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2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25화(126/266)
125. 유진의 거래법 (2)
사실 첼시와의 친선전은 유진의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왔다.
―노팅엄셔주의 작은 팀, 맨스필드가 첼시에게 일격을 먹였습니다!
지역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며 중후한 외모의 감독은 헛웃음을 켰다.
“어째, 우리 팀이 프리미어리그 승격했는데, 들어 보면 저 맨스필드가 노팅엄셔 주 대표팀인 것 같아?”
“……원래 예상치 못한 이변엔 사람들이 열광하는 법이니까요.”
“맨스필드라, 그리고 유진 감독이라. 그 친구지?”
중후한 사내.
지난 시즌, 극적인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한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 울란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의 오만한 천재, 대니의 마음을 훔친 사람 말일세.”
대니.
그 이름이 언급되자, 맞은편의 대니얼 코치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울란스 감독은 대니얼 코치와 대니 스콧의 영 껄끄러움을 알지만 호기심을 참기 어려웠다.
“자네가 붙어 봤지 않은가? 그 유진 감독.”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저번 시즌 워낙 바빠서, 별로 인상적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은근해지는 울란스의 눈빛에 대니얼 코치는 얼굴이 붉어졌다.
기억이 나지 않긴 개뿔,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패배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무시했던 상대, 어린 나이에 감독직을 맡은 것에 대한 질시, 그래 봤자 하부리그 감독에 불과하다는 비웃음, 유리하기 짝이 없던 당시 연습 경기 상황.
한데도 졌다.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솔직히 말해 대니얼 코치는 그 후에 여러 번 경기를 복기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대니가 행복해 보이더군. 나는 그저 그를 위한답시고 은퇴를 종용하고 코치직을 맡긴 거였는데……. 그저 하부리그 팀, 못 버린 미련 때문에 뛰려고 간 줄만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팀이고, 대단한 감독이야?”
“우승하기야 했지만, 그래도 고작 4부리그 우승이지 않습니까?”
“리그의 수준이 낮다고 해서, 우승의 가치가 옅어지는 건 아냐. 도리어 압도적 강자가 없는 리그지. 그런 리그에서 압도적 우승을 거뒀어.”
“…….”
“뭐, 자네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지.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아니긴 해. 그렇지만…….”
울란스 감독은 전력분석관의 보고서를 확인했다.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기엔, 평범한 친선전으로 폄하하기엔 경기 내용이 보통이 아냐.”
보고서.
바로 이것이었다.
유진의 생각과 달리,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이 첼시와 맨스필드의 친선전을 주목한 이유.
첼시는 모든 팀의 라이벌팀이자, 언제든 우승을 노리는 팀이고, 동시에 강력한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팀이다. 시즌 시작 전, 마지막 개막 직전의 경기였다.
자연히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마지막으로 첼시를 점검하기 위해 스카우터와 분석관들을 일제히 파견했던 것.
소위 지구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최고 리그 프리미어리그.
그런 클럽들의 분석관의 눈도 역시 매섭기 짝이 없는 법.
그들은 친선전에서 보여 준 유진의 디테일과 경기 양상에 주목했다. 주머니의 송곳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듯, 그들은 그저 ‘친선전의 일부다’라고 치부할 수 없는, 유진의 번뜩임을 느낀 것이다.
“그래도 이제 3부리급니다. 우리가 3부리그, 아니 양보해서 다시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하지 않는 한, 딱히 맞닥뜨릴 일도 없을 것 같은데요.”
대니얼의 반응은 다소 사감이 담겼지만, 일반적인 반응이다.
첼시하고 친선전에서 한 경기 비겼다고,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논하는 건, 이제 막 3부리그에 올라간 팀한테 누가 감히 할 수 있는 예상이겠는가.
한데 울란스 감독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왠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는 느낌.
그는 보고서에 그려진 맨스필드의 앰블럼을 바라봤다.
뿔이 솟구친 새하얀 숫사슴.
“숫사슴이라…… 무슨 숫사슴이 첼시라는 거함에 들이받지? 돌연변이라도 되는가.”
실없는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울란스는 쉽사리 그 엠블럼과, 감독 ‘유진 피셔’라고 적힌 문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노팅엄 포레스트뿐만 아니었다.
“흐음. 파산 위기에 처했던 팀, 그런데 조직을 개편하고, 심지어 유스 아카데미까지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는 개혁을 감행?”
“재정 건전화를 이뤄낸 뒤에, 압도적인 성적으로 비상이라…….”
“한번 무너졌던 팀을 재건하는데 엄청난 능력을 증명하긴 했군요.”
“그렇다면 우리 팀에게도……?”
한때, 매 시즌 트레블을 논하던 영광의 시대를 보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의 구단 보드진들은 저번 시즌 유로파 진출에도 실패한 현 맨유 감독을 경질하지 않은 것을 불안 요소로 여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감독을 갈아 치우자는 의견이 팽배한 상태. 그런 그들에게 유진이라는 꽤 인상적인 신예 감독이 눈에 들어온 게 아닌가.
“아니야. 너무 초짜야.”
“……하긴 우리 맨유가 아무리 성적이 옛날 같지 않아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메가 클럽 중 하나인데 말이지.”
“챔피언십의 팀도 아니고, 이제 3부리그 팀의 감독을 후보 선상에만 올려 둬도 난리가 날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속적으로 관찰은 해 보죠? 잠깐 반짝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감독으로서 포텐셜이 있는지요.”
“그래, 그 정도로만 합시다.”
맨유 보드진의 책상에 올라온 유진의 보고서는, 그렇게 두꺼운 파일철에 끼어졌다.
.
유진의 보고서가 올라간 책상은, 바로 이웃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맨유의 시끄러운 라이벌이었지만, 이제는 맨시티 왕조를 건설해 낸 메가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실 책상 위에도, 보고서 한 장이 올라왔다.
“하부리그의 과르디올라라…….”
맨시티의 트레블을 이뤄내고 왕조를 개창한 펩 과르디올라.
그 후로 여러 감독이 맨시티의 사령탑을 지났지만, 그 누구도 펩의 후계자라고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과르디올라와 유사하단 소릴 듣는, 맨시티의 신임 감독 주앙 로드리게스는 보고서를 노려보듯 쳐다봤다.
고작 3부리그 팀.
평균 관중 7천 명에 불과한 소규모 구단.
맨시티 선수 한 명의 몸값보다도 적은 형편없는 구단 가치.
그런 팀의 2년 차 감독.
“……주제넘는 별칭이 붙었군.”
주앙 로드리게스 감독은 그 보고서를 세절기에 넣고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다.
고작 하부리그 감독 하나에 신경을 쓰기엔, 맨시티는 너무 컸다.
.
북런던, 토트넘 핫스퍼.
백발이 성성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연장자인 울리히 바이어 감독은 허허, 웃음을 지었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흰 눈썹이 그의 부드러운 성품을 짐작게 해 줬다.
“슈바이처, 이 친구가 만만한 친구는 아닌데. 방심을 했나?”
자신의 옛 제자. ‘슈바이처 감독의 굴욕’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어 내리는 그의 눈이 호기심으로 번뜩였다.
“아니면…….”
그의 넉넉한 눈매가 젊은 유진이 찍힌 사진에 향했다.
“이 친구가, 재치가 좀 있나?”
.
“무시하지 마세요. 예? 첼시가 이번 시즌 보강 철저하게 한 거 알잖아요? 서포터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코치진인 우리까지 똑같이 첼시를 비웃고 방심하면 되겠습니까? 예?!”
쩌렁쩌렁 울리는 불호령에 긴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코치들이 고개를 팍 수그렸다.
누가 봐도 까탈스러운 느낌이 팍팍 풍기는 강퍅한 얼굴의 백인 사내.
아스날의 감독 빅토르 보네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방심하지 말고, 시즌 개막전 준비 똑바로 해요. 뭐합니까? 여기 앉아서. 당장 나가서 훈련장 컨디션을 점검하든 뭘 하든, 일하세요!”
우르르 코치진이 허겁지겁 나가고 난 뒤에도 빅토르 보네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풀지 않았다.
맨시티의 아성에 가장 강력한 도전자 아스날.
그의 머릿속은 늘 맨시티를 뛰어넘는 것으로 가득했지만, 첼시도 위험 요소였다. 이 까다로운 팀은 결코 방심해선 안 될 상대니까.
하지만 고작 친선전 결과 하나로, 코치진에서도 비웃는 모습을 보니 절로 신경질이 난 것이다.
“뭐, 친선전에 이런 일이야 흔하지. 다들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리 중얼거리며 빅토르 보네는 보고서를 내려다봤다.
전력분석관들이 내놓은 철저한 통계와 분석.
구단의 가치와 선수들 수준, 몸값의 상세한 차이까지.
그 엄청난 격차가, 이 종이 한 장만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그래도 저 선수단으로…….”
빅토르 보네는, 조금 풀어진 얼굴로 그 보고서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바라봤다.
“나는 자신이 없긴 해.”
빅토르 보네는 <감독 유진>이라고 적힌 문구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
“구단주께서 실망을 많이 하셨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앤서니 로우, 첼시를 무너뜨리는 일등 공헌! ‘첼시는 런던의 그저 그런 팀임을 증명했다.’]슈바이처 감독도 그 기사를 보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알았다.
설마, 시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구단주의 질책을 전달받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단장은 묵묵부답인 슈바이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긴급 수혈로 이적 자금이 추가 증액됐습니다.”
“……!”
“다만 구단주님께선, 앤서니 로우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를, 그 나이대의 선수를 원하더군요.”
“그 말씀은…….”
“아스날이 영입하기 직전인, 골든보이, 패트릭 시몬스의 영입에 구단 전체가 달려들 겁니다.”
그 말에 슈바이처의 담담하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그 정도 선수를, 또 사 준다고……?
앤서니와 같은 나이지만, 앤서니보다 훨씬 훌륭한 성과를 보이는 선수다.
챔피언십 임대만 전전했던 앤서니와는 달리, 아약스의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견인한 일등 공신. 그것도 19세의 나이에.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뉴캐슬과 아스날, 아니, 돈 좀 있고 명성 높은 구단이라면 다 원하는 엄청난 매물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데리고 올 겁니다. 이미 접촉은 완료했고, 긍정적인 대화가 오가고 있어요.”
질책을 잔뜩 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도착한 단장의 사무실.
한데 정작 엄청난 선물을 한 아름 들고 문밖으로 나온 슈바이처 감독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게, 이렇게 되나……?”
그깟 친선전의 굴욕.
그게 무슨 대수랴.
저런 선수를 사 주겠다는데.
물론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만한 선수를 사 주는 건, 정말 전폭적인 지지다. 슈바이처 감독은 초짜가 아니다. 이 정도 지지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도리어 힘을 못 쓸 정도로 어리진 않다.
“이거, 도리어 맨스필드의, 그 젊은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어떻게, 고마움의 인사라도 해야 하나 실없는 고민을 하던 때.
지잉-
“……?”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한 슈바이처 감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녕하세요, 맨스필드 감독 유진입니다. 선더랜드 디렉터 분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통화 가능하십니까?
“…….”
슈바이처 감독은, 기이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문자를 보고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먼저 통화를 걸었다.
듣기 좋은 미성이, 나직이 울렸다.
―유진입니다, 감독님.
“……이렇게 갑작스레 연락이 와서 놀랐소. 무슨 용건인지 궁금하구려.”
독일인답게 단도직입적이고 직선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전화 건너편, 유진은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했다. 도리어 희미한 미소까지 담겨 있는 듯한 어투로.
―좋은 거래를 제안드리려고 합니다.