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RAW novel - Chapter (122)
제122화. 근거 있는 믿음 (2)
우시프 제국 남부 도시, 브레누.
로열 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는 루웬과 가장 인접한 도시인만큼, 루웬으로 가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경유지이기도 했다.
까만 망토를 두른 채 거리를 지나고 있는 한 여인.
그녀를 지나친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차마 망토로도 가리지 못한 미모가 사람들의 심장을 자극했으며, 자연스레 여인에 대한 궁금증을 샘솟게 하였다.
일부는 세간에 신의 아이라고 알려졌었던 어느 가문의 장녀를 떠올리기도 했다.
“…….”
묵묵히 걷던 여인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뒤쪽으로 향했다.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는 수상한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이내 모퉁이 골목 쪽으로 방향을 트니, 한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 바로 뒤따랐다.
별다른 위협이나 살기가 느껴지진 않았으나, 그녀는 경계심을 놓지 않고 물었다.
“제게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말도 없이 뒤따른 점에 대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남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허락 없는 미행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곤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여인은 다소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며 편지를 받았다.
“……!”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다시금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쿤델 총장님이 여기 와계시다고요?”
* * *
방에 들어선 엘리스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뭘 그리 놀라고 있느냐? 이미 전선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왔을 텐데?”
“그, 그게 총장님께서 손수 와 주셨을 거란 생각은 못 해서…….”
그도 그럴 것이 쿤델 총장은 평소 휴가는커녕, 방학에도 아카데미를 떠나지 않는, 아카데미 지박령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고작 이전 졸업생 한 명을 위해 손수 몸을 이끌고 나와 주다니,
엘리스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을 그만뒀단 얘기는 들었다.”
다소 민감한 말이었지만 엘리스는 내색하지 않고 되물었다.
“총장님께선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걸 알고 계셨던 건가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쿤델은 준비한 문서들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문서를 받은 엘리스는 차분한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믿지 못할 내용에 중간중간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했으나, 그래도 큰 놀람 없이 냉철하게 읽어나갔다.
“그거 네 막냇동생으로부터 받은 거다.”
마지막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제…… 말인가요?”
“두 달 정도 됐지.”
순간 정신이 멍해진 엘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의 기사단 소속의 일부가 황실 일가와 연결,
이들은 전선 지역의 마수들을 도발하여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음,
그 시기는 황실 일가의 전선 순방.
모두 얼마 전,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앞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언서라도 읽은 것일까?
확실한 건, 고작 아카데미에 다니는 열세 살 소년이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는 절대 아니란 것이었다.
문서 마지막에는 한때 자신의 기사였던, 세실리아의 리엔의 진짜 정체가 적혀 있었다.
황실 직속의 친위대.
황성 내에서 황성 일가를 호위하는 근위대와는 별개 부대이자, 비밀조직.
주로 제국의 유력 가문에 위장 잠입해 공작활동 및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기사들로, 그녀는 애초부터 베르트 공작가가 아닌 황실의 사람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엘리스는 허탈한 마음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이 딱 3년 전으로 돌아왔구나.”
쿤델이 그런 엘리스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눈, 나쁘게 말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눈이라고 해야겠지.”
정곡을 찔려버린 엘리스는 다시 침묵하고 말았다.
쿤델은 별다른 말없이, 그녀가 입을 열기를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총장님께서 예전에 제게 물으셨죠? 제 동생에 대해 다 아는 것 같냐고…….”
“그랬지.”
“참 신기한 게, 아버지로부터도 비슷한 말을 들었어요. 제 동생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할지 모른다고요.”
쿤델은 딱히 반문하지 않았다.
“그럼 저도 한 번 여쭤볼게요. 총장님은 시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요?”
“내 수십 년 아카데미 생활을 걸고 장담하는데, 너보다 모르면 몰랐지, 많이 알고 있진 않을 거다.”
엘리스의 눈엔 옅은 의심이 서려 있었다.
“시안이 단기 휴학을 한 건 알고 있었느냐?”
“……!”
“이유를 물어보니, 단순하게 그냥 너를 위해서라 하더구나.”
의혹의 퍼즐 한 조각이 이제야 맞춰지기라도 했는지, 소탈한 미소를 짓는 엘리스였다.
“그런 거였군요.”
쿤델은 그런 엘리스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항상 당차고 자신감이 있는 모습만 봐왔던 애제자였기에, 마음이 더욱 쓰일 수밖에 없었다.
“회의감이 들어요. 제가 여태 추구해왔던 게 잘못되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느낌이에요.”
“신경 쓸 거 없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놈이 첫 만남 때 나를 보고선 묻더구나. 내가 제국의 번영을 원하는지, 아님 가문의 영예를 원하는지 말이다.”
쿤델의 눈이 다소 씁쓸하게 가라앉았다.
“디아나가 병사한 이후, 난 가문에 대한 모든 것을 접고 오로지 아카데미에만 전념했다. 화합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학생들과 부딪히다 보니,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안일해졌는지도 모르지.”
항상 진지하고 냉정하기만 했던 총장이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냈다.
“난 언젠가 루이넬이 황제가 되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네 다른 형제들을 미워하지 말고 전부 포용하라고, 그것이 바로 참된 군주의 덕목이니 말이다.”
황제의 장인으로서, 그리고 황자의 할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난 이 길로 황성에 갈 것이다.”
“네?!”
“내 아무리 작위에서 물러났다지만, 집안 꼴이 개판 나고 있는데 가만히 지켜볼 순 없지. 가서 모든 걸 바로 잡고 올 것이다. 물론 황제 폐하도 뵐 것이고.”
쿤델의 눈엔 결의와 더불어 독기까지 서려 있었다.
“그러니 아카데미 총장이 아닌, 네가 잘 되길 바라는 한 명의 늙은이로서 너에게 부탁하겠다. 엘리스.”
엘리스는 초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있었던 일들은 모두 잊고, 당분간 제국을 떠나있거라. 그리고 네 가족을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나와 네 아버지는 물론이고, 네 동생에게도 말이다.”
엘리스는 차마 단번에 그러겠다고 답하지 못했다.
“기사단을 그만둔 시점에서 너도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겠지. 더 이상 네 가족을 위한답시고 너를 희생시킬 필요 없다. 돌고 돌긴 했지만, 이제라도 새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야. 지금이야말로 너의 길을 찾을 때다. 엘리스.”
세간에 오르내리며 찬양받던 신의 아이가 아닌, 그저 엘리스 베르트란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여인으로서,
세상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쿤델이 엘리스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그거 하나였다.
“그래야죠…….”
짧은 침묵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만이 저 스스로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남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삶.
그 삶은 시안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그녀 스스로가 이어나갈 차례였다.
마음을 굳힌 엘리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을 만날 생각이냐?”
“그러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안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문 쪽으로 다가간 엘리스는 다시 쿤델을 돌아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시안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 * *
모퉁이에서 나온 망토를 두른 여인이 그대로 옆을 지나쳤다.
“……!”
이에 익숙한 기운을 느낀 브라이언은 가던 길을 멈추고선 대뜸 고개를 돌렸다.
“뭐해요? 브라이언?”
그 모습을 본 에밀리가 물었다.
“아, 아뇨. 별건 아니고, 엘리스님을 닮은 분을 본 것 같아서…….”
“그게 말이 되요? 빛의 기사가 되셔서 한창 바쁘실 분이 이런 곳엔 왜 있겠어요? 게다가 엘리스님을 닮을 만큼 예쁜 사람이라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요!”
브라이언은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얼른 가요! 그 꼬맹이 깰 시간이잖아요!”
“예엡!”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에밀리의 말마따나 빛의 기사로 부임한 엘리스가 여기 있을 리도 만무할 터.
‘그래 엘리스님이 여기 계실 리 없지.’
마음을 접은 브라이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우! 차라리 벨리아스에 있을 때가 좋았지! 이런 타지까지 와서 내가 뭐하는 걸까?”
루웬 근교 도시 브레누에 머물게 된 지 어느덧 일주일.
에밀리는 갖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일이 있으시면 혼자 갔다 오시면 되지. 굳이 우리까지 딴 곳에 데려 놓을 건 또 뭐람?”
그건 브라이언으로서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시안이 자리를 비우는 거야,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자기 사람들을 딴 곳으로 옮긴 적은 또 처음이었다.
늘 그렇듯, 이유는 묻지 않았다.
허나 근래의 시안이 평소와 다르게 누군가를 경계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봤을 때, 뭔가 심상찮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을 피신시킨 것은 아닐까, 추측은 하고 있었다.
평소 시안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면 방해라도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닳도록 들어왔던 만큼,
브라이언으로선 그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있는 것이 시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그들의 거처지.
사람 셋이 살기 적합할 평범한 집으로 보이지만, 지금 이곳엔 보이지 않는 제한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즉 허가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범 장치이며 시안이 떠나기 전, 만약의 상황을 위해 만들어두고 간 것이었다.
그나마 하는 외출도 이렇게 나가서 식료품을 사 오는 게 전부.
산책이라든지, 도시 구경 같은 것도 웬만해선 자제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
낮잠을 자고 있을 나나도 지금쯤이면 깰 시간이었다.
“우리 왔다. 꼬맹아.”
“…….”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직 자나?”
평소라면 어서 오라며 반겨주던 나나가 오늘따라 조용한 것이다.
일단 거실에는 보이지 않았다.
“……!”
이에 브라이언은 문득 자신의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이 집안에 느껴지는 인기척이라곤 자신과 에밀리, 둘밖에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있었던 것이 없어짐으로 인해 생기는 공허함 마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곧 브라이언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이 꼬맹이 방에도 없는데요? 창문은 또 왜 열려있대?”
성난 황소가 발을 떼기라도 하듯, 브라이언은 재빨리 나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곱게 개어진 이불, 보이지 않는 신발, 열려있는 창문까지.
“아무래도 얘 나간 거 같은데요? 아니, 혼자 말도 없이 어디로 갔대?”
브라이언은 속으로 생각했다.
‘큰일 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