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47)
647 – 이름이 뭐야? (1)
647화 이름이 뭐야? (1)
“도련님!”
벨린다가 비명을 지르며 지셀을 붙잡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당황했다.
철혈의 군주인 지셀이 업무를 하다가 쓰러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벨린다와 길리언이 즉시 지셀을 침실로 옮겼다. 곧 다른 사람들도 연락을 받고 몰려왔다.
파르니엘과 피오테가 지셀에게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제롬과 바네사도 마력으로 지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열심히 지셀을 살피던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이상이 없어…….”
“마나도 멀쩡해요.”
“신체에 어떠한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잠든 거 같은데요?”
지셀은 지금 정말 잠든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지셀 정도의 실력자가 아무 이상도 없는데 이렇게 깊이 잠들 리가 없었다.
지셀이 깨어나지 못했던 적은 크게 다쳐 정신을 잃었을 때밖에 없었다.
벨린다가 급히 다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크! 지금 도련님의 의식을 살펴…….”
벨린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나 이상해…… 뭔가…… 끌려가…….”
다크를 이루고 있는 마나가 흩어지고 있었다. 이건 시간이 오래 지나거나, 지셀이 직접 거두지 않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율리엔이 급하게 다크의 흩어지는 몸을 붙잡고 자신의 마나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스스스…….
다크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다크의 몸이 손끝에서 흩어지는 감각을 더듬으며 율리엔이 말했다.
“……강제로 끌려간 거 같군.”
그게 지셀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신성력과 마법을 써서 지셀을 몇 번이나 다시 깨우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깨우려고 때려도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그 성녀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잡아간 거야.”
벨린다가 서늘한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화가 나서 한 말이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곤히 잠들었어요.”
바네사가 지셀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정말로 지셀은 오랜만에 푹 자는 듯한, 무척이나 편한 얼굴이었다. 이러니 오히려 깨우면 안 될 거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가만히 지셀을 내려다보던 율리엔이 다른 의견을 내었다.
“에레네스에게 말해 봐야겠군.”
어쩌면 그녀가 뭔가 알지도 모른다. 사람을 보내자 잠시 후 에레네스가 찾아왔다.
율리엔은 에레네스에게 전후 사정을 대충 설명하고는 물었다.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나?”
“아니,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정말 성녀가 영향을 미친 것인가?”
에레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서 무엇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봉인일 뿐이다. 그곳은 영원히 그 상태로 있을 거다.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없어.”
“지셀이 그곳에 들어갔다 온 걸 모두가 봤다. 실제로 지셀은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을 우리에게 말해 줬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군.”
에레네스는 미간을 좁혔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착각으로 넘기기에는 본 사람들이 많았다.
봉인에 문제가 있으면 곤란했다. 그녀는 조만간 봉인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알아보도록 하지.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니까.”
율리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레네스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지셀을 살펴보던 에레네스가 허공에 살짝 손을 저으며 말했다.
“잠과 꿈의 정령들이여, 나의 부름을 들으라. 숨겨진 세계의 문을 열어 영원과 순간 사이를 넘나들어라.”
반짝이는 빛들이 나타나 그녀의 손 주위를 맴돌았다. 빛들은 빙글빙글 돌다가 지셀의 머릿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에레네스는 지금 정령을 이용해 지셀의 의식 속으로 침투해 보려는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지셀은 지금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르르륵…….
그녀가 눈을 감고 계속 지셀의 머리맡에서 손을 휘저었다.
다들 긴장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원인이라도 알아야 했다.
정령들을 이용해 지셀의 의식을 살피던 에레네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 지셀의 의식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마디로 영혼이 빠진 인형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곳에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사람들의 말처럼 장막 안에서 만난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뜻인가?
고민하던 에레네스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펜리스 공작 정도의 강자가 이렇게 의식을 뺏길 수는 없다.’
초인이 무엇인가. 자신만의 세계를 정립한 존재다. 그런 존재의 의식을 강제로 뺏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펜리스 공작이 스스로 의식을 비웠을 가능성이 더 컸다. 일반적인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에레네스는 다시 의식을 집중하며 힘을 끌어올렸다.
드드드드…….
주변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더욱더 많은 힘이 정령들에게 쏟아졌다.
그녀가 소환한 정령들이 지셀의 의식 아주 깊은 곳까지 침범했다.
‘찾았다.’
의식은 끝없이 방대한 우주와 같은 공간이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에레네스는 작은 빛을 발견했다. 저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펜리스 공작의 의식을 차지하고 있었다.
에레네스가 정령들과 자신의 의식을 강하게 연결했다. 그녀가 빛을 향해 다가갔다.
‘정체를 밝혀라.’
가까이 갈수록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저 빛은 지셀의 의식에 있을 수 없는 기운이었다.
‘신성력? 어째서 신성력이…….’
문득 얼마 전에 지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나는 이 목걸이를 얻은 뒤 꿈에서 성녀를 봤다. 천 년 전의 성녀인 거 같았어.
‘설마…… 정말로…….’
에레네스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힘을 더 끌어올려 정령과 연결된 의식을 키웠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빛은 형태를 바꾸며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이건…….’
검은 원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멀리 있지만 너무나도 거대하여 에레네스는 스스로가 개미보다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원의 가장자리에는 푸른빛과 보랏빛이 교차하며 춤을 추었다. 중심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어둠은 마치 영원한 심연처럼 느껴졌다.
검은 원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주변의 공간은 마치 물결치듯 일렁이고 있었다.
미세한 빛의 입자들이 검은 원의 주변을 떠다녔다. 그것은 마치 은하수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가끔 원의 중심부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걸 본 에레네스의 눈이 떨렸다.
‘도대체 저게 무슨…….’
에레네스가 원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의식이 저곳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깊은 어둠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비치는 듯했다.
‘가면 안 된다.’
가까이 가면 자신의 의식조차 저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이런 게 펜리스 공작의 의식 속에 생겨났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쩌엉!
갑자기 의식에 강렬한 충격을 받은 에레네스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코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 이게 무슨…….”
그런 그녀를 보고 모두가 놀랐다. 가장 먼저 벨린다가 에레네스를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에레네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레네스는 누구보다 강하다. 예전의 힘을 되찾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니. 도대체 지셀의 의식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길래 저런단 말인가?
“너…….”
에레네스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황급하게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율리엔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아, 아니다.”
“말해라.”
율리엔이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쥐었다.
옛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것은 존중했다.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언가를 숨기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에레네스가 율리엔을 노려보았다.
“지금 힘으로 나를 겁박하겠다는 뜻인가?”
“필요하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율리엔의 눈에 서서히 살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 결심하면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남자다. 설사 에레네스라 해도 계속 이런 식으로 굴면 정말 벨 생각이었다.
에레네스도 율리엔의 그런 각오를 확실하게 느꼈다.
“감히…….”
그녀의 눈에도 살기가 깃들었다. 세계수의 수호자이자 엘프들의 대족장이 힘으로 굴복할 존재로 보였던가?
두 사람의 기운이 서서히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피오테가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들며 외쳤다.
“왜! 도대체 대화로 해결할 줄 모르는 거예요!”
“…….”
“…….”
두 사람 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에레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르테리온이 죽은 뒤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걸 인정해야 했다.
“펜리스 공작의 의식은…… 없다.”
율리엔이 미간을 찌푸렸다.
“없다고?”
“그래, 나도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그의 의식 속에 신성력이 있었다.”
“신성력?”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셀이 성녀의 목걸이와 꿈에 관해서는 얘기해 줬지만, 신성력에 관한 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레네스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왜 신성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영향을 끼친 거 같다. 의식 안에 이상한 ‘문’ 같은 게 있었다.”
사람들은 에레네스가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이라니. 무슨 사람의 의식 속에 그런 게 있다는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에레네스는 자신이 본 걸 얘기해 주었다.
“아무래도 그곳에 펜리스 공작의 의식이 빨려 들어간 거 같다. 내가 말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에레네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도무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제대로 된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지셀의 의식이 정말 없어졌다는 것만 알게 됐을 뿐.
벨린다가 지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게 뭐야……. 전쟁도 승리하고 이제 편하게 살면 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마수의 숲에 가면 안 됐다. 그놈의 성녀인지 천 년 전의 전쟁인지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그런 거 없어도 이제 모든 일을 끝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더 말렸어야 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뒀더니 결국 큰 사고로 돌아왔다.
다른 이들도 침중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레네스가 가만히 지셀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의식이 없어진 인간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돌아갔다.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다들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율리엔은 한참 동안 지셀을 내려다보았다.
‘지셀…….’
언제나 밝고 활기찼던 친구가 초췌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그것도 급작스럽게 말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란 없다.
그 원인을 찾아내면 분명 지셀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혹시 가트로스라면…….’
그는 구원교를 이끄는 수장이다. 어쩌면 장막의 비밀이나 지셀의 상태에 관해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은 그자를 계속 가리키고 있었다. 율리엔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 *
“어?”
정신을 잃었던 지셀은 눈을 뜨고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분명 자신의 집무실에서 쓰러졌는데 전혀 못 보던 곳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젠장! 도망가!”
“무슨 애새끼들이 이렇게 강해!”
“으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무슨 산적들 소굴 같았다.
곳곳에 시체들도 널브러져 있었고 산채는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지셀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기 어디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지? 자는 동안 누가 옮겼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크게 외쳤다.
“아스티온! 뭐 해! 정신 차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지셀이 눈을 크게 떴다.
“너…….”
신비한 물결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푸른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지셀의 주변에 그런 머리카락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얼굴만은 지셀이 무척이나 잘 아는 사람과 닮았다.
“율리엔?”
꿈에서 본 용사, 율리엔이 앳된 모습으로 소리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