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7)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7화(7/269)
7화 두 번은 안 당한다. (3)
지셀은 엘레나가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왔다.
그중에는 성안에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가정도 있었다.
당연히 호위 기사도 의심하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오랫동안 엘레나를 지켜 온 쟈말이었을 줄이야.
“어떻습니까? 공자님도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그래, 한번 가 보자.”
지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엘레나와 함께 쟈말을 따라갔다.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한적한 곳으로 빠진 그들은 곧 빈민가로 들어갔다.
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엘레나는 새로운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열심히 걸었다.
빈민가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에 조금 겁을 먹기도 했지만, 호위 기사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듯했다.
지셀은 조용히 다른 호위 기사, 필립을 살폈다.
‘이놈도 한패인가?’
얼굴이 조금 상기된 채 묵묵히 걷기만 하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전생에는 엘레나를 비롯해 필립과 쟈말까지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이 전부 배신자라면 죽은 이유는 빤했다.
‘입을 막은 거겠지.’
영주의 딸을 죽인다는 위험한 음모에 끼어드는 대가는 그리 싸지 않다.
보통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두 사람 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던 모양이다.
“자, 이곳입니다!”
일행이 공터에 도착하자 쟈말이 조금 흥분해서 외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낡아서 기운 집들이 공터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쓰다 버린 자재들과 쓰레기들이 길목마다 가득했다.
‘과연.’
사방에 쌓인 쓰레기가 걸림돌이 되어 도망가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사람의 손길을 탄 배치였다. 얼핏 보면 평범한 쓰레기 같지만, 도망칠 길목들을 교묘하게 막아 놓은 것이다.
“에이, 뭐가 있다는 거야? 그냥 쓰레기들뿐이잖아.”
엘레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힘들게 시간을 들여 먼 곳까지 왔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형편없는 분위기라 화가 난 듯했다.
엘레나의 목소리가 뾰족해지자 쟈말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아직 준비가 덜 돼서 그렇습니다. 곧 사람들이 와서 끝내주는 걸 보여 주겠죠.”
“흥, 됐어! 돌아갈 거야. 가자, 오빠.”
엘레나는 바보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고 있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호위 기사를 믿고 왔는데, 쓰레기만 가득한 곳으로 안내하니 수상하게 느낄 만도 했다.
“아가씨, 구경도 안 하고 가시면 여기까지 온 게 아깝지 않습니까?”
쟈말이 엘레나의 앞을 막으며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태도에 자신감이 넘쳤다.
“비켜, 돌아갈 거야.”
“잠시만 기다리시라니까요.”
“필립!”
엘레나가 화가 난 표정으로 필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쟈말의 옆에 가서 설 뿐이었다.
“서, 설마 둘 다…….”
엘레나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지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호위 기사 두 명이 전부 수상한 행동을 하니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다.
“왜, 왜 그래…… 왜 이러는 건데?”
그녀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쟈말이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아가씨한테 원한은 없습니다. 상냥하게 잘 대해 주기도 하셨고 호위 노릇도 나쁘진 않았죠.”
“그, 그런데 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조건이 좋은 의뢰가 들어와서요. 이제 아가씨를 못 보는 게 조금은 아쉽군요.”
쟈말이 비열하게 웃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자, 약속대로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빨리 거래를 끝내자고!”
쟈말이 외치자 한쪽 폐가에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모습의 중년 남자 하나와 그보다는 젊어 보이는 두 남자.
세 사람 모두, 인파 속에서 봤다면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질 흔한 인상이었다. 어딘가에 숨어들기에는 오히려 적합한 생김새였다.
중년인은 주변을 쓱 둘러본 뒤 쟈말에게 물었다.
“얼굴을 보니 페르디움의 대공자 같은데, 맞나? 의뢰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크큭, 그래. 멍청하게 따라오더라고. 저건 덤으로 줄게. 선물이야.”
“의외의 수확이군.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어. 준비해라.”
중년인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두 남자가 퇴로를 차단했다.
엘레나는 사색이 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쟈말!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데!”
쟈말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제 일은 아가씨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거라서요. 그다음은 이자들이 알아서 하겠죠. 노예로 팔든지 죽이든지.”
“뭐, 뭐?”
엘레나가 충격에 제대로 말을 못 잇자 지셀이 나섰다.
“우리를 팔아넘겼군. 영지 안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나?”
지셀의 경고에도 쟈말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우리야 돈만 받고 멀리 도망가면 그만입니다. 매일 싸움질만 하는 이 거지 같은 영지는 이제 지겨워서 말입니다. 페르디움을 떠나는 사람은 우리 말고도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너희처럼 사고를 치고 떠나지는 않지.”
“대공자님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십시오. 뭐, 대공자님이 있어서 하녀들이 안 따라왔으니 대공자님이 몇 사람은 살렸네요. 사고만 치고 살다가 그래도 죽기 전에는 좋은 일 하시는군요. 크크큭.”
“운이 안 좋았다고…….”
지셀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체념했다 여긴 쟈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양심에 조금 찔리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 표정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듯 보였다.
쟈말이 히죽대며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필립은 그나마 표정이 어두웠다. 약간이라도 죄책감을 느끼긴 하는 모양이었다.
쟈말은 중년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살짝 인상을 썼다.
“손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데? 장난치는 거라면 재미없어. 우리 둘 다 기사인 건 알지?”
그러자 중년인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걱정도 많군. 그 정도 되는 돈을 들고 다니기에는 번거롭지 않겠나. 거금을 주고받을 때는 북부 상인 연합의 신용장을 쓰는 게 편하지.”
“쯧, 금화가 좋은데. 환전할 때 문제는 없겠지? 엉터리면 반드시 네놈을 죽여 버릴 거야.”
중년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라. 절대 문제 될 일 없다. 약속하지.”
중년인이 확언하자 쟈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이를 받았다.
진품인지 확인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리려는 순간, 종이에 쓰인 글자를 확인하고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디갈드 무도회 초청장]종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다른 영지의 무도회 초청장이었다.
“이 새끼가!”
쟈말이 분노하며 검을 뽑으려는 순간.
푸욱!
어느새 단검을 꺼낸 중년인이 쟈말의 배를 찔렀다.
“컥, 커억!”
“오다가 주웠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무도회는 별로 안 좋아하나?”
중년인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단검을 움직였다.
푹! 푸욱! 푹!
순식간에 쟈말의 몸을 여러 번 찌른 중년인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너희들이 여기서 죽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이 개자식…… 우리를 속여…….”
쟈말이 배를 붙잡고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위험한 일이니만큼, 쟈말과 필립은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봤다.
하지만 기사로서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그들은 그대로 일을 진행했고, 결국 중년인의 한 수에 어이없이 당하고 말았다.
“으아아아!”
옆에 있던 필립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으며 중년인에게 덤벼들었다.
차앙!
중년인도 순식간에 검을 뽑아 가볍게 공격을 막아 내었다.
순식간에 몇 합을 주고받은 뒤, 중년인은 조금 감탄했다.
“제법이구나.”
잦은 전투를 치르는 페르디움의 기사답게 필립은 실력이 제법 좋았다.
하지만 중년인은 그보다 훨씬 더 윗줄의 실력자였다.
스각!
중년인이 마나를 더 끌어올리자 필립은 곧 허무하게 목이 베이고 말았다.
“끄르륵.”
피거품을 내뱉으며 필립이 쓰러졌다. 중년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가가 확실하게 목을 베어 냈다.
그러고는 배에서 피를 잔뜩 흘리며 죽어 가는 쟈말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 줘…….”
쟈말은 죽어 가면서도 목숨을 구걸했다.
“미안, 깔끔한 걸 좋아해서 말이야.”
“개자식…….”
“어쨌든 수고했다. 선물은 잘 받도록 하지.”
중년인은 이번에도 무표정하게 쟈말의 목을 잘라 냈다.
두 사람을 처리한 중년인은 품에서 파이프 하나를 꺼내 연초를 태우기 시작했다.
“후…… 역시 이럴 때 피우는 게 제일 맛있단 말이지.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볼까?”
그가 입에서 연기를 뿜으며 남매를 돌아보았다.
엘레나가 지셀의 팔을 더 꽉 붙잡았다.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목이 잘려 죽은 것도 무서웠지만,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오, 오빠! 도망가자!”
엘레나가 다시 지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떻게든 도망가자는 뜻이었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놔 봐. 너 은근히 힘세다?”
“빨리 도망가자고!”
“고작 세 명이면 걱정할 필요 없어.”
지셀은 웃으며 팔을 빼려고 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았다.
“너 운동하니? 왜 이렇게 힘이 세?”
“뭐?”
엘레나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중년인도 피식 웃었다.
페르디움의 대공자가 살짝 맛이 간 놈이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적이 그를 비웃거나 말거나, 지셀은 마나를 얇은 실처럼 풀어내 사방으로 뻗어 냈다.
전생이었다면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기에 마나를 가닥가닥 뿌린 것이다.
‘더 얇고 넓게.’
이런 마나 운용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기사도 이런 기술은 알지 못하고, 설령 알아도 어떻게 하는지 감도 못 잡은 채 살아간다.
오직 한계를 뛰어넘는 실력을 갖춘, 마나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지셀은 신체가 아직 성장하지 않았을 뿐, 경험과 지식은 이미 그 수준 이상이었다.
마나의 양이 적어도 섬세하게 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 세 명 외에는 없군.’
마나의 실에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는다.
숨겨진 인원이 더 없다는 걸 확신한 지셀이 제 팔을 꽉 쥔 엘레나의 손을 조심스레 풀었다.
“이름이 뭐지?”
지셀의 물음에 중년인은 파이프를 털어 내며 답했다.
“……귀족에 대한 예우로 이름은 알려 주지. 프랑크다. 저승에 가서 원망이라도 하도록.”
“이 지역 이름이 아니군. 사주한 놈들은 누구냐.”
“그건 알 거 없다.”
프랑크가 고갯짓하자 퇴로를 차단하고 있던 두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남자 중 한 명이 프랑크에게 물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프랑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목을 베는 건 너무 평범하니까 전신을 다져 놔라. 페르디움 백작이 보고 분노하도록. 최대한 살려 둔 채로 진행하는 걸 잊지 마라. 고통에 몸부림쳐야 모양이 예쁘게 나오니까.”
“알겠습니다.”
두근.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를 평생 괴롭혔던 아픈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엘레나의 시체를 보고, 지셀은 눈물을 흘리며 구역질했다.
그때 본 엘레나의 마지막 모습은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피가 머리끝까지 몰리고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흥분한 적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전투를 앞두고 흥분은 금물이지만, 지셀은 휘몰아치는 감정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손이 조금씩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프랑크는 피식 웃었다.
‘완전히 애송이군.’
미세하게 떨리는 손만 봐도 지셀이 얼마나 형편없는 실력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찝찝한 건…….
‘웃어?’
이런 상황에서도 입은 웃고 있었다. 눈은 무서울 정도로 광기에 번들거렸다.
그러나 지셀처럼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프랑크는 찜찜한 예감을 무시하고 부하들을 재촉했다.
“소문처럼 정말 미친놈인가 보군. 어서 시작해라.”
두 남자가 지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엘레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 오빠!”
그녀는 지셀이 걱정되어 도망도 가지 못하고 비명처럼 그를 부를 뿐이었다.
그때, 지셀이 나지막이 말했다.
“드디어 너희들을 만났구나.”
“뭐?”
“보고 싶었다. 정말로.”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지셀의 손이 번개같이 뻗어 나가 한 명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커억!”
푸우욱!
그의 손가락이 목을 파고들어 아예 뚫어 버렸다. 피가 터져 나와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켁, 께에엑…….”
남자는 검을 놓친 채 몸을 떨었다.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지셀은 천천히 남자를 제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희열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얼마나 너희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모를 거야. 평생 이 순간을 꿈꿔 왔거든.”
지셀은 거침없이 손을 뒤로 떨쳤다.
퍼어억!
목이 뜯겨 나가 절명한 남자의 시체가 쓰레기 더미 위에 나동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