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91화(101/266)
91. 재능의 잔혹 (3)
회의실의 열기는 뜨거웠다.
“포레스트 그린의 전술은 4-2-3-1의 포메이션으로, 역시 최전방과 2선의 공격력을 주의 깊게…….”
“대인방어로는 맥 헤럴드의 패스에 당할 위험이…….”
“어린 공격수 아드리안 사익스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포텐이 장난 아닙니다. 16득점으로 리그 득점 랭킹 2위고, 발 빠른 스코어러 스타일이니…….”
총력전(總力戰)
전쟁사, 역사, 또는 세계 대전 다큐멘터리도 아니지만, 엄연히 팀은 총력전 체제로 돌아갔다.
41라운드, 포레스트와의 맞대결이 사실상 결승전인 탓이다.
“우리가 총력을 펼치듯, 불독 감독 역시 전력으로 나올 겁니다.”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 확신에는 단순한 느낌과 직감 따위가 아니었다. 패배한다면 우승을 포기해야 한다는 포레스트의 절박한 상황에 따른 분석만도 아니다.
―으하하하, 무패 행진은 깨져야 제맛이지?
불독 감독은 라이벌 팀 감독에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경기 준비 상태를 가감 없이 말했다.
―우리는 전력으로 싸울 거야. 부상자도 돌아왔고, 경고 누적으로 징계받은 친구들도 돌아왔지. 일부러 직전 경기에선 로테이션도 돌렸어. 풀핏이야, 풀핏. 어때, 겁나지? 흐흐.
겁나긴. 상대 팀 감독에게 준비 상태를 전부 말하는 불독은 확실히 특이한 사람이다. 그래서 미워하기는 어려운. 찍어 눌러야 하는 적이라기보단, 동료 감독으로서의 느낌이 나는.
―불패의 맨스필드의 홈 성적. 크, 압도적이지. 도박사들도 맨스필드의 승리를 점치고, 우리 팀 팬들도 썩 반응은 암울해. 이거 참, 시즌 시작 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불독 감독은 조금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완전히 역전된 분위기와 주위의 반응, 팀의 상황에 그는 여러 생각이 든 듯했다.
―자네가 정말 대단한 거지만, 내가 생각보다 못한 것도 있어. 응? 그러니까 자만하지 말라고.
물론 웃으면서 내가 혹여 자만해질까 봐, 이 성적에 취해서 어느 순간 무너질까 봐 하는 염려와 걱정을 은근히 표하기도 했다. 확실히, 굳이 사람과 친해지지 않는 나로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재밌지 않나? 재밌었잖아? 모두가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겨 왔고, 모두가 강등당할 거라 말했는데 우승을 말하며 이제 목전에 뒀고. 남들의 예상을 깨부수는 것. 자네가 누려 온 즐거움이지? 안 그래?
그래, 맞다.
남들이 말해 온 예상, 의견, 그리고 확률.
전부를 하나씩 깨부수는 건 기이한 성취감을 안겨 준다.
회귀 전.
최상위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나에게.
4부 리그에서 얻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짜릿한 성취감.
그 성취감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낸 일부 중 하나라고는 부정할 수 없다.
―이 욕심 많은 친구야, 오스카에 스탠리도 데려가 놓고, 그 재미를 혼자만 누리려고 하나?
불독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고, 흥미로워 보였다.
―예상을 깨는 재미, 그거, 나도 이번에 해 볼 거야.
현재 축구계의 예상. 맨스필드가 이기고 포레스트가 진다.
리그 투의 축구인, 전문가, 도박사, 팬, 전부가 말하는 그 예상을.
―내가 깰 거야, 그거 아나? 유진.
불독이 웃음을 멈췄다. 전화 너머로 단호하고도,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눈이 번뜩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선 내가 이겼고, 저번 리그 경기는 무승부였네.
맨스필드와 포레스트의 전적. 1무 1패.
―그래, 유진. 난 자네에게 져 본 적 없는, 이 리그 투의 유일한 감독이야.
그 자신감 앞에서 나는 말했다.
“그럼 그것도, 예상이겠네요.”
―으잉?
“저에게 진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지지 않을 거라는, 감독님의 예상.”
―으허허, 그게 그렇게 되나?
“그 예상도, 깨 드려야겠어요.”
―으하하하하. 그래, 누가 누구의 예상을 먼저 깰지 보자고. 유진.
불독의 마음가짐이 어떨지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불독 감독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챔피언십까지 포레스트를 승격시키고, 그 챔피언십에서 FA컵 4강 진출을 이뤄낸 역량 말이다.
그럼 이쪽도 예의를 다해 줘야 한다.
나는 치열하게 논의를 거듭하는 코치진을 바라봤다. 막스가 말했다.
“그러면 선발 명단은 기존의 베스트 일레븐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허허, 이런 중요한 경기에선 정석이 맞긴 합니다.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고,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해 온 확실한 결과물로요.”
“문제라면, 포레스트는 리그 투에서 전력 분석팀을 제대로 운영하는 몇 개 안 되는 팀 중 하나라.”
“충분히 대비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알롭의 반문에 막스가 불확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숨을 후, 내뱉었다. 일전에 스윈던 전에 대한 리포트를 포레스트로부터 인계받으면서 포레스트의 내부 저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닫지 않았던가.
“우리의 모든 준비가, 어쩌면 저쪽에서의 예상 안일 수도 있어요.”
“…허허, 안다고 해도 막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까지 다른 팀이 그랬던 것처럼요.”
알롭의 말도 일리가 있다.
다른 팀이라고 맨스필드의 경기를 분석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나름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저 실패했을 뿐이지.
하나 그때마다 적들을 다 깨부쉈다고 해서, 포레스트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단 의미는 아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공은 둥글다. 둥근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튀는 방향을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코치진의 역할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해 왔던 대로 정석으로 가는 것.”
내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이럴 경우, 포레스트는 충분한 비책을 갖고 오겠죠.”
불독의 전화에서 느꼈다.
포레스트는 사실, 이 41라운드만을 준비하고 왔다고.
설령 우승을 못 하더라도, 우승팀을 상대로 유일한 무패라는 기록을 해 보겠다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쩐지 짐작이 됐다.
‘이 여우 같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맨스필드와 포레스트는 둘 다 리그 원 승격이 확정된 상태다.
‘전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 축구팀에게 심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했어.’
우승 저지가 아니다. 저들의 목표는 하나.
‘맨스필드에게 지지 않았다는 전적.’
지금 리그 투의 모든 팀은 맨스필드에게 패배를 경험했다.
전반기에 우리에게 승리를 거두고, 무승부로 끝난 팀도 후반기엔 전부 졌다.
그래. 단 하나. 포레스트 빼고.
포레스트는 승격해서 리그 원에서도 부딪칠 팀이다. 그리고 승격 팀이 살아남기 위해선 한 경기의 승리도 절실하다. 포레스트는 그 먹잇감으로 같은 승격팀, 맨스필드를 삼은 것이다.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전적이, 리그 원에서도 유효하길 바라면서. 심리적인 문제지만, 의외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데일 스틸 단장이나, 불독 감독이나, 다 만만치 않은 인사라니까.’
그렇다면, 저들은 정말 단단히 준비했을 터.
그들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긴 어렵다.
“정석대로 가되, 약간의 변화를 해 봅시다.”
“네? 변화라면……?”
톡, 톡.
손가락이 두들기는 파일철.
최근의 훈련 성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훈련 리포트.
탁.
파일을 덮었다. 파일의 표지 왼쪽 위에, 선수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적갈색 머리, 알알이 박힌 주근깨의 광대.
“제임스를 써 보죠.”
* * *
중요한 경기를 앞뒀을 때 훈련만은 답이 아니다.
충분한 휴식과 회복 역시 필수였다.
훈련에 체력을 다 소진하고 경기를 치르면 무슨 소용이겠나.
훈련 일정 사이마다 간헐적으로 휴일을 넣는 이유였다.
고로 제임스와의 면담을 위해선 제임스의 집을 찾아가야 했다.
가기 전에 전화하려고 하니 받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예정되지 않은 방문으로 노크를 해야 하나, 생각하며 건물을 나왔을 때 다행히도 먼 걸음을 할 필요는 없었다.
뻐엉!
“막아야지, 이럴 땐 어깨를 넣고 버텨야지, 이 자식아!”
훈련장 한편.
고요한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했다. 두 명의 선수가 공을 차면서 소리 지르고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체구 때문에 한눈에 알아봤다. 건장하다 못해 흉악한 신장의 젠킨슨과 왜소하고 호리호리한 제임스였다.
“지금 수비수인 내 드리블 하나 막지 못하면서, 무슨 수비를 해보겠다는 거야? 머리 처박고 공만 보니까, 공에 속는 거라고!”
젠킨슨은 가차 없이 제임스를 몰아붙였다.
“몸이 약하면 지능적으로 수비를 해야 해. 태클을 한발 앞서서 생각해서 해야 한다고.”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매서운 동작과 고함.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제임스는 묵묵히 젠킨슨의 지도에 따랐다. 휴일 개인 훈련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리 나와 훈련한다는 건…….
나는 가만히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지독한 성실함.
이른 데뷔로 어깨에 힘이 찰 법도 하지만, 겸손하기 짝이 없는 특이한 선수.
성실함과 겸손함.
이건 프로 선수에게 꽤 좋은 자산이요, 무기다. 하지만 진짜 무기는 실력이다. 실력 없는 겸손함은 자기 비하에 빠지고, 능력이 부족한 성실함은 스스로를 불태워 버린다. 다 타 버린 양초의 심지처럼.
“…….”
그래, 제임스는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다.
성실함과 노력, 겸손함이야말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요, 재능인 것처럼. 한동안 제임스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을 때.
“와, 휴일인데도 훈련하는 선수들이 있네!”
돌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릴리였다.
본업 때문에 오후 늦게 출근하는 모양새인 릴리가 내 옆에 바짝 와 섰다.
“팀의 주장과 막내가 같이 훈련하는 모습이라, 참 보기 좋다. 안 그래?”
“……그렇지.”
“……어째 반응이 좀 늦어? 사실상 결승전 때문에 긴장하고 계신 건가요, 감독님.”
릴리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제야 릴리가 슥 시선을 돌려 다시 훈련장을 바라봤다.
“갑자기 옛날 생각나.”
“……?”
“옛날에도 네가 훈련하고 있으면, 내가 여기 서서 바라보고 있었거든.”
릴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일까. 비슷하네.”
“비슷하다니?”
“제임스, 저 아이 말이야.”
“……?”
릴리가 픽, 실소하곤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아직 어린데, 한참 어린데, 저보다 나이 많고, 큰 선수들 사이에 섞여서 이 악물고, 땀 뻘뻘 흘리면서 훈련하는. 훈련에 자신의 모든 걸 다하는. 내가 아는 누구하고 참 비슷한데 말이야.”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웃음에, 나는 이유를 깨달았다.
제임스. 프로팀으로의 콜업.
“……그런 건가.”
단순히 전략적, 전술적 이유만은, 아니었던 걸까.
릴리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금 제임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반대편 너머에 서 있는 인영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어, 유진……?”
릴리도 그 사람을 발견한 듯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
훈련장 반대편.
익히 아는 얼굴이, 그리고 이 클럽하우스에서 반년 넘게 함께하면서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스 아카데미 총괄 책임자, 윌리엄 테디.
내 어릴 적, 나를 지휘하던 지도자였다.
무릎이,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