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95)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95화(95/269)
95화 그게 오늘이었어? (5)
클로드가 목소리를 덜덜 떨며 애원했다.
인생을 포기한 듯 시건방진 모습을 보이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셀은 그를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스턴 남작은 의심스러워하며 클로드에게 손짓했다.
“어디 한번 보자.”
클로드는 무릎걸음으로 주춤주춤 다가가 2천 골드짜리 신용장을 건넸다.
보증 상단의 이름과 액수를 확인한 오스턴 남작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이놈이 이런 큰돈을 어디서 구한 거지?’
남작은 클로드 옆에 서 있는 멀쑥하게 생긴 젊은이를 흘깃 보았다.
누군지는 제대로 소개를 듣지 못했지만, 이 돈과 연관이 있는 자인 게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오스턴 남작은 신용장을 다시 클로드에게 던졌다.
“돌려줄 수 없다.”
“무슨 소리입니까! 분명 2천 골드를 마련해 왔지 않습니까!”
클로드의 비명 같은 절규에도 오스턴 남작은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2천 골드인 줄 알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몰라? 3천 골드는 받아야겠다.”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무슨 물건입니까! 물가랑 무슨 상관입니까!”
“내 상품의 가격은 내가 정한다. 네놈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야.”
솔직히 과하게 부른 감은 있었다.
오스턴 남작으로서는 사실 2천 골드만 받아도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조금 더 쥐어짜면 더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2천 골드만 받을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으니까.
‘아니지. 저 돈도 몰래 뺏으면 되잖아?’
그러면 저 2천 골드도, 클로드가 다시 구해 올 3천 골드도 모조리 삼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크큭, 그래. 그게 낫겠군.’
그때, 클로드는 울먹이며 품에서 신용장을 한 장 더 꺼냈다.
“5백 골드를 더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호오, 역시 돈이 더 있었군.”
오스턴 남작이 음습하게 웃으며 물었다.
“너, 이 큰돈이 어디서 난 거지?”
“그냥 일을 좀 해 주기로 하고 받았습니다.”
오스턴 남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푼돈이면 몰라도, 이런 큰돈을 주면서 네놈을 쓸 사람은 이 왕국에 없다. 똑바로 말해라.”
“루타니아 왕국으로 떠날 겁니다. 그곳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뭐?”
오스턴 남작은 예상치 못한 말에 흠칫했다.
타국으로 떠난다니 생각도 못 했다.
“좋아, 떠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지. 어쨌든 이 금액으로는 안 되니까 돌아가라. 돈을 마련하면 다시 와.”
“약속을 지키십시오!”
“가격이 올랐다니까. 그나저나 옆에 있는 자가 너에게 돈을 준 사람이냐? 무슨 관계지? 같이 지내고 있나?”
클로드가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오스턴 남작의 속셈을 알아차린 것이다.
잠자코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지셀이 앞으로 나섰다.
“역겨워서 못 봐 주겠네. 어이, 오스턴 남작.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지셀이 내뿜는 강렬한 기세가 순식간에 사방을 옥죄었다.
오스턴 남작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그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기세만으로 주변을 이렇게 압박하는 건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고작 남작령의 기사에 불과한 이들이었지만, 실력 차이를 깨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주 앞에서 꼬리를 말고 도망갈 수는 없는 법.
기사들은 검으로 지셀을 겨누었다.
보통 같았으면 당장 달려가서 무릎을 꿇렸겠지만,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다.
“네 이놈! 무슨 망발이냐!”
“감히 영주님께 그따위로 행동하다니!”
“죽여 버리겠다!”
기사들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멍청한 오스턴 남작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기세등등해서 지셀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뭐냐?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니.”
“알아서 뭐 하게?”
오스턴 남작의 눈이 욕심으로 희번덕거렸다.
귀족 모독죄를 물어 돈을 뜯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지셀은 그 눈빛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네놈 같은 놈들은 꼭 몸으로 겪어야 정신을 차리지.”
“뭐?”
“아니다, 됐다.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다.”
오스턴 남작은 불길한 느낌에 미간을 좁혔다.
파아악!
지셀의 눈이 붉어졌다.
순식간에 2단계의 코어를 개방한 지셀이 손을 뻗었다. 마나의 실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크윽!”
목표는 조금 전 지셀을 죽여 버리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던 기사였다.
그는 갑자기 자신을 당기는 힘을 느끼고 마나를 끌어올리며 저항했다.
“오, 제법?”
역시 마나를 다루는 기사라 그런지 쉽게 끌려오지 않는다.
지셀은 혀를 차며 3단계 코어를 개방했다.
콰아아아아!
그의 손에서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뻗어 나가, 마나의 실을 타고 올라갔다.
기사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끌려와 지셀의 손에 붙잡혔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기술에 다른 기사들은 놀라 움직이지 못했다.
“검은 잠시 내려놓고.”
지셀이 남은 한 손으로 기사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우드득!
“크아악!”
기사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을 떨어트렸다.
지셀은 붉게 타오르는 눈으로 오스턴 남작을 노려보았다.
“검을 뽑았다는 건 한번 해보자는 거지? 잘 생각해, 난 나한테 덤빈 놈은 절대 안 봐줘. 이 성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주지.”
허언이 아니었다.
지셀과 용병들이라면 순식간에 이 성의 모든 기사와 병사들을 척살할 수 있었다.
기사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젠장,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고!’
‘마나만 써서 기사를 끌고 가는 게 말이 되나?’
맨손으로 기사를 순식간에 제압한 자다.
성에 있는 기사들이 모두 모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제야 오스턴 남작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새끼들이 죄다 겁먹었구나.’
옴짝달싹하지도 못하는 기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 그는 이를 악물며 지셀을 노려보았다.
“귀족을 이렇게 모욕하고도 무사할 거 같으냐?”
“웃기는 새끼네. 뭐 어쩔 건데? 해 봐.”
기세 좋게 윽박지른 것까진 좋았으나, 오스턴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몬스터를 앞에 두면 이러할까?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시렸다.
지셀은 픽 웃고 말았다.
“그래, 살고 싶으면 눈치가 있어야지. 내 걱정할 시간에 네놈이 무사할지 어쩔지나 고민하는 게 나을걸.”
“지, 지금이라도 내 기사를 놓아주고 용서를 빌면 없었던 일로 해 주마.”
“싫은데?”
“네가 이 성의 기사와 병사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으냐!”
“궁금하면 해 보라니까.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야. 가장 쉬운 방식이거든.”
지셀은 진심이었다. 오스턴이 선을 넘어 주면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
“나, 나에게 위해를 가하면 왕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고위 귀족도 아닌 네놈 따위를 왕국에서 신경 쓸 거 같으냐? 고작 술집이랑 도박장 굴려서 영지를 운영하는 놈을 누가 신경 쓴다고.”
“이, 이놈이…….”
지셀의 말은 하나도 틀린 점이 없었다.
왕국의 다른 귀족들은 술이나 도박으로 돈을 버는 건 천박하다며 오스턴 남작을 은근히 무시했다.
같은 귀족으로 여기지 않으니, 그가 죽는다 해도 큰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지셀은 계속해서 오스턴의 아픈 구석을 찔러 댔다.
“설사 신경 쓴다 해도 어쩔 건데? 내가 지금 성에 있는 자들 모조리 죽여 버리고 잠적하면 끝이야.”
“이 영지에는 병사가 오백 명이나 있다! 날 죽이면 그들이 널 추적할 거다!”
지셀은 코웃음을 쳤다.
‘남작령치고는 많네. 역시 돈이 많은 게 최고라니까.’
하지만 그 정도에 겁먹을 지셀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추적이고 뭐고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누가 말려?”
“…….”
오스턴 영지의 병력이 생각보다 많긴 하지만, 마음먹고 도망간다면 그쯤이야 따돌리지 못할 게 없다.
아니, 역으로 전멸시키면 그만이었다.
지셀의 표정을 가늠하던 오스턴 남작은 결국 이를 갈며 한발 물러섰다.
“……어쩌자는 거냐. 원하는 게 뭐지?”
“뭐겠냐? 머리가 나쁜 것도 정도가 있지…….”
지셀이 쯧쯧 혀를 찼다. 오스턴 남작은 이를 갈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담력도 없는 이였다.
그저 상대방이 겁을 먹고 물러나기를 바랐을 뿐.
하지만 지셀에게 그런 웃기지도 않는 협박이 통할 리 있겠는가.
오스턴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좋아, 2천 골드만 받겠다. 꺼져라.”
지셀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몸을 풀 기회였는데 아쉽네. 그럼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놈은 어떻게 할래?”
“뭐?”
지셀은 아직 제 손에 잡혀 있는 기사를 올려다보며 비웃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려면, 자기가 당할 각오도 했어야지.”
지셀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끄으윽!”
숨이 막힌 기사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지셀이 조금만 더 힘을 세게 준다면 바로 목이 꺾여 죽을 것이다.
오스턴 남작은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짓이냐! 이미 거래는 끝나지 않았느냐!”
“끝나긴 뭐가 끝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놈을 살리고 싶다면 3천 골드를 내놔. 그러면 살려 주겠다.”
“3천 골드라니! 억지 부리지 마라!”
“억지는 네가 먼저 부렸지. 기사 하나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3천 골드면 싸잖아? 아, 아니면 얘가 그 정도 가치가 안 되나?”
“개, 개소리를…….”
오스턴 남작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3천 골드면 지금 지셀에게 잡혀 있는 자보다 훨씬 더 실력 좋은 기사를 영입할 수 있다.
당연히 거절하고 싶지만…… 보는 눈이 너무나 많았다.
만약 거절해서 저 기사가 죽는다면 다른 기사들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충성에 가격을 매겨 손익을 따지는 자를 주군으로 모실 자는 아무도 없다.
지셀은 그런 부분까지 노리고 제안을 던진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악마 같은 외통수.
결국 오스턴 남작은 이를 갈며 지셀의 제안을 수락했다.
“2천 골드는 받은 셈 치지. 부족한 금액은 따로 채워 주마.”
“돌려받을 것도 받아야겠지?”
그러자 오스턴 남작이 옆의 기사에게 씹어뱉듯이 말했다.
“데리고 와라.”
기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지셀은 성큼성큼 클로드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쥐고 휙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2천 골드짜리 신용장을 집어 자신의 품에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
클로드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지셀이 씨익 웃었다.
“내 거 맞잖아?”
남은 5백 골드도 뺏길까 봐 클로드는 잽싸게 집어 자신의 품에 넣었다.
지셀은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5백 골드는 기사 몸값에 포함된 게 아니기도 하고, 클로드에게 왜 저 돈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었으니까.
지셀은 얼굴색이 퍼렇게 죽은 오스턴 남작에게 툭 내뱉었다.
“우린 성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물건은 잘 챙겨서 보내. 여기 오래 있고 싶진 않거든. 너도 내 얼굴 보기 싫지?”
“……알겠다.”
지셀은 클로드를 끌고 알현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기 전, 그가 오스턴 남작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혹시 불만 있으면 루타니아 왕국의 펜리스 영지로 찾아와. 손님 대접은 해 준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