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48)
648 – 이름이 뭐야? (2)
648화 이름이 뭐야? (2)
“오…….”
지셀이 신기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녀가 이제 만난다고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나? 꿈속에서 지금 과거로 온 건가?
꿈에서 일방적으로 구경할 때와는 달랐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할 수도 있었다.
지셀이 재미있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러자 율리엔이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쟤 또 맛 갔어! 고장 났어!”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소녀가 울상을 지었다.
“뭐? 진짜? 왜 지금 그러는 건데!”
먼지 묻은 낡은 옷에 헝클어진 머리.
생김새만 본다면 그저 평범한 시골 소녀였다. 지나가는 사람 중 누구도 이 소녀를 두 번 돌아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저 소녀가 어떤 인물인지 알면 누구나 경배하며 무릎을 꿇을 것이다.
“성녀?”
지셀의 물음에 성녀가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쟤 왜 저래! 나보고 성녀래!”
성녀는 메이스를 들고 있었다. 지저분한 사제복을 입은 걸 보니 전투 사제인 것 같았다.
물론 파르니엘 같은 압도적인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일반적인 사제 정도의 존재감만 느껴졌다.
율리엔과 성녀 두 사람 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험상궂게 생기고 복장도 제멋대로인 걸 보니 산적들 같았다.
퍼억! 퍼억! 퍼억!
두 사람은 꽤 실력이 좋았다. 그들에게 덤벼드는 산적들이 족족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물론 꿈에서 본 것처럼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기사 정도의 힘이었다.
그 와중에도 지셀은 싸움 구경만 하며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이놈 죽어라!”
그때, 지셀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도끼를 휘둘렀다.
지셀의 몸이 바로 반응했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를 돌리며 산적의 턱을 후려쳤다.
퍼억!
덤벼들던 산적이 쓰러졌다. 율리엔이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너 갑자기 어떻게 한 거야?”
지셀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멍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 몸이…… 아니야?”
움직이면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미묘하게 거리감이 차이 났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손이 더 작다. 팔도 더 짧다. 다리도 더 짧다.
율리엔과 성녀도 앳되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다 컸는지 꿈에서 본 체형과 크게 차이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본래 몸보다 확연하게 작은 게 느껴졌다.
“이거 설마…….”
용사의 동료 중에, 매일 음침하고 우울한 표정만 짓던 소년이 하나 있었다. 가장 체구가 작았던 9서클 마법사.
그 생각에 이르자 지셀은 바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오우.”
과연 심장에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적어도 5서클은 되어 보였다.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거 같은데 벌써 5서클이라니, 정말 천재가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남의 몸에 들어온 건가?”
뒤섞여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꿈에서 성녀는 자신에게 용사와 대적자의 싸움을 보여 주고 물었다.
― 봤어?
― 너에게 도움이 됐을까? 꼭 도움이 될 거라고 들었는데.
― 나는 너를 잘 몰라. 하지만 내 마법사 친구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어.
― 미래에서 온 우리의 친구라고.
성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지셀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니…….
‘그 마법사 친구가 했다던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미래에서 와서 과거를 보고 있다.
마법사의 몸을 차지해 마음대로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대화까지 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걸 아는 마법사가 성녀에게 미리 말해 둔 게 분명했다.
미래의 자신이 도움 될 만한 장면을 볼 수 있게 말이다.
‘어쩌면 내가 전해 준 걸까?’
아직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성녀의 말을 토대로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우와, 이게 진짜 가능하다고?”
지셀이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뜯어보았다. 율리엔과 성녀는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율리엔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앗! 저기 도망간다! 두목이 도망가잖아!”
“으음?”
지셀이 고개를 돌렸다. 과연 누군가가 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속도가 꽤 빠른 걸 보니 실력이 제법이다. 산적 두목 주제에 기사급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니.
“쫓아가자! 놓치면 안 돼!”
율리엔이 크게 외치며 달렸다. 성녀도 율리엔을 따라갔다. 지셀도 일단 두 사람을 따라 달렸다.
지셀이 용병 생활을 오래 하며 다진 자세였다. 급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행동부터 하는 것.
그는 달리면서도 율리엔과 성녀를 보며 웃었다.
‘아직 어린 시절이라 그런가?’
딱 봐도 용사와 동료들이 아직 성장하기 전이었다. 그러니 저 정도도 못 따라잡는 것이다.
‘나이에 비해 강하긴 하지만…….’
꿈에서 본 압도적인 모습에 비하면 아무래도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너무 벌어졌어! 아스티온! 아무 마법이나 써 봐! 저놈 속도를 좀 늦춰 봐!”
율리엔이 지셀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셀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표정은 마치 아스티온이 누구냐는 묻는 듯했다.
같이 뛰던 성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스티온이 너야, 너.”
“아, 그래? 아, 그게 나야?”
성녀가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지셀은 달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마법을 어떻게 써야 할까?
아는 마법이 없었다. 마력이 있으면 무얼 하는가. 술식을 알아야 마법을 쓰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마력을 마나처럼 이용해 따라 할 수는 있지만 비효율적이었다. 그것보다는…….
잠깐 고민하던 지셀이 지팡이를 뒤로 당겼다. 전생에 제롬에게 배운 ‘마법’이 하나 있었다.
“한 번 써 볼까? 마법.”
지셀은 마력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고 있다. 다크의 힘도 마력에 가까웠고, 본인의 마나 연공법 또한 마법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력이 강제로 풀려나와 마나 연공법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손에 든 지팡이가 떨린다. 그의 마력은 지팡이가 아니라 팔과 손에 가득 몰려들었다.
곧 지셀이 지팡이를 힘차게 던졌다.
파아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지팡이가 산적 두목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커억!”
산적 두목은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며 넘어졌다. 제법 강한 놈인지 머리가 깨져 죽지는 않았다.
성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 뭐야? 그게 마법이야?”
지셀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답했다.
“아아…… 모르는가? 이건 ‘매직 미사일’이라는 건데…….”
전생의 제롬도 이렇게 둘러댔다.
산적 두목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달렸지만 그새 율리엔이 따라잡았다.
파악!
율리엔의 검이 산적 두목의 등을 베었다.
“크윽…….”
산적 두목이 몸을 돌리며 맞서 싸우려 했다. 하지만 율리엔의 검이 한발 빨랐다.
스각!
그의 검이 산적 두목의 목을 빠르게 스쳤다. 결국 산적 두목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휴…….”
율리엔이 땀을 닦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셀이 도착하자 율리엔이 차게 식은 눈빛으로 물었다.
“방금 그거…… 진짜 마법이야?”
“아아…… 상식을 벗어나면 뭐든 마법인 셈이지.”
“……너 지금 굉장히 이상한 거 알지?”
“그럼, 잘 알고 있지.”
“…….”
“그런데 너도 이상해.”
“내가? 왜?”
“그런 게 있어.”
율리엔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지셀이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그가 아는 율리엔은 이렇게 재미있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얼굴만 닮았고 성격은 안 닮았네.’
용사는 열정이 넘쳤다. 한없이 차가웠던 현실의 율리엔과는 정반대 성격이었다.
산적 두목이 죽은 걸 확인한 성녀가 옆에서 말했다.
“빨리 카일하고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지!”
율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에 있을 거야.”
율리엔이 앞장서서 가장 큰 건물을 향해 달렸다.
지셀이 따라가며 성녀에게 물었다.
“카일이 누구야?”
“카일이 카일이지, 누구냐니. 너 진짜 왜 그래?”
“으음…….”
지셀은 참 난감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 말하면 미친놈 취급받지 않을까?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이럴 때는 일단 적당히 묻어가면서 기회를 봐야 한다.
‘거참, 어릴 적으로 회귀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더 과거로 오다니. 그것도 남의 몸으로 말이야.’
다른 사람 몸에 들어온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긴 했다. 어쩌면 지금 일을 계기로 몸의 주인이 하나씩 이들에게 설명하게 되는지도 몰랐다.
지셀은 율리엔의 뒤를 쫓으며 생각했다.
‘분명 성녀는 처음에는 나를 모른다고 했단 말이지.’
마법사만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마법사에게 지셀이 누구인지 들었다던 성녀의 말을 생각하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나를 잘 안다고 했단 말이야.’
그게 지금 상황과 관계가 있는 걸까? 지금 지셀과 만나면서 미래의 성녀가 자신을 알게 된 걸까?
‘아, 머리 아파.’
지셀은 그냥 생각을 멈췄다. 이런 건 마법사들이나 고민할 문제였다.
자신이 할 일은 하나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알아보자.’
그러면 현실로 돌아가서 대적자를 찾기도 쉬워질 것이다. 혹시 다른 단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덤으로 에레네스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도 말이다.
‘앗차, 그런데 이거 언제 깨어나는 거지?’
계속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지셀은 바로 다크를 찾았다.
‘다크.’
― 주……인.
‘오, 너도 같이 왔네?’
다크가 자신의 의식 속에 있어서일까? 놀랍게도 다크는 이곳에서도 소통이 되었다.
― 크아아악! 머리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네! 뭐야! 여기 도대체 뭐야!
정신을 차린 다크가 호들갑을 떨었다. 지셀은 일단 무시하고 말했다.
‘지금 내 몸은 어떻지? 다른 사람들은 어때?’
‘몰라, 나도 갑자기 소멸되고 여기로 끌려왔어. 기다려 봐, 확인 좀 해 볼게.’
확인하러 간다던 다크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 주……인…….
그러다가 잠시 후, 아주 느릿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 푸학! 못 가겠어!
‘뭘 못가?’
― 확인하러 가려는데 갑자기 몸이 엄청나게 무거워져! 나갈 수가 없어! 엄청 느려져!
‘느려……진다고?’
― 그래! 시간이 달라! 여기랑 달라! 확실해!
‘아하.’
지셀은 금세 이해했다. 자신이 과거로 오긴 했지만, 사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분명 꿈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의식만 과거의 누군가에게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니 시간대도 다를 것이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있어도 되겠네.’
현실은 아주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도 괜찮을 것이다.
‘뭐, 알아서 잘 돌봐주고 있겠지.’
지셀은 쓰러져 있을 자신의 몸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는 대륙 최강의 괴물들이 몰려 있다. 그들이 자신을 잘 지켜 줄 것이다.
‘그러면 진실 찾기 여행을 좀 해 볼까?’
지셀이 씨익 웃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그는 제법 태평했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 그는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돌파하기를 더 즐긴다.
율리엔을 따라가던 중, 지셀이 성녀에게 물었다.
“저기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일단 다들 친구들 같아 보이니 지셀은 편하게 말했다. 그러자 성녀가 혀를 차며 답했다.
“왜 자꾸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아니면 연기를 하는 거야?”
“아…… 그게 사정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얘기해 줄게.”
어차피 이 몸의 주인이 알아서 잘 설명할 것이다.
성녀는 뭐라 타박할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본 지셀이 또 웃었다.
더 안 따지고 저 정도로 넘어가는 걸 보니 평소에도 이 마법사는 좀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성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데네브잖아. 데네브.”
그 이름을 들은 지셀이 순간 입을 떡 벌렸다.
그거…… 아주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그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화장품?”
대륙 최고의 히트 상품에 붙인 이름이 바로 성녀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