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1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15화(116/266)
115. 굿 캅, 배드 캅 (1)
해리 오스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교체 아웃 후 막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시며 땀을 식히는 짧은 시간.
철렁―!
“앤서니, 앤서니, 앤서니 로우―!”
“Yeeeeeeeeeaaaaaa!”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세레머니도 펼치지 않는 앤서니 로우에게 쏟아지는 환호.
“3분……?”
고작 3분도 되지 않은 시점. 교체 출전한 앤서니 로우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부수는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대니 스콧의 패스를 가볍게 툭 차 넣었다.
‘그러면 저놈, 세 경기 연속 5골인가?’
친선 경기니까 큰 의미는 아니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는 제법 있었다. 바로 맨스필드 선수단 사이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말이다.
세레머니를 하진 않기야 했지만, 모여들어서 축하해 주는 선수는 없다. 그저 어시스트를 올린 대니 스콧만이 엄지를 치켜세워 주며 칭찬할 뿐. 골을 넣었는데 같은 팀 동료가 같이 좋아해 주기는커녕, 애써 폄하하는 건, 앤서니가 팀에서 동떨어졌단 뜻이다.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도 앤서니는 골을 넣고 있다.
아주 쉽게.
스트라이커니까 알 수밖에 없다. 저 움직임, 몸놀림, 발재간, 그리고 슈팅.
골이란 게, 저렇게 쉽게 들어가는 것인가.
‘친선 경기 3경기 5골, 그것도 매번 교체 출전. 플레이 시간 다 합쳐도 60분이 될까.’
아무리 친선 경기라 해도, 상대들이 약팀이라 해도, 이건 깎아내리기엔 너무 날카롭다.
하나 그래도 정이 가지 않는다. 질투나 시기보단 그냥 순전히 부정적인 마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으어어억, 교체, 교체요!”
“……하?”
들어간 지 7분 만에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교체 신호를 보내는 앤서니.
친선 경기니까 교체 제한이 없어서 망정이지, 들어가자마자 교체를 요청하는 행위는 무어란 말인가.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코치진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 반, 황당한 표정 반이었다.
“배 아파아아.”
“아니…….”
친선 경기지만, 컨디션 관리조차 또 저리 엉망이란 말인가.
오스카는 그래서 싫었다. 프로선수답지 않은 저 책임감. 저 태도.
“한 골 넣었잖아요오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저 가벼운 언행.
오스카의 눈이 다시금 교체당해 나오는 앤서니를 보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사실 앤서니를 마음에 들어 하는 선수가 거의 없긴 했다.
여기서 ‘거의’란 말은, 좋아하는 선수도 있단 뜻이다.
“신호 안 줬는데, 왜 거기서 파고든 거야?”
“패스 방향이 거기밖에 없었으니까아아.”
“……나랑 같은 길을 본 거네.”
대표적으론 대니 스콧이었다.
대니 스콧은 만사 귀찮아하는 앤서니를 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곤 했다.
전형적인 천재 유형의 선수인 대니 스콧에겐,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공을 찾아 움직이는 앤서니의 모습에 깊은 호감을 느꼈다.
태도? 언행? 불성실한 행실? 그게 아무렴 문젠가. 대니 스콧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패스만 잘 받아 줄 수 있다면야.
“계속해서 좋은 패스를 넣어 줄게.”
“좋은 패스 안 줘도 돼.”
“……?”
“아무 패스나 나는 다 넣거드으은.”
“하, 하하. 좋아.”
팀 내 가장 확실한 발끝을 가진 대니 스콧과 앤서니의 사이가 희한하게 잘 맞는다는 건, 팀으로선 다행인 일이었다. 둘이 갈등을 일으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거든.
대니 스콧 말고 앤서니를 좋아하는 사람은…… 으음, 없군.
그나마 부정적이지 않은 선수라면.
“감독님 무서운 사람이야. 열심히 해야 해!”
“흐으음. 그으래?”
“아니, 놀지 말고! 훈련에서만이라도 좀 성실하게 하면, 그래도 감독님이 뭐라고 안 하실 거야!”
자기 또래.
굳이 따지면 제임스보다 앤서니가 두 살 많지만, 의외로 둘은 쉽게 친구 아닌 친구가 됐다.
팀에 유일하게 비슷한 연령인 앤서니에게 제임스는 은근한 유대감을 느꼈고, 나름 친해지려고 애썼다. 앤서니랑 달리 순하기 짝이 없는 제임스의 순수한 호의에 앤서니도 대놓고 밀어내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제임스가 앤서니를 대니 스콧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선수처럼 그나마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거지. 이건 순전히 제임스가 착해서 그렇다.
“의외는 젠킨슨이야, 유진.”
막스의 말에 나는 수비진을 점검하는 젠킨슨을 바라봤다.
그는 훈련장에서도 게으른 태도를 보이는 앤서니를 흘긋 보고는, 아예 본 적 없는 것처럼 신경을 끊었다. 첫날 앤서니의 기강을 잡고자 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팀 주장이고, 기강을 중요시하는 게 캡틴이잖아. 솔직히 젠킨슨이 앤서니랑 사사건건 부딪칠 거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둘의 사이가 대니 스콧처럼, 제임스처럼 좋거나 나름 나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아예, 신경을 끊었다.
나는 젠킨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일종의 합의야.”
“합의?”
“젠킨슨은, 어쩌면…….”
훈련에 임하는 태도, 친선 경기에서 뛰는 그 모습, 독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
무심한 듯 가라앉은 눈. 그가 어떤 각오로 이번 시즌에 임하는지 짐작이 됐다.
“마지막 시즌.”
“어, 설마…….”
“내 생각과 상관없이, 본인이 그렇게 느끼고 있어. 젠킨슨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한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스스로의 한계.
“나는 이번 시즌도 우승하고, 챔피언십에 갈 거라고 공언했으니까.”
다음 시즌도 만일 승격 실패하고 리그 원이라면, 젠킨슨이 한 살을 더 먹는다 해도, 백업이든 팀의 기둥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챔피언십의 무대.
젠킨슨은 아는 것이다. 그가 젊을 적 뛰어봤던 2부 리그의 역동성, 폭력성, 상당한 압박. 그 무대에선 늙어 버린 자신이 활약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구슬땀을 흘리는 젠킨슨을 응시했다.
그는 확신하고 있는 거다. 내 공언대로, 맨스필드는 또 승격할 거라고.
그리고 자신의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러니까.’
합의다.
“느낀 거지. 앤서니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실력은 진짜라고.”
“……그건 맞아.”
“저 앤써니의 발끝이, 챔피언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거란 직감.”
젠킨슨은 절절히 느꼈음이 분명했다. 훈련장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직접 겪고 나서.
젠킨슨은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라고 생각하는, 이번 시즌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멋지길 바란다. 바로 우승이다. 앤서니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리라. 스스로 합의한 거다. 건들지 않겠다고. 있는 실력 마음껏 뽐내기만 하라고.
“하지만 가만히 둘 순 없습니다, 감독님.”
그때 알롭이 심각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는 피곤한 기색으로 눈두덩이를 비볐다.
“앤서니의 태도는 문제가 있어요.”
“…….”
“실력 좋은 거, 허허,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실력 좋다고 모든 걸 봐준다기엔, 이건 축구잖습니까.”
팀 스포츠.
그리고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 앤서니.
“앤서니 혼자 잘한다고 모든 경기에서 이길 순 없어요. 팀이 잘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 앤서니는, 본인은 잘하겠지만, 팀은 못 할 수도 있어요. 개인이 이겨도, 팀은 패배하는, 그런 그림 말입니다.”
알롭이 역설했다. 그가 내 사단이 되었기에 더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말, 감독님이 맥 헤럴드를 방출할 때 했던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앤서니한테도 적용되지 않습니까?”
“예, 틀립니다.”
“……!”
“맥 헤럴드는 고작 그 정도였을 뿐입니다. 자기 혼자 이기는 것이 한계인. 앤서니는 아닙니다. 앤서니가 이기면, 그 경기는 팀이 이기게 됩니다.”
확신.
나는 여지 없이 늘 보여 줬던 확신을 담았다.
근거 없는 확신이라도, 명확한 증거와 비전이 없는 믿음일지라도, 여기선 무엇보다도 강한 신뢰를 준다. 나는 이 확신으로, 지금까지 모두의 반발과 의심을 불식하고 맨스필드를 이만큼 끌고 왔으니까.
알롭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면 이대로 내버려 두시겠단 뜻입니까? 허허, 감독님이 말씀하신 점 들었습니다. 테디 스카우트님한테도 얘기 들었고요. 잘한다, 잘한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응원해 줘야 한다는 것도요.”
“네. 그런 선숩니다.”
“그럴 순 없어요. 다른 선수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실력이 좋으니까 모든 걸 용서하고 봐주고 넘어간다? 다른 선수들의 팀워크가 깨질 겁니다. 앤서니를 강하게 질타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예, 그러세요.”
“……네?”
“역할을 나눠 보죠.”
“……?”
* * *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훈련이 시작하고도 30분이 지난 무렵.
옷을 갈아입고 귀찮은 얼굴로 나오는 앤서니와 그 곁에서 보모처럼 딱 붙어서 연신 사과하는 에이전트 실러.
익숙한 모습이었다. 선수단은 이 광경을 거의 매번 봐 왔다.
지각했는데도 정작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앤서니의 모습.
“…….”
“참나.”
불편하고 불쾌한 듯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선수단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앤서니!”
순간 노호성이 훈련장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흐물거리며 걸어오던 앤서니의 발이 우뚝 멈췄다.
흰머리가 성성한 알롭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
앤서니는 흠칫 굳었다. 20년 경력 노년의 코치가 가지는 기세.
선수를 다루는 용인술에서만큼은 A급, 그 이상인 알롭 코치는 선수를 강하게 질타할 때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30분, 30분이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야!”
“코, 코치님, 그, 그게 제, 제가 운전을 늦게…….”
“입 닥쳐요! 당신이 이 애새끼 부모라도 돼? 빌어먹을, 같잖은 보모 노릇할 거면 학교부터 보내서 윤리부터 가르쳐 놔! 에이전트가 왜 여기 있어! 당신이 공 찰 거야? 어? 외부인이 왜 여기 있냐고! 꺼져!”
“……!”
알롭은 바짝 굳어 버린 앤써니의 코앞에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댔다.
“같잖은 애새끼. 네가 낭비한 30분은 너만의 30분이 아냐. 여기 모인 스무 명, 서른 명! 열 시간, 열다섯 시간이다. 너 따위가 게으름 피워서!”
실로 일갈이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일갈은 훈련장이 차갑다 못해 침묵에 잠기게 했다. 앤서니가 아무리 망나니라도, 무려 3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노년의 코치가 내뱉은 강렬한 일갈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른인 척 굴어도, 그는 이제 열아홉. 어린애였다. 그것도 사춘기가 온 듯한 철딱서니.
“빌어먹을 놈! 첼시에서 쫓겨나서, 이 팀에 도망치듯 왔으면, 현실 파악 같은 건 해야 하지 않냐? 언제까지 어리다는 핑계로 도망칠 건데? 어? 1년만 지나도, 2년만 지나도, 넌 빌어먹을 실패한 유망주가 되고 말 거다!”
“…….”
“당장 집으로 돌아가. 넌 훈련에 참여할 자격도 없다.”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친 알롭의 역정.
늘 흐물거리던 앤서니 로우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딱딱하게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알롭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외면하고 소리쳤다.
“뭐해! 다들 구경났어? 움직여! 오늘 테스트 못 따라오는 놈은 집에 돌아갈 생각 마라!”
“……예!”
거친 일갈에도, 선수단 사이에 희미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불온했던 기색이 단숨에 사라졌다.
오로지 앤서니만이, 동떨어진 채 굳어져 있었다.
그때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유진이 다가와 무심히 말했다.
“앤서니 로우.”
“…….”
“내 사무실로 와요.”
선수들은 생각했다. 알롭 코치가 저리 혼냈으니, 이제 코치진도 앤서니의 망종을 더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두려워하는 ‘진실의 방’으로 부름을 받다니.
“드디어 팀이 제대로 돌아가네.”
“저놈, 실력은 좋으니까, 정신만 차리면 좀 좋겠어.”
“아직 어린애잖아. 혼날 때 바짝 굳어서 얼굴 하얗게 질린 거 보니까, 애는 애더라. 너무 미워하진 마라.”
선수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질질 발을 끌며 유진의 사무실로 향한 앤서니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알롭 코치는, 올드하니까요.”
“……네?”
“선수는 잘합니다. 실력 훌륭하고요. 발끝은 날카롭고, 창의적이죠. 누가 뭐라 해도, 선수는 이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실력잡니다.”
“……!”
“나는, 선수를 믿어요. 앤서니.”
생각지 못한 유진의 위로를 받았다.
그 순간, 알롭에게 거침없이 혼쭐나며 크게 마음이 상했던 앤서니는.
“감독님……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유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