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53)
653 – 내가 싸우는 걸 잘 봐. (2)
653화 내가 싸우는 걸 잘 봐. (2)
카앙!
절체절명의 순간, 산적 두목의 검을 지셀이 지팡이로 막아 세웠다.
지셀이 주춤거리는 율리엔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끝날 때까지는 방심하면 안 되지. 잊지 말라고.”
율리엔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괜찮아. 나중에는 엄청 냉철해지니까. 방심 따위는 좁쌀만큼도 안 하는 그런 남자가 되지.”
“내, 내가?”
“그럼. 아마도?”
아직은 얼굴만 같고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지셀은 눈앞의 용사가 현실의 율리엔으로 환생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율리엔은 그냥 미래에 자신이 그렇게 성장하나 보다 짐작하고 넘어갔다. 지셀이 미래에서 왔다고 말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 미래가 천 년 뒤라는 걸 모를 뿐이었다.
“이놈!”
산적 두목이 분노하며 지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지셀은 슬쩍 피하며 말을 이었다.
“다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
퍼억!
지셀이 지팡이로 산적 두목의 무릎을 후려쳤다. 산적 두목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셀은 잽싸게 산적 두목을 따라가며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지팡이가 산적 두목의 몸 여기저기를 때렸다.
퍼억! 퍼억! 퍼억!
“모든 무기는 그 특성에 따라 다루는 방법이 다르지.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무기든 결국 근본은 같아.”
산적 두목의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지셀은 멈추지 않고 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무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내 몸의 연장선, 내 신체의 일부분인 거지.”
퍼억! 퍼억! 퍼억!
“큭, 크윽 그, 그만…….”
산적 두목은 이제 무기도 놓치고 얻어맞고만 있었다. 차라리 쓰러지고 싶은데 이상하게 쓰러질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지셀의 움직임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켜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무기를 다루는 진정한 기술은 단순히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일체감’을 느끼는 거야. 무기와 내가 서로를 알고, 함께 호흡하고, 서로 보완하며 움직이는 거지.”
퍼억! 퍼억! 퍼억!
지팡이는 어느새 채찍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로 채찍이 아님에도 뱀처럼 상대의 몸을 타고 올라 타격하고 있던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기술이었다. 다들 넋이 나간 채 그 모습을 구경했다.
“마치 한 몸처럼. 무기의 무게, 균형, 진동까지 감각으로 느껴야 해.”
퍼억! 퍼억! 퍼억!
산적 두목은 어느새 정신을 잃었지만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
쓰러지려고 하면 지팡이가 날아들어 세웠다. 세 사람이 보기에는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무기의 성질을 이해하고 호흡을 맞춰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과의 경계가 사라져. 더 이상 다른 물건이 아니라 내 신체의 일부가 되는 거지.”
퍼어억!
큰 소리와 함께 산적 두목의 머리가 깨지고 몸이 땅에 쓰러졌다.
지셀이 지팡이를 거두며 싱긋 웃었다.
“무기를 진정으로 다룬다는 건 이런 뜻이야. 모두 잘 알겠지?”
세 사람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단번에 익히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지셀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까지 직접 보니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대,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나도 가르쳐 줘!”
세 사람의 말에 지셀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군. 이렇게 하나씩 배워 가면 되는 거야. 어때? 기습도 할 만하지?”
세 사람은 다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기긴 이겼다. 대부분은 지셀이 다 잡았지만 말이다.
율리엔이 여전히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싸울 때와는 뭔가 조금 다르긴 달랐다.
항상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단번에 모든 힘을 쏟아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게…… 기습…….’
전혀 아니다. 율리엔은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것이 확실해지자마자 세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만큼 많은 힘을 쓰고 긴장해서 지쳤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하는 세 사람을 보며 지셀이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긴 하네. 재능은 분명 뛰어나지만…….’
지셀은 세 사람이 익힌 기술과 마나 연공법을 요 며칠간 살펴보았다.
그들이 익힌 기술은 아스티온의 신비한 능력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라고 했다.
아스티온의 몸에 들어왔던 빙의자들은 오랜 시간 머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빙의자들은 자신이 아는 지식만 알려 주고 떠났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기술인지 연구하고 익히는 건 네 사람의 몫이었다.
‘스스로 익힌 것도 대단하긴 한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스승이 없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기술을 익혔다.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몸으로 시험하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술을 익힐 기회 자체가 극히 드물 테니까.
하지만 지셀이 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 상태로는 꿈에서 본 경지까지 성장하기는 무리였다.
‘용사 일행이 원래 쓰던 기술과 마나 연공법이 아니야.’
지셀은 그들이 쓰던 기술과 마나 연공법을 알고 있다. 그걸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사 일행과 함께하게 되었을 때 잘됐다 싶었다. 자신이 아는 정보를 토대로 계속 봐주면서 빠르게 발전시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은 전혀 엉뚱한 검술과 마나 연공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 써야 하는 것보다 현저하게 수준이 낮은 것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지셀이 조금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다른 기연이라도 있었나? 지금 가진 기술과 마나 연공법으로는 잘해 봤자 초인이 한계일 거 같은데…….’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고 살아남아 깨달음을 얻었다면 초인을 뛰어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없던 기술이 갑자기 생겨날 수는 없었다.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든, 아니면 아스티온의 몸에 대단한 빙의자가 들어와서 알려 주든,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했다.
‘어느 쪽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네.’
그간 이들이 잘못 이해한 내용이나 안 좋은 버릇이 있는지만 봐주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실전을 통해 확신했다.
지금 저들이 알고 있는 기술을 써서는 빠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걸.
잠깐 고민하던 지셀이 결국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익힐 건데 조금 더 빨리 익혀도 되잖아?’
처음에는 적당히 틀린 부분이나 지적하며 실전 경험이나 쌓게 하려고 했다. 어차피 미래가 정해져 있으니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이들이 강해질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들 지셀이 알던 것과는 다른 기술을 익히고 있다. 답답함을 느낀 지셀은 검술과 마나 연공법도 당장 바꿔 가르치기로 했다.
“자, 앞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새로운 마나 연공법과 기술을 알려 줄 거야.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실전 경험을 쌓아 보자고.”
일단 결정을 내린 이상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편하게 익히면 그만큼 강해지는 시기도 늦어진다. 지금보다 더 강도 높게 몰아붙여야 한다.
‘다음에도 기습 실패해야겠다.’
세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려고 일부러 힘을 빼고 전투를 벌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었다.
지셀의 말에 세 사람은 기대 반, 떨떠름한 마음 반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지셀의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실력에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거 같았다.
지금도 상당히 위험하고 아슬아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반대를 못 하겠어.’
‘반대하면 저 지팡이가 이쪽으로 날아올 거 같아.’
‘쟤 좀 이상해. 다른 빙의자들하고 달라. 너무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야.’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는 게 전부였다.
잠깐 휴식을 취한 이들은 산채를 둘러보고 창고 건물을 찾았다.
그리고 창고 안을 확인한 세 사람은 입을 쩍 벌렸다.
“우, 우와아…….”
“엄청 많잖아?”
“이, 이게 다 우리 거야?”
작은 영지라지만 한 영지의 주인이 타협해야 할 정도로 강한 산적단이었다. 창고에는 엄청난 양의 재물이 쌓여 있었다.
금이나 보석 말고도 식량과 가죽, 약초 등 돈이 되거나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많았다.
만약 이걸 다 가진다면 어딜 가든 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터였다.
“이, 이거 정말 우리가 다 가져도 되는 거야?”
카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정도 재산은 영주나 큰 귀족들만이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율리엔과 데네브도 침을 꿀꺽 삼켰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세 사람은 이 정도로 많은 재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있었다.
“에계? 이거밖에 없어? 이거 완전 거지들 아냐? 소문만 요란했지 먹을 거 없네.”
“…….”
기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많은 재물을 보고도 실망하다니.
세 사람은 지셀을 힐끔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지셀은 돈이 얼마나 많았던 걸까?’
‘칭호가 엄청 많았어. 큰 저택에서 살았겠지? 분명 정원도 있었을 거야.’
‘어쩌면 10년 정도는 먹고 놀아도 될 만큼 돈이 많았을 수도 있어.’
시골 출신인 세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는 고작 그 정도였다.
지셀은 실망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물은 네 사람이 차지하기엔 많은 양이었다. 너무 많아서 낡은 배낭에 가득 채워도 다 못 챙길 정도였다.
챙긴 양보다 남은 양이 훨씬 많으니 참으로 곤란했다.
지셀이 대충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이 주변에 묻어서 숨겨 놨다가 나중에 가져가자.”
근거지를 마련하거나 여력이 생기면 그때 다시 챙겨 오면 된다. 용병 시절에는 남은 물건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카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율리엔이 다른 의견을 내었다.
“나눠 주자.”
“뭐?”
“어차피 이 물건들은 주변 마을 사람들한테서 뺏은 거잖아. 우리가 쓸 만큼은 챙겼으니까 남은 건 인근 마을에 나눠 주자.”
데네브도 율리엔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 우리가 챙긴 것만으로도 몇 달은 편하게 지낼 수 있어.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하니까 그게 나을 거 같아.”
그 말에 카일이 발끈했다.
“야!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데! 우리가 부자야? 우리 빚쟁이야! 여기 있는 것만 다 챙겨도 빚 갚고 편하게 지낼 수 있어!”
카일은 환장할 거 같았다. 율리엔과 데네브는 항상 저런 식이었다. 제 몫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못 나눠 줘서 안달이었다.
아니, 데네브야 사제니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거지 중의 거지이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율리엔이 왜 저런다는 말인가!
“정신 차려! 너 빚쟁이라고! 매번 상단에서 우리 위치 추적하고 있는 거 몰라?”
이들은 큰 상인 길드나 용병 길드가 있는 도시에 들르면 자신들의 위치를 보고해야 했다. 그게 바로 상단과 한 약속이었다.
만약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으면 상단에서는 자신들이 도망쳤다고 판단하고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율리엔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게 아니잖아.”
“우리가 정당하게 뺏었으니 우리 거지!”
“원래는 주인이 있는 것들이야. 우리가 힘쓴 대가는 이 정도면 충분해.”
율리엔은 말을 하면서도 힐끗 지셀의 눈치를 보았다. 실상 지셀이 거의 다 산적들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셀의 동의가 필요하긴 했다.
“……어떻게 생각해?”
재미있는 공연 보듯 구경하던 지셀은 질문을 받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다른 이였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면서 일단 다 챙겼을 것이다. 한 대 때려 주는 건 덤이다.
겨우 한 번 돈을 나눠 줘서는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도우려면 아예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했다. 지셀은 항상 그렇게 해 왔다.
‘이번에는 조금 어렵네.’
세 사람에게 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세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니까.
바꾸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지셀이 강제로 끌고 간다고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꾸는 게 옳은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흐음, 어찌하는 게 좋으려나.’
율리엔과 데네브의 심성이 바뀌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용사와 성녀가 된 것은 분명 그만한 심성과 자격을 갖췄기 때문일 테니까.
아직 이 시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지셀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당분간은 그게 맞겠지.’
회귀 후 영지를 살리겠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오히려 현실의 대적자와 싸우기 위한 정보를 얻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 시대에 개입하더라도 방관자에 가까운 정도로만 행동해야 했다.
“좋아, 이번은 율리엔 뜻대로 해.”
그 말에 율리엔과 데네브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일은 애꿎은 바닥을 발로 차며 성을 내었다.
“아오, 진짜! 그 돈이면 그냥 빚 갚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살아도 되는데!”
아스티온이 있었다면 자신의 편을 들어 줬을 것이다. 지셀도 돈을 구한다길래 그럴 줄 알았는데 여기서 손을 뗄 줄이야.
참새 크기의 다크가 투덜거리는 카일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네 말에 동의해. 쟤네들은 좀 모자란 애들 같아. 아마 어릴 때 머리를 크게 다쳤겠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저런 호구 같은 애들이 있어야 돈 버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너 나랑 의외로 마음이 잘 통하네.”
“벌써 친한 척하지 마라. 내가 있던 곳이었으면 넌 감히 나한테 말도 못 건다. 눈도 못 마주치지.”
“…….”
카일은 다크가 무척이나 신분이 높은 참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귀족 새가 편을 들어 주니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다.
일행은 바로 짐을 챙겨 인근 마을로 갔다. 빨리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산적들을 처치했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