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91)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91화(91/269)
91화 그게 오늘이었어? (1)
휴베르트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 정말? 진짜 자네가 영주……가 됐다고?”
“네, 이번 전쟁을 통해 페르디움이 디갈드 백작령을 차지했고, 그 공으로 펜리스 남작령을 봉토로 받았습니다. 남작령 세 개를 통합해 백작령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허, 정말 자네가 영주라니…….”
마탑주쯤 되면 남작 정도야 우습게 볼 정도로 대우받지만, 어쨌든 상대가 영토와 작위를 얻어 귀족이 되었다면 당연히 예우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서로 막 지내던 사이에 갑자기 예의를 차리려니 조금 민망스러웠다.
처음부터 작위가 있는 상태로 만났다면 모를까, 갑자기 예우를 갖추려니 꼴이 우스워진 것이다.
“크흠, 어쨌든 축하하네.”
당황하긴 했지만, 마탑주는 백작위와 동급의 대우를 받는 위치다.
휴베르트는 꿀릴 게 없으니 그냥 평소처럼 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걸 모른 척하고 있을 지셀이 아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가 됐지만,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대해 주셔도 됩니다. 제가 뭐 백작 같은 고위 귀족도 아니고, 나이도 젊지 않습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하시던 대로 하셔도 됩니다.”
백작이 된 뒤에도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휴베르트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답했다.
“그래, 편하게 지내자고. 지금까지처럼.”
제발 남작에서 끝나고 더 이상 지셀의 작위가 올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쨌든 이제 진정으로 한배를 타게 생겼군. 앞으로 잘 부탁하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내린 결정,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휴베르트와 지셀이 손을 내밀고 악수했다.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적염의 마탑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라 죽느니 차라리 이 젊은 친구에게 한번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인 입으로 말한 거라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대범한 전략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는가?
아까운 룬스톤을 폭발시킨 건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웠다.
지셀은 원하는 걸 얻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준비가 다 되면 연락을 주시지요.”
“알겠네. 우리도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조심해서 가시게.”
마탑을 벗어나며 지셀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도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적염의 마탑이 살아날 유일한 길입니다.’
전생에 적염의 마탑은 진홍의 마탑이 부린 수작에 걸려 망했다.
결국 델파인 공작의 손에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홍의 마탑주 델무드를 키운 건 델파인 공작가니까.
* * *
지셀은 페르디움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짐을 챙기고 자기 사람들을 빠짐없이 모았다.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바네사와 마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모두를 둘러보며 빠르게 말했다.
“길리언, 사람들을 이끌고 먼저 펜리스로 가 있어. 영지 운영은 기존 행정관에게 그대로 맡기고, 카오르와 함께 치안에 신경 쓰도록.”
이제 드디어 펜리스 영지로 떠날 거라 예상하고 있던 사람들은 예상과 다른 명령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자님…… 아니, 영주님께서는 같이 안 가십니까?”
“응, 나는 잠깐 들를 곳이 있어. 호위로 용병들 몇 명만 데리고 갔다 올 거야.”
“또 어디를 가시려고요? 영지는 아예 내팽개치시는 거예요?”
“영지를 운영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야. 일단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지.”
“어디로 가실 건데요?”
“세이론 왕국의 오스턴 영지.”
세이론은 루타니아의 서쪽에 붙어 있는 왕국이다.
디갈드에서 길게 내려온 산맥을 피해 남서쪽으로 국경만 넘으면 되는 가까운 나라.
그러나 오스턴 영지는 변경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이론의 수도와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벨린다는 뜬금없는 말에 팔짱을 끼고 지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라는 영지는 안 가고 이번에는 외국을 간다니,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벨린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짧게 외쳤다.
“아, 오스턴 영지면 도박으로 유명한 도시잖아요! 설마 도련님 도박하러 가시는 거예요? 예전에 도박 좋아하셨잖아요.”
도박이라는 말이 나오자 용병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알포이와 마법사들은 경멸하며 혀를 찼다.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야. 아는 사람을 좀 데리고 오려고 가는 거야.”
“누군데요?”
“영지의 행정을 맡길 사람. 아주 머리가 좋은 놈이 있거든.”
“영지 행정을 외부 사람한테 맡긴다고요?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응, 아주 잘 아는 놈.”
그렇게 말하는 지셀의 눈빛에는 왠지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벨린다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지셀이 외국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말, 무슨 일을 하든 수상스러운 사람이었다.
“영주님, 전에 로웰이란 자를 감옥에 가두지 않았습니까. 영지의 행정에 관해 묻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아, 그놈은 감옥에서 조금 더 고생하라고 내버려 둬. 죗값을 치러야지. 나중에 직접 보고 꺼내든지 할 생각이야.”
길리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돌렸다.
“오스턴까지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예전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애들 관리해야지.”
“토란에게 맡기면 괜찮을 겁니다.”
토란은 마수의 숲 때부터 따라다녔던 나이가 좀 있는 용병이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연배가 비슷하군.’
전쟁을 겪으며 두 사람이 꽤 친해진 모양이었다.
길리언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길리언하고 몇 명만 같이 가자. 여럿이 몰려가면 국경에서부터 막힐 거야.”
“저요! 도련님, 저도 해외여행 갈래요!”
“놀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도련님이 노는지 감시하러 갈래요!”
벨린다는 짐을 챙겨야겠다며 얼른 자리를 떴다.
지셀은 혀를 차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벨린다가 저러기 시작하면 말릴 수가 없다.
길리언의 지시를 받은 토란도 용병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지셀이 바네사를 붙잡고 말했다.
“누가 괴롭히면 꼭 말해라. 마음에 담아 두면 안 돼. 알겠지?”
“네, 네. 알겠습니다.”
바네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사실, 전쟁이 끝난 뒤부터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알포이마저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할 정도였다.
“자, 그럼 며칠 뒤에 보자고.”
“영지에서 뵙겠습니다.”
지셀은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넘기고 바로 말을 박찼다.
짐을 챙기던 벨린다가 화들짝 놀라 그의 곁에 붙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요? 약속이라도 잡아 두셨던 거예요?”
“그놈이 손모가지 날아가기 전에 만나야 하거든. 사정이 좀 있는 놈이야.”
“손모가지요……?”
“응. 도박장에 사는 놈이라 언제 잘릴지 몰라.”
벨린다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행정 맡기실 거라면서요. 영지 걸고 도박하면 어쩌시려고 도박쟁이를 찾아가세요?”
“괜찮아, 그래도 나름대로 착한 놈이거든.”
벨린다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입을 다물고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도박 빼고 다 잘하는 놈이니 두고 봐. 도박만 못해, 도박만.”
지셀은 낄낄대며 단언했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간 급한 일들 때문에 영입을 뒤로 미뤘지만, 이제는 꼭 데려와야 할 인재였다.
‘곧 보겠구나, 클로드.’
클로드는 전생에 그의 참모를 맡았던 자였다.
용병왕 휘하의 용병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을 모두 이끌고 보살피던 놈이니, 그 이상 믿고 행정을 맡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뿐인가, 전쟁 때는 신출귀몰한 전략을 펼쳐 적진에서도 탐내는 참모 중의 참모였다.
싸움도 못하면서 거친 용병들에게 독설을 아끼지 않고, 심지어 지셀에게도 사사건건 덤볐던 성질 더러운 놈.
그래도 그 덕분에 일개 용병단은 왕국과 일 년이나 전쟁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전생에는 녀석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
아무리 뛰어난 전술, 전략을 짜낸들 근거지도 없는 용병단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영토도 얻었고 세력도 키울 참이었다.
그런 팍팍한 환경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던 클로드다. 이번에는 훨씬 더 크게 활약할 수 있을 터였다.
‘이번 생은 도박으로 허무하게 인생을 날리지 마라.’
전생에 클로드는 용병단에 합류했을 때 이미 손 하나가 없었고, 한쪽 발목의 힘줄까지 끊어져 있었다.
그 꼴이 되고서도 도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전생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클로드가 다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 * *
며칠을 달려 오스턴에 도착하자마자 지셀은 오스턴에서 가장 큰 도박장을 찾았다.
설명도 없이 일단 행동하고 보는 지셀에게 익숙해진 일행들도 별다른 말 없이 뒤를 따랐다.
[크라켄 게임장]간판에 달린 커다란 문어가 번쩍거렸다.
겨우 간판에다 비싼 마법 등을 잔뜩 달아 놓은 것만 봐도 이 도박장이 얼마나 돈을 쓸어 담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도박 도시 오스턴의 중심이었다.
벨린다와 용병들이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도박장 주위에 주점들이 즐비하다.
“도련님! 여기 정말 대단한데요? 완전 놀기 좋아 보여요!”
도박 도시라는 말에 혹해 따라온 고든도 손을 비비며 웃음을 지었다.
“후훗, 이거 도박장을 보니 피가 끓는군요. 오랜만에 실력을 좀 발휘해 볼까요?”
지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서라.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여기서 안 통해. 죄다 사기꾼들이거든.”
“도련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와 봤어요?”
“뭐,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지.”
“영지에만 있었잖아요. 대체 언제 와 본 거예요?”
“있어. 아주 예전에.”
전생에도 클로드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이미 잃은 손은 못 찾아 주지만, 그 원인이라도 해결해 주려고.
이왕 온 김에 휴식도 취할 겸 도박을 즐겼는데…….
그날 크라켄 도박장은 멸망했다.
대륙 7강, 용병왕에게 사기를 치다가 박살 났으니 누가 감히 항의나 할 수 있을까.
세이론 왕국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그놈을 찾아 보자.”
벨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인상착의는 아세요? 저번에 길리언 아저씨 찾을 때도 얼굴을 몰라서 한참 찾았잖아요.”
“그냥 저기서 기다리면 돼. 아마 지금도 저 안에 있을지도?”
전생에 클로드는 매일 크라켄 도박장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대필이나 글 선생 노릇을 하며 푼돈을 벌고, 조금 돈이 생기면 다시 도박장에서 잃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용병단에 가입할 때까지는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으니, 주변에서 좀 기다리면 나타날 것이다.
지셀 일행은 도박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곳곳에서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흠, 뭐 싸움이라도 났나?”
지셀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직원인 듯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꾸벅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귀빈실로 가시겠습니까?”
직원은 지셀의 복장과 호위들을 보고 바로 귀족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도박장 직원답게 눈썰미가 좋았다.
지셀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가 별로인데 무슨 일이 있나?”
“별일 아닙니다. 소란이 좀 있었습니다. 도박장에서야 흔한 일이죠.”
“그야 그렇지.”
돈 가지고 노는 곳이니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지셀이 그러려니 넘어가려는 순간, 옆자리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클로드 그 새끼, 내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손목 하나는 잘리겠지?”
“당연하지. 상대를 잘못 골랐어. 다른 건 몰라도 배포 하나는 인정해 줘야지. 으하하핫!”
“그래도 클로드가 손장난 칠 놈은 아니었는데. 나름 배운 놈이잖아?”
“에이,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 배운 놈이라도 도박에 빠지면 다 그렇게 돼.”
찾으러 온 사람과 같은 이름이 나오자 지셀은 굳은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사고 쳤다는 사람이 클로드야? 머리 좋게 생겼는데 눈은 썩은 생선 같은 놈.”
직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맞습니다. 안면이 있으십니까?”
“무슨 사고를 쳤는데?”
“이 동네에서 유명한 뒷골목 패의 두목에게 손장난을 치다가 걸려서 지금 끌려갔습니다.”
“혹시…… 그 두목 이름이?”
“크랭크라 불리는 자입니다.”
두목의 이름을 듣자마자 지셀은 황당해하며 내뱉었다.
“그게 오늘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