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1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17화(118/266)
117. 굿 캅, 배드 캅 (3)
남자는 영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투박한 듯한 얼굴선, 단단한 느낌의 눈매.
스포츠 선수가 어울릴 법한 외모였지만, 남자가 검은 뿔테 안경을 쓰자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타닥, 키보드를 두들기는 그의 눈은 더없이 진지했고, 화면에 떠오른 무수한 숫자들 흐름 속에 남자는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집중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갔다가, 다시금 원위치로 돌아오기를 반복.
최대한 일에 집중하려던 그는, 이내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알람을 꺼놨는데도 거슬리네, 이거 진짜.”
자신의 SNS와 블로그에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올라오는 댓글, DM 따위.
이상한 소리를 댓글이랍시고 달아 놓는 건 익숙하다.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방법을 남자는 익혀왔다.
칼럼 하나를 쓰면, 거기서 비판한 내용을 가지고 와르르 몰려오는 팀의 강성 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실 축구 칼럼니스트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냥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한데도.
“이놈, 더럽게 징글징글하네 진짜?”
@BarkingMad
비난했던 앤서니 프리시즌 성적 보고 충격받았나? 새 글이 없어? 자일슨 교수?
“하.”
피로가 몰려오는 듯, 남자는 안경을 벗고 눈두덩이를 비볐다.
언제부터일까.
앤서니 영입을 강하게 비판하자 달라붙기 시작한 놈이다.
물론 아직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프리시즌 서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장기 레이스인 리그를 치르기엔 절대 좋은 선수는 아니다.
고작 비난하는 댓글 하나로 생각을 바꾸겠는가. 그 정도쯤의 신념은, 비록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풋볼칼럼니스트지만 가슴에 품고 있다.
@BarkingMad
비판을 가장한 비난이야. 시작부터 오류투성이야. 이런 걸 보면 왜 정식 칼럼니스트가 아닌지 알 만해. 내세운 논리라곤 이게 말이 되나?
“아니, 씨.”
하나 이놈은, 이 요상한 놈은 보통이 아니었다. 징그럽게 달라붙어서 살살 긁는 솜씨가 능수능란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긁어 대기만 하면 무시할 법하다. 그냥 차단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의외로 그럴듯한 반론을 툭툭 던지고 있지 않은가.
“잠깐, 이 닉네임.”
순간 남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닉네임부터 미친놈이다. 미친개가 짖는 소리라는 네임.
실제로 그랬다.
“그놈이잖아? 나보고 돈 받고 칼럼 쓰냐고 비아냥대던. 그땐 맨스필드 안티인 줄 알았는데……?”
한번 신경이 쓰이자 남자는 더는 하던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는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꾹꾹 휴대폰을 두들겼다.
Proffesor_Jailson – 대체 뭔데 너는 시비냐?
띵.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왔다.
“하,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 변태 같은 새끼……으음?”
비웃던 자일슨의 동공이 우뚝 멈췄다.
BarkingMad – 친선 3경기에서 앤서니가 골을 넣는 장면을 봐봐. 왼쪽에서 올라오는 전개를 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대각선으로 파고들지. 네가 말했던 앤서니의 공격 시 움직임에 대한 논리가 얼마나 개소리인지 보여주지.
BarkingMad – 알겠어? 네가 비난한 앤서니는, 맨스필드에서 바뀌고 있다는 거?
“……이것 봐라?”
자일슨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그의 두 손이 휴대폰을 연신 두들겼다.
* * *
“뭐야, 자일슨, 일찍 출근했네요. 아니, 퇴근 안 한 거예요?”
밤늦게 야근하던 자일슨은 직장 동료들의 출근에 그제야 자신이 저 누군지 모를 상대하고 토론에 밤새 몰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 어, 예. 할 일 마저 끝내느라요.”
“맙소사. 쉬엄쉬엄 일해야죠!”
“네, 네.”
하나 자일슨은 대충 대답하며 고개를 휴대폰에 처박았다.
지금 고작 회사 일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BarkingMad – 물론 앤서니에 대한 교수의 비판도 맥락 없는 건 아니지. 유진의 전술에도 문제가 있으니까.
“뭐, 유진의 문제?”
순간 자일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맨스필드에 대해 이 정도로 안다면, 유진 감독의 대단함은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은가.
일명 맨스필드의 강성 팬들 중에서도, 더 강성하다는 ‘유진 숭배자’가 본인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자일슨은 욱했다.
Proffesor_Jailson – 뭐가 문제지? 유진의 선수단 매니징, 전술, 관리 뭐 사소하게 흠잡을 거 빼곤 뭐가 있다고?
BarkingMad – 하나하나 짚어 줘? 우선 전문 윙어의 부재로…….
Proffesor_Jailson – 그건 제임스의 포지션 변경과 톰 도허티의 적응으로…….
BarkingMad – 수비진의 불균형과 압박 부재도 명확한데….
Proffesor_Jailson – 그건 공격진과의 간격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고
BarkingMad – 그래? 그러면 쓰리백을 펼치는 상대로 보여 줬던 졸전은? 그때마다 선수 개인 기량에 기대는 게 감독의 능력인가?
“뭐야.”
상대의 예상치 못한 해박한 축구 지식.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분석력. 마치 유진 감독의 속셈을 전부 읽은 것 같은 완벽한 해석.
“얘, 대체 뭐지?”
자일슨의 동공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압도적인 승리와 훌륭한 성과, 우승이란 성적에 가려진 맨스필드의 약점을 거침없이 파헤치는 솜씨에 자일슨은 일순 숨이 턱 막혔다.
파르르.
자일슨은 희미하게 몸을 떨었다. 자신의 것보다, 자신이 분석한 내용보다, 자기 눈보다도 더 정확하고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솔직히 말해 자일슨은 숨이 턱턱 막혔다. 냉정하다 못해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치는 그 날카로운 칼은 거침없었다.
하나 자일슨도 전력을 다해 반박했다. 그간 리그 투의 모든 경기를 지켜봐 온 지식으로 그 누구보다도 맨스필드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거침없이 보여줬다.
“이놈, 그냥 단순한 악플러 아냐.”
자일슨은 직감했다. 얘, 축구인이라고. 뭐가 됐든 축구계 인사라고.
Proffesor_Jailson – 보아하니, 유진에게 처발린 어디 감독이나 코치진 중 하나같은데. 열등감에 미쳐서 그렇게 발악해 봤자, 넌 유진한테 안 돼. 안 그래?
BarkingMad – 이런, 진정해. 유진은 그래 봤자 초짜 감독이고, 넌 아무것도 없는 아마추어 칼럼니스트야. 반박하고 싶으면, 증명해 봐.
Proffesor_Jailson – 증명? 넌 증명할 수 있나?
BarkingMad – 난 해 왔지.
“뭐?”
툭 올라오는 단답. 예상치 못한 답에 흥분해서 정신없이 싸우던 자일슨이 멈칫한 사이.
메시지 대신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무실의 탁상에 있을법한 명패,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명함.
“……!”
자일슨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맨스필드에 와서, 증명해 보시겠습니까?
* * *
맨스필드의 클럽하우스에 아무런 문제 없이 들어가서 응접실에 도착한 순간.
자일슨은 깨달았다. 그 메시지가, 진짜라고.
“……감독님?”
“이런, 선출이셨습니까?”
“예? 아, 아뇨. 그냥 직장인입니다. 운동 못 해요.”
자일슨은 코앞에서 자신을 향해 인사해 오는 유진을 보면서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명함 사진, 유진 피셔 감독이라는 명패.
그 사진을 보고 설마 했지만, 그리고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현실이라는 자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세상에, 그 유진 감독의 초대받고 여기에 오다니!
더구나.
“전력분석팀으로 절 채용하고 싶다고요?”
“그간 자일슨 씨의 블로그의 게시글들 전부 잘 봐 왔습니다.”
“……!”
자일슨은 담담한 유진의 말에 파르르 떨었다. 자신의 분석 글들과 칼럼을 전부 보고 있었다니! 심지어 유진이 말이다. 그건 팬으로서의 기쁨과 흥분, 그리고 동시에 은근한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자일슨은 무어라 말도 못 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유진이 말을 이었다.
“냉철하고, 깔끔하며, 핵심을 찌르는 분석이더군요. 칼럼을 통해 맨스필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아아…….”
계속된 칭찬에 자일슨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저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 그건!”
“솔직히 말하면, 고맙기도 했고, 또 든든함이 느껴졌습니다.”
자일슨의 입이 헤 벌어졌다. 새삼 소름이 끼쳤다. 치열한 논박의 주제는 유진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나같이 세세하고, 냉철했으며,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워서 헛숨을 몇 번이나 들이켰던가.
‘그런데 그게, 모두 본인을 향한 비판이었어?’
어떻게 사람이 제삼자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
그 정도의 냉철할 수 있을까, 사람이?
새삼 저 정도로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가질 수 있으니까, 저런 성적을 내는 게 아닐까.
그런 감탄도 잠시. 이어지는 유진의 말에 자일슨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제 사단은 누구보다도 저란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와 함께 뜻을 맞추면서 팀을 이끌고 갈 수 있죠.”
“…….”
“예, 자일슨 씨는 그렇습니다. 누구보다도 저와 제가 만들어가는 맨스필드를 해박하게 이해하고, 심지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본인만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죠.”
유진은 자일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리그 원과 리그 투를 위주로 작성해 온 그간의 칼럼. 해박한 지식. 맨스필드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이해력. 그저 ‘취미’로 하시는데도 프로, 그 이상을 보여 주는 분석력.”
“…….”
“맨스필드의 전력분석팀에, 가장 어울리고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자일슨은 입을 다물었다. 칭찬과 기쁨, 숭배하는 유진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성취감. 그 모든 것이 한차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자, 남은 건 현실이었다.
“맨스필드에서, 칼럼과 분석으로 수없이 제시한 자일슨 씨의 능력. 증명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저, 그렇게 인정해 주셔서 정말 고맙기야 한데…… 전 아마추업니다. 그리고, 본업이 있고요.”
자일슨은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회계사란 글자가 유진의 시야에 걸렸다. 자일슨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학에서 스포츠 쪽을 전공한 것도, 생긴 건 이렇지만 정작 운동은 젬병입니다. 제가 잘하는 건 집중력 있게 의자에 앉아서 끈기로 분석하는 것뿐이고,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엔…….”
완곡한 거절.
유진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자일슨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정말로 따로 스포츠 관련 학과나, 자격,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건가요?”
자일슨은 그제야 유진의 옆에 있는 여성의 존재를 인지했다.
워낙 유진을 보자마자 정신이 팔렸기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유진이 말했다.
“이쪽은 구단 회장님이십니다.”
“아, 아, 예, 반갑습니다.”
“흐음. 그러니까, 스포츠 쪽에선 아예 아마추어시다, 이거죠?”
“……네, 전공이 아예 다르니까요.”
무언가 떨떠름해 보이는 표정과 어투에 자일슨은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을 환영해 주다 못해 칭찬을 퍼붓던 유진과는 극명한 태도였다.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자일슨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꺼리는 기색이 가득하다고.
“그렇군요. 흐음. 네, 오늘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네?”
“본인이 고사하기도 하셨으니, 아쉽네요.”
정작 말하는 투는 아쉬움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안도하는 감정까지.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쉽게 느껴지는 게 아닌데, 숨길 생각도 없이 표정에 다 드러났다. 그제야 자일슨은 조금 난처한 표정의 유진을 보고 깨달았다.
‘아, 반대가 있구나.’
그리고 자신을 영입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
바로 유진뿐이라는 것.
“생각을 좀 더 해 보시죠.”
“생각? 왜요, 감독님. 다른 구단의 전력분석팀의 진짜 전문가들 찾아보면 되죠. 왜 굳이 아마추어를…….”
“하지만 회장님…….”
“3부 리그예요. 프로라고요. 전문가들을 모셔도 쉽지 않은 판인데, 그저 칼럼이나 쓰는 아마추어를 데리고 오면…….”
자일슨은 그리 말하는 릴리를 바라보며 속에서 희미한 불꽃이 타올랐다.
“…….”
전문가? 뭐, 소위 말하는 축구 전문가들이 내놓는 칼럼이며 기사며, 분석 글? 그것들이 그리 대단하던가. 물론 자신은 프로 구단에서 일해 본 적 없는 정말 아마추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는 하부리그에서 자신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있겠냐고 내심 자신만만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토록 숭배하는 유진이 자신을 직접 인정하지 않았는가.
순간 속에서 욱하는 게 있었지만, 그는 애써 억눌렀다.
‘나는, 내 본업이 있으니까. 그냥, 내가 사는 세상하고 다른 곳이야. 여긴.’
자일슨은 애써 참으며 말했다.
“예, 하하. 감독님. 저는 아마추업니다. 아마추어가 프로 구단에서 일한다는 건…….”
그리 말하며 애써 고사하는 자일슨을, 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추어, 프로, 그걸 판단하는 사람은 본인이 아닙니다.”
“……!”
“오로지 내가 판단합니다.”
“네?”
“세상의 모든 것은 아마추어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축구는, 골목길에서도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함과 동시에 가장 아마추어적인 스포츠죠.”
“…….”
“여우의 신 포도처럼, 나는 아마추어니까, 그저 취미로 하는 거니까, 그리 생각하시면서, 본인의 가능성을 고작 아마추어 따위로 한계를 짓지 마세요.”
“가능성…… 한계…….”
“다시 말하지만, 우리 팀은, 아니요.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자일슨, 교수.”
“…….”
“곧 시즌이 시작합니다. 시즌이 시작하는 그날.”
말을 멈추고, 한 번의 호흡을 고른 뒤.
유진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맨스필드에서 함께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