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83)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83화(83/269)
83화 제가 협상하고 오겠습니다. (2)
말을 타고 도망가는 중에도 타모스는 미칠 것만 같았다.
‘왜 실패한 거지? 그 많은 병력을 두고! 멍청한 놈들, 그냥 처음부터 모여서 밀어 버리라니까!’
도무지 뭐에 당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한들 그도 한 영지의 영주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나름 있는데, 그런 마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저런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있었나? 아니, 그게 마법이 맞기나 한 건가?’
모든 게 안개가 낀 것처럼 명확하지가 않았다.
이상한 건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그 검은 갑옷을 입은 놈들은 대체 뭐야? 페르디움에 그런 병력이 있었나?’
그들은 순식간에 병사들을 밀어 버리며 공성탑을 부수며 활약했다.
페르디움 따위 별것 아니라고 우습게 보았다가 큰코다치고 말았다.
‘젠장! 젠장! 난 망했어! 망했다고!’
그는 이번 전쟁에 모든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진 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병력을 잃어버렸다.
가뜩이나 별 볼 일 없는 영지인데 사람도, 돈도 없으니 이제 제대로 굴러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최대한 배상금을 아껴야 하는데.’
영토 분쟁으로 일어난 전쟁이 아니고, 일단 도망치는 데는 성공했으니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페르디움 백작은 관습과 명예를 존중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페르디움은 세력이 무척이나 약하고 영지 하나 굴리기도 벅찬 상황이다.
디갈드를 먹었다가는 오히려 체하고 말 것이다.
그쪽에서도 적절한 배상으로 넘어갈 생각일 터.
‘젠장,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근접한 남작령 몇 개와 세수의 일부를 몇 년간 바친다는 수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영지민들을 더 쥐어짤 수밖에.
‘멍청한 데스몬드 새끼들. 그런 등신 같은 놈을 지휘관으로 보내다니.’
타모스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빨리 영지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은 페르디움의 영토 안이라 불안했다.
사실 지금도 그 무시무시한 불길과 검은 갑옷을 입은 놈들을 떠올리면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빨리 가자! 빨리! 달려라!”
타모스는 헐떡이며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영주 성에 도착하자마자 말은 그대로 혀를 내밀고 쓰러지고 말았다.
거지꼴로 나타난 영주를 보고 다들 놀랐지만, 타모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항복 협상을 할 준비를 해라! 어서!”
영주의 등쌀에 다들 사정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많은 대군을 이끌고 가는 모습을 봤는데, 도대체 페르디움 따위가 어떻게 막았다는 말인가.
항복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눈빛에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셀이 디갈드 영지에 도착했다.
“오, 제법 준비가 빠른데?”
영지의 경계에서부터 급하게 내건 백기가 보였다.
빠르게 달려가는 지셀 일행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주 성 앞에도 일단의 사람들이 백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백작에게 안내해라.”
디갈드의 가신들이 정중하게 지셀을 영주 성 안으로 안내했다.
타모스는 대전의 높은 자리에 오만하게 앉아 있었다.
귀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전쟁에서는 졌지만, 아직도 페르디움을 우습게 보는 심성이 남아 있었다.
지셀을 필두로 인상이 험악한 무장 병력이 들어오자 타모스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더럽게 빨리도 오는군. 바로 추격한 건가?’
복장을 보니 그 무시무시한 검은 부대였다.
지셀은 건방지게 앉아 있는 타모스를 보고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챙기겠다는 꼴이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항복 협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까?”
“그렇네. 자네는 누구인가?”
“지셀 페르디움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지셀치고는 제법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 눈빛이나 표정에서는 상대를 깔보는 티가 났다.
그러나 타모스는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네가……?”
지셀이라면 자신의 죽은 아들 길모어와 쌍벽을 이루는 북부의 소문난 망나니다.
다른 영지는 몰라도 인접한 디갈드에는 소문이 꽤 크게 나 있었다.
그런 놈이 영주 대리로 이곳에 왔다고? 게다가 저 검은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라니!
타모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청하게 지셀을 바라보았다.
그때, 지셀이 차갑게 내뱉었다.
“끌어내라.”
용병들이 바로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끌어 내렸다.
“뭐, 뭐 하는 거야! 이 비천한 놈들이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는 것이냐! 이거 놓지 못할까!”
타모스는 놀라서 몸부림쳤지만, 용병들은 그를 가볍게 제압해 대전의 한가운데에 집어 던졌다.
디갈드의 가신들은 용병들의 막돼먹은 태도에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항의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험악했다.
저벅저벅.
지셀은 영주가 앉아 있던 자리에 올라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바닥에 강제로 무릎 꿇린 타모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비록 전쟁에서 패했지만, 그는 왕국의 백작위에 오른 고위 귀족이다.
작위도 없는 하찮은 놈이 감히 이렇게 대할 수는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예의를 지켜라! 네놈이 이러는 걸 페르디움 백작도 알고 있느냐!”
지셀은 여전히 입가에 비웃음을 띤 채 답했다.
“시끄럽군. 귀족이라는 허울이 널 지켜 줄 줄 알았나? 수많은 목숨을 전쟁으로 밀어 넣었으면 너도 목숨을 걸어야지. 그리고 내가 싸가지 없는 건 우리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신다.”
“뭐, 뭐? 설마 날 죽이겠다고?”
“그래.”
“이놈! 난 귀족이다! 그것도 백작이다! 네놈이 감히 국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나를 죽이겠다는 것이냐! 법과 관례를 지키란 말이다!”
“남을 죽이려 했으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하는 법이지. 전쟁에서 지면 죽음뿐이다.”
서늘한 지셀의 눈빛에 타모스는 당황했다.
전장을 벗어나거나 항복한 귀족은 죽이지 않는 게 관례다.
귀족들은 그걸 ‘같은 왕을 모시는 신하를 해칠 수는 없다’라는 명분으로 포장한다.
그렇기에 타모스도 그토록 서둘러 디갈드로 돌아온 게 아니었던가.
일단 제 영지로 돌아오면 영주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을 테니까.
“협상도 안 하고 날 죽이겠다고?”
타모스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성정이 포악하거나 강력한 대영주 중에는 법이나 관례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자들이 종종 있었다.
설마 페르디움이, 그것도 영주가 아닌 후계자 따위가 그리 나올 줄은 몰랐지만.
“말도 안 된다! 페르디움 백작을 직접 만나서 얘기하겠다! 네놈 따위와는 협상하지 않겠다!”
“나도 네놈과 협상할 생각은 없다. 디갈드 백작령은 페르디움에 귀속될 것이고 작위는 파기될 것이다.”
“이, 이 미친놈이 왕실의 재가도 없이 제멋대로…….”
타모스는 하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지셀이 진심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재빨리 생각을 바꾼 타모스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 그럼 영지를 넘기겠다. 관례대로 수레 열 대분의 재산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해 다오!”
타모스는 일단 목숨부터 부지하고 바로 수도로 달려가 여론을 이끌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그것도 거부했다.
“네놈에게 줄 돈은 하나도 없다.”
“그, 그럼 그냥 떠나겠다!”
“거절한다. 넌 여기서 죽는다.”
“이놈! 감히 네까짓 놈이…….”
“베어라.”
지셀이 고갯짓하자 길리언이 단숨에 도끼를 휘둘렀다.
스각!
대전 한가운데를 구르는 목을 보며 디갈드의 가신들은 숨을 죽였다.
아무리 대공자 신분이라도 한낱 대리자 주제에 왕의 신하인 고위 귀족을 멋대로 죽이다니!
이건 폭군이나 가능할 법한 미친 짓이었다.
지셀은 그들이 어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디갈드의 계승권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목을 베어라. 관리들과 가신들, 전쟁을 지원한 남작령의 봉신들 명단도 가져와.”
갑작스러운 명령에 지셀의 용병들과 스코반을 비롯한 경비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대전에 있던 디갈드의 가신들부터 모두 포박되어 줄줄이 무릎 꿇었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영지의 관리들과 가신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에 끌려왔다.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끌려온 사람들이 울부짖었지만, 지셀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몇몇 행정관들을 족쳐 만든 신상 명세서를 받아 들고 천천히 훑어볼 뿐이었다.
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랬다간 디갈드 영지는 혼돈 상태가 될 것이다.
가뜩이나 가난한데 그나마 남아 있던 물자까지 탈탈 징발당한 디갈드 영지다.
최소한의 관리 인원이 없으면 도적 소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지셀은 빠르게 선별 작업을 시작했다. 죽일 놈과 남길 놈들의 분류를.
꽁꽁 묶여 지셀 옆에 끌려온 디갈드의 행정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앞에 선 자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셍 남작입니다. 이번 전쟁에 병사 백 명과 기사 두 명을 지원하고 직접 참여…….”
“죽여라.”
“으아아아! 안 돼!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용병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죽기 싫어 발버둥을 치는 자들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마틴입니다. 평민으로 군납 업무를 보조하였으며…….”
“가둬라.”
한 사람씩 끌려 나가는 사이 잡혀 온 자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감옥에 갇히는 자는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졌다며 안도해야 할 판이었다.
망나니건 등신이건 지금은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지닌 사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남자가 끌려왔다.
젊고 곱상하게 생긴 남자는 상당히 지저분하고 피곤해 보였다. 보아하니 타모스를 따라 전쟁에 참여한 자 같았다.
“로웰입니다. 평민으로 서기관 소속이었으나 이번 전쟁에 작전 참모로…….”
“참모?”
지셀이 피식 웃었다.
전쟁은 데스몬드에서 다 했는데 디갈드의 참모가 뭘 했겠는가. 그냥 타모스 옆에서 구경만 하다 도망갔겠지.
게다가 본래는 서기관이었다니, 참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 참모는 전문적으로 군사학을 익힌 기사나 군지휘관이 맡는 역할이었다.
어쨌든 전쟁에 참여했기에 그에 걸맞게 판결하려고 할 때였다.
로웰이 다급하게 외쳤다.
“살려 주십시오! 저는 공자님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음?”
애타게 터지는 목소리에 지셀이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지셀이 관심을 보이자 로웰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빠르게 대답했다.
“저는 서기관 밑에서 행정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다들 일을 안 해서 거의 모든 걸 제가 처리했습니다! 영지의 장단점과 취약점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맡겨 주시면 제가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지금 그게 걱정이라 일부는 살려 두시는 게 아닙니까?”
“호오.”
지셀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제법 눈치가 빠른지 구미가 당기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지셀은 티 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굳이 저놈을 살려 줄 정도로 절실한 상황은 아니었다.
“디갈드는 가난하고 개판인 걸로 유명하지. 그런 곳의 행정을 총괄했다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 그건! 영주님과 가신들이 끊임없이 수탈하고 비리만 저질러서 그런 겁니다! 그나마 제가 최대한 아끼면서 관리했기에 이 정도라도 버틴 겁니다!”
“흐음…….”
지셀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로웰은 눈물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지의 법과 체계까지 전부 제가 만든 겁니다! 군사학까지 따로 공부해 무관장 대신 병력 관리까지 맡았습니다! 그래서 백작이 절 참모로 데리고 간 겁니다! 우리 영지의 병력이 아니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한마디로 이 영지를 혼자 관리했고, 그래서 참모로 전쟁터까지 끌려갔다는 뜻이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대단한 일이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지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거 말고 또 뭐 잘하는 건 없나? 난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로웰은 당황했다.
평민이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건데 도대체 여기서 뭘 더 바란다는 것인가?
어지간한 학문을 쌓은 귀족도 자신만큼은 못할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대답이 늦어지거나 아니라고 하면 바로 죽일 거 같은 눈치였다.
로웰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했다.
“루, 룬스톤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팔려면 자, 장사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장사도 해 봤어?”
사실 로웰은 장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타모스는 다른 건 몰라도 돈 관리만큼은 그에게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웰은 살기 위해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제, 제가 계산이 엄청 빠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지셀은 곧바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주판을 써야 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문제였다.
“그럼 750 곱하기 1920은 뭐지?”
“230!”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지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근접하지도 않잖아?”
“하지만 빨랐죠.”
“…….”
대전이 침묵에 잠겼다. 로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끝이다.
귀족들도 그냥 처죽이는 자의 손에서 자신 같은 평민이 어찌 목숨을 부지하겠는가.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간혹 예외가 있는 법이었다.
“……하하, 이거 웃기는 놈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