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94화(100/266)
94. 재능의 잔혹 (6)
장엄하면서도 가슴에 기이한 열기를 채워 주는 찬송가의 선율이 아름답게 퍼졌다.
본래 나는 교인(敎人)이 아니다.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물론 회귀라는 믿기지 않는, 불가해한 일이 닥쳤기에 어쩌면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은 뇌리 한편 어딘가에 머무르곤 한다.
회귀 때문에 내가 갑자기 차오르는 충만한 신앙심이 생겨서 성당을 찾은 건 아니다.
맨스필드 구단을 향해 서신이 왔다.
오늘, 맨스필드를 위한 미사와 기도를 할 거니,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연히 와야지!”
릴리가 가까이 붙어서 작게 속삭였다.
“맨스필드를 위한 미사라잖아, 그러면 지금 교인들이 다 누구겠어. 봐봐, 저기 있는 아저씨는 이사회 중 한 분이시고, 저기 할아버지는 조합 결성할 때 가장 먼저 나서신 분이고, 저기 계신 아주머니는 집 담보로 대출받아서 조합에 돈 넣으셨고…….”
한 명, 한 명 릴리가 사람을 짚어 주는데, 어디 평범한 팬이 없었다.
신실한 교인이니 성당에 다니는 것이겠다만, 어쩐지 그 신앙심이 하늘이 아니라 맨스필드 팀을 향한 것 같은 사람들만 가득했다.
“이런 사람들이니 구단 수뇌부들이 얼굴을 비쳐야지.”
릴리와 나뿐만 아니다.
코치진 전부, 몇 명 없는 프런트의 운영팀장과 마케팅팀 직원까지. 다른 종교를 믿거나 무교인 선수를 제외하곤 전부 왔다.
교회는 과거부터 그랬듯이 이 작은 도시에선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곤 했다.
“오, 캡틴! 10년 넘게 정말 튼튼해, 올해도 부상이 없지?”
“하하, 예.”
“그래, 그래. 일 끝나고 우리 집에 잠깐 들러. 꿀 좀 가져가.”
“아후, 그렇게 매번 주시면 팔 것도 없겠어요.”
“아니지, 아니야. 주장 말고, 선수들 다 데리고 와. 한가득 안겨 줄 테니까.”
도시의 사람들, 팬, 서포터, 그리고 선수들이 한데 섞여 친근하게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그 광경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빅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철저하게 산업화된 빅클럽들의 축구에선 팬과 서포터, 그리고 선수단과 구단이 이처럼 친근하게 섞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없는 건 아니다. 지역 봉사 활동 같은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강력한 공동체의 힘.
서포터즈 조합으로부터 시작된 팬들의 결속.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든 행동하는 팬심.
이 힘이야말로, 그간의 맨스필드를 지탱해 온, 이 보잘것없는 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요, 토대였다.
“맨스필드, 오길 잘했지?”
아주 작은 도시의 작은 구단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
누군가는 말하는 축구의 낭만.
과거 빅클럽들의 축구도 이러했으리라.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응, 오길 잘했네.”
릴리가 살포시 웃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그래, 오길 잘했다.
그 같은 마음은 돌연 들리는 목소리에 차갑게 식었다.
“어…… 아저씨!”
“허허, 우리 꼬맹이, 아니, 크흠. 회장님 여기 계셨군요.”
“에이, 옛날처럼 부르셔도 돼요! 테디 아저씨. 저는 아저씨라고 부를 건데요.”
릴리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흘긋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유소년 총괄 윌리엄 테디는, 주위를 둘러보다 앉을 자리가 없는지 내 옆에 눈치를 보며 앉았다.
어색한 정적이 사이에 가라앉았다. 웃는 낯이었던 릴리도 내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흠, 흠.”
그 어색함이 싫었을까. 테디가 흘깃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 있으십니까. 유소년 총괄님.”
“하하, 그, 예, 제가 조만간 보고서 하나를 제출할 겁니다.”
그 말에 애꿎게 성경책의 종이만 의미 없이 넘기던 손이 우뚝 멈췄다.
“……보고서요?”
“예, 그, 음, 차후 유소년 아카데미의 개선책과 그 방식을…….”
“그걸 왜 총괄께서 하십니까?”
말을 끊었다. 나직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입 밖으로 저절로 튀어나왔다.
조금은, 성급하게. 테디 총괄이 당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결심했는지 정색했다.
“그야, 제가 유소년 총괄이기 때문입니다.”
“예, 2개월 남았습니다.”
“……!”
“그 이후 총괄께선 팀을 떠나셔야 합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요.”
“……30년입니다. 제가 이 팀에 헌신한 것이.”
“예, 30년입니다. 이 팀의 유소년 체계를 엉망으로 만든 시기가.”
“유진!”
릴리가 황급히 내 무릎과 허벅지를 잡으면서 소리 죽여 말렸다.
무릎. 나는 흘긋, 내 무릎 언저리에 올라간 작은 릴리의 손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릴리가 화들짝 놀랐다.
“미, 미안. 아직도 무릎 아파?”
“아직도, 아마 앞으로도.”
나는 그리 중얼거리곤 다시금 테디 총괄을 바라봤다.
“절절한 반성을 적은 문건도 아니고, 유스 체계의 개혁안이요? 그걸 총괄께서요?”
“…….”
“그러면 왜 지금까지 개혁하지 않았습니까. 왜 가만히 내버려뒀나요. 30년 동안 그 자리에 계시면서요.”
“……나는.”
“저기 있는 젠킨슨과 제임스. 그 외에 유스 출신으로서 프로 선수로 활약한 선수가 있습니까? 유스 풀이 작아서 그렇다는 둥의 변명은 하지 마세요. 이유는 하나니까요.”
순간 숨 막히는 침묵이 감돌았다.
주위엔 여전히 찬송가의 음률이 배경처럼 깔리고, 신부님의 말씀이 울리면서, ‘아멘’과 같은 성스러운 중얼거림이 곳곳에 있지만.
지금 나와 테디, 이 사이는 그저 압박과 정적만 존재했다.
“개혁해야 할 대상은, 바로 감독님, 아니 총괄이셨으니까요.”
“……나였다고?”
충격을 받은 그 얼굴을 바라봤다.
푸근한 인상, 늘 웃으며 어린 선수들을 다독여 주고 이끌어 주는 일명 테디베어.
그래, 저 늙수그레한 손을 잡고 런던에서 여기로 왔었다.
축구라곤 그저 애들하고 공터에서 차면서 놀기만 했던 나를, ‘재능이 반짝이는구나’라고 말하면서 여기 맨스필드로 데리고 왔었다.
그랬다.
나는, 그저 평범한, 변호사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혼혈인이었던 나는.
내가 축구에 재능이 있는 줄 ‘착각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애에게, 저 런던의 아스날이니, 첼시니, 토트넘이니 빅클럽에 갈 수도 있을지 모를 것처럼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저 거짓된 혓바닥에 속아서.
“총괄께서 말했던 제 반짝이는 재능은 10년 동안 찾아봤지만 없었습니다.”
“…….”
“당신의 응원과 지지는, 헛된 희망을 불어넣는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감독, 아니, 유진, 나는 정말로…….”
“그 응원을 진심으로 믿어서, 그 거짓된 말을 신뢰해서, 나는 10년을 가망 없는 축구 선수라는 꿈에 매달렸습니다.”
“…….”
“감독님의 지론이겠죠. 어린 선수는 열심히 응원하고 밀어주고, 지지해 줘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그래서 유스 출신들이 다 감독님을 좋아하죠. 나는 안 그렇습니다.”
테디의 낯빛은 하얗게 질렸다. 고령의 나이다. 혹여 쓰러질까의 우려도 불쑥 들지만, 어째서인지 내 말은 멈추기가 어려웠다. 그간 애써 생각하지도 않고, 억눌러 왔던 저 마음속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듯했다.
“저에게 필요했던 건 냉정한 한마디였습니다. 너는 재능 없다, 다른 길 알아봐라.”
“…….”
“지독히도 현실적인 조언이 그때의 저에겐 필요했습니다. 헛된 희망, 부푼 꿈, 축구 선수가 된다는 그 소망을 처절하게 짓밟아 줄 냉혹한 조언이요.”
“그게, 정말로…….”
“예, 정작 들었으면, 그때 힘들었겠죠. 무너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무너졌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 말을 해 주지 않아서 난 포기 안 했어요.”
그 순간, 무릎을 꽉 잡아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릴리였다.
또렷한 눈동자를 보고 나서야, 나는 그제야 터져 나올 것 같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뛰었습니다. 감독님이, 정말 나한테서 재능을 봤을 거라고 믿어서. 그 재능을 개화시키지 못한 건 오로지 나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계속 뛰었어요. 계속 맨스필드에 남아서, 떠나지 못했어요. 나는, 감독님의 믿음을 배반하기 싫었거든요. 그때의 나는요.”
“유진…….”
“그래서 부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뛰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재능이, 없구나.”
“…….”
릴리가 옆에서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식, 실소했다.
“그래섭니다. 저는 감독님의 반대가 됐습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인 면만 보고 끝없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감독님의 반대. 냉정하고, 냉혹하고, 단점과 약점, 부정적인 것들만 먼저 눈에 담는, 그런 감독이요.”
“…….”
“그런 저에게 현재의 유소년 아카데미, 그리고 그 아카데미의 총괄 책임자, 테디 감독님은 오로지 단점입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맨스필드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보고서는, 올리지 마세요.”
고개를 돌렸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흘깃, 릴리의 걱정스러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 줬다.
하지만 여전히 내 무릎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손은 떠나지 않았다. 나도, 굳이 치우지 않았다. 욱신거리는 무릎이, 그 손길로 따스해지는 느낌에.
그때였다.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웃기는 소리.”
“…….”
충격에 빠져 있던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유진, 나 때문에 맨스필드에 계속 남은 거라고?”
“…….”
“내가 응원해서, 내가 믿고 지지해 줘서, 내가 이끌어 줘서. 내가 끊임없이 너에게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어서라고 생각하느냐? 정말로, 넌 어릴 때랑 지금이랑 변한 게 없구나. 유진.”
그 눈빛도 예전과 같았다. 아이였던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그때랑 같아. 부서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함, 한발 앞서 생각하는 듯한 눈빛. 그런 네가, 정말 내 말만 믿고 맨스필드에 남아서 뛴 거라고 생각했던 거냐?”
“그럼 뭡니까. 제가 이 맨스필드에서, 없는 재능을 찾아가며 10년을 보낸 이유는.”
테디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건, 어릴 때와 똑같구나.”
“…….”
그 순간, 흐르던 찬송가의 피아노 선율이 끊겼다. 동시에 신부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성당 전체로 퍼졌다.
“모두, 기도하겠습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디와 내 사이의 대화도 끊겼다. 그저 일어나서 두 손을 꽉 쥐었다.
내가 맨스필드에 남았던 이유가, 여기서 희망도 없는 재능을 찾겠다고 혹사하면서 훈련했던 이유가.
“맨스필드와 우리의 축구를 위해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소서.”
믿고 따랐던, 처음으로 축구를 가르쳐 준 테디 감독의 믿음을 잃기 싫어서였다.
“이 작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맨스필드 축구 클럽이 전해지는 의미를 모두가 이해하게 도우소서.”
단지 그뿐이었다. 그래서 뛰었다. 어딘가, 테디 감독이 말한 숨겨진 재능이 있을 거라고.
“많은 젊음이 떠나고, 고요해진 우리의 공동체에 축구가 안겨 주는 슬픔과 기쁨, 희망과 열정, 감사함과 행복을 계속되게 해 주소서.”
무릎이 욱신거려도, 뛰면 안 된다는 릴리의 말에도, 부상을 입고 또 훈련에 나서는 내 뒤에서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 지금 우리의 맨스필드에게 축복을 내려 주소서. 모든 선수의 기량을 모두 이끌어 내게 인도해 주소서.”
끝끝내 무릎이 박살 나는 순간까지 뛰었던 이유는.
“이 순진하고 착한, 맨스필드의 어린 양들이 봐 온 경기의 전부가 지금까지는 강등 탈출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실업과 빈곤, 좌절과 절망에 휩싸인 이 맨스필드에서, 우리는 축구와 함께 기어코 일어나 우승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이끄는 목자처럼, 우리 선수를 이끄는 유진 감독에게도 믿음과 자신감을 내려 주시옵소서.”
……정말로.
“우리, 맨스필드의 구성원이 전부 함께 기도하고, 나아가겠나이다. 아멘.”
기도의 끝을 알리는 순간,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작 축구.
고작 공놀이.
그것 하나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테디 감독의 말을 깨달았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감춰 뒀던 내 속내를.
모두가 바라보는 곳.
바로 맨스필드였다.
* * *
―리그 투, 사실상 결승전이 지금 맨스필드의 홈구장, 필드 밀에서 시작합니다!
필드 밀.
맨스필드 타운의 홈구장.
무패(無敗)의 철옹성.
그 철옹성의 모든 좌석에, 병사들이 가득 찼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만 석 좌석의 만석.
우승을 확정지을 수도 있는 이 경기장이 만원 관중을 이뤘다.
무수히 쏟아지는 열렬한 환호와 시선.
―그 누구도 섣불리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대결입니다. 이거 정말 긴장되고, 또 기대되네요! 맨스필드의 팬들뿐만 아니라, 중계로 지켜보고 있을 포레스트의 팬 여러분들까지. 지금 이 순간, 수만, 수십만 명의 가슴이 뛰고 있습니다!
경기장 관중을 쭉 둘러본 유진은, 천천히 라커룸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담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