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06
306. 무극
후우우우웅!
머리위로 천천히 검이 떨어져 내린다.
‘오랜만이군 이 감각.’
찰나지간에 생사가 갈리는 혈투를 치르다 보면 매우 드문 확률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어째서 발현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
그것도 완전한 한계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란 거다.
장백서는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답이 없군.’
공력은 옛 진작에 바닥이 났다.
본원진기를 끌어내느라 무리를 한 탓에 극심한 내상을 입어 기혈이 미친 듯이 들끓고 있었다.
지금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을 막을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피할 도리 없는 죽음을 앞에 두고 주마등이 지나가거나 하는 특별한 현상은 없었다.
그저 내려진 결말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
‘몰골을 보건데 놈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되지 않겠지.’
휘두르는 검에만 못박혀 있던 시선이 천룡에게로 향했다.
단전에서부터 시작돼 균열이 전신으로 뻗친 것이 발로 한 번 밟으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질 빙판 같았다.
‘그래 할 만큼 했어.’
죽음으로부터 회귀하고 오 년.
최소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은 다했다.
소현이의 생명을 구했고 문파를 부흥시켰으며 정마대전을 막아냈다.
그러니 후회는 없을 터다.
…없을 터였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스치는 인연이 미련을 자아냈고 미련은 다시 후회를 엮어냈다.
‘내면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결과가 달라졌을까.’
외계의 힘을 상대하기 위한 결과물인 역태극.
하지만 아무리 이유를 붙이고 변명해도 결국 역태극은 태극과 혼원을 이루지 못했기에 선택한 차선책에 불과했다.
만약 역태극이라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초월의 영역을 향해 정도를 따라 정진했다면…
순간 치밀어 오르는 후회에 장백서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마음먹고 한다고 딱 딱 대면 누구라도 초월의 영역에 들 수 있었겠지.’
최소한 역태극은 시일내에 도달할 수 있는 확실한 해결책이었고 실제로 효과도 확실했다.
그의 선택은 결코 틀리지 않은 것이다.
‘미련이구나.’
마지막을 코 앞에 두고 온 갓 생각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며 번뇌를 자아냈다.
스스로 부동심을 이뤘다 자부했건만 죽음을 코 앞에 두고 휘몰아치는 상념을 보니 자신은 여전히 볼품없고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다시 느꼈다.
그 때.
우우우웅!
손에 쥔 진룡일성검이 옅은 검명을 토해냈다.
그 검명이 장백서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기한 거냐?
곧 잦아든 검명
죽음을 앞에 두고 잡아 늘려진 시간 축 인만큼 방금 전 검명은 정말 짧은 것이었다.
그냥 착각으로 치부해도 될 만큼
하지만 설령 착각일지라도 좋았다.
꽈악!
덜덜 떨리던 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리고 머리위로 떨어지는 검을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소용없는 짓을!!”
천룡의 노호성이 길게 잡아늘려져 괴이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괴음성이 장백서의 귀에 들리는 일은 없었다.
지금 장백서의 정신은 검을 휘두르는 것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공도 뭣도 실리지 않은 그저 발악에 가까운 일검.
그 일검에 장백서는 묘한 그리움을 느꼈다.
‘그래, 마치 처음 검을 잡은 그 날 같구나…….’
이제는 떠올리기에도 너무 먼 과거의 어느 날.
사부인 청무로부터 처음 검을 휘두르는 법을 배운 그날.
발 끝의 움직임, 허리의 비틀림, 어깨의 높이, 손목의 움직임, 그 작은 차이 하나 하나에 변하는 검에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왜 난 이제껏 그것을 잊고 살았을까?’
이제껏 잊고 있던 가장 원초적인 기쁨, 한 번 모든 것을 비움으로 인해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검을 쥐고 무공을 배워, 끝없는 고련과 실전을 넘어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처음 검을 쥔 소년으로 되돌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릇을 만들고 그 안을 채우고 하나를 이룬 뒤 다시 안에 든 모든 것을 비우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이 이 손 안에 있었다.
공과 색의 경계가 없는 법이니 결국 시작과 끝에도 애당초 경계는 없었던 거다.
‘그랬구나, 지금 이 손 끝에 담긴 이것이야 말로 무[武]로구나’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영에서 시작해 하나로 그리고 다시 영으로.
하나의 진리가 장백서 내면에 정동의 균형을 가져와 태극을 그려냈다.
조화로 탄생한 태극이 혼원을 낳으니 그 이치가 무극에 닿았다.
그 순간 역태극을 넘어서는 지고한 힘이 장백서의 검 끝에 담겼다.
장백서는 그 의지야말로 장강보다도 긴 무림의 역사 속에서 모래알만큼 많은 무림인 들이 그토록 간절히 추구해 온 무의 정수라는 걸 깨달았다.
사아아아악!
한 줌 공력도 담기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담은 검이 천룡의 검을 베어가름과 동시에 그의 가슴을 올려 베었다.
“어?”
천룡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천룡이 부서져가는 몸을 개의치 않고 다시 한 번 외계의 힘을 끌어올렸다.
“장백서어어어어어어!!!”
살의와 증오를 거침없이 토해해는 천룡을 보면서도 장백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미 끝났어.”
“뭐?”
퍼석!
힘을 끌어올리던 천룡은 모이기는커녕 잿빛으로 변해 흩어지는 기운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이제껏 그에게 힘을 전해주던 저 너머의 존재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극에 이르른 장백서의 검이 천룡을 베는 것과 함께 너머에서 온 외계의 힘과 그 힘의 근원까지 함께 베어버린 것이었다.
“하, 이럴 수가…….”
비단 사라지는 건 너머의 존재들만이 아니었다.
퍼석
“그게 네 원래 모습인가?”
“믿을 수가 없군, 그 일검으로 너머의 존재들과 그들이 준 힘, 그리고 내 불로까지 함께 베어낸 건가?”
한 순간에 말라비틀어진 목내이 꼴이 된 천룡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장백서는 짧게 답했다.
찰나의 순간 찾아온 지고한 깨달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르르르르릉!
혈천궁, 아니 평주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땅울림이 퍼져나갔다.
평주 밤하늘을 가득 매운 별무리가 입으로 분 촛불처럼 우수수 꺼지고 하늘이 뒤틀렸다.
비단 뒤틀리는 건 하늘만이 아니었다.
평주 시내의 지면역시 깨진 빙판마냥 오만곳으로 금이 번지더니 그 사이로 새까만 어둠이 새어 나왔다.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흐흐흐, 이 꼴이 된 내가 하긴 뭘 하겠나? 그저, 강제로 이계와 우리 세계를 이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뿐이야.”
“뭐?”
“크흐흐흐흐흐!! 결국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네놈이 데려온 무림은 결국 뒤틀려 찢겨나가는 평주에서 내 길동무가 될 것이다!! 그래, 초월의 영역에 이른 네놈이라면 이 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겠군, 남 걱정할 시간에 발걸음을 서두르는 게 어떤가?”
별동대는 물로 연합군도 이미 평주 시내로 들어와 혈로군과 맞붙은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직 평주 시내에는 광신도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인 채 살고 있었다.
이대로면 최소 수만, 아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죽게 될 터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위선과 욕심에 눈이 멀어 썩어빠진 중원무림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
“뭐?”
장백서는 공간이 뒤틀리며 천지가 요동치는 평주 시내를 내다보며 말했다.
“이 방법 밖에 없어? 헛소리 하지마라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네놈만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불로와 초절한 무공 거기에 상리를 벗어난 외계의 힘까지, 이 모든 걸 가진 너라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었을 거다, 썩어빠진 무림이 싫다고? 그렇다면 왜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지? 뒤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며 무림을 멸망시킬 노력이었다면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애초에 정당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면 당시 천룡문을 외면했던 이들을 몰살했으면 그만이었다 내 말이 틀렸나?”
“……”
“거창하게 말하지만 결국 네놈은 화가 났던 거다, 화가 나고 또 나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주제에 당사자들을 상대로는 입을 꾹 다물고 화를 참다 시간이 지나 증오가 끓어 넘치니 애먼 사람들에게 대신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거지.”
“……”
거듭되는 장백서의 비난에 천룡은 뭐라도 변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이 하고 있는 게 그저 화풀이일 뿐이라는 것을.
“하…….”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룡을 외면한 장백서는 침착하게 평주 시내에 일어난 공간의 뒤틀림을 살폈다.
“…가능하다.”
생각을 정리한 장백서가 손 안에 역태극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 완성도는 이전과 천양지차였다.
내면의 조화를 이룬 장백서가 그리는 역태극은 이전과 달리 서로 다른 성질의 공력끼리 기운을 깎아먹지 않으면서도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완성된 내면의 혼원을 깨워 평주를 뒤틀고 있는 공간의 뒤틀림을 끌어당겼다.
초월의 영역에 이른 장백서의 힘은 외계의 힘과 그를 제공한 너머의 존재들을 베어낸 것처럼.
물질을 넘어 공간의 뒤틀림이라는 현상에까지 간섭할 수 있었다.
“뭘 하려는 거냐?”
“혼원과 무극의 힘으로 공간의 뒤틀림을 이곳으로 끌어당기고 그렇게 당긴 뒤틀림을 역태극으로 소멸시킬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무슨!? 그 딴 짓을 했다가는 힘의 중심에 선 네놈 혼자 이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날아갈 것이다!!”
천룡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장백서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앞서 말했듯 장백서 혼자라면 공간의 뒤틀림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돌아올 수 없단 말이다!!”
“돌아올 거야 반드시.”
“도대체…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나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허……”
천룡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담담히 협의를 행하는 장백서의 모습에서 어쩌면 과거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댁의 마지막 발악이 성공해서 의기양양해 하는 꼴이 보기가 싫거든.”
“하, 하하하하하하하!”
천룡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즈음해서 천룡의 몸이 말단부터 천천히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천룡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웃음의 끝에 천룡은 읊조렸다.
“결국 협객에게는 당하지 못하는 법이군.”
천룡은 장백서에게서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남궁표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선물이….”
파삭!
끝맺지 못한 말과 함께 천룡의 몸이 가루가 돼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공간의 뒤틀림이 집중된 혈천궁의 꼭대기층이 도려내지 듯이 사라졌다.
그 안에 있던 장백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