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89)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89화(89/269)
89화 절반은 받아야겠습니다. (4)
“으하하하! 부어라! 마셔라!”
“잘생긴 리카르도! 여기 좀 봐 줘요!”
“대공자님! 아니, 남작님 만세!”
“페르디움의 승리를 위하여!”
모두가 신이 나서 술에 취해 떠들어 댔다.
힘들었던 전쟁의 피로를 달래 주는 건 역시 술과 음식이 최고다.
미소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던 지셀은 몸을 돌려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건 고생한 자들에게 당연한 몫이지만…….’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희생자들의 가족이었다.
적군의 규모에 비해 페르디움의 피해는 적었지만 어쨌든 죽은 자들이 있었다.
그 가족들은 지금 당장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셀은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손을 붙잡고 위로를 건넸다. 또한 막대한 보상금까지 약속했다.
본래 영주가 해야 할 일이고, 즈발터라면 기꺼이 나서겠지만 지셀은 개의치 않고 직접 움직였다.
‘내 책임도 있을 테니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지 않았다면 결국 페르디움은 멸망했을 것이고, 영지민들은 모두 죽거나 고통 속에 살아야 했을 테니까.
그러나 지셀 때문에 희생자가 생긴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을 앞당긴 것도, 규모를 키운 것도 자신이다.
모두를 지키려 시작한 전쟁이니, 희생자들은 마땅히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받아야 했다.
지셀은 벨린다와 길리언, 두 사람만을 대동하고 희생자의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페르디움을 떠나기 전, 고향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위로하고 그들의 희생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지셀이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곳까지 찾아와 잊지 않고 위로를 건넨, 영지의 후계자에게.
그들도 알고는 있다. 전쟁에서 패했으면 더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걸.
하지만 가족이 죽은 슬픔을 금방 추스릴 수는 없었다.
길리언은 묵묵하게 지셀의 뒤를 따르며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효율만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건 알았지만 영지민들에게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지셀은 곧 페르디움을 떠날 것이다.
이런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는데도 지셀은 자처해서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었다.
“흑.”
“뭐야, 벨린다. 울어?”
“아니요? 제가 언제요!”
벨린다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지셀을 노려보았다.
그녀에게도 영지의 병사들은 친구나 마찬가지였기에 슬픔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헛웃음을 지으며 벨린다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었다.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가자.”
그는 성으로 돌아와서도 바로 연회장으로 가지 않고 부상자들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바네사를 찾아갔다.
“바네사, 좀 괜찮아?”
“아……. 공자님.”
지셀은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바네사를 만류하고 옆에 앉았다.
“정말 잘했어. 네 덕분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어.”
따뜻한 눈빛에 그녀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쁜 건, 드디어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미소 짓고 있을 때, 옆에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염병……. 나는 안 보이냐……?”
알포이가 헐떡거리며 지셀을 노려보았다. 지셀은 부러 놀란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포이, 너도 있었냐? 그래, 너도 수고했어. 잘했다.”
“으으, 망할 자식…….”
알포이는 이를 갈며 지셀을 노려보았다.
누구 덕에 마력을 모조리 빨려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저런 천연덕스러운 태도라니.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궁금증이 더 컸다.
“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저 여자가 어떻게 마법을……. 그것도 그런 고위 마법을.”
거대한 불기둥이 폭발하던 모습은 마탑 출신인 알포이도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땅에 묻어 두었던 룬스톤을 폭발시켰다는 건 바네사를 추궁해 알아냈지만,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마법을 썼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섯 명의 마력을 모두 끌어갔으니 마력의 양이야 어마어마했겠지만, 알포이가 아는 바네사는 1서클 마법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애초에 마나를 쓰지 못하는 체질이었는데, 언제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바네사는 지셀이 강제로 마나를 느끼게 해 줬다고 말했지만 알포이는 믿지 않았다.
마탑에서도 못 했던 일을 고작 시골 영지의 망나니가 해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알포이는 자신이 그 비밀을 알아낸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 죽어 가는 상태로도 욕망에 빛나는 눈빛을 보며 지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만 아는 방법이 있지. 알고 싶으면 영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그러면 하나 정도는 알려 줄지도 모르잖아.”
“뭐, 뭐라고? 네놈……. 으…… 내가 마탑에만 돌아가면…….”
그러자 지셀이 말을 끊고 웃었다.
“아, 마탑? 그렇지 않아도 곧 갈 생각인데, 네 얘기는 잘 전해 줄게. 어쩌면 마탑주의 후계자 자리를 공고하게 굳힐지도?”
잘 말해 준다는 말에 알포이가 저도 모르게 히죽 웃음을 흘렸다.
“흠흠, 그건 고마운데…… 마탑에는 왜 가? 아직 계약 기간 남았잖아.”
“제안할 게 있거든. 너한테도 좋은 일일 거야.”
“……?”
알포이는 지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어 눈만 끔뻑였다.
하지만 지셀은 더 이상 설명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바네사를 돌아보았다.
“잘 쉬고 있어. 갔다 오면 더 많은 걸 알려 주마.”
바네사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 무슨 말인지 설명하고 가! 야!”
뒤에서 알포이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지셀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 * *
다음 날, 연회가 끝나자마자 지셀은 용병들을 데리고 마수의 숲에 다시 들어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목책과 도로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지셀은 룬스톤을 잔뜩 캐 와 절반을 호메른에게 넘겼다.
돈이 생겼으니 페르디움 영지도 빠르게 안정될 것이다.
‘일단 페르디움은 이 정도면 될 거고.’
적들도 당분간은 피해를 수습하느라 바빠 이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빨리 세력을 키우고 다음을 대비해야 해.’
상당한 시간을 벌었지만 그렇다고 여유 있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틈을 타 역으로 적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기회를 노려야 한다.
‘자금, 전력, 식량, 연대할 세력…….’
준비할 게 너무나 많았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쉴 시간은 없다.
지셀은 성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마탑으로 간다.”
“마탑이요? 또 룬스톤을 파시려고요?”
벨린다의 물음에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룬스톤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걸 마탑에 팔 생각은 없었다.
“마탑과 상의할 일이 있거든.”
“펜리스 영지로는 언제 가시게요?”
“이 일부터 처리하고.”
영주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 둬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마탑을 찾아가는 게 더 급했다.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앞으로의 일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지셀은 펜리스 남작령을 받자마자 카오르와 일부 용병들을 보냈다.
잠깐 정도는 영지가 개판이 되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벨린다는 펜리스 영지가 걱정되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잠자코 지셀을 따라 적염의 마탑으로 향했다.
* * *
며칠을 달려 마탑 도시에 도착했다.
벨린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새삼스레 감탄을 내뱉었다.
“와, 여기는 여전히 깨끗하네요. 우리 영지도 얼른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
지셀과 용병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언제 봐도 정말 깨끗하고 멋진 도시다.
“아이고! 오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문지기는 이전의 뻣뻣한 태도가 무색하게도 지셀을 보자마자 냉큼 문을 열어 주었다.
로비를 지키고 있던 실뱅 역시 지셀을 보자마자 허리를 180도 숙였다.
“또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바로 기별을 넣겠습니다.”
실뱅은 허겁지겁 지셀을 마탑주에게로 안내했다.
마탑주 휴베르트는 부러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셀을 맞이했다.
“어이쿠! 어서 오게! 전쟁은 이겼는가? 아니, 이겼으니까 여기 왔겠지. 어떻게 된 건가?”
파견된 마법사들도 있지만, 룬스톤이 걸려 있는 문제다.
휴베르트는 나름의 정보통을 통해 꾸준히 페르디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덕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비교적 빨리 들었다.
전쟁 결과나 상세한 과정까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지셀이 직접 찾아오니 한시름 놓았다.
과한 환영 인사에 지셀도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를 애타게 기다리신 거 같습니다.”
“이 사람아. 우리가 걸릴까 봐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아는가? 설마 이렇게 빨리 전쟁이 터질 줄은 몰랐네.”
“영주들의 욕심을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그 말에 휴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겠냐 생각했는데, 마치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듯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 면에서 이 애송이의 통찰력은 높이 사 줄 만했다.
“그래, 일단 앉아 보게. 룬스톤을 팔러 온 건가? 수레는 없다던데.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이긴 겐가? 얘기해 보게.”
지셀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휴베르트는 엉덩이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양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지셀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캐 두었던 룬스톤을 전부 땅에 박아 넣고 터뜨렸습니다.”
“……뭐라고?”
휴베르트는 충격적인 말에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벅거렸다.
곧 사건의 전말을 깨달은 휴베르트가 경악해서 외쳤다.
“이런 미친! 제정신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 정도의 양이면 정말 자신들이 우르르 가서…… 도와주지는 못해도 다른 방법을 반드시 찾아 줬을 텐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한테 다 넘기지 그랬나. 그러면 마법사들을 이끌고 갔을 텐데!”
저번 거래 당시 수레 가득 실려 있던 룬스톤을 떠올리며 휴베르트가 한탄했다.
지셀이 은근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정말 마법사들을 보내 주실 생각이셨습니까?”
휴베르트는 잠깐 멈칫했다가 곧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든 도와줬지! 그렇고말고!”
어차피 전쟁이 끝났는데 무슨 말을 못 하랴.
비위나 좀 맞춰 주고 룬스톤이나 계속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말에 지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셀은 뱀처럼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탑주의 마음 씀씀이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참 든든하군요.”
“커험, 뭘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나름 거래도 튼 사이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내 섭섭하지. 안 그런가?”
“과연 적염의 마탑주다운 배포이십니다. 이렇게 존경스러운 분이었다니, 아무래도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동안 무례하게 행동한 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거래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지셀이 입에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매끈한 말을 쏟아냈다.
휴베르트는 민망한 듯 괜히 헛기침을 했다.
지셀 기분이나 좋으라고 빈말을 던졌는데, 도리어 자신을 띄워 주고 있지 않은가.
그때, 지셀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이렇게 이해심이 넓으시니, 제가 마음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곤란했는데……. 서로 마음이 통해서 참 다행입니다.”
휴베르트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손해를 봤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왜 온 거지?’
마탑과의 계약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설마 전쟁에서 이겼다고 자랑하러 온 걸까?
‘아니야. 이상한 놈이긴 하지만 고작 그런 일로 여기까지 올 놈은 아니다.’
저번 거래에서도 느꼈다.
지셀 페르디움은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놈이다.
돈도 안 되는 일에 며칠이나 허비하며 수다나 떨고 앉아 있을 놈이 아니란 것이다.
휴베르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뭔가?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데?”
“아무래도 룬스톤을 더 판매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그 말에 휴베르트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