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07화(108/266)
107. 영입 대상 (4)
시간은 금세 흘렀다.
바쁠수록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건 물리학적으로 옳은 말이다.
―라고 릴리는 실없이 생각했다.
“현재 구단 프런트 조직도는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릴리는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선수단 지원팀 5명, 마케팅팀 2명, 운영팀 3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분명 적은 숫자다. 아마 리그 원의 모든 구단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의 프런트일 것이다. 평균 관중 7천 명의 구단치고는 확실히.
한데도 릴리는 뿌듯했다.
프런트 충원은커녕, 파산 위기에 구조조정으로 있는 직원들 다 내쫓았던 구단이 아닌가. 그런데 적은 숫자지만 인력을 충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 구단의 재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단 의미였다.
릴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조직도를 살폈다.
아직 빈자리는 확실히 많았다.
“법률팀 같은 경우엔 일이 생겼을 때 외부 자문을 받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상주 직원을 두기엔 급한 건 아니라고 봐요.”
“음, 그렇군요.”
“사실 더 급한 건 헤드 급의 인력이 부족합니다.”
릴리가 고민스러운 얼굴로 책상을 두드렸다.
새로 충원한 직원들은 경력이 대개 5년 이하의 이쪽 바닥에선 ‘초짜’로 취급받는 이들.
나름 옥석을 고르고 골랐지만, 한 조직을 맡아서 진두지휘할 만한 ‘헤드급’의 충원이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젊은 오피스가 분위기는 좋겠지만, 이제 리그 원 팀들하고 겨뤄야 하는데, 헤드급의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필요합니다.”
“알아요, 아는데…….”
오려고 하지 않는 걸, 어찌한단 말인가. 채용 공고에 헤드급의 지원서는 없었다. 헤드헌팅을 통해 찾아보려고 해도, 딱히 이쪽에 흥미를 보이는 이들은 부족했다.
개인적으로 연락망을 돌려봐도 사실 릴리도 구단주 2년 차.
그만한 축구계 인맥이 존재할 수가.
릴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은, 더 찾아보죠. 적어도 시즌 시작 전에는 헤드급 인사 세 명 정돈 더 필요하니까요. 음, 그리고 의료팀은요?”
릴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릴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의료팀이었다. 한데 공란이었다.
“저희 팀엔 상주 팀닥터가 없잖아요.”
정확히는 ‘상주’ 의료 인력이 없다. 경기 때 맨스필드의 큰 병원의 의사가 출장 나오는 형식이었다.
“상주 팀닥터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훈련에서도 위급한 상황은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훈련 때마다 근처 병원에서 팀닥터 출장을 요청하기엔 때때로 스케줄이 맞지 않을 때도 있어서 곤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던가.
“아, 거긴 유진 감독님이 직접 모셔 오겠다고.”
론 팀장은 프런트 구성까지 간섭하는 유진에게 조금의 유감이 있는 듯했지만, 큰 부정적인 감정으로 비화하진 않았다.
“유진이요?”
릴리는 론 팀장의 말에 이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 말한 거면, 무슨 생각이 있겠죠. 으음.”
하나 릴리의 얼굴은 희미하게 어두워졌다.
론 팀장 역시 다소 낮아진 톤으로 말했다.
“유진 감독님이 최근 자리를 비우신 연유가…….”
“네, 알아요. 다른 구단들 미팅인 거…….”
“한 곳이 아닙니다. 보훔, 선더랜드, 블랙풀, 라스팔마스, 하이켈하임…… 다 우리보다 상위 리그입니다.”
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직장으로서의 이직이 어려운 직업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위약금이 있기야 하지만, 사실 미미한 수준이다. 애당초 릴리가 유진과 계약할 때, 거의 헐값에 계약하다 보니 위약금 같은 조항도 있으나 마나 할 정도.
한마디로.
“유진이 가겠다면, 제약이 없는 상태이니까요.”
접촉해 오는 구단들도 분명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유추하는 게 틀림없었다.
론 팀장 역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시즌 말미, 여러 구단의 선수들에 대한 오퍼 의견서가 오면서, 핵심 선수를 어떻게 지켜야 하나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일 줄 알았습니다만…….”
“잘못 생각했던 거예요. 이 팀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유진이에요. 오스카, 대니 스콧, 스탠리, 제임스, 젠킨슨, 어느 선수 한 명이 아니라.”
“…….”
“가장 탐 나는 매물. 외부에서 우리 팀을 볼 때 가장 가지고 싶은 사람. 우리 팀을 바라보는 이들의 최우선 영입 대상.”
유진이었다.
릴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친구라서 그런 찬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성적표는 물론이고, 프런트 직원들을 확충하면서 그녀는 확실히 느꼈다.
‘맨스필드에 왜 지원했냐고요? 일단 맨스필드의 훌륭한 성적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그 성적을 만들어낸 유진 감독님의 개혁이…….’
‘파산 위기에 빠졌던 구단임을 잘 압니다. 서포터즈 조합이 구해냈다는 그 낭만적인 사실도 대단하고, 멋지고요. 무엇보다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유진 감독이 지휘하는 사실이 인상 깊습니다. 적어도 이 구단은 유진 감독과 함께라면 더 나아갈 수 있음이 분명하고…….’
‘무엇보다도 그전까지 유진 감독님은 무명의 코치였습니다. 그런 코치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감독직을 제의하고 믿고 맡겨 준 구단의 과감함에 반했습니다.’
면접하는 지원자들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유진을 언급했다.
지원자들은 대개 경력자였다. 한마디로 축구 프로리그에서 굴러본 행정가들이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유진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유진이 없으면, 팀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요.”
릴리는 확신했다.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그저 믿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릴리는 이 사실을 새로 모집한 프런트까지 전부 모아놓고 말했다.
―유진을 맨스필드에서 어떻게 지킬 것인가?
“더 많은 주급을…….”
“다른 팀은 저희보다 더 많이 줄 건 자명해요. 그리고 걔, 집 부자예요. 런던에 아버님이 사주신 집이 몇 채가 있을걸요.”
“그러면 확실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선수단 구성과 코치진 개편, 심지어 유스 아카데미 개혁 같은 일도 모조리 유진 감독이 진두지휘하고 있어요.”
“맙소사…… 그럼 지금까지 모든 게.”
“네, 다 유진 감독의 성과예요. 그만큼 파격적인 권한까지 주고 있어요.”
론 팀장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구단주인 회장 릴리마저 때론 유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그러면 안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네?”
“이미 그만큼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구단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그런 권한을 줄 수 있는 클럽은 사실상 없을 겁니다.”
확실히 그럴듯한 이유였다. 하지만 확신은 아니었다. 그저 유진이 떠나지 않으리라, 그리 맘 편히 생각하고 있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유진에게 구애하는 클럽들의 면면이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문득, 론 팀장이 물었다.
“그럼, 회장님께서 유진 감독을 처음에 어떻게 모셔 온 거죠?”
“네?”
“찾아보니까, 이미 그때 보훔 구단의 감독대행이 유력한 상태던데.”
“아무리 강등위험이 크더라도 보훔을 두고 4부리그, 파산 위기에 빠진 구단으로 올 수 있던 건, 회장님이 확실히 수완을 발휘하신 거잖아요?”
그 말에 릴리는 잠깐 침묵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정말로 그랬다.
‘얘, 무슨 생각으로 맨스필드로 온 거지?’
그저 친구라서. 어릴 적 함께했던 가장 친한 친구라서.
그렇기엔 둘 다 사회에서 쓴맛을 많이 본 어른이지 않은가.
마케팅 팀의 직원이 생각에 빠진 릴리를 보며 불현듯 말했다.
“……미인계?”
“……네에?”
“그, 제가 보기엔, 사실 어떤 조건 보다도, 유진 감독님은…… 회장님 때문에 온 게 아닐까 싶은데요.”
“……!”
“그러면, 회장님이 확실히 유진 감독님과 얘기를 통해서 잡는 것이 이렇게 불확실한 사항을 두고 회의를 하기 보단,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고르고 고른 직원들다웠다.
바로 핵심에 닿았으니.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또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는 줄 알았는데.”
나는 클럽하우스의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중얼거렸다.
농담에도 릴리는 아무 말 없이 긴장된 얼굴이었다.
“뭐야?”
“일단 앉으시겠어요, 감독님?”
잘은 몰라도, 릴리가 무언가 준비했다.
의자에 앉자, 불이 꺼지고 정면에 화면이 떠올랐다.
<맨스필드의 비전과 지도자의 중요성>
“…….”
“맨스필드는 앞으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해 다섯 단계의 프로세스를 계획했으며…….”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릴리는 거침없이 발표를 이어갔다.
“선수단 구성에 대한 일임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이관하고, 프런트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가령…….”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나는 점점 그 발표에 빨려 들어가듯 집중했다.
무언가 몇 군데에선 어설픈 부분이 보이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선 현실성이 없기도 했으며, 일정 부분은 또 과하게 부정적인 예측이 있기도 했지만…….
그 계획의 현실성과 효용은 차치하고, 나는 저 내용을 궁리하고 만들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
저래 보여도, 그저 내 친구라도, 무려 구단주다.
비록 서포터즈 조합이 운영하는 형태라는 다소 낯선 구조지만, 어쨌든 릴리는 회장으로서 이 구단의 총책임자임이 분명했다.
‘……이런 구단주가, 있었던가?’
글쎄, 이런 건 실무진에서 하는 일이지.
구단주가 직접 저렇게 궁리하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그걸 감독에게 발표하는…….
‘아.’
이내,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 비전을 이루기 위해선 사령탑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며, 가장 적임자로는 유진 감독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여 맨스필드는 유진 감독의 장기 재계약을 통해서…….”
릴리는 쉬지 않고 긴 발표를 이어가며 결론을 맺었다.
그랬다. 이건.
“재계약 얘기하려고?”
내가 훅, 핵심을 찌르자 릴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부릅떴다.
“끄응! 그래! 맞아! 사실…… 다 알고 있었어. 다른 구단들이랑 접촉하고 있는 거 말이야.”
릴리는 한숨을 푹 내쉬고 정면으로 걸어왔다.
“뒷조사한 건 아냐! 맨스필드, 이 작은 도시에서 외부 사람 만나면 서포터즈 조합에 얘기가 다 들어오거든.”
“이거야 원.”
“클럽들 면면을 보니까 살짝 겁이 나더라.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 클럽들만큼 좋은 조건을 제시해 줄 수가 없을 것 같더라고.”
“…….”
팀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건 누가 뭐라 해도 돈이다.
또한 구단의 시설, 상태, 역사, 명성 따위까지.
모든 면에서 맨스필드는 아직도 한없이 부족하다. 릴리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듯했다.
“그래도 두 손 놓고 그저 기다릴 수만은 없더라고!”
“그래서 준비한 거야?”
“으응, 내가 그간 생각했던 것들, 나름으로 열심히 정리해 봤는데…….”
어땠어? 라고 작게 소곤거리는 물음이 귀에 꽂혔다.
이거야 원.
지금 구도만 보면 누가 구단주고, 누가 감독인지.
누가 고용주고, 고용인인지 모르겠네.
감독을 끌어당기기 위해, 팀의 매력도를 높이는 방법. 그 팀의 장대한 포부와 현실적인 계획, 그 비전을 구단주가 직접 정리해서 발표한 것이다.
그저 급조한 내용이 아니다. 몇몇 부분은 어설프지만, 확실히 오랫동안 생각하고 분석하고, 정리를 해 온 듯한 내용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나. 애정. 팀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저 정도의 내용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새삼 릴리가 어떤 각오로,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 느껴졌다.
내심 장난도 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초조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훌륭했어.”
“……!”
“몇 가지는 진지하게 논의해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볼 만한 것도 있어. 가령 마케팅과 연관해서 관중을 늘리고, 경기장을 개축하는 것도…….”
구단주가 직접 이렇게 비전을 말하며 감독에게 계약서를 내민다면.
사실 흔들리지 않을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릴리는 그 정도로 훌륭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심,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
“내가 다른 팀으로 갈까 봐, 여서지?”
내가 피식 웃자 릴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애써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정식으로 재계약 제시할게. 기존 계약보다 조건은 당연히 상향이야. 그만큼 재정이 확보했으니까. 그 외에도…….”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동그랗게 뜬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 안 나?”
“기억?”
“맨스필드에 와서 처음 계약할 때. 내가 내민 조건.”
“네 조건은…… 으응? 설마, 그거?”
릴리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맨스필드에 있으면, 나는 맨스필드를 떠나지 않아.”
“……!”
릴리의 얼굴이 꽤 붉어졌다. 나름 사업가라고 표정 관리 잘하던 릴리는, 꼭 내 앞에서만 감정 변화가 다채로워서 보는 맛이 있었다.
릴리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 그때 한 말, 그, 그냥 한 말 아니었어?”
“내가 흰소리하는 캐릭터였나?”
“!”
릴리는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방 안 온도가 올라간 듯 손부채질하는 모습이 퍽 웃기기까지 했다. 릴리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럼 왜 다른 클럽들, 구단들 관계자들 만나고 다닌 거야?”
“아, 그건…….”
나는 대답 대신, 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슬슬, 나도, 그리고 맨스필드도, 메이저 무대를 준비해야 하니까.”
클립에 채워져 있는 무수히 많은 클럽 관계자들의 명함.
“이건, 그러니까 너 선임하려고 한 클럽들 명함…….”
“명함이 아니야.”
“으응?”
나는 나직이 답했다.
“인맥, 또는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