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2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19화(120/266)
119. 오직 한 경기를 위한 플랜 (2)
첼시.
첼시의 감독 세바스티안 슈바이처는 보드진의 요구에 명백히 불편한 낌새를 내비쳤다.
“고작 친선전입니다. 그리고 3부 리그 팀입니다. 백업선수와 비주전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데 좋죠. 주전 선수도 물론 투입할 겁니다. 최대한 많은 선수를 교체를 하면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겁니다. 그런데, 반드시 이기라니요?”
생각지도 못한 요구였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보드진이 이 경기만큼은 이겨야 한다, 라고 당부하는 경우는 이미 익숙했다. 감독으로서 그런 간섭이 짜증 나지만, 구단 운영의 측면에서 승리해야 할 경기는 이기고 가야 한다는 것쯤은, 이해하는 바였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명백히 달랐다.
“3부 리그 팀을 친선전으로 해서, 최선을 다하라니. 최선은 다할 겁니다. 근데 필승이라뇨?”
친선전에서 승리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다.
당장 아시아 투어를 떠난 맨유는 일본 팀한테 4대 0으로 졌다. 미국으로 간 그 대단한 맨시티도 명백히 아랫급인 미국 구단들 상대로 1승 1무 1패라는 애매한 성적을 거뒀다.
하나 그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 일부 강성 팬이 불만스럽게 툴툴대도, 소수의 반응이다. 바로 프리시즌의 친선전임을, 모두가 아니까.
“조금 불쾌합니다.”
“감독님, 이건 구단주님 지십니다.”
“예?”
아니, 무슨, 고작 3부 리그 팀 상대로 구단주가 직접 승리하라고 친선전을 챙겨?
슈바이처는 평소 통은 크지만 이상한 데서 고집부리던 구단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혹시, 앤서니, 그 친구 때문에 그런 겁니까?”
떨떠름한 말에 단장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앤서니, 프로 전환을 지시했던 게 구단주님이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보드진들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반대했을 때 강행하셨던 분입니다. 거기에다가, 앤서니 얘가…….”
[첼시에서의 계약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이런 놈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라서요. 보드진 반대에도 프로 전환 계약 강행하셨는데, 이렇게 얼굴에 오물을 던져 버리니…… 예.”
“허.”
솔직히 말해 슈바이처는 앤서니 로우를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재능 있다는 거 알지만, 무슨 소용인가.
임대 간 팀에서도 워낙 악명이 자자했는데. 선수들이 먹는 식단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강력한 규율을 기조로 삼는 첼시 감독에겐 전혀 쓸모가 없는 선수였다.
그래서 내보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보드진에게 일임했고, 생각도 안 했는데.
“이놈 때문에 친선전이 성립되고, 이제 구단주님이 직접 챙기신다.”
“예. 시즌 개막 전, 시원한 승리로 팀 분위기도 좋게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으음.”
슈바이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단주가 그렇게 신경 쓴다면야. 물론 애당초 그는 진다는 선택지가 머릿속에 없었다. 3부 리그 팀이고, 심지어 홈구장에서 부딪치지 않는가. 다만 그는 머릿속을 콕 찌르는, 무언가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맨스필드라…….”
“제법, 하위 리그에서 무서운 팀으로 꼽히는 팀입니다. 다만 선수단이 많이 늙어서…….”
“가난한 팀이죠?”
“예.”
“이거, 맨스필드가 수 쓴 건 아닙니까?”
“……?”
“티켓 수입, 중계비, 그리고 여러 광고 비용까지. 다 맨스필드에게 유리하게 책정됐다면서요?”
“아……?”
“우리가 친선전 거절 못 하게끔 말이죠. 당장 구단주님이 저렇게 화나신 것부터 해서…….”
“설마요. 저 하부리그 팀이, 우리 팀을 상대로 그런 같잖은 수작을…….”
애써 고개를 저으려던 첼시 단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물론 큰돈은 아니다. 첼시의 입장에선 핵심 선수의 일주일치 주급이나 챙겨줄 만한 돈일까. 다만 맨스필드 입장에선 엄청난 수익일 터. 그 수익을 위해서 첼시를 설마 이용…….
단장은 표정을 굳혔다.
“이겨야겠는데요.”
“예. 저도, 조금은 의욕이 생겼습니다.”
슈바이처는 가볍게 실소하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리그 투에서 기적을 그렸던 맨스필드의 유진 감독, 첼시라는 아성을 향해 도전장.]“생각보다 이 경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네요.”
친선전이니 하부리그 팀에게도 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목도의 경기에서 진다면.
슈바이처는 자신을 바라볼 맨시티와 아스날, 맨유 감독의 비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때론 스파링에서,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단 사실을 알려 줘야죠. 저, 파릇파릇한 새싹인 어린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잔혹한 교훈이 될 겁니다.”
* * *
일반적으로 프리시즌 친선전은 6경기 내지, 8경기를 진행한다.
하나 맨스필드는 5경기째 진행 후, 이후 일정에 잡혔던 모든 경기를 취소했다.
“기술로는 상대할 수 없어. 찬사받는 대니 스콧의 발재간도, 스탠리의 스피드와 드리블도, 프리미어리그에 가면 평범함, 또는 그 아래 수준.”
하물며 상대는 첼시다.
유진은 냉정하게 말했다.
“기술을 갈고닦는 건 무리야. 대신, 적어도 지금 그들과 그나마 비슷한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건 체력이지.”
체력도 사실 첼시에 비교할 수 없다.
저쪽은 리그, 유럽대항전, FA컵, 리그컵,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는데 도가 텄다.
“그렇지만 지금은 프리시즌이야.”
유일하게 저쪽도, 이쪽도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닌 상황.
프리시즌에서 완벽한 체력을 만들어놓는 건 쉽지 않다.
최대한 프리시즌에서 바탕을 만들고, 시즌을 치르면서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유일하게, 맨스필드가 체력적으로 첼시와 해볼 만한 상황인 셈이다.
거기서 유진은 한 발짝 더 나아가려 했다.
단 한 경기.
그 한 경기를 위해 유진은 플랜을 세우고 진행했다.
“최대한 부상 위험도가 적은 선에서, 체력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훈련을 진행해 주세요.”
유진의 지시에 코치진은 납득하면서도 조금 당혹스러웠다.
“친선 경기중 가장 빅매치니까…….”
“그런데 다른 친선 경기까지 취소하면서?”
“친선 경기의 의미를 감독님이 모르시진 않을 텐데.”
그들이 보기에 유진은 리그의 어떤 경기보다, 진심으로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본 것이다.
유진은 진심이었다.
“예정된 친선 3경기의 취소로 훈련에 힘쓸 시간이 생겼습니다.”
“다만, 이러면 경기 감각이…….”
“우리가 경기감각이 100%라고 해도 첼시보다 우위가 될 순 없습니다.”
“……!”
“하지만 충분한 휴식과 체력, 이 부분에서는 정해진 일정대로 친선 경기를 치르면서, 그리고 갑자기 추가된 우리와의 경기까지, 한 경기 더 치르는 첼시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유진은 거침없이 지시를 내리고 움직였다. 팀을 이끄는 선장이 경기를 앞두고 망설임 없고, 흔들림 없이 나서는 모습은 선수단에게 기이한 열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다.
지금 선수단 변동은 극히 적었다.
4명의 방출, 앤서니의 영입.
한마디로 지난 시즌, 하나로 단결되어 우승을 거머쥐었던 선수단의 분위기와 결속이 유지되어 있다는 점.
모두가 유진의 지시나 지침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맹신에 가까운 충성을 보인다는 점. 때문에 모두가 패배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던 첼시전의 인식이 서서히 변했다.
“감독님 열정적이신데?”
“훈련이 엄청 힘들어지긴 했는데, 보니까 단단히 준비하시는 것 같아.”
“감독님이 저럴 때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곤 했지.”
“첼시 상대로도 뭔가 비장의 수가 있는 거 아냐?”
선수단이 격렬한 훈련에 불만 한 점 없이 임하면서도, 동시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 기대감이, 선수들의 열성적인 훈련 참여의 동인이 됐다.
하부리그 선수들에게 첼시라는 빅클럽의 상대는 꿈에 그리던 경기나 다름없다.
하물며 그런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그같은 기대감이 미약하게 맥동하며, 선수단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훈련이란 것은 지시에 따른 수동적 참여보단, 적극적인 참여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법.
코치진은 프리시즌부터 고양되는 이 분위기에 놀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저 수익 때문에 첼시하고 친선전 하는 것만은 아니었나?”
“허, 선수단 분위기를 이렇게 쉽게 조성할 수 있는 거였어?”
“심지어 앤서니도 훈련 지각 안 하고 있어요. 첼시전이라 그런가?”
“이 정도면 프리시즌에서 이룰 수 있는, 시즌 개막전에 최상의 분위긴데요.”
코치진도 상기된 얼굴로 훈련에 뛰어들었다.
“허, 친선 경기 하나로 수익도 수익이고, 선수단 분위기도 분위기고,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대단한 점이 한두 개가 아냐.”
“하긴, 애당초 첼시를 이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합니다. 그런데도 저리 나오신다는 건, 이런 효과를 위해서겠죠.”
애석하게도 코치진의 착각이었다.
“이길 겁니다.”
유진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선언했다.
“……!”
“졌지만 잘 싸웠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 스포츠는 승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코치진은 담담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조심스레 떠올렸다.
선수단 사이에 도는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혹시, 방안을 마련하셨습니까?”
알롭의 질문.
스탠리의 포지션 변경, 전술 변화, 제임스의 활용…….
쉽사리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때마다, 번뜩이는 수로 역경을 돌파하던 유진.
저토록 자신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유진은…….
“없습니다.”
“……!”
“기발한 계책? 변칙 전술? 안 통합니다. 첼시는 체급 자체가 달라요.”
그런 게 통하려면 적어도 해볼 만한 체급이어야 한다.
첼시라는 팀의 체급은 맨스필드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데, 이번에는 순전히 감입니다.”
“감이요……?”
코치진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유진은 그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중요시하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수단의 기량, 성적, 몸 상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걸 보고, 상대 팀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내며, 승리를 자신했었다.
그러나 감이라니.
“예. 감이요. 어쩐지, 질 것 같지 않다는 감이요.”
유진이 담담히 웃었다.
* * *
런던에 구단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이었다.
필드 감각을 느끼기 위해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릿지의 잔디를 밟는 순간, 모두 감탄을 터뜨렸다.
“같은 천연 잔딘데, 이게 느낌이 다르네.”
“허어. 구장 봐. 이렇게 큰 경기장은 처음이야.”
선수들의 얼굴에 미약한 설렘과 동시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나 역시 구장을 크게 둘러봤다.
첼시는 과연 빅클럽의 위용을 보여 줬다. 경기장에서 미리 훈련하면서 컨디션을 올려도 되냐는 질문에, 흔쾌히 승낙해 줬으니까.
자신감이겠지
그럴 만하다.
“여기가 한때, 80경기가 넘는 무패의 경기장이란 말이지.”
막스가 적잖이 감탄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소위 말하는 무리뉴 감독의 1기 첼시 시대.
1462일 동안 홈 86경기 무패라는, 이 입지전적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그 이후 첼시가 한번 무너지고, 다시금 재건하고 부활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만한 압도적 홈 극강의 위용은 보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
그리고 나는 여기서.
‘늘 승자였다.’
그래서일까.
감, 순전히 직감이 말했다.
질 거 같지가 않다고.
신기한 일이다. 사실 첼시 같은 체급의 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변칙 전술 따위가 통할 체급이 아니니까. 머리를 굴려도 방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약팀이 할 수 있는 선수비 후역습,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종의 ‘정신론.’
그것뿐이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감독이다. 운과 우연에 승리를 기대는 사람이 아니다. 친선전이니까 충분히 이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그 사실만을 멀거니 바라보는 게 아니다.
그건…….
“구텐탁.”
툭, 튀어나오는 독일어 인사.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각진 얼굴의 딱딱한 중년인이 악수를 건네오고 있었다.
“저도 선수 시절에 보훔에서 뛴 적이 있죠. 보훔에서 코치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젋으시군요, 유진 감독님.”
“…….”
그 큼직한 손을 맞잡는 순간, 나는 가볍게 웃었다.
세상 모든 것에 상성이란 게 있다.
그건 객관적인 지표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
“예, 반갑습니다. 슈바이처 감독님.”
그래, 상성.
15전 13승 2무.
나는 이 남자의 극상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