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2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20화(121/266)
120. 오직 한 경기를 위한 플랜 (3)
첼시가 관중 동원력이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팀이긴 하지만, 3부 리그와의 프리시즌 친선전에 만원 관중을 채우는 건 조금 다른 얘기였다.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블루야 말로 제일이며, 최고의 축구라네-).”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좌석을 가득 채운 홈팬들이 내뿜는 열기와 응원가는 지금껏 맨스필드 선수단이 겪어 보지 못한 종류였다.
이토록 대단한 열기는 여러 이유였다.
개막 직전의 마지막 친선전이라는 점. 평일 경기가 많은 프리시즌인데도 금요일 저녁, 최고의 시간대라는 점. 첼시가 이번 시즌 우승을 노리는 만큼, 팬들의 기대감이 절정에 달했다는 점…….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그 패배자 앤서니를 죽여버려!”
“우리가 낸 티켓값으로 돈 벌고, 첼시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값진 시스템에서 성장해놓고, 배신과 모욕을 한 앤서니를 지옥으로!”
“Wuuuuuuuuuuu―!”
사실상 분노야말로, 열정의 가장 큰 동인인 법.
팬들이 가장 사랑과 애정을 보내줬던, 기대주.
앤서니에 대한 배신감이야말로 만원 관중의 가장 큰 이유였다.
고작 열아홉 살에 대한 분노라기엔 과할 정도였다.
사실 맨스필드에서는 앤서니의 행실과 언행을 문제로, 특히 알롭의 강력한 어필로 언론접촉 금지령을 앤서니에게 내렸다.
문제는 앤서니의 멈출 수 없는 SNS였다.
@AnthonyKing
Photo) 땀 흘리며 음료수를 마시는 사진.
@AnthonyKing
맨스필드에서의 훈련은 첼시의 모든 것보다 부족하지만, 단언컨대 효과는 가장 좋다. 첼시에서의 내 4년, 맨스필드에서 시작했으면 지금쯤 나는 월드클래스였을 거다.
@AnthonyKing
첼시에서 레알 마드리드 가는 것보단, 맨스필드에서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가장 나이 많은 알롭은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말한 퍼거슨 감독의 명언을 어필하며, 비명까지 지르면서 앤써니의 SNS 계정을 지우고 싶어 했다.
하나 어쩌겠는가. SNS는 앤서니에게 최후의 보루와 같은 용도.
SNS를 막을 수 없었다. 전 구단 디스를 하는 것이 흔하진 않지만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고, 막 유난스러운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앤서니의 문제는 과했다. 그만큼 앤서니가 아닌 척하면서도 마음이 상했다. 그래도 유스를 시작한 소속팀인데, 설마 재계약을 안 하고 그대로 방출할 줄이야.
그는 마지막까지 맨스필드와 첼시를 저울질했다.
첼시에서 붙잡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유진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첼시로 갔을 것이다. 애정이 컸던 만큼, 그도 배신감을 느꼈기에 철없이 SNS로 표출한 셈이다.
“앤서니를 죽여!”
“지가 못 해서 쫓겨난 머저리를 두동강내 버려!”
“첼시의 수치다! 저딴 놈이 팀 최고 기대주였다니!”
“실력에 걸맞는 하위 팀에 갔으니 행복하겠지!”
첼시 팬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그리고 구단도 그런 팬들의 반응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구단주가 나서지 않았어도 보드진이 먼저 움직여서 감독에게 필승을 요구했으리라.
감독 역시 외부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팬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하는 프로스포츠의 숙명쯤은 잘 이해하는 인사였다.
―첼시의 포메이션은 4-3-3입니다. 공격적으로 나오는군요! 최전방에 작년 득점 2위 마우로 디아라, 윙 포워드에 골과 어시스트 텐-텐을 기록한 악셀 맹기, 이번 시즌 레버쿠젠에서 이적해온 독일 국가대표 케빈 비머!
마치 리그 개막전이 지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300명이 채 되지 않는 맨스필드 원정팬들은 라인업이 전광판에 발표될 때마다 입이 점점 벌어지다 못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지금 저 선수 한 명이, 우리 팀 전체보다 몸값이 높아.”
“지금 베스트 일레븐이면 우리 구단을 열 개는 사고도 남겠는데?”
“이거 맞나…….”
최소 몸값이 대략 3천만 파운드의 어린 수비수였으니.
원정 팬도, 자신만만하게 한번 해보자, 외치며 뛰쳐나왔던 맨스필드 선수단도, 벤치의 코치진도, 모두 얼굴에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쟤들 왜 진심인데…….”
“약팀 상대로 비주전 선수들 내세워서 기량 점검하는 게 보통이지 않아?”
“왜, 우릴 상대로 진심인 건데.”
그런 중얼거림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삐이익!
휘슬과 함께, 첼시라는 메가 클럽의 전기톱이 거칠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 * *
공교롭게도 첼시의 감독, 슈바이처도 올해가 첼시에서 2년 차다.
도르트문트를 이끌던 그는 몇 년 내 부진을 거듭하던 첼시의 러브콜을 받았다.
첫 시즌은 딱히 대단한 성적을 보여 주진 못했다. 유로파 리그 진출이라는 그저 그런 성과. 하지만 시즌 도중 부임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결과다.
그러므로 진짜 팬들과 구단 운영진의 시험대는 바로 이번 시즌이었다.
친선전의 승리로 팬들이 합격점을 주진 않겠지만, 패배로 낙제점은 줄 수 있는 게 바로 감독의 리스크다. 슈바이처는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이번 시즌 구상한 완벽한 베스트 일레븐.
소위 몇몇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폭발적인 공격력을 본떠 부르는 ‘런던의 전기톱’이 거친 엔진음을 토해냈다.
투웅!
맨스필드가 공을 잡은 순간. 라인을 미친 듯이 끌어올린 첼시의 강한 전진 압박이 쏟아졌다. 무려 프리미어리그,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팀의 압박이다. 젠킨슨은 물론, 스탠리, 아니, 그 어떤 선수도 그 압박을 벗겨 내지 못했다.
공은 허무하게 첼시 진영으로 넘어갔고, 동시에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 기량이 빛을 발했다.
―첼시의 벼락같은 슈팅! 골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납니다! 이야, 정말 감쪽같은 슈팅이었어요. 전방 압박으로 볼 탈취 후, 반박자 빠르게 호흡을 빼앗아 버리는 대단한 공격이었습니다.
―이 한 장면이, 오늘 벌어질 경기를 압축해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중계진의 우려는 정확했다.
“Chelsea Chelsea Chelsea Chelsea!”
“We‘re gonna make this a Blue Day!”
팬들의 응원가에는 즐거움과 흥겨움이 잔뜩 묻어났다. 아니 그러겠는가.
―전반 시작하고 22분이 지난 시점! 점유율은 현재 76대 24! 맨스필드, 슈팅을 한 번도 하지 못한 반면, 첼시는 무려 14개의 슈팅을 퍼부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둬 놓고 패기.
전형적인 경기였다.
팬들은 모두 예상했지만, 친선 경기에서 하위 팀한테 상위 팀이 잡히는 이변이야 흔하게 발생하니, ‘혹시?’ 불안해하던 팬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맨스필드의 수비진이 처절하게 몸을 날렸기에 무득점이었을 뿐.
“미친 듯이 뛰는군.”
“공을 뺏지도 못하면서, 거의 모든 걸 쏟는 것처럼 뛰는데?”
“오버 페이스야.”
첼시 벤치에선 긍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득점이 터지지 않는 건, 맨스필드가 이렇게 밀리는 와중에서도 과도할 정도로 뛰어다니면서, 처절하게 몸을 날리는 덕분이었다.
비록 수준 차이가 극심해 공을 뺏지 못하지만, 몸을 날려서 슈팅 각을 좁히고, 선택지를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능히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프리시즌인데 저 체력이 어디 갈까.”
“우리 애들도 살살 버거운 게 보일 정돈데.”
첼시 역시 그런 맨스필드의 활발한 움직임 때문에, 예상보다도 더 강한 전방 압박과 활동량을 가져가야 했다. 비록 맨스필드의 처절함 정돈 아니지만, 첼시 역시 상당한 체력 소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될 건 없었다.
“저쪽이 오버페이스니까 후반전 되면 그냥 무너져.”
“한 골만 터지면, 그리고 후반만 되면 도미노처럼 무너지겠지.”
그리고 첼시의 예상은 정확했다.
투웅!
“……씨!”
쓰리-톰 중 하나, 미드-톰인 톰 브룩스는 솟구치는 욕지거리를 겨우 참았다.
욕을 내뱉을 여유 따위도 없었다.
상체의 균형을 역전시키며 단숨에 공간을 파고드는 첼시의 악셀 맹기. 카메룬의 독수리라는 별명답게 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공을 달고 있는데, 저런 속도에, 저런 드리블은 대체 뭐냐고!’
숨이 턱 막혔다. 압도적인 벽의 차이. 절실히 느끼는 수준의 격차.
역동작에 걸려버린 톰 브룩스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중앙을 단숨에 헤집은 악셀 맹기는 흘끔, 전방을 보고 공을 툭, 찍어 차올렸다.
―아, 툭 찍어 차올리는 악셀 맹기의 재치 넘치는 로빙 패스! 수비진을 속여버리는 그 틈으로, 마우로 디아라가 탄력 있게 파고듭니다!
골문 앞. 수비진을 벗겨낸 프리미어리그 직전 시즌 득점 2위의 마우로 디아라의 발에 공이 떨어졌다.
그 말은 곧 동의어였다.
철럭―!
‘골’이라는 단어의.
―끝없이 두드리던 첼시가, 기어코 선제골을 쏘아 올립니다!
―아아, 역시 마우로 디아라! 이번 시즌 득점왕을 노리는 선수인 만큼,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첼시의 관중이 벌떡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열리지 않아서 답답했을 뿐이지, 한번 열렸다면 그다음부터 두 번, 세 번 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드리블 돌파! 제치고, 오, 화려한 개인깁니다! 이야아아! 한명, 두명, 마우로 디아라! 디아라! 디아-골! 골대 우측 외곽을 절묘하게 찌르는 엄청난 골!
―마우로 디아라, 5분 만에 두 번째 골을 넣습니다! 맨스필드, 참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체급이면, 그 무엇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순전히 체급으로 찍어 누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첼시는 똑똑히 보여 주고 있었다.
* * *
“아쉽군.”
슈바이처 감독은 하프타임을 알리는 휘슬을 들으면서 중얼거렸다.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하하, 감독님. 후반전 돼도 뭐 별다를 게 있겠습니까.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는데요.”
“하프타임 동안 충분히 재정비할 수 있지. 선제골이 좀 이른 시간에 나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 맨스필드의 처절함은 의외였다.
‘대체 왜?’
이게 무슨 리그의 중요한 경기도 아니고, 누구나 패배를 예상하는 첼시전이 아닌가. 패배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적어도 맨스필드한테는.
저렇게까지 몸을 날리는 극한의 모습을 보여 줄 이유가 있단 말인가.
덕분에 첼시는 분명 점유율과 슈팅 수를 압도했지만, 막상 흐름을 보면 답답함이 지속됐다. 전반전에 선제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꽤 끔찍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걸 노렸겠지.’
전반전만 틀어막아도, 어떻게 할 수 있겠다는 맨스필드 감독의 생각이리라.
“재정비해도 한계가 뚜렷합니다. 뭐 리그 투의 과르디올라니, 그런 별명이 있길래 좀 경계했습니다만, 격차가 크게 나네요. 특별하거나 기발한 재치 같은 건 안 보였습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슈바이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껄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흘긋 딱딱하게 굳은 채 터널로 향하는 선수들의 어깨를 한 명씩 두들겨 주는 유진 감독을 바라봤다.
“…….”
무엇일까.
분명 이기고 있고, 적은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무너졌는데.
희미하게 드는 이 깔끄러움은 또 무어란 말인가.
긴 경력을 가진 감독으로서의 직감이었다. 한데 그 직감에 주의를 기울여도,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거북했다.
‘우려인가.’
설마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 할 줄은 몰랐는데.
‘강등 팀을 우승까지 만들어 낸 솜씨는, 경계할 만한데.’
내가 너무 걱정한 건가? 너무 신경 쓴 건가?
그는 유진의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후반전은 편하게 가시죠. 전반전에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좀 예상보다 많이 뛰었습니다. 시즌 앞두고 혹시 부상 우려가…….”
코치의 조언에 잠시 슈바이처 감독은 잠시 멈칫했다.
“후반전은, 아예 다른 팀으로 가보자고?”
“친선전이잖습니까. 선수 체력, 부상, 시즌은 깁니다. 유로파도 있고요.”
슈바치어 감독은, 머릿속 떨어지지 않는 희미한 깔끄러움을 고개를 툭툭 흔들어 치워냈다.
“그렇게 하지. 고작 친선전일 뿐이니까.”
* * *
“전반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압니다. 그 눈. 거친 호흡. 진짜 벽을 만난 압도적인 절망감.”
“…….”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눈앞에 두고 좌절하는 기분일 겁니다.”
나는 침울해진 라커룸의 중앙으로 툭툭, 걸어갔다.
“그런데요, 에베레스트는 끝내 인간에게 정복됐습니다. 저 옛날, 산소통 하나만 매달고 오르던 도전자들에게요.”
“…….”
“여러분의 등에는, 여러분이 미처 생각지 못한 산소통이 늘 존재합니다. 교체할 필요도, 고갈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영원한 산소통이요.”
“……?”
침울하게 바닥에 처박혔던 선수들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의문, 호기심, 그 모든 것이 뒤섞인 표정.
“삼백이십사 명.”
“…….”
“지금 맨스필드에서 버스를 타고, 여러분과 함께 온, 바로 팬들입니다.”
“……!”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라디오 어플을 켰다.
―맨스필드라이브에서 시민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첼시와의 전반전, 다소 아쉽게 실점을 했지만…….
“그리고 펍에 모여, 직장에서, 집에서, 방송 중계를 켜놓고, 운전하면서 라디오 중계를 켜 놓고,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산소를 공급해 주는 산소통이, 저 맨스필드에 있습니다.”
선수들의 얼굴에, 희미한 열기가 감돌았다.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첫 도전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좌절, 막막함, 절망감, 그 모든 것에 휩싸였을까요.”
“…….”
“아니면, 저 꼭대기 위에 올라 새로운 경치를 보겠다는 열망에 차 있을까요.”
선수들의 얼굴색이 서서히 변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한 명씩 시선을 마주했다.
“저 아득한 첼시라는 절벽을 기어서 올라가, 끝끝내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여러분 앞에 왔습니다.”
“…….”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떨어지면 죽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올라도 그저 한 경기의 패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
“까짓것, 이 악물고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후반전, 포메이션 변경합니다.”
모두의 시선과 이목, 모든 것이 집중됐을 때.
“현재 포메이션에서 오스카가 한 칸 내려와서……미드필더는 이때 훈련에서 발을 맞춘 대로…….”
짧지만 단호한 변화를 그들에게 주입하며.
“…….”
침묵 속, 희미하게 열기를 내뿜는 호흡을 듣고, 그들의 반짝이는 눈을 봤다.
나는 승부수를 던졌다.
“가서, 당장 절벽을 같이 올라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