같잖다는 듯 한마디 툭 내뱉을 뿐이었다.
“너희는 그냥 예비용이야. 정확히는 보조 마력 같은 거지.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내는 거다. 그렇게 대우받고 싶으면 얌전히나 있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