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징조 (4)
성서(聖書).
신이 인간에게 하사한 신의 마법 교서.
마서(魔書).
신이 인간에게 금기시킨 신의 마법 교서.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각각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가?
차이라곤 고작 단어 하나뿐이지만, 이 하나만으로도 두 책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말하자면 난 마법사가 아니다.
마법을 주특기로 싸우는 마법 기사도 아니고, 마법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다.
내 비록 말도 안 되는 속성 수치를 보유한 덕에 어둠 속성만큼은 최고 경지에 올랐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난 마법을 연구하며 살지 않았다.
하물며 성서나 마서 같은 신의 마법 교서 같은 거엔 관심도 없었지.
당연히 들은 이야기조차 없었다.
전 현생을 통틀어 이번에 들은 것이 처음일 정도로.
신의 마법 교서라.
분명 탐나는 물건인 건 맞지만, 암살자인 내게 필요한 것일지는 좀 의문이 든다.
아에르도 그리 자세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을 한 이상, 한 귀로 듣고 흘리긴 힘들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알아보기는 해야 할 텐데…….
[아 진짜로 모른다니까? 그 머저리 신도 모르는 마당에 내가 알 턱이 있겠냐?]케이람은 억울하다 못해 펄쩍 뛰며 소리쳤다.
[내가 잠자고 있던 시간만 무려 300년이다! 그러고 나서 너랑 한 시도 떨어지질 않았는데! 그놈이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뭐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아예 모르는 존재는 아닌 듯하다만,
이전과 다르게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억울함을 보고 있자니, 더 추궁하기도 애매해졌다.
“이름은?”
[뭐?]“이름 정도는 알 거 아니야? 명색이 또 하나의 신의 교서인데 성서처럼 이름은 있을 거잖아?”
대답하기 싫다는 듯 케이람은 입술을 쭉 내밀며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못 말할 건 아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레미하람…….]“레미하람?”
혹여 흘러 지나간 기억 속에 남아있진 않을지 머릿속을 들춰봤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뭐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결국 중요한 건, 이 마서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냐는 건데.
하나 추정되는 건 있었다.
이 마서라는 것이 아직 케이람처럼 깨어있지 않고 어딘가에 잠들어 있거나 봉인된 상태라면, 그것은 성서가 있던 곳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케이람을 찾은 곳도 결국 성검이 있던 빛의 신전이지 않았던가?
똑같은 이치라고 가정한다면, 마서 또한 성서가 있던 공간 어딘가에 숨어 있진 않을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담 성서가 있던 곳을 먼저 찾아봐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성서를 가지고 있는 자를 우선적으로 찾아야 할 텐데.
이러나저러나 한시라도 빨리 보리스 그놈을 찾아야 한다는 것엔 변함이 없군.
여러모로 난잡한 마음이 머릿속을 윙윙 날아다니는 것도 잠시, 내 몸은 곧 어느 한 장소에 도착하였다.
나름 이 아카데미 내에서 가장 정보가 많다고 불리는 곳.
도서관이다.
내 살다 살다 도서관을 다시 오는군.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웬만해서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성서나 마서에 대한 정보가 있진 않을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와 보긴 했다만.
이 즐비하게 늘어선 책들을 봐선 일단 책 찾는 데에만 한세월일 거로 보인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사서한테라도 물어봐야 하나?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꽂힌 책 한 권을 꺼내본 순간,
“……?”
비어있는 책장 사이로 낯익은 눈동자가 보였다.
어둡다 못해 음침하여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독한 눈빛.
이 아카데미에서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루나브 레인리버.
나는 놀라는 기색 없이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하니?”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지켜보는 모습이 영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마냥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책 읽고 있던 도중에 선배 냄새가 나서 찾아와봤어요. 역시 제 코는 정확했네요.”
왠지 모르게 기분 더럽다.
진짜 향수라도 뿌리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브라이언한테 하나 사놓으라고 말해야겠다.
“책 찾으러 오셨어요?”
“뭐, 그런 셈이지.”
“의외네요. 선배는 책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사실 아에르가 아니었으면 졸업할 때까지 발도 안 들였을 곳이다.
“찾으시는 책이 뭔데요? 말씀만 하세요. 제가 갖다 드릴게요.”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너 사서로 전직했니?”
“그건 아니고요. 그냥 여기 있는 책들을 다 읽었다 보니 어디 있는지 대강 알아요. 책 이름을 모르신다면 내용이라도 말씀해주세요.”
뭐지? 그게 사실이라면 거의 걸어 다니는 도서관 수준인데?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만큼 시원찮은 허풍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거 속는 셈 치고 얘길 해봐?
“마서에 관한 걸 찾고 있는데…….”
뭔가 불쾌감을 느꼈는지, 마서란 단어를 들은 순간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곤 나를 뚫어지게 보기를 3초 정도.
대뜸 몸을 돌려 어딘가로 가버리더니, 잠시 후 열권에 달하는 책을 들고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마서는커녕 마법이랑도 관련 없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들이 마서랑 무슨 관련이 있어?”
“기다려 보세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이내 맨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집더니 무슨 묘기 부리는 것처럼 화려하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던 것도 잠시,
이윽고 내용을 찾은 그녀가 펼친 부분을 보란 듯이 내밀었다.
100년 전, 우시프 제국에서 이름을 날렸던 검사 페넬론 연대기의 일부였다.
모험가 길드로부터 와이번 토벌 의뢰를 받은 페넬론이 정보를 수집하던 도중 어느 노인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실질적인 도움은 못 되어도, 그래도 실오라기 수준은 될 것 같은 정보였다.
다른 책들도 대체로 마찬가지.
짧으면 한 줄, 길면 한 장 정도의 변변찮은 내용이긴 하지만, 긁어모은다면 꽤 나쁘지 않을 수준의 정보들이었다.
“성서나 마서 같은 신의 교서에 관한 걸 직접적으로 저술한 책은 적어도 이곳엔 없어요. 애초에 그런 책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한계일 거예요.”
그렇다 해도 이게 어딘가?
한 달 밤새워 찾아도 모자랄 정보를 10분도 안 돼서 종합해주었으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지였다.
“근데 마서에 관한 건 왜 찾으세요? 직접 찾으시려고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찾아준 부분을 읽는 동안 그녀의 반신반의한 눈빛이 나를 쏘아대고 있었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진 모르겠지만, 쉽진 않을 거예요. 저희 학회에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성서나 마서 같은 신의 교서를 찾아다녔지만, 아직 까지 별다른 소득은 없었거든요.”
“그런 거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 거야?”
“선배니까 괜찮아요. 어디 가서 말 안 하실 거잖아요?”
그냥 얘랑은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혹시라도 찾게 되신다면 저도 한 번 보여주세요. 제가 살면서 꼭 읽고 싶은 책이 두 권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서거든요.”
“다른 하나는 뭔데?”
“성서요.”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하긴 그녀 정도면 이 세상에 읽지 못한 책이 그거 두 권이라 해도 믿겠지.
읽다 보니 대체로 성서와 비교돼서 나오는 내용이 많았다.
성서의 경우 대부분 히스크레아라는 이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마서의 경우는 그러지 않았다.
이름에 대한 정확한 표기나 언급 없이, 그저 마서라고 짤막하게만 쓰여 있는데…….
계속 찾아보니 레미하람이라고 제대로 적힌 부분은 한 군데도 볼 수 없었다.
“근데 성서랑 다르게 마서는 이름이 안 쓰여 있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거야 뭐…. 선배는 알고 있어요? 마서의 이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레미하람.”
이에 그녀의 얼굴이 순간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아, 아니야?”
살짝 당황한 마음에 급히 되물었다.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음침한 얼굴로 돌아왔다.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하나만 여쭤 봐도 돼요?”
“뭔데?”
“선배에 관해서 요즘 재밌는 얘기가 들리던데…….”
“글쎄? 뭐 나를 소재로 한 이야깃거리가 한둘이 아니라서.”
물론 대체로 욕에 가까운 헛소문들에 불과했지만.
진즉부터 해탈한 나로선 뭔 얘기가 들리든 딱히 신경은 안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 약혼해요?”
-툭!
들고 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지는 무심한 소리가 났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내가 낸 소리 아니다.
나와 루나브가 있는 곳에서 정확히 다섯 걸음.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느 나라의 황녀님께서 내신 소리다.
“시, 시…….”
얼마나 놀랐으면 이름도 못 부르고 있다.
당분간은 마주쳐봐야 서로 불편할 테니, 이쯤에서 내가 자리를 떠나는 게 맞을 듯싶었다.
“찾아줘서 고마워. 먼저 간다.”
“다, 다음에 봐요. 선배.”
양쪽 눈치를 보던 루나브는 얼떨결에 손을 흔들며 답했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할까 싶어, 지나면서 아린 황녀를 쳐다보았지만,
“…….”
뭐가 문제인지 얼굴을 팍 숙이며 들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도서관을 벗어났다.
* * *
시안은 아카데미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학업과 담을 쌓은 학생이었다.
단련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은 종종 보았어도,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만큼, 아린으로선 시안이 여기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다른 장소도 아닌 설마하니 도서관에서 마주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예기치 못한 만남에 머리가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진 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시안은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괜찮아요. 아린 선배?”
아직 남아있던 루나브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으, 응! 물론이지!”
아린은 심호흡을 반복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늘 보는 시안 선배면서 뭘 그리 놀라세요?”
“어? 아, 아니야! 놀랐다기 보단 그냥 좀 당황스러워서…….”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루나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 시안이랑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
“그냥 찾으시는 정보가 있다길래 찾아드리던 중이었어요.”
“그, 그렇구나…….”
이제는 자기가 뭘 하러왔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
아린은 아무런 말없이 서있는 루나브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자,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루나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