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RAW novel - Chapter (214)
제214화.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4)
“이래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계승자!”
그 좋을 거 없다는 주체가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난 지금 나 하나 좋자고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다.
그늘이 드리워진 어두운 골목의 중심부.
방치된 쓰레기 냄새가 창궐하는 곳에서 갓 튀어나온 진득한 피 냄새가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
그나마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 대원은 단 한 명.
나머지는 전부 각자의 상처 부위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출혈을 막기 위해 저마다 애를 먹고 있었다.
“그대는 당주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당주님은 계승자 그대를 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전부 당신을 위한 일이란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라.
저 말이 참 여러모로 위험한 말이다.
지금 당장은 느낄 수 없어도 시간이 흘러, ‘아! 그때 당주는 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한 것이었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의 난, 백 년이 흘러도 그런 마음이 안 들 것 같다.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검의 균형을 깨트리기 위해 팔을 앞으로 뻗으니,
“……!”
검을 맞대고 있는 대원의 팔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얼굴이 그의 얼굴과 손가락 하나의 거리만큼 가까워진 순간,
“가서 당주께 전해주십시오.”
그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난 방관 같은 거 원하지 않는다고.”
이번엔 내가 방관할 차례라고?
내가 언제 서로의 차례를 지켜줄 만큼 격식 있는 놈이었나?
당주가 한 말이 맞다.
난 무척이나 이기적인 놈이다.
이기적인 놈이기 때문에, 난 끝까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전적으로 나를 위해.
-스릉
“……!”
맞대고 있던 검을 그대로 사선으로 흘리니, 중심을 잃은 대원은 일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쓰러지는 그의 오른쪽 종아리를 자비 없이 베어냈다.
“크억!”
대원은 비명과 함께 쓰러졌으며, 쓰러진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무심히 골목을 나왔다.
“대체 당신은 뭘 원하는 겁니까!”
떠나는 동안 나를 향해 울부짖는 대원의 외침이 귀를 타고 내면에 울려 퍼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지금 내가 저들을 이해할 수 없듯,
저들 또한 나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다시금 거리로 나와 하스티아와 브라이언이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생각 외로 시간을 꽤 소비해버렸다.
내가 없는 동안 그래도 어느 정도의 어색함은 풀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당 근처에 이른 순간,
“……!”
나는 정확히 식당 입구로부터 세 걸음 앞에서 발을 멈췄다.
뭔가 식당을 나오기 전과 느낌이 다르다.
하스티아와 브라이언. 두 명의 기척을 포함해, 또 다른 이들의 기척까지 느껴지고 있다.
그냥 평범한 손님이 아니냐고 할 순 있겠지만, 아니다.
장담하는데 절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 푸른빛의 투명한 오라를 보라.
식당 입구 틈 사이로부터 고등급 마나의 흐름이 물 새듯 선명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마치 자신의 기운을 대놓고 느끼라는 것처럼.
-끼익
이내 식당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나타나 멀뚱히 서 있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뭐해요? 안 들어와요?”
루나브 레인리버.
7년 전과 비교해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덤덤한 눈동자가 나를 쏘아대듯 바라보고 있었다.
* * *
의도치 않은 만남만큼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것도 없다.
미스트의 대원들이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니, 마주쳐도 딱히 놀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다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가람 왕국에 있었던 그녀가 지금 왜 제국에 있는 거지?
현재, 이 낡은 식당 안에 있는 인원은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동행인처럼 보이는 저 검은 머리 남자도 어디선가 본 것 같긴 한데, 딱히 기억은 안 난다.
슬쩍 시선을 돌려 브라이언을 쳐다보니,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라는 호소의 얼굴로 내게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선배가 없는 방금 전까진, 저희 꽤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그런 것치곤 다 멀쩡해 보이는데?”
“그나마 합의에 합의를 거친 대안이 지금의 상황이에요. 안 그랬으면 지금쯤 선배는 제한 결계가 쳐진 숲속 한가운데에서 저희를 만나야 했을 거예요.”
하스티아와 브라이언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기야 적어도 나를 상대로 거짓말할 여자는 아니지.
“무슨 말이라도 해보시죠?”
“무슨 말을 하라는 거지?”
“참, 선배는 7년이 지나도 여전하시네요. 가울에서도 인사도 없이 쌩 가버리시곤…….”
내가 아무 인사 없이 그녀를 지나쳤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 상황에 아는 척 해봐야 좋을 일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너한테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럼 도망가야지.”
“누가 들으면 제가 선배를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요?”
나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루나브는 뚱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시선을 옆에 다소곳이 앉은 하스티아에게 돌렸다.
“선배도 참 여자 없인 못 사는 팔자인가 봐요? 분명 저 엘프는 저한테 선배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는데?”
깜짝 놀란 하스티아가 손을 저었다.
‘저, 정말 아무 사이 아니에요! 지금은 잠시 사정이 생겨서 동행을…….’
“그 사정이 뭔데요?”
“너한테 말할 일은 아니야.”
“또 말 못할 비밀이라 이건가요? 선배는 여전히 비밀투성이네요.”
조금은 질린다는 듯 루나브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의 무미건조한 대화를 지속해봤자 의미 있는 진전은 없을 터.
나는 곧 브라이언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스티아 데리고 잠깐 나가 있어.”
“예. 알겠습니다!”
하스티아는 살짝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브라이언을 따랐다.
“슈르츠 씨도 잠깐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루나브 역시 나를 따라 본인의 기사를 밖으로 보냈다.
곧 식당 안에는 나와 루나브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먼저 말하지 않고, 내가 입을 열기를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제국엔 왜 왔어?”
“개인적인 사정이요.”
미간을 찌푸리며 째려보자, 그녀는 뭐 문제 있냐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공적인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에요. 제가 여기 있다는 건, 학회원들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니까요. 호위 병력도 지금 밖에 있는 저 사람 혼자뿐이고요.”
지극히 그녀다운 일이었기에 별로 놀랍진 않았다.
사실 그녀가 여기서 뭘 하든지는 말 그대로 개인적인 일이기에 내가 알 이유는 없다.
허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야 할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딱 한 마디만 한다.”
“하세요.”
“황성엔 가지 마.”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경고하시는 것 같네요?”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건 선배를 위한 일인가요? 아님 저를 위한 일인가요?”
“나를 위한 일이야.”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승낙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해버렸다.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어요. 저 선배에게만큼은 진심이란 거 아시잖아요?”
세상엔 변해서 무서운 게 있고, 변하지 않아서 무서운 것도 있다는데,
얘는 정말 두말없이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그녀는 승낙하는 조건으로 내게 약속을 요구했다.
“뭘?”
“선배가 하시려고 하는 그 일 끝나면, 그다음엔 저랑 제대로 한 번 만나주세요.”
“……무슨 의미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되물음이었다.
“무슨 의미긴요? 그냥 제대로 다시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나 나누자는 거죠. 제가 뭐 선배한테 대단한 거라도 기대한 줄 아세요?”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해, 애꿎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루나브는 그런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만남은 없던 걸로 할게요. 선배도 절 그냥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주세요.”
“굳이?”
“7년 만의 재회라는 의미 부여를 하기엔…….”
“……?”
“선배나 저나 그리 큰 감흥을 못 느낄 것 같거든요.”
딱히 충격을 받거나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다음에 봐요. 선배.”
그녀는 그런 나를 홀로 남겨둔 채, 아무 미련 없이 식당을 떠났다.
의미 부여를 하기엔 그리 큰 감흥을 못 느낄 것 같다라.
무슨 뜻으로 저 말을 한 건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나만큼은 분명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큰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으로 인해 감정 소모하지 말라는 거다.
원래부터 없었던 만남인 것처럼 그냥 일을 진행하되,
그렇게 끝나고 나면 다시 만나자는 거겠지.
참, 이제는 대단하다는 말을 넘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넌 대체 뭘 위해 사는 거냐?”
좀처럼 입밖엔 나오지 않던 속마음이 나도 모르게 뱉어지고 말았다.
* * *
“끄, 끝나신 겁니까?”
“네. 끝났어요.”
서로 간의 회포는 풀었을까 싶을 만큼 너무나도 빨리 끝나버린 둘의 대화.
루나브의 얼굴엔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조차 남지 않았다.
“그토록 고대하시던 만남이 아니셨습니까? 이렇게 빨리 끝내셔도 되는 건지…….”
“어차피 예정에 없던 만남인데요 뭐. 전 괜찮아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한 의미 부여해 봐야, 지금의 선배에겐 별로 좋을 것 같지 않거든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슈르츠는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겉으론 덤덤한 척을 하긴 하는데, 속은 좀 불안해 보였다고 할까요? 마치 정이라고 하는 감정을 처음 깨달은 저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자신.
루나브는 그때 자신의 모습을 조금 전 시안에게서 똑같이 보게 되었다.
“그런 선배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순 없으니까요.”
머지않은 훗날에 서로 편한 마음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실로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오지 않을 그날을, 루나브는 간절히 소망할 뿐이었다.
* * *
어떤 인사말이나 이야기도 없었다.
사실상 공문이라기보단 소환장에 가까운 것.
니그리티 백작가의 이름이 적혀있긴 해도, 분명 제국의 다른 귀족 가에도 같은 내용의 공문이 보내졌을 터.
시리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다가도 나직이 읊조렸다.
“아예 대놓고 이행의 날을 정해주시겠다?”
그녀에게는 일종의 도전장처럼 느껴졌다.
“시리카님!”
그런 와중 한 시녀가 노크도 없이 다급히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재빨리 시리카의 곁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로랑드에서 계승자를 찾았답니다!”
“…….”
시리카는 일말의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
“간부급 대원 네 명과 상급 대원 한 명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 교전을 벌였지만…….”
“대원들의 상태는?”
시리카는 결과에 상관없이, 바로 대원들의 상태를 물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전부 신체 한쪽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회복시키겠다곤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리카의 얼굴은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공문을 들고 있던 그의 한쪽 손엔 어느샌가 주먹이 쥐어지면서 미약한 떨림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당주님께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
“자기는 방관 같은 거 원하지 않는다고…….”
“알았어. 나가봐.”시녀는 더 이상의 말이나 물음 없이 그대로 방을 나갔다.
시리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차분하게 숨을 내쉬다가도, 곧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도 결국은 알게 되겠지.”
그러곤 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