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1화(11/266)
11. 리빌딩, 발끝부터 머리까지 (5)
청백전이 끝났다.
막스는 유진을 곁눈질하며 시선을 아래로 뒀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던 것일까. 두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막스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켰다.
‘고작 청백전. 그것도 남의 팀.’
땀을 쥐었다. 흥분됐다. 재밌었다.
처음이었다. 경기장을 무수히 찾고 여러 구단을 방문하며 축구계를 산지 어언 십수 년.
무명의 전력분석관 막스는 단언컨대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고작 자체 청백전 따위가 아니라 빅클럽끼리의 치열한 경기에서도, 서로 죽고 못 사는 지옥 같은 더비전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 손끝에서 파르르 떨렸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렵지 않다.
‘내 지시, 내 전술. 그대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생한 선수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그는 다시 한번 유진을 바라봤다.
승리를 거뒀음에도 예의 무심한 얼굴이다.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막스는 새삼 찬물을 부은 듯 쾌감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했다.
‘각기 선수들의 포지션과 행동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지만.’
그 같은 지시를 꾸며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짧은 시간 파악한 선수들의 단점 덕분에 수월하게 짜낼 수 있었어.’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이 녀석, 내 보고서에도 담지 못했던 각 팀의 약점을 정확하게 짚어 내기도 했었지. 그건 단순히 오랫동안 그 팀들을 겪어봐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선수 한 명을 한 경기만 보고 무엇이 약점인지 파악하는 건 실로 대단한 능력이다. 몇 경기고 지켜봐야 선수에 대해 파악이 조금이라도 이뤄지는 법.
‘그런데 단번에 여기 청백, 스물두 명을 파악했어.’
완전한 파악은 아니다.
각 선수의 플레이에서 보이는 단점을 명확하게 골라냈을 뿐이다.
하나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막스는 잘 알았다.
그저 보고 약점을 파헤칠 수 있다면, 무수히 많은 코치와 분석관들이 며칠 내내 눈에 불을 켜며 매달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단편적인 약점이기야 했지만.’
막스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저런 눈은 얼마나 경기를 보고 분석해 왔으면 생기는 거지?’
그저 선수 출신으로, 운이 좋아 수월하게 코치진으로 자리 잡은 인사라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를 나누며 산산조각이 낫다. 선수에 대한 분석 능력만큼은 전력분석관인 자신보다 외려 더 날카롭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그래서 언젠가 저 사람은, 충분히 감독이 되겠구나.
나름의 팀을 맡아 훌륭하게 커리어를 시작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실력 있는 코치였던 셈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다 망해가는 4부리그 구단을 이끈다고 했을 때, 별안간 의문이 들었다.
보통 난이도가 아니었으니까. 어지간한 일은 잘 해낼 것 같은 담담한 사내로 보였지만.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일은…… 다르잖아?’
코치로 있다고, 누구나 다 감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감독의 능력과 코치의 업무는 다르다.
선수단을 장악하고 이끌어 나가는 선장.
그 엄청난 압박감과 무게를 견디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막스가 무수히 봐온 축구계는 그랬다.
‘하지만, 나라면 저 자리에서 저렇게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시를 전달할 수 있었을까?’
고개가 저절로 저어진다.
전술과 여러 지시 사항을 짜낸 것은 오로지 자신의 머리다.
그것만큼은 유진도 인정하고 믿어주며 그 역할을 부여해 줬다.
선수들은 컴퓨터 게임 속 그래픽이 아니다. 마우스나 콘솔 컨트롤러로 딸깍, 입력하면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선수는 살아있다. 필드에서 직접 경기를 뛰며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법.
그걸 제어하기 위해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막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지금 유진의 자리에 있으면?’
저 선수들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지시를 수행했을까?
“…….”
전혀 아니다. 유진처럼 간결하고 정확하게, 명확한 어조로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 보는 코치의 말을 수행하게끔 했던 것은, 그 눈빛과 표정, 그리고 단호한 발음으로 이뤄지는 깔끔한 목소리였다.
‘확신.’
그것이 무엇인지 막스는 별안간 깨달았다.
자신을 전화로 불렀을 때의 목소리.
그리고 이 팀을 두고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 리그, FA 컵의 우승컵을 노리겠다는 말을 했을 때에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었던, 그 힘이 있었다.
바로 확신의 어조였다.
막스는 유진의 눈을 쳐다봤다.
저 무심한 눈에서, 그 어떤 감독도 보여 주지 못하는.
자신의 강렬한 믿음에도 떠오르는 한줄기의 의심 따위도 없는.
그 확신이 존재했다.
그것 때문이다. 선수들이 이 지시를 따랐던 것이.
그리고 지시의 효율성이 입증되는 순간.
선수들은 판단을 내린다. 지시를 따르면 더 좋은 플레이가 나올 거라고.
한 번의 믿음이 신뢰로 확장되고 완벽한 지시 수행으로 이어진다.
오늘 처음 보는 선수들에게.
막스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은연중에 생각했다.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수석코치라는 자리도 그저 함께 서로를 보조해 주며 같이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진이 말했기에.
전술은 당신이 짜라는 그 말을 들었기에. 그 믿음을 확인했기에.
축구 놀음은 전술에서 온다고 생각했던 그는,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감독인 유진을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만이었어.’
고작 청백전 하나였지만.
바로 곁에서 보는 감독의 어깨는 달랐다.
그 어깨 너머에서 보는 감독의 시야는, 아직 자신의 눈으로 넘어볼 수 없었다.
그저 감독, 유진의 어깨만이 눈앞에 걸릴 뿐.
그는 격차를 깨달았고 인정했다.
그리고 눈을 빛냈다.
‘보고 배우마.’
그는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였다.
* * *
경기가 끝나자, 잔뜩 일그러진 대니얼 코치가 이쪽을 흘깃 바라보곤 머뭇거리다 다가왔다.
그리고 악수도 하지 않은 채, 훈련보고서를 작성하러 간다는 말을 내뱉고 자리를 비켰다.
“어처구니가 없는데.”
막스가 옆에서 실소를 뱉었다.
“은근히 무시해 놓고, 정작 지니까 얼굴 붉히는 것 봐. 코치 주제에, 하부리그라고 감독과 급이 다른데 무시하더니.”
“됐어. 나도 악수하고 싶은 생각 없었는데 고맙지.”
대니얼 코치가 기분이 나쁘든, 애당초 내 관심 범위가 아니었다.
내 눈은 은은한 열기를 드러낸 대니 스콧에게 닿았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하, 좋네요. 청백전에 불과하지만, 예, 공이 발끝에 걸리는 그 감각, 짜릿해요.”
“선수가 좋습니까, 코치가 좋습니까.”
긴 대화는 필요 없다. 이미 할 말은 다 했다. 그래서 직언을 던진다.
대니 스콧은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후련하게 말했다.
“좋네요. 아직 선수로 뛰고 싶었나 봅니다.”
“예, 그럼 맨스필드에서 보는 거로 하겠습니다.”
“……감독님과 면담 후에 결정하겠습니다.”
빤히 쳐다보자, 대니 스콧이 말을 덧붙였다.
“거절이 아닙니다. 그리고 은퇴 번복하고 노팅엄에서 더 뛰겠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감독님이 제안해 준 코치직이라, 정중하게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영입 확정이었다.
계약서만 쓰지 않았을 뿐, 저 결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뀔 만한 부류가 아니다.
“그러면 이제 제 선숩니다.”
“하하, 선수라. 예, 기분 좋은 울림이네요. 맞습니다. 유진, 아니 감독님.”
“그러면 쓴소리 좀 하겠습니다.”
“네?”
“마지막에 넣은 골. 왜 하셨습니까?”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을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까.
또는 그저 무심한 듯한 어조여서일까.
그는 살짝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골을 왜 하다뇨……?”
“제가 부여한 역할은 패스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누가 슈팅 하랬습니까?”
“하지만 골로 연결되지 않았습니까?”
당황하다 못해 억울해하는 그를 보며 나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골키퍼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골이었습니다. 조금만 사람 같은 골키퍼였으면, 기회만 날리는 일이었습니다.”
“!”
“대니 스콧 선수. 제 선수가 됐으니, 제 지시를 명확하게 따르세요. 만일 그러지 못하겠다면, 예. 괜찮습니다. 맨스필드로 안 오셔도 됩니다.”
내 말에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옆에 있던 막스도 황당하다 못해 답답한 기색이었다.
지금 여기까지 와놓고,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인데.
갑자기 저버리는 말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안다.
이미 대니 스콧은 느꼈다.
자신은 코치가 아니라 선수라고.
때문에.
“……알겠습니다. 감독.”
그는 내 선수일 수밖에 없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대니 스콧을 따라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대니 스콧은 결심을 한 듯, 정리하던 사무실 탁자를 내려보더니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때 내 눈에, 아까 미처 보지 못했던 물병 속 꽃이 보였다. 막스가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말했다.
“꽃 하나 있는데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 같긴 하네요.”
“아, 꽃, 말입니까? 하하, 제 일곱 살배기 딸애가 갖다준 겁니다. 은퇴 축하한다고.”
“축하요?”
“예, 제가 선수로 뛰면서 많이 다쳤거든요. 은퇴하니 이제 안 다친다고 좋아하면서 주더라고요. 근데 이것 참, 다시 선수로 뛰어야 하니, 이 꽃을 받은 게 조금 미안해지네요.”
그 말에 내가 불쑥 말했다.
“의미야 바꾸면 됩니다.”
“의미를요?”
“프리미어리그 승격의 일등 공신에게 바치는 꽃다발로요.”
“그, 맨스필드는 4부리그로 알고 있습니다만…….”
“프리미어리그에 있을 겁니다.”
“하, 참.”
대니 스콧은 이젠 모르겠다는 듯이 웃어버리곤 감독을 만나러 갔다.
막스가 불쑥 물었다.
“왜 골 넣은 거 가지고 그런 거야?”
“지시를 어겼으니까.”
“하지만 슈팅 찬스였어. 나름 노릴 만한 기회였고, 그걸 놓칠 순 없잖아?”
“똑똑한 친구에게 자유를 주는 순간, 그 자유를 계속 갈망하게 되어 있어. 그는 내게는 부품이야. 내가 원하는 자리, 필요한 역할만 수행하는 복잡한 기계장치의 하나의 부품.”
“!”
“내 선수는 그런 선수야.”
나는 대화를 일축하고 물병 속의 꽃을 바라봤다.
“그냥 꽃 하나인데 말이지.”
“……뭐?”
“그냥 꽃 하나인데, 사무실 위에 올려놨어. 자신이 은퇴하고 코치직을 택한 것이, 딸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의미였을지도 모르지. 고작 꽃 한 송이인데.”
“…….”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막스를 보며 말했다.
“먼저 맨스필드로 갈게.”
“잠깐, 계약은?”
“계약서 미리 작성해 왔어. 사인만 하라고 해.”
“계약서 내용 수정은?”
“까라고 해.”
“!”
“주급이나 수당 더 줄 것도 없어. 그대로 진행해. 무조건 사인할 거야.”
내가 힘주어 말하자 막스는 말을 잃었다.
“잠깐, 어디 가려고? 나는 뭐 타고 맨스필드로 가?”
“버스 타고 와.”
* * *
“뭐야, 출장 간다더니? 어떻게 온 거야?”
병상 위 릴리는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밝은 얼굴이었다.
나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순간 릴리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놀람일지, 아니면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그 사이의 어딘가.
“웬 꽃다발이야?”
“그냥. 수술 성공적으로 마친 거 축하한다고.”
“허. 잠깐, 계약은 하고 온 거지? 설마 꽃다발 하나 주려고 계약도 제쳐 두고 온 거야?”
릴리의 목소리가 은근해진다.
타박하는 것 같기도 한데, 무언가 기대감이 섞인 듯도 한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수석코치만 가도 충분한 일이라면서? 회장님 지시대로 했을 뿐입니다. 계약 마무리는 막스가 할 거야.”
“……참, 그래도 무슨 꽃을.”
릴리에게 꽃다발을 줬다.
별건 아니어도. 사람은 때로, 별것 아닌 것을 좋아한다.
아닌 척 하지만 밝아지는 얼굴을 보니, 지금 오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에서, 또 괜찮은 선택을 한 듯했다.
“아, 맞다. 나도 수술 끝나고 확인한 건데.”
릴리가 갑자기 생각난 듯 태블릿을 건넸다.
“메일?”
열린 메일 창을 보며 릴리를 흘겼다.
“수술 끝나자마자 메일함부터 확인해?”
“에헴, 내가 이래 봬도 하고 있는 일이 무지 많거든. 나 없으면 안 돌아가는 일이 한둘이 아니야.”
“그런데? 왜?”
“거기, 최신 메일 봐 봐.”
가장 최근에 온 메일은…….
“알렌스키 코치?”
“응. 방출할 선수가 없다고, 일방적인 선수 매각은 옳지 않으며 구단의 비전과 미래에 큰 해가 될 거라는, 장황한 내용이야.”
릴리의 요약에 나는 메일도 읽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나한테 바로 올린 거 보니까, 날 설득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별로. 예상했던 그림이라서.”
“으응?”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병실을 나와 전화를 걸었다.
두 명의 코치, 알롭과 알렌스키에게.
“내일 아침 방출 명단 가지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