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54)
654 – 내가 싸우는 걸 잘 봐. (3)
654화 내가 싸우는 걸 잘 봐. (3)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웬 거지 같은 놈들이 찾아와 그런 말을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제 막 성인이 된 애들 같은데…….’
‘정말 그 악독한 놈들을 다 처치했다고?’
‘그리고 재물을 나눠 준다고? 왜? 혼자 다 가져야 정상 아니야?’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요즘같이 힘든 세상에 재물을 나눠 주는 모험가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자신들을 유인해 해를 끼칠 거라 믿었다. 사제인 데네브도 가짜라고 생각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율리엔은 챙겨 온 재물들을 보여 주며 설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반신반의하며 촌장을 불러왔다. 촌장의 명으로 몇 사람이 일행을 따라가서 산채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 모습에 카일은 더 입을 삐죽댔다. 재물을 준다고 해도 저 모양으로 고깝게 구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피해를 본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거예요.”
율리엔은 그렇게 말하고 인근의 다른 마을도 찾아갔다. 그렇게 들른 마을이 총 네 군데였다.
다들 믿지 못하고 몇 명만 율리엔에게 딸려 보냈다.
조심스럽게 일행을 따라온 사람들은 정말 산적들이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저, 정말이네?”
“진짜 그러면 재물을 나눠 준다는 거야?”
“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어느 마을에 사는지는 상관없이 사람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창고까지 확인하자 그들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우, 우와아아!”
“엄청나잖아?”
“이, 이걸 정말 우리한테 다 준다는 말입니까?”
율리엔과 데네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피해를 봤을 테니 나눠 가지세요.”
그 말에 사람들은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흉한 놈들을 이렇게 없애 주시다니.”
“여신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
사람들의 감사 인사에 율리엔과 데네브가 미소 지었다. 이 모습이야말로 두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다.
카일만 불만 어린 표정으로 계속 투덜거릴 뿐이었다.
“어휴, 멍청한 놈들.”
그래도 어쩌랴. 저런 친구들이라서 자신도 저들을 좋아하고 믿게 되지 않았는가.
카일은 제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다크와 함께 친구들을 흉보며 쓰린 속을 풀었다.
사람들은 신이 나서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짐을 옮길 사람들을 잔뜩 끌고 왔다.
다들 의욕이 넘쳐서 지게를 짊어지고 올라왔다. 그들도 창고 안을 확인하고는 환호를 내지르며 연신 네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원수 같은 놈들을 없애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재물을 얻은 것도 기쁘지만, 그들에게 가장 기쁜 일은 산적들이 없어진 것이었다.
영주도 이놈들을 잡지 못해 내버려뒀었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도 터전을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영주가 이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죽지 못해 살고 있었는데 산적들이 없어졌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율리엔과 데네브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을 도우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 좋게 끝날 것 같던 분위기는 서서히 날카로워졌다.
“아니, 우리 마을 피해가 더 컸잖아!”
“무슨 소리야! 네놈들 마을은 돈이며 음식이며 알아서 바치면서 살았잖아!”
“네놈들이 우리 마을부터 털어 가라고 음해한 거 모를 줄 알아?”
어느새 사람들은 마을별로 모여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재물을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 와중에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깎아내리며 싸우고 있었다. 딱 봐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각 마을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어떻게든 산적들을 다른 마을로 보내려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감정이 지금 폭발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죽으려고!”
“어쭈? 우리는 뭐 힘없는 줄 알아?”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쥐어 들었다. 산적들의 무기를 주워 오는 자들도 있었다.
산적들이 건재할 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살더니, 산적들이 없어지니 재물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우려는 것이다.
“어, 어?”
그 모습을 본 율리엔과 데네브가 당황했다.
지금껏 그들은 이런 일을 겪지 못했다. 재물을 얻으면 그냥 인근 마을에 나눠 주고 끝났으니까. 이렇게 서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몰려온 적은 없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율리엔이 어떻게 하냐는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지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런 일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자기네들끼리 싸우겠다는데.”
만약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지셀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사람들이 저렇게 싸울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일의 주체는 율리엔과 데네브다. 그래서 지셀은 그저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싸우려 하자 데네브가 먼저 나섰다.
“그만 하세요! 이제 산적들도 없어졌는데 왜 서로 싸우려고 하세요! 사이 좋게 나눠 가지면 되잖아요! 부족하면 제 걸 드릴게요!”
쿵.
데네브는 자신의 배낭을 꺼내 앞에다 놓았다. 카일은 이마를 짚었고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낭에 가득 찬 재물도 그 양이 적지 않았다. 저것만 챙겨도 몇 달은 풍족하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지셀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하여튼 성녀답네.’
자신의 것을 나눠 주는데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다. 그야말로 희생하려고 태어난 존재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네.’
지셀이 힐끗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점점 큰 탐욕으로 물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저 배낭까지 가져가려고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그들의 시선이 율리엔과 카일, 지셀에까지 이르렀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계속 눈짓했다.
산적들을 잡았다곤 하지만 수도 적고 어려 보인다. 행색도 지저분하고 옷이 군데군데 찢어진 걸 보니 상처도 꽤 입은 거 같았다.
겉보기에는 산적들보다 무섭지 않았다. 왠지 이 인원이 한꺼번에 덤비면 이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위기를 가장 먼저 카일이 눈치챘다.
“이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이…….”
카일이 검을 뽑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 깊은 산 속에 여행자 몇 명 묻어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도, 오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눈치를 보며 가능성을 엿볼 뿐이었다.
그 역겨운 모습에 지셀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용사와 성녀가 됐을까?’
지금은 난세다. 어찌 보면 지셀이 있던 현실보다 더 힘든 시기라 할 수 있었다.
마경과의 오랜 싸움으로 모두가 지쳐 있었다. 오죽했으면 기사들마저 산적 짓을 하겠는가.
한낱 마을 사람들까지도 자신을 구해 준 사람들에게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 율리엔과 데네브는 앞으로 이런 추악한 면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선행을 하기란 쉽지 않다. 저 두 사람이 어떻게 ‘빛’이 될 수 있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데네브도 분위기를 눈치채고 말했다.
“지금…… 왜 그러시는 거예요? 설마 우리를?”
마을 사람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선동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무기를 휘두를 것이다.
그들은 가장 앞에 나와 있는 데네브를 계속 주시했다.
일행 중 유일한 여자였다. 복장만 보면 사제인 듯하지만 오히려 그거야말로 약하다는 증거였다. 제대로 된 사제였다면 신전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인질로 잡는다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눈짓하며 움찔거렸다. 단숨에 몰려들면 데네브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지, 지금 무슨…….”
데네브 또한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뒤로 물러난다면 사람들이 동시에 덤벼들 것이다.
누가 봐도 데네브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카일이 바로 튀어 나가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그때, 무척이나 서늘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세요.”
절묘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움찔하며 움직일 시기를 놓쳤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율리엔이 홀로 움직였다.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마을 사람들 앞까지 걸어간 율리엔이 데네브의 몸을 가리며 앞에 섰다.
그러고는 검을 꺼내 바닥에 휘둘렀다.
가가각!
대지에 긴 선이 그려졌다.
율리엔이 차가운 눈빛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허락 없이…… 이 선을 넘어오면 죽을 겁니다.”
지셀이 눈썹을 슬쩍 치켜올리며 속으로 감탄했다.
이제야 현실의 율리엔과 비슷한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굴 줄 안다는 건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저 정도로는 조금 부족했다.
지셀의 예상대로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쪽도 기세를 탔기에 저 정도 협박으로는 쉬이 꺾이지 않을 것이다.
묘한 대치가 계속되었다.
‘우습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
힘을 보여 주지 않았으니 어리고 상처 입은 일행들이 약하게만 보일 터였다.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면…… 악역은 내가 해 볼까?’
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갑자기 지셀이 움직였다.
저벅, 저벅.
오직 지셀의 발걸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지셀에게로 향했다.
지셀은 가장 앞에 있는 사내를 향해 씨익 웃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뭐, 뭡니까?”
사내가 고개를 뒤로 빼고 물었다. 하지만 지셀은 대답 없이 그냥 지팡이를 휘둘렀다.
빠악!
“커헉!”
갑작스럽게 얻어맞은 사내가 땅에 쓰러졌다. 지셀은 쓰러진 사내의 다리를 향해 지팡이를 내리꽂았다.
빠각!
“끄아아아악!”
다리가 박살 난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지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옆에 있는 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빠악!
“어억!”
순식간에 두 명이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쳤다.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서 무작정 공격하는 지셀의 기세에 겁을 먹은 것이다.
지셀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사람들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를 뿐이었다.
빠악! 빠악!
“으어어억!”
순식간에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쓰러졌다. 완전히 겁을 먹은 사람들이 바닥에 바로 엎드렸다.
“살려 주십시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의 기세는 순식간에 꺾였다. 이들이 마음먹고 움직이는 지셀을 감당할 리가 없었다.
지셀이 아무런 말도 없이 다음 사람을 치려고 할 때, 데네브가 달려와 막았다.
“그만, 그만!”
지셀이 데네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 착각하면 안 돼.”
“뭐, 뭘?”
“이 주변에 있는 도적놈들을 생각해 봐. 그들 대부분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심지어 왕국을 지키는 정규군 출신도 있었지.”
“하, 하지만…….”
“그저 힘이 더 센 놈이라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저 사람들도 힘만 있었다면 여기서 산적이 됐을 거라고.”
“그래도…… 저들은 아직 선을 넘지 않았잖아.”
“흠.”
“힘든 세상이야. 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누군가는 그들을 도와줘야 해. 그런 길로 빠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줘야 해.”
그렇게 희생하는 사람이 꼭 너희일 필요는 없다. 지셀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참았다.
데네브와 말싸움하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생각도 없었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를 보여 주었을 뿐.
그런데 그 방식도 ‘성녀’에게는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셀이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웃었다.
“그래, 그러면 저쪽 의견도 좀 들어 보자. 어이, 너희들.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안 덤빌 거면 쓸데없는 생각 접고.”
“오, 오해입니다.”
“저희는 그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절대 다른 마음은 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듯 열심히 항변했다.
데네브가 그들에게 다가가 안심시켜 주었다.
“괜찮아요. 제 친구가 조금 오해했나 봐요. 정말 괜찮아요.”
데네브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마을을 구해 준 은인에게 잠깐이나마 못된 마음을 품었다. 그걸 알면서도 저리 자애롭게 굴다니.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데네브가 아니었으면 저 작은 놈(?)한테 죽을 뻔했다.
다크가 지셀의 어깨 위에서 속삭였다.
“주인만 악당이 됐어.”
“훗, 악역은…… 익숙하니까.”
“악역이 아니라 그냥 악이잖아? 꺄아아아악!”
깐족거리던 다크가 지셀의 손에 잡혀 비명을 질렀다.
데네브는 쓰러진 자들에게 신성력을 뿜어내었다. 지친 와중에도 지셀에게 맞은 자들을 치료해 주려는 것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셀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신성력이…….’
절벽을 오르고 전투까지 치렀기에 분명 신성력도 많이 소모됐을 것이다. 실제로 신성력의 양은 전투가 끝난 직후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신성력 자체는 조금 더 순도 높고 강해져 있었다.
시전하는 본인도 모를 정도로 미미한 변화였지만, 지셀은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챘다.
‘설마…….’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펜리스 영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