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92)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92화(92/269)
92화 그게 오늘이었어? (2)
지셀은 크랭크란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클로드가 술을 마실 때마다 자기 손목 자른 놈을 욕해 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그날일 줄이야!
“급한 상황이니 당장 크랭크란 놈한테 안내해라. 사례는 충분히 하겠다.”
그러자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안내는 다른 분을 찾아 보시…….”
“어이, 귀족 나리. 보아하니 다른 동네에서 온 모양인데, 우리 두목은 왜 찾으쇼?”
그때, 옆자리에서 들려온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직원의 말을 끊었다.
지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건달 세 명이 테이블에 건들거리며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주변을 정리하던 놈들이었다.
그는 건달들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당장 너희 두목을 좀 만나야겠다.”
“나리가 누군지 알고 두목한테 함부로 안내합니까? 정체도 모르는데.”
“급하다. 사례는 충분히 하지.”
“뭐, 그렇게 급하시다면야……. 심부름 값부터 먼저 치러 주시면 어떻게 될 것도 같고요. 여기 풍습이 그렇습니다요.”
셋 중 가운데 앉은 사내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흔들었다.
지셀은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던졌다.
“빨리 움직여라.”
그의 눈에 조금씩 살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사내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다시 손가락을 들었다.
“어휴, 이왕 쓰신 거 조금만 더 쓰시지요. 이 동네는 물가가 좀 높습니다.”
양옆에 앉아 있는 다른 놈들이 맞장구를 치듯 킥킥 웃었다.
스각!
“어?”
그 순간, 무언가 스쳐 지나간다 싶더니 사내의 손목이 순식간에 잘려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있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테이블 위는 피범벅이 되었다.
“장난은 때를 가려서 해야지.”
지셀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제야 양옆에 있던 자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려 했지만, 용병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콰아앙!
두 사람은 목덜미를 눌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다, 당신들 지금 무슨…….”
손목이 잘린 사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지셀이 그의 목을 낚아챘다.
“크윽!”
“클로드는 어디로 데리고 갔지?”
“도, 도축 창고로 끌고 갔습니다! 오스턴 외곽에 있습니다. 끌려간 지 얼마 안 됐습니다!”
푸욱!
지셀은 사내의 어깨에 검을 깊숙하게 박아 넣었다.
“끄아아아악!”
“안내해라. 늦어서 클로드의 손목이 잘리면 너희 모두 다 나한테 죽는다.”
지셀은 놈의 목을 움켜쥔 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사내가 덜덜 떨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곧장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빈민가나 다름없는 지저분한 외곽 지역에 들어섰다.
관광객들이 복닥거리는 번화가와 달리 싸구려 술집과 험상궂은 자들이 가득한 곳.
그중에서도 유독 큰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자 지셀에게 잡혀 있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적이야! 적! 살려 줘!”
건물 앞에는 험상궂은 사내들 십수 명이 모여 앉아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벌떡 일어나 무기를 틀어쥐었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 조져!”
건달들이 달려들자, 지셀은 길잡이로 삼았던 사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길리언, 전부 제압해 둬. 안의 상황을 보고 죽이든지 살리든지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용병들과 건달들이 맞붙은 사이 지셀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도축 창고 곳곳에 동물의 사체들이 걸려 있었다.
짐승 특유의 누린내와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건달 두목 크랭크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도끼질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 앞에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초췌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행색이지만 그 얼굴에서만큼은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오스턴 주변에서 ‘도박장의 꼴통 현자’로 불리는 인물. 바로 지셀이 찾고 있던 클로드였다.
꽁꽁 묶인 채 도끼질을 당할 상황임에도, 클로드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아닌 피곤함만이 가득했다.
클로드가 입을 열었다. 권태롭고 갈라진 목소리가 창고에 울렸다.
“누가 시켰지?”
“시키긴 누가 뭘 시켜? 손장난을 치다가 걸린 건 너잖아. 난 그냥 법도대로 네 손목을 자르는 것뿐이지.”
그러자 클로드는 가당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난 사기 친 적 없어. 뒷골목에서는 왕 노릇 하는 것치고는 시시한 놈이네. 사실을 밝힐 배짱은 없나 보지?”
“이 새끼가…….”
크랭크는 이를 악물었다.
말을 더 섞어 봤자 짜증만 나니 빠르게 작업하고 갖다 버리는 게 낫겠다.
“야, 도끼 가져와.”
곁에 있던 수하가 손도끼를 들고 다가왔다.
크랭크는 클로드의 손목을 가리켰다.
“적당히 잘라 봐.”
“어디를요?”
“어디겠냐……. 됐다, 내놔.”
크랭크는 수하의 손에서 도끼를 휙 뺏어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손가락 정도로 봐주마.”
하지만 클로드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라곤 요만큼도 없었다.
도리어 크랭크를 짜증스럽게 노려보며 내뱉었다.
“자를 거면 빨리 잘라. 너 같은 놈하고 대거리하기도 귀찮다.”
“그래, 어디 한 군데 잘려 보면 더는 그 주둥아리도 못 놀릴 거다!”
입술을 실룩거린 크랭크가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 적이야! 적! 살려 줘!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크랭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창고 입구를 돌아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가서 확인해 봐.”
근처에 있던 수하들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콰아앙!
문이 박살 나며 지셀이 창고 안으로 짓쳐들어왔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 지셀은 크랭크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움직이면 죽는다. 그대로 있어라.”
건달 하나가 지셀의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이 새끼야!”
건달이 단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셀은 그런 어설픈 칼질에 당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지셀은 무심히 손을 뻗어 단검을 움켜잡았다.
콰직!
단검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자 건달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건 반칙이지! 누가 맨손으로 칼을 부숴!”
“그런 사람 여기 있네. 귀찮으니까 좀 자라.”
콰아앙!
지셀이 벌레 쫓듯 대충 손을 휘둘렀다.
건달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코와 이빨이 모두 박살이 난 채로.
크랭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뭐 해, 이 새끼들아! 한꺼번에 쳐!”
창고에 있던 십여 명의 건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지셀은 그들을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하나하나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을 끌기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덜컥!
마나의 실이 건달들을 묶었다.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우드득!
“끄아아아악!”
지셀이 주먹을 쥐자, 건달들은 모조리 팔다리가 꺾여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뭐, 뭐야!”
크랭크는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그도 별별 험한 꼴 다 보고 살았지만, 이런 괴상한 현상은 난생처음 보았다.
“마, 마법사인가?”
직접 주먹질하는 걸 보면 기사 같지만, 기사가 이런 기괴한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표정을 굳히고 있던 클로드도 눈을 크게 떴다.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많이 봤지만, 저런 기술을 쓰는 자는 없었다.
클로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날 구하러 온 건가?”
“그래.”
“대체 왜? 나하고 모르는 사이잖아.”
“이제부터 알아 갈 사이라고 해 두자.”
클로드가 미친놈을 다 봤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지셀이 낄낄 웃으며 클로드를 의자에서 풀어 주었다.
“루타니아 왕국의 지셀 펜리스 남작이다. 편하게 지셀이라고 불러.”
그때, 멍청히 보고 있던 크랭크가 뒤늦게 떠듬거리며 끼어들었다.
“타, 타국의 귀족이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아무리 귀족이라도 이렇게 마음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말하는 크랭크 자신도 과연 이자가 말을 들어줄지 의심스러웠다.
오스턴에서 향락을 즐기는 건 비단 평민들만이 아니다.
괜히 놀이터를 잃을 수 있으니 소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귀족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자는 그런 건 아랑곳없다는 듯 다짜고짜 쳐들어왔다.
그런 자가 말한다고 순순히 물러날까?
크랭크의 생각대로였다.
지셀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클로드를 데리고 가겠다.”
“그, 그놈은 손장난을 쳤습니다. 그런 놈은 손목을 자르는 게 이곳의 법입니다.”
“까불지 마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왔을 거 같냐?”
억울하게 손발이 잘렸다는 클로드의 한탄을 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크랭크는 곁눈질로 박살 난 문밖을 훔쳐보았다.
수하들이 죄다 쓰러지거나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지셀이 다가와 어깨를 지그시 잡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이만 돌아갈게. 클로드의 손목이 아직 붙어 있으니 너희 목도 붙여 놔 주지. 이 정도면 대가로 충분하지 않냐?”
뱀 같은 시선이 크랭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크랭크는 몸을 떨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많은 사람의 피를 보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놈은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눈치가 빨라서 좋네.”
지셀이 히죽 웃으며 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 크랭크의 손에 쥐여 줬다.
“부하들 치료비야. 남은 건 술도 마시고 해.”
“……감사합니다.”
크랭크는 겁에 질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지셀은 그대로 지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크랭크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왜, 왜 또 그러십니까!”
지셀이 새파랗게 질린 크랭크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감시도 그만둬. 곧 떠날 사람이니까.”
살기 어린 목소리에 크랭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지셀은 멱살을 놓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의 어깨를 다시 두드려 주었다.
“고생이 많아. 수고해라.”
“사, 살펴 가십시오.”
클로드는 지셀을 뒤따라가며 크랭크를 힐끔거렸다.
크랭크가 저렇게 겁을 먹은 건 처음 봤다.
뒷골목 패거리 중에서도 가장 강한 놈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지셀을 바짝 뒤쫓아 갔다.
지금도 손이 잘릴 뻔하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괜히 이상한 일에 얽히는 건 사양이었다.
바깥의 시원한 공기를 맡으니 풀려난 게 실감이 났다.
클로드는 지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구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 같은 놈을 뭐 하러 구해 준 거지? 굳이 힘써 줄 가치도 없는 놈인데.”
자조적인 말에 지셀은 클로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퀭하니 죽은 눈, 초췌하고 힘이 없는 표정.
썩은 나무 같은 몰골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삶의 의지를 잃은 인간이라는 게 여실히 보였다.
지셀은 길리언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때 길리언도 딱 이런 얼굴이었다.
지셀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클로드가 말을 이었다.
“아니, 이유야 뭐든 상관없겠지. 이왕 이리된 거……. 술 한잔 사 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