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51)
651 – 내 말만 들으면 돼. (3)
651화 내 말만 들으면 돼. (3)
아스티온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 이, 이 미친놈들은 뭐야!
― 뭐긴! 이 몸의 새로운 주인들이지!
― 다, 닥쳐! 이건 내 몸이야!
― 네 몸 아니라구우우우우!
깐족대기로는 영지에서 클포이와 자웅을 겨루는 다크다. 다크는 계속 아스티온을 놀려 댔다.
지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너무나 시끄러웠다.
‘다크, 조용히 좀 해 봐. 네가 아스티온이야?’
― 그래, 이건 내 몸이야! 어떻게 내 허락도 없이 몸을 차지한 거야!
‘몰라. 그냥 되던데?’
― 으으으…….
아스티온은 황당해서 말을 잃었다.
산적과의 전투 중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세상에 퍼진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다른 존재가 몸을 차지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그 상황을 보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꼈을 뿐이었다.
다른 존재들은 조언자 역할만 할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몸을 뺏은 적은 없었다.
― 조, 좋아. 너 누구야?
‘나? 나는 지셀 페르디움, 루타니아의 대공이자 북부의 지배자…….’
지셀이 거창하게 자기소개를 해 주었다. 하지만 아스티온은 지셀의 말을 듣고 나서도 의구심을 놓지 못했다.
― 그게 어딘데? 그런 왕국은 없어. 도대체 얼마나 옛날에서 온 거야?
‘옛날이 아니라 미래에서 왔어.’
― 미, 미래에서 왔다고? 그게 가능해?
‘내가 온 거 보면 되겠지? 아무튼 미래에서 온 건 맞아.’
― …….
아스티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미래의 존재가 몸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믿지는 않았다. 지셀이라는 자와 붙어 있는 이상한 검은 놈을 보면, 지셀도 미친 자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스티온에게 빙의한 존재들 중에는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 더 많았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 망령이 되어 떠도는 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곧 서늘한 아스티온의 목소리가 울렸다.
― 안 되겠어. 너희는 이상한 존재야
이 몸의 진짜 주인은 아스티온이다. 그는 오랜 시간 수련한 결과 빙의자를 쫓아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정신 지배로 들어온 게 아닌 이상, 아스티온이 원하지 않는 존재는 몸의 주인인 그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었다.
― 이제 내 몸에서 나가.
아스티온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시 몸의 통제권을 찾을 것이다.
‘……흠.’
― 뭐, 뭐야? 왜 안 쫓아지지?
‘뭐가 잘 안됐나 봐? 도와줘?’
― 이, 이건 내 몸인데? 이런 적이 없는데? 나가! 나가라고!
당황한 아스티온을 향해 다크가 다시 깐족거렸다.
― 이제 네 몸 아니라니까.
― 으, 으아아악!
아스티온의 비명이 마구 울렸다. 지셀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단 그를 진정시켰다.
‘너무 놀라지 마.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분간은 함께 지내자고.’
― 뭘 함께 지내!
‘그러면 어떻게 해. 안 나가지는데.’
지셀은 천하태평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결국 현실 세계에서 깨어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스티온은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 안 돼. 내가, 내가 저 친구들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거 내가 하면 안 되는 거야?’
― 네가 뭘 알아! 나한테는 다 계획이 있었단 말이야!
‘오…… 나도 그런 거 좋아해. 나한테도 다 계획이 있거든.’
― 저 친구들은 세상을 구할 친구들이야! 쓸데없는 짓 하지 않고 옳은 길로 가게 이끌어야 한다고!
그 말에 지셀이 멈칫했다. 그건 미래의 일이다. 그걸 어떻게 아스티온이 알고 있을까?
지셀이 가만히 고민하다가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쟤네들이 세상을 구할 사람들인지.’
― 내가 그걸 왜 얘기해 줘야 하지?
‘말 안 해 주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 …….
아스티온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몸이 인질(?)로 잡혀 버렸다.
기본적으로 빙의자들은 성격이 괴팍하다. 정신체만 남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괜히 해 보라고 뻗댔다가 진짜 뛰어내리면 아스티온만 손해였다.
― ……어릴 때 위대한 예언자가 내 몸에 들어온 적이 있어. 그가 말해 준 거야.
‘그런 걸 믿어?’
― 나도 처음에는 안 믿었어. 하지만 진짜야. 그는 많은 미래를 맞혔어.
‘어떤 걸 맞췄는데? 내가 믿고 이해할 수 있는 예언이 있어?’
― 쟤네들이 다 빚쟁이가 된다는 거.
‘…….’
― 조, 좋아. 우습게 생각하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건 시련 중 하나일 뿐이야.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되려면 여러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거야. 그가 분명 그렇게 말했어.
빚이 있으면 고통스럽기야 하지만…… 용사의 시련치고는 참으로 조악하다.
그리고 저런 가난한 마을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빚쟁이가 된다. 그건 무척 흔한 일이었다.
지셀 자신이 찍어도 이 정도는 맞출 것이다.
용사 일행이 빚쟁이가 된다는 말만으로 그자가 예언자였다고 믿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흐.’
― 비웃지 마! 그리고 나는 친구들을 올바르게 이끌 길잡이로 선택된 사람이야!
지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은 결과를 알고 있으니 저 말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몰랐다면 참으로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셀이 아스티온과 대화를 하느라 멍하게 있자, 율리엔이 말을 걸었다.
“아스티온, 왜 그래? 정신 차렸어?”
아스티온은 빙의자들과 얘기할 때 자주 이런 모습을 보였다. 율리엔은 혹시 원래 정신이 돌아왔나 기대를 품었다.
지셀은 마구 머리를 젓고는 답했다.
“아, 네 친구랑 얘기 좀 했어.”
“아스티온이랑?”
“응.”
“뭐, 뭐래? 지금 왜 그런 거래?”
“왜 그런지는 걔도 잘 모르는 거 같고. 아무튼 나한테 너희들을 잘 부탁한다고 했어.”
“그, 그래?”
율리엔이 의심 어린 눈빛을 슬쩍 내비쳤다.
아스티온은 언제나 음침하고 말이 별로 없는 친구였다. 그렇기에 살갑게 얘기하지도 않는다.
항상 필요한 말만 하고 혼잣말이나 중얼거릴 뿐이었지.
율리엔이 의심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희들을 빨리 성장시켜야 한다고,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올바르게 잘 이끌어 달래.”
― 내가 언제!
아스티온이 발광했지만 지셀은 무시했다. 율리엔과 친구들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율리엔이 다시 물었다.
“정말 아스티온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다니까. 너희들이 빚쟁이 된 것도 시련 중의 하나라는 얘기도 들었어.”
“아…….”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세 사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스티온과 대화를 한 거 같았다.
카일이 신기하다는 듯 데네브에게 말했다.
“의식 속에서 빙의자랑 대화하는 아스티온은 말이 많나 봐.”
“그러게. 우리를 올바르게 이끌어 달라는 말까지 하다니. 아스티온이 그런 말도 할 줄은 몰랐어.”
실상은 지금 지셀과 다크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 말이 많아진 것이지만, 순진한 친구들이 진실을 알 리가 없었다.
의심을 조금 덜긴 했지만, 세 친구는 여전히 아스티온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지우지 않았다. 다들 지셀의 말을 절반 정도만 믿고 있었다.
그래도 지셀이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설득되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어서일까?
지셀이 아스티온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도와주기로 했으니 들어나 보자.’
― 어떻게 하긴. 저 친구들이 빨리 강해질 수 있도록 인도해야지.
‘그러니까 다음엔 뭘 하기로 했었냐고. 산적 토벌?’
― 그, 그건 아직…….
아스티온은 난감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몇 가지 생각해 둔 방법은 있지만, 일행의 실력으로는 아직 무리였다.
자신에게 여러 지식을 주던 자들은 단계별로 목표를 지정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 줄 뿐이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건 아스티온의 일이었다.
― 지, 지금은 떠돌아다니면서 수련을 하려고 했지. 조금 더 강해져야 하거든.
‘그러니까 어쨌든 강해져야 한다는 거잖아.’
― 그, 그래.
‘알았어, 당분간 나한테 맡겨.’
― 내, 내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 당분간 나랑 상의하면서 지내자고. 쟤들한테 알려 줄 게 있으면 나를 통해서 알려 주면 되잖아.’
― 으으으…… 누구 마음대로…….
아스티온은 이를 갈았다. 몸까지 뺏겼는데 지식까지 내놓으라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단은 몸을 되찾을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 이, 이상한 짓 안 할 거지?
‘무슨 이상한 짓?’
― 뭐든지. 내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면 안 돼. 빨리 강해져야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니까. 수련은 내 전문이야. 너도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 우, 웃기지 마. 당분간만 몸을 맡기는 거야. 내가 금방 다시 돌려받고 말 테니까.
‘그래라.’
실제로 지셀은 아쉬울 게 없었다. 지셀의 태평스러운 대답에 아스티온만 씩씩거렸다.
아스티온은 불안해하면서도 지셀의 실력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다. 몽롱한 상태에서 봤을 때도 엄청난 실력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그러면…… 정말 잠깐만 쉬었다 올 거야…….
아스티온은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잠들었다. 씩씩거렸던 것 치고는 뭔가 편안한 목소리였다.
마치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 * *
“허억, 헉…….”
숨을 헐떡이며 절벽을 오르던 율리엔이 물었다.
“이, 이게 정말 효과가 있어?”
옆에서 같이 오르던 지셀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래. 어우…… 이 몸 왜 이렇게 약해.”
지금 이들은 산적 소굴을 습격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것도 절벽에 매달려서 말이다.
이번 목표는 작은 남작령에서 활동하는 산적 무리였다. 그들의 산채는 절벽을 끼고 세워져 있기에 영지군도 섣불리 토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산적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주변에서 날뛰고 있었다.
몇 번이나 토벌에 실패한 영지군은 결국 적당한 선에서 산적들과 합의했다.
놀랍게도 산적들에게서 세금을 받는 대신, 주변 여행객과 마을을 습격하는 산적들을 내버려두기로 한 것이다.
율리엔은 그 사실을 알고 분개했다.
“영지민들을 지켜야 하는 영주가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용서할 수 없어!”
“용서 안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카일의 말에 데네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리고 힘없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지 않았다.
데네브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스티온,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 다른 영주들한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잖아. 마을 사람들한테 같이 싸우러 가자고 할 수도 없고.”
“지셀이라고 불러.”
“……그래, 지셀.”
지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해결 방안을 말해 주었다.
“산적들을 없애면 되지. 그러려고 왔잖아?”
“그런데 100명이 넘는걸. 기사급 인물들도 많다고 하잖아.”
지셀은 이 시대에 와서 놀란 점이 하나 있었다. 산적들 중에도 기사급 실력자가 흔하다는 점이었다.
꿈에서 봤던 대로 병사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무척이나 높았다. 끊임없이 마경과 싸우며 강해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규군 출신 병사와 기사들이 산적들의 주축을 이루었다. 끝없는 전쟁과 탐욕스러운 귀족들 때문에 탈주한 자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 시대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난세였다.
지셀은 그런 얘기들을 들으며 의문에 빠졌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었던 거지?’
꿈에서 본 인류 연합은 강했다. 강력한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기에 대적자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군대를 조직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으음, 율리엔과 데네브 덕분인가?’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꿈에서는 두 사람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 순박한 지금의 두 사람을 보면 또 그런 일을 해내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리 두 사람이 뛰어나도 인류를 하나로 묶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래곤이라면 가능할지도.’
드래곤들도 전쟁에 함께했었다. 그들이 나섰다면 연합을 꾸리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
조금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수련이 우선이었다.
“괜찮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나만 믿으라고. 내 말만 들으면 된다니까?”
지셀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고 일행을 절벽으로 이끌었다. 절벽을 올라 기습을 한다는 작전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모두는 절벽을 다 오르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데네브와 카일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셀! 싸우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지겠어!”
“이 상태로 싸우면 우리가 죽을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지셀은 열심히 절벽을 올랐다.
“원래…… 한계까지 힘을 쏟아 내면서 싸워야……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실력이 빨리 늘어나는 법이야. 그냥…… 올라가.”
지셀 또한 지금 죽을 맛이었다. 공부만 한 아스티온의 신체 능력은 정말 저질이었다.
네 사람은 마나와 신성력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며 절벽을 올랐다. 막상 싸울 때 기운이 부족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산채 뒤편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으어어!”
네 사람은 땅을 밟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새끼들 뭐야!”
“어떻게 올라온 거야!”
“당장 잡아!”
경계를 서던 산적들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지셀이 지팡이로 땅을 짚고 부들거리며 일어섰다.
“일어나……. 기습…… 시작이다.”
세 사람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힘만 잔뜩 뺀, 전혀 의미 없는 기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