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9)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9화(9/269)
9화 너희, 사람 잘못 건드렸어. (2)
승부는 순식간에 갈렸다.
세 개의 코어를 모두 폭발시킨 지셀의 힘을 프랑크가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푸우욱!
지셀의 검이 프랑크의 배꼽 아래에 있는 코어를 뚫어 버렸다.
“컥, 커억…….”
프랑크는 갑자기 자신의 마나가 흩어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너, 지금 설마…….”
코어는 배꼽 아래 있다고들 하지만, 사실 실체가 있는 개념은 아니다.
마나를 쌓기 쉬운 공간에 의념으로 모아 둔 마나를 그렇게 부를 뿐이다.
그러니 복부가 뚫렸다고 코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코어를 없앨 수는 있었다.
“그래, 네놈 코어를 우선 박살 내 주지.”
지셀은 마나를 움직여 프랑크의 코어에 충돌시켰다.
“컥, 크억!”
프랑크가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너…… 미친 거냐?”
코어를 부수는 건 그 사람이 평생을 쌓아 온 기운을 모조리 없애는 일이었다.
잘못하면 마나가 폭발해 부수려는 사람도 위험해진다.
상대를 꼭 살려 둬야 하는 게 아니라면 쓰지 않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마나가 강대할수록 폭발도 더 커지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들에게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마나를 흘려 넣는 일에 열중했다.
드드드드!
프랑크의 마나가 빠른 속도로 흩어져 갔다.
“크어억! 어, 어떻게 이걸…….”
파아악!
프랑크의 몸속에서 미친 듯이 진동하던 지셀의 마나가 결국 그의 코어를 완전히 깨뜨리고 말았다.
털썩.
지셀이 마나를 거두고 검을 뽑아내자, 프랑크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너…… 도대체…….”
프랑크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셀의 검술 역시 대단했지만, 정보가 잘못됐던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셀의 나이에 프랑크 정도의 검사가 가진 코어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프랑크는 이렇게 섬세하게 마나를 운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지셀은 쓰러진 채 몸을 바들거리는 그를 내버려 두고 몸을 돌렸다.
“오, 오빠…….”
엘레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셀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피범벅이 된 채 붉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를 보는 듯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오빠가 어떻게 그런 실력을…….”
엘레나는 검을 배우지 않았지만, 험한 북부에서 수많은 기사를 보며 자랐다.
프랑크는 그녀가 보기에도 꽤나 수준 높은 기사였다.
쟈말과 필립을 혼자 죽일 정도라면 어지간한 기사는 찜 쪄 먹을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셀이 그런 자를 상대로 승리하다니.
“오, 오빠가 오크들을 잡았다는 게 정말 사실이었구나.”
사실 며칠 전 페르디움 성에서는 지셀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토벌대를 이끌었던 스코반과 병사들이, 지셀이 오크를 잡았다고 소문을 냈기 때문이다.
물론 스코반은 다른 이들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비웃음을 당했다.
지셀은 엘레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
“잠시 쉬고 있어.”
“뭐?”
그 순간, 지셀이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건드렸다.
툭.
그러자 엘레나의 몸이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쓰러졌다.
마나가 전혀 없는 그녀는 저항하기는커녕 지셀의 동작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지셀은 쓰러지는 엘레나를 한쪽에 있는 폐가에 조심스럽게 눕혀 두고 다시 프랑크에게 다가갔다.
“가장 짜릿한 순간이 왔군.”
프랑크는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날 왜 살려 둔 거지? 고문을 해도 네가 원하는 건 알지 못할 거다.”
“우습군. 난 이미 배후가 누군지 알고 있어. 너 따위한테 궁금한 건 없다.”
“그럼 왜 살려 둔 거냐.”
지셀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앉아 프랑크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는 짓을 보니 제법 사람을 많이 죽여 본 게 티가 나. 보통 사람은 감정 없이 산 사람을 고기 다지듯이 해치는 짓은 못 하거든.”
“…….”
“나름대로 전문가인 것 같으니 너도 알 거야. 때로는 필요가 없어도 고문을 해야 할 때가 있어. 그래, 바로 가슴속의 울분을 풀어야 할 때 말이지.”
프랑크는 지셀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혀를 깨물려고 했다.
하지만 지셀은 빠르게 손을 움직여 프랑크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프랑크의 옷자락을 찢어 돌돌 말아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우웁! 읍!”
“그동안 다른 사람은 거리낌 없이 죽였으면서 자신이 고통받을 건 무서운가? 이거 조금 실망인데.”
스각!
지셀은 발버둥 치는 프랑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그러고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검들을 모두 주워 왔다.
파직! 파각!
지셀은 마나를 이용해 검을 부수었다. 파편은 그가 원하는 모양대로 조각났다.
굵기가 제각기 다른, 뾰족하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수십 개쯤 만들어졌다.
지셀은 그것들을 프랑크 옆에 펼쳐 놓았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도 꽤 사람을 많이 죽여 봤거든. 고문에도 일가견이 있어. 나중에 원수들한테 쓰려고 열심히 익혔거든.”
지셀은 날카로운 파편 하나를 손에 들었다. 프랑크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왜, 복수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잖아. 하지만 이제 보니까 그건 그냥 덜 분노해서 할 수 있는 말이었어. 분노가 머리를 가득 채우면, 복수에 성공했을 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거든.”
프랑크는 도대체 지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은 뭘 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했는데, 무슨 복수를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지셀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대답도 못 하는 프랑크 앞에서 지셀은 계속 중얼거렸다.
“과거로 돌아오니 정말 좋더라. 하지만 그 절망스러운 기억과 내 안의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아마 너희를 모두 없애야 끝이 나겠지. 우리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사이니까.”
프랑크의 눈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광기에 번들거리는 지셀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그 역시 사람을 많이 죽여 봤기에 알 수 있었다.
저 눈은 단순히 타고난 게 아니었다. 사람을 밥 먹듯이 죽여 본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저 나이에 그런 경험이 있을 수가 있나?’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목소리가 그것을 방해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정말 짜릿할 거야. 내 몸으로 전부 실험해 봤거든. 뭐, 너만 겪는다고 억울해하지는 마라. 다른 새끼들도 죄다 같은 꼴로 만들어 줄 테니까.”
“끄으으으으읍!”
날카로운 파편이 아주 느리게 프랑크의 목에 파고들었다.
“쉽게 죽지는 못할 거야. 너희, 사람 잘못 건드렸어.”
* * *
“후우…….”
프랑크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반쯤 실성했을 즈음에야 고문이 끝났다. 죽었다는 뜻이다.
엉망이 된 시체를 내려다보던 지셀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기분이었군.”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시원하게 사라진 것 같다.
오랫동안 속을 뜨겁게 달구던, 어둡게 타오르던 불꽃 하나가 사그라들었다.
“좋구나. 이제 숨쉬기가 조금 더 편해졌어.”
하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을 태우던 불꽃은 아직 몇 개나 더 남아 있었다.
그것이 전부 꺼진 뒤에야 그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것이다.
“우웨에엑!”
그때, 지셀은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피를 한 움큼 토해 내었다.
프랑크를 고문하는 동안에는 참고 있었지만, 내상이 너무 심했다. 마나 폭발의 반동을 견뎌 낸 충격으로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아직 미숙한 몸으로 세 개의 코어를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건 역시 무리였다.
“후, 이제 나머지 일을 처리해야겠군.”
지셀은 프랑크가 처음에 나왔던 폐가로 들어갔다.
전생에는 이곳에서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시체를 찾아야 했다.
지셀은 폐가 안에 들어서자마자 두툼한 자루를 몇 개 발견했다.
그는 자루를 검집으로 몇 번 건드려 본 뒤 조심스럽게 풀었다.
자루 안에 든 것은 젊은 남자의 시체였다.
“디갈드 공자.”
길모어 디갈드.
전생에는 엘레나를 죽였다고 알려졌던, 디갈드 백작령의 후계자다.
워낙 여색을 밝히고 술과 약에 절어 사는 사고뭉치라 당시 시체가 발견됐을 때, 다들 놈이 엘레나를 죽인 범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디갈드 영지와 페르디움 영지는 영지전까지 벌이며 힘을 소모해야만 했다.
“역시 그랬군.”
적들의 목적은 두 영지를 싸움 붙이는 것이다.
전생에는 꼼짝없이 그 수작에 걸렸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지셀은 나머지 자루도 풀어 보았다.
첫 번째 자루와 똑같이 남자들의 시체가 나왔다. 걸치고 있는 흉갑에 박힌 문장으로 보아, 길모어의 호위 기사들인 게 분명했다.
이대로 이들의 죽음이 알려진다면, 전생과 같은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전생에는 엘레나가 죽었다는 이유로 페르디움 영지가 디갈드 영지를 공격했다면, 이번엔 반대로 디갈드 쪽에서 페르디움을 공격하겠지.
엘레나의 죽음을 막아 냈어도 영지전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셀은 적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없었다.
“니들 생각처럼은 안 될 거다.”
지셀은 태울 만한 물건들을 주워 와 시체들 옆에 쌓았다.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신분을 확인할 만한 길모어의 반지나 호위 기사들의 흉갑 등은 마나를 이용해 뭉개 버렸다.
지셀은 프랑크와 그 수하들의 시체까지 끌고 와 모두 태워 버렸다.
곧 불길은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모든 것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타고 남은 뼈가 발견되더라도 사람들은 그저 빈민가에 사는 부랑자가 타 죽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연고도 없는 부랑자가 시체로 발견되는 건 이 시대에 흔한 일이었으니까.
“잘 타는군.”
불길이 주변의 폐자재와 쓰레기에 옮겨붙어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혹시 몰라 퍼거스에게 병사들을 준비시켜 놓으라 하고 신호탄을 챙겨 오긴 했다.
하지만 병사들을 불렀다면, 길모어 디갈드가 여기서 죽었다는 게 소문났을 것이다.
‘당장 일어날 영지전은 막았으니 잠깐은 시간을 벌었다.’
전생에서 모든 일의 시작이 되었던 엘레나의 죽음과 그로 인한 영지전은 막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적들은 멈추지 않고 이곳을 노릴 것이다.
가능한 한 주변인들의 죽음을 막아 내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절대 네놈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지셀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엘레나를 업은 채 성으로 향했다.
* * *
두 사람이 귀환한 후, 페르디움 성은 난리가 났다.
호위 기사가 영주의 딸을 죽이려 하다니, 심각한 사건이었다.
영주 대리를 맡은 페르디움의 총관, 호메른 남작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를 토해 냈다.
“모든 기사와 병사들에 대해 전수 조사와 정신 교육을 하고 축제 참여를 금한다. 그리고 영주님께 어서 이 소식을 전하라.”
성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몰래 수군거렸다.
“얘기 들었어? 쟈말과 필립이 아주 미쳤었나 봐. 지셀 공자님이 두 사람을 처단했다며?”
“에이, 아가씨께서 그냥 공자님을 띄워 주려고 거짓말하신 거겠지.”
“그렇겠지? 내가 봤을 때는 쟈말하고 필립이 서로 싸우다 죽은 게 분명해. 아가씨를 혼자 차지하려고 말이지.”
“맞아, 공자님은 운 좋게 살아남은 거지. 그리고 공을 세운 척하는 거야.”
“저번에는 스코반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더니 이제는 아가씨까지 그러네. 대공자님이 협박한 게 틀림없어.”
가뜩이나 험한 일을 겪은 엘레나는 이런 소문들 때문에 더욱더 침울해졌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스코반과 함께 영지의 양대 거짓말쟁이로 등극해 버렸다.
프랑크에 대한 건 지셀이 절대 말하지 말라 강조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엘레나가 의기소침해하는 사이, 지셀도 그 소문을 듣고 그저 웃었다.
‘프랑크까지 처치했다고 하면 더 안 믿겠지. 어차피 길모어 때문에라도 알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며칠이 지나자 엘레나는 주변의 위로와 관심 덕분에 안정을 되찾았다.
지셀은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고 안도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했다.
‘처음은 막았다. 하지만 계획이 실패한 걸 알면 다시 움직이겠지.’
전생에서도 페르디움은 여러 분쟁에 계속 엮이다 멸망했다.
델파인 공작가는 그렇게 다른 영지들을 약화시킨 뒤 왕국을 전복하여 차지한 것이다.
굳이 페르디움까지 노리는 의도를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대비는 해야 했다.
‘준비할 게 너무 많다. 수련할 시간, 돈, 병력, 내 사람…… 그리고 고급술과 승차감이 좋은 명품 마차. 아, 이건 아니지.’
그 혼자서 모든 음모와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루빨리 세력을 키우고 기반을 다져야 한다.
‘역시 돈이 있어야 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젠장, 전생이나 지금이나 항상 돈이 문제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었다.
돈이 있어야 사람들을 부리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며 그것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르디움은 왕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돈이 없는 영지였고, 얼마 없는 돈마저도 지셀에게는 쓸 권한이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어도 일단은 기본 자금이 필요했다.
애초에 시간을 들여 돈을 불릴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도 않았다.
‘무작정 돈 좀 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 설득도 안 통할 테고. 다시 용병 일이라도 뛰어야 하나? 그걸로는 한참 걸릴 텐데. 역시 강도질이나 산적질이 가장 빠르려나?’
지셀은 작은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꽃잎을 하나씩 따면서 계속 고민했다.
‘끄응, 그렇다고 진짜 추잡하게 산적질을 할 수도 없고……. 젠장, 뭘 해야 초기 자금을 빨리 모을 수 있지?’
지셀이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기사 몇 명을 이끌고 그에게 다가왔다.
“어이, 사촌! 소문 들었어! 이제는 허언증까지 걸린 모양이지? 그렇게 큰 거짓말을 하고 다니다니, 배포가 어마어마하던데? 나 완전 감동했다니까? 으하하하!”
호탕하게 비웃는 남자를 보고 지셀은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