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on of a Duke is an Assassin RAW novel - Chapter (221)
제221화. 각자의 플랜 (2)
때는 루나브와 슈르츠가 찾아오기 정확히 30분 전.
생전 처음 들어와 보는 아공간의 풍경에 브라이언은 넋 놓고 보는 반면,
하스티아는 나름 익숙하다는 듯 아공간에 그리 큰 시선을 주진 않았다.
그 대신,
‘시, 시안님은 대체?’
시안을 향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못했다.
화이트 엘프는 대대로 인간과는 거리를 뒀지만, 그만큼 인간 이외의 초월적 존재들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프루이나의 수호 드래곤을 비롯해, 신계의 하급 신들도 이따금 찾아왔던 만큼, 그들의 힘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 그녀였지만,
‘어느 경지에까지 오르신 거지?’
그 힘을 설마 인간으로부터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담 못해 마검의 힘을 쓴 것도 아니었다.
이건 엄연히 시안 스스로가 이끌어낸 고유의 힘.
그가 아공간을 생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신의 경지 혹은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하스티아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두 남녀에 비해,
“…….”
시안의 표정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시안님?’
“막아도 아주 제대로 막아놨네.”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시안은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네?’
“아니야. 어차피 너희는 당분간 움직일 일 없으니까. 그냥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어, 어디 가십니까 도련님?”
“정문이 막혔으니, 샛길로 돌아가야지.”
브라이언의 물음에도 시안은 의미 불명한 말만 던질 뿐이었다.
그러곤 뒤 한번 안 돌아보고 바로 사라져버리니,
하스티아와 브라이언으로선 딱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일단은 시안의 말을 따라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도중,
루나브와 슈르츠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긴 미스트의 아공간이 아닌 선배의 아공간이라 이거죠?”
루나브는 관심이 잔뜩 담긴 눈으로 공간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안개 사이에 떠도는 먼지 한 올까지 세세하게 살펴볼 기세였다.
관찰하기 바쁜 그녀를 대신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슈르츠가 대신 설명했다.
“아, 아린 황녀님이 납치를 당하셨다고요?!”
황성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던 둘은 당연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뭐야? 당신들은 몰랐던 겁니까?”
“저희는 황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이곳에 넘어왔습니다. 어차피 일이 시작되면 황성에 안전한 곳은 없을 거라며, 도련님께서 그냥 여기 있으라고 하신지라…….”
잠시 후, 공간 탐색을 마친 루나브가 그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시안 선배도 아린 선배가 납치되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요?”
“그건 아닐 겁니다. 도련님께선 어제까지만 해도 황성에 다녀왔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브라이언은 본인이 말을 잇다가도 순간 멈칫했다.
어젯밤 황성에 다녀온다고 했던 시안,
그 어젯밤 미스트에게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아린 황녀.
바보가 아니고서야 둘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단 걸 눈치 못 챌 수가 없지 않은가?
“선배가 여기서 뭘 하고 계셨나요?”
“그게, 특별한 건 없고, 허공을 보시면서 뭔가 굉장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셨었습니다. 그러곤 ‘정문이 막혔으니 샛길로 돌아가야겠단’ 말만 남기고선 그대로 떠나셨습니다.”
“그럼. 확실해졌네요.”
루나브는 확신에 찬 눈빛을 번뜩였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아린 선배는 이곳이 아닌 다른 아공간에 갇혀 있어요. 정확히는 검은 안개 신의 아공간이라고 해야겠네요.”
루나브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브라이언은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로선 혹여 시안이 아린 황녀를 납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듯 보였다.
“신의 아공간은 비슷한 기운을 가진 두 개의 아공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요.”
루나브와 슈르츠 역시 아공간의 그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아마 시안 선배도 아린 선배가 아공간에 갇혀 있다는 걸 알고, 두 개의 아공간을 이어서 찾아갈 생각이셨겠죠.”
‘잠깐만요! 그럼 루나브님도 아공간을 만들어서 여기 오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뭐 문제 있나요?”
거대한 성벽을 보는 듯한 무심한 답변에 하스티아는 애꿎은 눈만 끔뻑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포기하신 것 같네요. 뭔가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마주하신 모양이에요.”
루나브는 마치 시안을 곁에서 본 것처럼 그의 상황을 술술 풀어나갔다.
“하지만 전 그럴 생각이 없으니, 제가 선배를 대신해서 두 공간을 이어보도록 할게요.”
그러곤 시안이 서 있던 자리로 찾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도록 해봐야죠. 뭐 선배가 포기할 정도면 제 예상을 훌쩍 넘을 정도로 고단하긴 하겠지만…….”
허나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녀는 바로 마나를 끌어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런 그녀의 곁으로 하스티아가 다가왔다.
‘시안님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아공간을 찾으면 되는 거죠? 그런 거라면 자신 있어요!’
“어째서요?”
루나브의 목소리엔 약간의 못마땅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전 항상 시안님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하스티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울 스톤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
이에 루나브의 표정이 돌연 차갑게 굳기 시작했다.
* * *
암살자들이 좋아하는 옛말 중 하나가 뭔 줄 아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
황녀의 납치 사건으로 시끄러운 지금,
기사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황성 전역을 쥐잡듯이 뒤지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러면서도 놓치는 곳들이 몇 군데 있지.
지금 내가 위치한 장소가 딱 그런 곳이다.
족히 5층은 훌쩍 넘을 개방된 공간 속에 자리한 수십 개의 책장과 그 안에 꽂힌 수만 권의 책들.
별로 친하지 않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아곳은 황궁으로부터 굉장히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황성 도서관.
이 난리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또각또각
책장 사이에 우두커니 있는 내 귀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정확히 내 바로 건너편 책장 앞에 멈췄다.
그렇게 또 적막이 흐르기를 1분 정도.
“용케 얼굴을 들고 다니는구나.”
빼곡히 채워진 책장 속,
채워지지 않고 유일하게 비어있는 곳으로부터 친숙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수치스러움에 휩싸여 아공간 안에 짱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회복의 시간이 빨랐을 뿐입니다. 처음엔 뭐, 당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않았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전생의 제가 당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장소와 비슷했었습니다. 아카데미 도서관 구석에 쭈그려 앉은 저를 발견하고선 굳이 인사를 건네주셨죠.”
“아마 미스트의 지령서를 숨겨두고 오는 길이었겠지.”
당주는 약간의 웃음기 어린 어조로 답했다.
“인생 두 번 살면서 참 여러 번 느끼게 됩니다. 지나고 보면 당주님 말이 다 맞았다는 걸. 당주님 말 안 들어서 이득 본 적이 없더군요.”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구나.”
“하나 묻겠습니다.”
나는 잠깐의 뜸을 들였다.
“제가 이대로 미스트를 떠나 다른 누군가의 수하 노릇을 한다고 하면, 당주님께선 어쩌시겠습니까?”
“…….”
당주 역시 바로 답하지 않고 몇 초의 뜸을 들였다.
“그게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응원은 못 해주겠지만, 보내는 주겠지.”
“이유가 뭡니까?”
“뭘 하든, 네가 앞으로 나아가게 될 미스트의 길보다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일 거라 하면 답이 되겠니?”
예상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은 대답이다.
이에 입에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절대 긍정에서 비롯된 웃음은 아니었다.
“따를 필요 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너 스스로의 길을 나아가겠다는 거 아니니? 그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제자를 보는 거야 말로 스승의 참 기쁨이라고 할 수 있지.”
정말?
정말 진심으로 그녀는 그리 생각하는 걸까?
모든 걸 내주고, 모든 걸 다해준 계승자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겠다고 하는데,
그걸 아무런 반대 없이 보내줄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
“전생의 당주님은 조직을 버리고 형을 따라가겠다는 절 그냥 미련 없이 보내주셨습니다.”
당주는 그랬냐는 듯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아에르도 마찬가지였죠. 그 신은 그냥 귀찮은 마음에 그랬을 거라 작게나마 이해라도 하겠는데, 당주님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
“왜 저를 보내시겠다는 겁니까?”
“네가 아린을 죽이지 않은 이유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
바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나 역시 네게 정이 있기 때문이야.”
당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왜? 나는 뭐 사람 아니니? 미스트의 당주이기 전에, 암살자이기 전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사람이야. 사람이기 때문에 네게 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거란다.”
“…….”
“네가 힘든 길을 가길 원치 않는 바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
“이기적이기 그지없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돌한 제자가 그냥 아무런 고행 없이 편히 살기를 소망하는…… 너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너를 위해주려는 것뿐이란다.”
“그게 끝입니까?”
“딱히 더 설명할 말은 없을 것 같구나.”
목구멍이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더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나를 위하는 것뿐이다?
그저 내게 품은 정 하나 때문에?
아마 전생의 나라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 얼굴만 한없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암살조직의 당주라는 여자가 고작 정이라는 하나의 감정 때문에 나를 보내려고 했었다니.
아마 부정하다 못해 분노했겠지.
허나 지금의 난 그렇지 않기에,
당주의 말을 심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 말이 없구나?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니?”
“당주님께선 제게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죠.”
“알아주니 고맙구나. 그래서, 이제 어쩔 거니? 이제라도 내 지시를 따르겠니?”
“그러지 않을 거란 거 아시지 않습니까?”
피식하는 당주의 웃음소리가 귀에 선명히 울렸다.
“전 저와 당주님, 미스트의 대원들, 에밀리와 브라이언, 그리고 나나까지. 그들 전부가 이 땅에서 얼굴 들고 당당히 살기를 원합니다. 고행이나 굴레 같은 건 떨치고 이겨내면 그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전 이번 생에 당주님을 제 발로 찾아온 겁니다.”
당주는 대답 대신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멋있구나. 하지만 네가 바라고자 하는 세상은 단순히 바람과 힘이 있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솔직히 더 필요한 게 있긴 합니까?”
“동기가 필요하지.”
동기라는 단어에 당주는 힘을 주며 말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추구하고자 하는 하나의 길을 달려갈 수 있을 동기. 그게 결여된 이상, 네가 바라고자 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거야.”
“그 동기로 아린 황녀를 생각하시는 거라면,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참고로 그녀는 아직 살아있다. 정확히 6일 뒤에 죽일 생각이야.”
농담이 아닌 명백한 살인 예고였다.
“너를 위한 나의 온정은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렴. 이제 너랑 난 스승과 제자도, 당주와 대원의 관계도 아니야.”
“서로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두 명의 암살자…… 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당주는 말을 잇는 대신 잠시 침묵을 이어 나갔다.
“여자의 뒷말을 뺏어가는 건 남자의 매너가 아니란다 시안.”
그녀의 진심이 담긴 잔소리에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확히 6일 후.
아마 그때가 되면 당주와 난 단순히 검을 부딪치는 걸 넘어,
이제는 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미 충분히 예상하는 우리로선,
서로 등을 돌려 멀어지는 동안에도,
절대 웃을 수가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