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3)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02화(103/266)
102. 테디 베어 (2)
[EFL 리그 투, 득점왕 해리 오스카 33GOAL] [득점왕 수상, 해리 오스카 ‘나를 선택해 준 맨스필드와 끝없이 응원해 준 사랑스러운 팬들, 그리고 지도해 준 유진 감독의 덕분에 얻어낸 과실이다.’]“정말 저렇게 말했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제가 감독님한테 공을 돌렸다는 게 거짓말 같아요?”
“내가 봤는데, 거드름만 잔뜩 피웠어요, 이놈. 기자가 그럴듯하게 포장해 준 겁니다.”
젠킨슨의 고발에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 듯하면서도 안 좋은 것 같은 둘은 티격태격했다.
“예, 축하드립니다.”
축하를 해야 할 사람은 오스카뿐만 아니었다.
[EFL 리그 투, 도움왕 대니 스콧 21AG] [어시스트 1위, 대니 스콧 ‘유진 감독의 지휘력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대니 스콧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니 스콧은 그 박수와, 그리고 상도 당연하다는 듯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얼핏 보기엔 오만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 대니 스콧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직 축하할 게 더 있네요. 이게 좀 더 값지겠네요.”
[리그 투 올해의 선수, 맨스필드의 ‘대니 스콧’]리그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
각 팀의 감독들이 투표한 결과인 만큼, 개인 수상으로는 리그에서 최고 영예였다.
사실 경쟁자도 모두 우리 팀이었다. 득점왕 오스카, 후반기 엄청난 활약을 펼친 스탠리까지. 그래도 최종 선택은 대니 스콧이었다.
전반기에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 줬고, 후반기에는 체력 이슈로 조금 처진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리그 전체를 뒤흔든 퍼포먼스는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스탠리의 후반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전반기에 죽 쑨 게 워낙 컸어야지.
대니 스콧은 조금은 아련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하고 코치 생활이나 하려 했는데, 참, 이렇게 상을 받을 줄은. 정말 감독님 덕분입니다.”
평소에 오만한 낌새를 보이더라도, 적어도 나한테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니 스콧이었다. 그것이 오래된 선수 경험에서 녹아 나오는, 일종의 처세술임을 잘 알았지만, 아무렴 문제겠는가.
“네, 선수. 다음 시즌에도 잘 부탁하죠.”
최고 활약을 계속 펼쳐주는 좋은 선수인걸.
“그리고…….”
내가 말끝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주위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
잔뜩 붉어진 얼굴의 주근깨. 제임스가 휙 좁아진 어깨로 눈치 보느라 바빴다. 오스카가 씩 웃으면서 그런 제임스를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벤치에 올라서서 마치 라이언킹의 한 장면처럼…….
“리그 투, 올해의 유망주, 제임스 던 헤일러!”
“와아아아아아!”
[EFL 리그 투, 올해의 유망주 ‘제임스 던 헤일러’]“으아아, 어지러워요, 오스카, 오스카!”
오스카의 괴력은 무시무시했다. 제임스가 작은 체구긴 한데, 저렇게 들어 올려서 양옆으로 흔들다니.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제임스를 놀려 대느라 바빴다.
“오올, 올해의 유망주!”
“하긴 이번 시즌 리그 투 최연소 선수였지?”
“크, 캡틴, 맨스필드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거 넘겨주셔야겠는데?”
“그냥 주장 완장도 미리 줄까?”
젠킨슨마저 참여해서 놀리는 데 바빴다.
나는 문득,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읽었다.
“리그 투, 우승 팀 맨스필드의 성과에는 영 건(young gun) 제임스의 활약이 눈부셨다…… 최연소의 나이로 활약을 펼쳐,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선 엄청난 득점 후, 여자친구를 향한 하트 세레머니를 펼치는…….”
제임스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악, 감, 감독님! 그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뭐야, 걔 여자친구 맞았지?”
“하, 올해의 유망주에, 소꿉친구 여자친구에…….”
“유망주가 벌써부터 여자친구 사귀면 위험한데.”
“여자친구 아니에요! 그냥 친구고, 엄마한테 하트 보낸 거라니깐요!”
진짜 막내를 대하듯, 제임스의 팔딱거리는 반응에 선수들은 낄낄 웃었다.
간신히 몸부림쳐서 오스카의 품에서 벗어난 제임스가 후다닥 다가왔다.
그러나 정작 코앞에 와 놓곤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 순한 친구는 정작 감독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가릴 엄두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축하해, 올해의 유망주.”
“아……!”
제임스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얼굴로 환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가, 감독님 덕분입니다!”
“오스카가 내 공으로 돌렸다고, 다 그럴 필욘 없어.”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번 시즌은 끝났습니다.”
“…….”
“언론도, 여러 사람들도, 심지어 여러분들도, 모두 내 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축구는 보통 감독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모두가 내심 인정하는 말이었다.
맨스필드의 우승에는, 유진이 있다고.
[EFL 리그 투, 올해의 감독 ‘유진 피셔’]“솔직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죠.”
담담한 인정에, 피식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완벽한 정답인 말은 아닙니다.”
“…….”
“자부심을 가지세요.”
나는 한 명, 한 명, 모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분이, 만들어 낸 우승입니다.”
* * *
“휴식기 모두 푹 쉬세요. 그렇다고 체지방률 20%인 채로 오면,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컨디션은 유지하시고, 클럽하우스는 개방될 테니 언제든 트레이닝하러 오셔도 됩니다.”
선수단 해산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한 시즌이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선수들이 모두 여러 말을 남기면서 하나, 둘 클럽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제임스는, 한참 고민하던 얼굴로 흘끔거리다니 이내 각오를 한 듯한 얼굴로 다가왔다.
“저, 감독님.”
지그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내 부릅뜨면서 말했다. 간신히 용기를 쥐어짠 듯한 눈으로.
“저, 다음 시즌에도, 여기서…….”
“뛰어야지.”
“……!”
순간 놀란 듯한 눈망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다른 팀에서 영입 제안이라도 받은 거야?”
“아, 아니, 그, 그건 아니고…… 감독님, 저 그.”
제임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성격이더니. 어쩌면 내가 포레스트 전에 그를 기용하면서, 직감적으로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시즌, 제임스, 네가 제외될 일은 없어.”
“……!”
“주전 자리는 물론 네가 쟁취해야지.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저, 계속 데리고 가시려고요?”
“리그 4골 8어시스트.”
“……!”
“리그 투 올해의 유망주.”
“…….”
“말했지, 바로 조금 전에.”
나는 제임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자부심을 가지라고.”
“……감독님.”
“팀 내 유스 콜업된 프랜차이즈 스타, 로컬 보이, 그리고 최연소의 재능.”
“재능…….”
“그런 재능 있는 선수를 안 데리고 가면, 지금 날 찬사하는 저 팬들의 목소리가 저주와 야유로 바뀔 거야. 그게, 로컬 스타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이거든.”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다시는 제임스를 두고, 나는 몸을 돌려 내 테이블에 올려놓은 서류를 전했다.
“이건.”
“프로 계약서.”
“……!”
“바로 서명하지 말고, 가서 어머니랑 얘기 나누고…….”
나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꺼내서 바로 싸인을 했기 때문이다.
“…….”
제임스가 흥분된 얼굴로 콧김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감독님이 주신 계약서인데, 잘못된 게 없겠죠!”
“어…… 음. 그래. 학교도 잘 다니고, 아, 면도할 땐 면도 크림 꼭 써.”
“네?”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턱을 만졌다.
그가 흠칫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까칠함이, 조금은 당혹스럽겠지.
누구나 겪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이젠 프로 선수니까.”
“……!”
그는 자신의 솜털 같은 수염을 만지더니, 이내 웃으면서 소리쳤다.
“네, 감독님, 다음 시즌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제임스는 그리 말하면서 싸인을 끝낸 계약서를 나한테 주고 내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어……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그러던 중 릴리를 만났는지, 소리치는 듯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릴리가 들어왔다.
“제임스, 엄청 신났네? 여자친구 만나러 가나?”
나는 대답 대신 계약서를 흔들었다. 릴리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호선을 그렸다.
“계약서, 작성했어? 아니 그런 건 기자들 모아 놓고 카메라 앞에서 해야 하는데!”
“괜찮아. 유스에서 프로 전환 계약할 때, 에이전트든, 부모님이든, 미성년 혼자 계약한 건 나중에 문제 생길 염려가 있거든. 쯧, 계약서 한 부 다시 뽑아야겠어. 다시 싸인해야 해.”
“제임스가 엄청 신났나 보네, 그걸 생각도 없이 서명해 버리고 말이야. 하여튼, 사회의 무서움을 아직 못 봤다니까. 그건 그렇고, 선수단도 해산했는데, 휴가 안 가?”
“휴가?”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선수단의 휴식기는 지금이다. 긴 시즌을 치른 만큼 푹 쉬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단맛의 휴가.
애석하게도, 나에겐 없었다.
“휴가라니. 릴리. 이젠 프런트의 싸움인데.”
“아…….”
“이틀만 쉬고 바로 움직일 거야. 선수단지원팀의 론 팀장하고, 나하고, 그리고 우리 회장님께서도.”
“…….”
“이적 시장, 지금부터 시작해야지.”
* * *
구단의 재정비, 다음 시즌을 위한 이적 시장 준비.
이 업무의 핵심은 바로 단장 이하 프런트다.
하나 우리 팀에선 달랐다. 단장이 없고, 소수의 프런트. 그리고 내 의견이 가장 중요한 만큼, 일을 주도하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우선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선수 중에 재계약할 선수는 이 정도고, 나머지는 이적 시장에 오퍼 오면 매각, 매각이 어려울 시엔 계약 기간 종료 후에 자유 계약으로 풀어 주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분명 선수단 해산식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모두가 하나된 느낌.
한 시즌을 끝냈다는 후련함, 우승을 거뒀다는 자부심, 그리고 다음 시즌을 향하는 반짝이는 기대감.
이상이고, 낭만이다.
감독은 낭만과 이상 속에서도, 지독한 현실을 직시하고 피하지 않아야 하는 법.
“리그 투에선 몰라도, 이 선수는 리그 원에서 못 씁니다. 매각, 이 선수도 매각, 이 선수는, 좀 더 지켜보죠. 재계약을 한다면, 지금 주급보다 훨씬 하향된 조건으로 할 경우에만 같이 갑니다. 거기에…….”
선수단 개편이라는 냉혹한 칼을 나는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꿈이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휘둘렀다. 집에서, 휴가지에서 가족, 연인과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있을 그들의 살생부를 나는 거침없이 써 재꼈다.
그 모습에 고작 사흘의 휴식을 취하고 복귀한 코치진, 선수지원팀의 론 팀장, 회장 릴리까지. 모두 굳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우승과 승격.
적어도 여기 있는 어떤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
잘 되겠지, 잘해 왔으니까 다음에도 괜찮겠지, 같은 안이한 생각 따위는 전부 치워 버려야 한다.
“여기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목표는 리그 원에서의 생존이 아닙니다.”
“…….”
“승격, 그리고 우승입니다.”
“……!”
다이렉트 승격도 거한 꿈인데, 승격 후 2연속 우승.
그 같은 선포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하나 반박은 없다. 조심스러운 우려도 없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기에. 내가 보여 준, 그리고 저들이 함께 겪어 온 난관은 모두를 깨닫게 했다.
생각보다 우리는 강하다고. 그리고 불가능도, 해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라고.
“우선 선수단의 문제는 저와 코치진, 그리고 론 팀장이 함께 좀 더 토의를 나눠 보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프런트 직원들 확충해 주시죠.”
“으응? 아, 네.”
“리그 원부터는 확실히 달라져야 합니다. 적은 직원으로 임기응변식으로 해 왔던 일 처리는 삼가야 합니다. 선수단 이적 자금 지원이 좀 부족해질지라도, 이제 프로팀답게 프런트 직원들이 충원돼야 합니다.”
릴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론 팀장은 ‘드디어!’ 같은 글자가 새겨진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반면 코치진은 조금 갸우뚱하는 얼굴이었다. 코치진 입장에선 이적 자금과 주급 한계선을 늘리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겠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
내가 머릿속을 정확히 읽었는지, 막스가 다소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프런트가 제대로 돌아가야 선수단에 대한 지원이 확실해집니다. 서로 별개가 아닙니다. 프런트, 그리고 코치진, 모두 하나라는 생각, 머릿속에 간직하세요.”
“네, 감독님.”
“그러면 직원들 숫자와 필요한 인력은 회장님하고 론 팀장이 토의하셔서 채워 주시고…….”
나는 잠시 말을 끌었다가, 이내 담담히 말했다.
“필요 없는 직원은 내보내야겠습니다.”
* * *
부산스러웠다. 어수선하기도 했다. 나는 휑하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 유스 아카데미 건물에 들어왔다. 짐을 싸고 있었는지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는 사무실에 앉아, 민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푸근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진, 왔구나.”
“예, 유소년 총괄님.”
나는 담담히 말했다.
“총괄님과의 계약 기간은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