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03화(104/266)
103. 테디 베어 (3)
의외로 테디 총괄은 덤덤한 얼굴이었다.
일전, 성당에서의 언쟁 때문에 그는 마음의 준비를 다 마친 듯했다.
“2주, 조금 안 남았군.”
테디 총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30년의 세월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있는 흔적이 아니었다.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치운 흔적이 가득했지만, 곳곳에 놓인 선수단 연혁, 보고서, 사진 따위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아련한 눈으로 둘러보던 그는, 별안간 생각 난 듯 벌떡 일어났다.
“이런, 감독님이 오셨는데 아무런 준비를 안 했군. 예전처럼 핫초코?”
“커피…… 예, 핫초코 주세요.”
테디 총괄은 콧노래를 불렀다.
“하하,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 다들 날 편하게 여겨도, 사무실은 무서워했거든. 어린애들이니까. 그러면 이렇게 핫초코를 타 주면, 어른인 척 굴던 애들도 사르르 웃으며 풀어졌지.”
탁.
“물론 유진, 너는, 아니, 감독님은 다르셨지.”
“말 편히 하셔도 됩니다.”
“……그래, 유진, 너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지. 어른인 척하는 애들이랑 달리, 정말 어른스러운 구석이 많았거든. 가끔 뭐랄까, 요놈이 애다운 맛이 없어서 징그러울 때도 있었다니까?”
“…….”
“그래서 일부러 내 사무실에 자주 불렀다.”
핫초코를 입에 머금었다. 과할 정도로 단. 그 누구도 표정이 풀어질 수밖에 없는.
“그 세상만사, 모든 안 좋은 일은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이 이것만 들어가면 애처럼 풀어지거든.”
“맛은, 여전하네요. 선수에겐 안 좋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겐 특히요.”
“……다 좋아하던데.”
“예. 유스 선수들은 어린 친구들입니다. 좋아한다고 다 하게 놔두면, 선수가 되진 못합니다. 현대 축구에서 식습관도 중요한데, 유스 시절에 교정되지 않으면, 여러모로 힘들죠.”
“…….”
“현대 축구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총괄께서 선수로 현역을 뛰시던 때, 은퇴하고 첫 유소년 업무를 시작할 때, 그때하고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요.”
우승을 마쳐서일까. 아니면 떨쳐 내지 못했던 미련을, 비로소 치울 수 있다는 사실 덕분일까.
성당에서 감정이 솟구쳐 목소리를 높이던 때와는 달리 담담히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입니다.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슬플 수도, 그리고 좌절감이 들 수도 있다는 거, 압니다.”
“…….”
“교육은 백 년 앞을 보는 것이고, 축구에서 유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맨스필드를, 과거와는 결별시킬 생각이니까요.”
“……내가 그 과거의 잔재로구나.”
“예.”
“그래. 알겠다. 나는, 사실 조금 의심했었다.”
테디는 긴 숨을 내뱉었다.
그는 주름진 눈을 힘겹게 뜨면서 내 눈을 바라봤다.
“네가 날 증오해서.”
“…….”
“네가 떠나던 날, 휠체어를 타고 떠나던 날, 그 눈을 봤다. 원망에 찬 눈.”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다.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안다. 성당에서 했던 말, 전부 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게 전부라서 그랬단다. 남들처럼 훌륭한 코칭법으로 선수를 성장시키는 건, 나한텐 너무 어렵더구나.”
테디는 쓸쓸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지금이 아니라, 과거 저편을 보는 눈으로.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했다. 끊임없이 응원하고, 좌절에 빠지는 선수를 일으켜 세우고,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재능이, 잠재력이 터질 수 있게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긍정적인 응원뿐이었다.”
그래서 모든 유스 선수가 테디 총괄을 좋아했다. 좋은 말만 해 주면서 늘 응원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선생인데, 누가 싫어할까.
“그것이 너의 부상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때론 엄하게 다스리고, 말렸어야 했는데, 그 응원이 너를 조급하게 만들고, 답답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
“그래서, 네가 나를 증오해서, 끝내 부상을 얻고 선수 생활을 마친 유진, 네가 이 유스팀 전체를 싫어해서, 복수하려는 심산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안하다, 전부 내 문제였어.”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정녕 나는, 순전히 이 유스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마음뿐이었을까.
나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벽에 걸린 작은 액자들을 바라봤다.
매년 학교를 졸업하듯, 아카데미를 수료한 유스 선수들의 환하게 웃은 얼굴의 사진.
그리고 나는 13년 전, 앳된 얼굴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웃고 있었다.
어깨동무한 테디와 함께, 다른 동료 유스들과 같이, 웃고 있는 동양계 선수 한 명.
탁.
핫초코를 비운 잔을 내려놓았다.
“사감은…… 없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그간, 맨스필드를 향한 헌신과 노고는, 맨스필드 구성원 모두가 기억할 겁니다.”
“헌신은 무슨…… 네 말마따나 실패한 유스 정책의 책임자인데.”
“……제임스.”
“……?”
“재능, 있더군요.”
그 말에, 순간 쓸쓸해하던 테디의 총괄이 그 무엇보다도 환하게 바뀌었다.
마치 딸의 임신 소식을 듣는 노인의 반응이 저러할까. 자신의 제자를 향한 저 순수한 사랑과 애정, 저것이 테디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점이기도 하지.
“으하하하하! 그치? 그래, 나도 봤다. 포레스트 전! 하하하, 올해의 유망주! 그럴 줄 알았지. 그놈, 정말 성실하거든. 진짜 성실해.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고, 순수하기도 하고, 어쩜 이쁜지…….”
제임스. 그 아이는 보여 줬다.
나도 보지 못했던,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보다도 반짝이는 재능의 일부를.
그래. 봤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그저 좋은 말만 해 주는 것에 불과했던 이 사람이 유일하게 봤다. 제임스의 재능을.
“예, 제임스라는 씨앗은 총괄이 심었고, 물을 뿌렸고 이제 싹텄습니다.”
“……!”
나는 놀란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모든 것을, 실패하신 건 아닙니다. 저라는 실패작은 있지만, 제임스는 성공했으니까요.”
“……하나 물으마.”
“예.”
“유스 아카데미, 언제 다시 운영할 생각이지?”
“내년, 챔피언십에 진출한 순간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렇다면…….”
테디 총괄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다급히 덧붙였다.
“그 자리에 내가 없을 거라는 거, 이해한다, 잘 안다. 하지만 그건 봐다오.”
“…….”
“유진, 네가 아카데미 해체를 선언하고, 나 역시 반성했고 나름 노력했다. 방향을 바꿔 본다고. 30년간 해 온 걸 한번 뼈를 깎는 마음으로 달리해 보겠다고.”
봉투를 열어 묵직한 서류를 확인했다. 유소년 시스템 개혁안이었다.
일전에 성당에서 말했던 그것. 나는 그때와 달리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류 봉투 가장 먼저 앞에 위치한 종이.
“스카우트 보고서……?”
“나는 그간 평범한 재능을 가진 아이더라도, 끊임없이 밀어주고 가르치면 노력만으로도 재능을 이겨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어. 유소년 체계가 유지되고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재능의 선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 이 선수를, 유스팀으로 데려오겠다, 이겁니까?”
“자네도, 아는 선수인가?”
그야, 모를 리가.
나는 스카우트 보고서에 적힌 쭉 째진 눈매, 타투가 새겨진 목, 그리고 화려한 헤어스타일의 얼굴과 옆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앤서니 로우. 19세. 잉글랜드 U18 대표, 첼시 유스 소속.”
“……그 뛰어난 재능이긴 한데, 유진, 자네가 알 정도로 대단한 명성은 아닌데.”
그야, 지금은 꽤 괜찮은 유망주에 그쳤지.
나는 안다.
이 선수의 십 년 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선수, 못 데리고 올 겁니다. 우리 팀 유스는커녕, 성인팀으로도요.”
“……왜인가?”
“그야, 콧대 높은 선수 아닙니까. 첼시 유스 소속이지만 2부로 임대되어 리그 출전을 열 경기 정도는 했다고, 여기 적혀 있지 않습니까.”
늘 말했다.
내 머릿속엔 지금 사 놓고 수년 후에 1억 유로에 팔 수 있는 대형 유망주들이 즐비하다고.
한데도 그 누구도 영입하지 않는 이유.
애당초 우리 팀으론 살 수가 없으니까. 이 팀으로 영입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 돈도, 명성도, 그 무엇도. 저만 한 유망주들은 아무리 유명하지 않아도 대개 1부 팀들에 소속되어 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친구들도 챔피언십 팀들의 유스다.
임대면 그나마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영입은 어불성설. 더구나 영입한다고 해서, 미래의 기량만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나 역시 확신할 수 없다.
나도 유소년 육성에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이 선수, 내 기억에도 뚜렷한 앤서니 로우.
이 친구는 특히 더.
“한번, 생각해 보겠다던데?”
“……예?”
툭 튀어나오는 말에 나는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테디 총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반응인가? 완전 어린애던데. 몸은 다 컸지만, 하는 짓은 어린애더라고. 그래서 칭찬 좀 많이 하고, 늘 하던 대로 하니까 올라가는 입꼬리 감추지도 못하면서, 생각이 있다고…….”
나는 잠시 침묵하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10년 후.
발롱도르 2위.
잉글랜드 삼사자군단의 ‘피터팬.’
아스날의 득점기계.
앤서니 로우가.
우리 팀에 올 수도 있다.
* * *
한동안 테디 총괄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앤서니 로우와 접촉했고, 어떤 얘기를 나눴고, 그리고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나는 곰곰이 듣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여전하시군요. 런던에서 절 여기로 데려왔던 말솜씨는.”
테디 총괄이 잠시 내 눈치를 보듯 침묵했다.
과연 승낙인가, 싶은 눈치였다. 나는 잠시 테디 총괄을 보며, 어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사라지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죄책감, 동정, 또는 그저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는 께름칙함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건.”
종이를 흘긋 본 테디 총괄의 동공이 흔들렸다.
“계약섭니다.”
“……!”
“물론 유스 업무는 아닙니다. 스카우터 계약서에요.”
“스카우터? 나를?”
사람들은 나를 냉혈한, 무감정한 기계 같은 사람, 또는 가차 없는 독재자―정도로 생각한다.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독재자에게도 이상한 데서 인간적인 구석, 온정적인 면모가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에게도 지금 그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서류를 건넬 수 있었다.
오랫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노장에게 주는 명예직이 아니라.
“우리 팀의 유일한 스카우터가 되실 겁니다.”
“……내가?”
“잠재력을 보고, 현재 능력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스카우터는 세상에 많습니다.”
“…….”
“그리고 그런 훌륭한 스카우터들, 빅클럽에 밤하늘의 별처럼 존재하죠.”
소위 말하는 엄청난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도가 튼 스카우터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자들은 하부 리그며, 변방 리그며, 전부, 싹 다 뒤집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재능? 빅클럽, 아니 하다못해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까지 전부 채 갑니다.”
좋은 선수, 빅네임을 영입하긴 어렵다. 아무리 좋은 스카우터를 구해도, 하나의 산업이 된 축구에서 다른 상위 팀들과의 경쟁은 이겨 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그런 선수입니다.”
“……!”
“그런 선수라도 데리고 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딱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나지? 그냥 나를 예우해 주려는…….”
“왜 당신이냐구요?”
나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은 뛰게 하니까.”
“……!”
“열정 없고, 무기력하고, 자괴감에서 허우적거리며, 패배 의식에 빠진 선수들 뛰게 만들 수 있으니까.”
“…….”
“무너지려는 선수를 지탱하고, 일으켜 주는 목소리가 있으니까.”
그렇다.
우리가 영입해야 할 선수는, 스탠리, 대니 스콧의 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완벽한 보석을 데리고 오진 못한다.
흠집 있고, 부서지고, 낡거나, 더러운 오물이 묻어 버린.
그리고 그런 선수를 데려오는 데에는.
“당신이 제격입니다. 테디 수석 스카우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